저수지에 서식하는
마름의 열매를
말까시라 했습니다.
소싯적 수영하다가
발에 찔려 건져보면
별사탕처럼 생긴
열매가 올라오죠.
깨물어 터트리면
하얀 녹말이 나옵니다.
물밤이라고도 합니다.
배고풀때 먹곤 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반복되는
인생길 그것이 추억이죠.
은퇴하여 백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백발의 청춘이죠.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공유할까 합니다.
KHGDFF@AI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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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성지 탑골공원

최첨단 정보화시대 대한민국 수도중에 종로1번지에 낡고 허름한 건물 사이로 시니어 형님과 누님들이 나름 삶의 의미를 찾고자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그 소리가 마치 기차 레일에 굴러가는 쇠바퀴처럼 요란했다.
 
눈이 돌아갔다. 이런, 너댓명 골판지 할망구다. 어깨에 둘러맨 미니가방은 무엇이 가득한지 남산만큼 불룩했다. 뭉텅한 할미꽃들이다. 영하의 날씨에 철갑을 두르고 빵모자를 깊게 눌러 쓴 그녀들은 전투 태세다.
 
그녀들은 삼삼오오 모여 봉지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마주 치지는 않았다. 잡담은 하는 것 같았으나 눈길은 서로 방향이 달랐다. 굶주린 표범이 먹잇감을 노리듯 낮은 자세로 고개를 곤두세워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앗! 백발의 청춘이다" 목아지를 쭈욱 빼고는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무서웠다. 낯선 곳 종로에서 낚이면 큰일이다. 뒷골목으로 잽싸게 피신했다. 어그적 이구아나처럼 따라오던 골판지 할망구들은 대어를 놓쳤다며 혀를 찻다.
 
길은 좁았다. 간판은 즐비, 어지럽다. 먹거리 간판이다. 사이사이 이발 5천원이다. 6천원 7천원도 있었다. 저렴하다. 오잉, 대실 1만원 요것은 무엇이당가. 먹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대실 1만원 배너가 한집 건너 너도나도 내다놨다.
 
할배들 꼬셔 똘똘이 목욕해준다는 그곳이 여기였구나.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빨리 벗어나야 했다. 모텔, 호텔이 하나 건너 또 있었다. 두근거린다. 골판지 할매에 잡히면 큰일이다. 그녀들은 작은 가방을 어깨에 가로질러 매고는 투망을 던질곳을 호시탐탐 노리는 박카스 할매였던 것이다.

10 months ago (edited)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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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돋아난 쥐젖

오른쪽 목덜미 아래쪽에 쥐젖이 생겼다. 좁쌀만 한 게 두 개 돋아났다. 세수하다가 발견했다. 그 이후 수시로 손길이 간다. 잡아뗄까 하다가 그대로 방치하기로 했다. 덧나면 곤란하지 않은가. 무슨 이유일까. 곱던 피부에 원치 않는 쥐젖이 돋아났을까. 미용에도 좋지 않고 자꾸만 신경 쓰이는 쥐젖을 어찌하면 좋을까. 레이저로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없애 버릴까. 생각은 또 생각을 만들어낸다. 세수할 때마다 자연적으로 손이 가는 쥐젖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무용지물을 달고 다녀야 하나, 고것이 문제로다.

노화의 현상이란 말인가. 지난겨울 얼굴에 난 주근깨 검버섯을 제거하기 위해 거금을 투자했다. 레이저 시술받았다. 얼굴에 마취약을 바르고 난 후 잠시 대기하는 사이 안면 근육이 당겨지는 느낌이면서 얼얼하다. 잠시 후 의사의 부름을 받고 시술실로 들어가 보니 이발소에서 본 것 같은 의자가 있었다. 앉으라 한다. 뒤로 젖혀졌다. 찌직 살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아프다. 따끔하다. 눈 주위를 지질 때는 눈물이 찔끔했다. 채 5분 정도 했을까. 일어나 나가라 한다.

5년 전에 생에 첫 로터리를 쳤는데 그 이후 또 돋아나는 검버섯이 눈에 거슬렸다. 미용에 별 관심은 없지만 매일 드러내놓고 다니는 얼굴이기에 어쩔 수 없게 시술하게 되었다. 그녀 역시 레이저로 팔까지 시술했다. 그녀는 검버섯 제거 전문 피부과를 소개했다. 더군다나 딸내미 결혼식을 앞두고는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넣었다. 머리 염색도 다시 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것만은 거절했다. 잠잘 때 염색을 바른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백발의 청춘이 더 좋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화공약품을 그것도 보름에 한 번씩 머리에 바를 수는 없는 것이다.

얼굴이 깨끗해졌다. 보는 사람마다 “피부가 장난이 아니다”라며 비결이 뭐냐고 물어본다. “어쩜 주름살도 없냐.” 부러운 모습을 한다. 그러고는 “얄미워 죽겠네.”라며 투정을 부린다. 기분 좋다. 피부 좋고 주름살도 없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갑자기 젊어진 기분이다. 속은 썩었다. 그놈의 알코올을 날마다 마시고 또 마시고 하니 속이 성할 리가 없다. 고혈압, 고지혈, 비만, 등등 건강 검진하면 정상 수치가 없다. 나름,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노화의 현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던 식습관 멈추고 싶지는 않다. 그 좋아하는 담배도 끊고 다시 알코올까지 끊어버린다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나이 60이면 생각하는 것이, 매우 성숙할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엄숙한 분위기로 얘기하다가 친구만 만나면 거의 동심으로 돌아가 말과 행동이 아이들과 다름없다. 어른들은 참으로 근엄하게만 느껴졌는데, 특히, 선생님은 하늘이었다. 화장실도 가지 않는 신선처럼 여기기도 했다. 시골 산골에 여교사가 전근해 왔을 때 첫인상은 천사였다. 인형처럼 예쁜 여선생은 엄마들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우주에서 온 것처럼 신통방통 늘 새롭게 느껴졌다.

육신은 늙어 검버섯, 주름, 이제 쥐젖까지 돋아나 심기가 불편하다. 생로병사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재수 없는 사람은 불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차에 치여 죽고 등등,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비명횡사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쥐젖이 돋아나건 검버섯이 영역을 넓혀도 하던 대로 살고 싶다. 그 대신 절제는 반드시 실천해야지 싶다.

1 year ago | [Y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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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감수

나 그리고 아내, 처제는 두 시간을 약속하고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갔다. 관광지라 그런지 탕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단 샤워했다. 미끌미끌 연수는 여러 번을 행군 끝에 비누 성분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런 맛에 온천에 오는 것이 아닌가. 부드러운 물결 속에 푹 빠져버린 나는 온탕 냉탕을 거쳐서 하늘이 뻥 뚫린 노천탕에서 눈을 감고 즐겼다. 머리는 시원하고 아래는 따뜻하고 정말 좋았다. 그런데 누군가를 찾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두 번째 방송이 귀를 쫑긋하게 했다. 아뿔싸, 내 이름이 아닌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제 겨우 입수하여 온천욕을 만끽하려는 순간인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머리털이 솟구쳤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탕을 나왔다. 처제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아내는 무엇에 놀란 것처럼 우왕좌왕 버벅거렸다.

지금은 온천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코로나 영향이 큰 것 같다. 전국의 온천 관광지가 경영난에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곳이 즐비하다. 하지만 1998년도는 대 성황이었다. 서울에도 몇군데 있었다. 그중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서울온천’을 자주 갔다. 하지만 서울 근교인 포천의 온천장이 인기가 좋았다. 특히 유황이 포함된 온천수는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주말에는 온천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주차장이 미어터졌다. 단체 관광차도 가득했다.

1998년 겨울 어느 날 아내와 함께 경기도 포천 이동에 있는 온천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곳은 셋째 처제가 살고 있다. 온천 겸 상큼하고 달콤한 공기를 마실 겸해서 집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출고한 지 얼마 안 되는 내 생에 첫차 달구지를 자랑도 할 겸해서 말이다. 사실 겁도 났다. 초보라 시내만 왔다 갔다 했지, 장거리 운전은 해본 적이 없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아내 역시 산행보다 온천욕을 좋아해서 가자고 졸랐다.

일단 집을 나섰다. 가다가 운전하기 곤란하면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시내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고개가 휘청했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아내는 화들짝 놀라곤 했다. “조심, 조심, 앞을 잘 보고 가세요” 아내는 가는 내내 잔소리에 잔소리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등줄기 역시 줄줄 흘렀다.

2월은 겨울철이다. 빙판길도 간간이 보였다. 산은 눈이 그대로다. 포천을 가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한참을 가야 한다. 서울보다 추위가 매섭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개천으로 곤두박질쳐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 개천을 따라가는 길은 편도 1차선으로 곡예 운전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물 좋고 공기 좋은 포천의 이동면 어느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셋째 처제가 사는 집은 초가집이다. 하지만 실내는 궁전이다. 실내 장식을 고급스럽고 효율성 있게 꾸며놓았다. 마루를 개조한 거실에는 오디오가 있었고, 양쪽 소리통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웅장했다. 물맛 좋고 공기 좋은 언덕에 멋지게 꾸미고 사는 처제의 보금자리는 별장이며 휴양소와 다름이 없었다.

처제는 서울살이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포천으로 이사했다. 동서는 시골 옆 동네에 사는 이웃이나 다름없는 잘 아는 직업군인이다. 장인 장모도 서로 왕래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처제는 셋째딸로 5자매 중 가장 예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하여 둘째 처제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둘째 처제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다. 그곳에서 일 도와 가며 지내다가 취업하여 본격적인 돈벌이에 뛰어들어 잘 적응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연락이 왔다. 선을 보라는 것이다. 처제는 아직 나이가 어려 결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 초반 사회생활도 이제 초년생인데 무슨 결혼이란 말인가. 그렇게 거부하였음에도 연락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처제는 유명 관광지로 피서를 갈까 하다가 부모님을 뵐 겸 해서 시골을 가게 되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동서 부모님은 군부대 아들에게 연락했다. 무조건 내려오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처제는 시골 도착과 동시에 끌려가다시피 하여 선을 보게 되었다. 만나는 순간 아! 어찌 이럴 수가. 옆 동네 오빠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더군다나 동서는 아내와 동창이기도 하다.

처제는 선을 보고 난 후 아무 생각 없이 상경했다. 동서는 둘째 처제와 기거하는 곳에 주말마다 나타나 구애하였다. 집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했다. 아마도 시골에서 주소를 알아 온 것이 분명했다. 이미 양가 부모는 약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동서의 열정과 몇 번 만나보니 괜찮아 보였다. 반전이다. 결국 동서의 집요한 구애 끝에 산골 오지로 따라가고 말았다.

그렇게 경기도 포천 산골에 둥지를 틀고 동거를 시작했다. 지금은 포장이 잘 되어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때 당시는 꼬불꼬불 외길을 가야 하는 관계로 두 시간은 잡아야 했다. 부모 곁을 떠나 서울 생활도 쉽지 않았는데 마트도 없는 오지에서의 삶은 불편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 혼자 가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늘 동서가 대동하여 입구에서 보초를 서야 했다.

조카가 태어났다. 더 이상 결혼식을 미룰 수 없었다. 군에서 제공하는 식장에서 아주 저렴하게 식을 올릴 수 있었다. 세간살이는 이미 다 준비해놓아 결혼 비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 맑고 공기 좋은 포천 이동에서 첫 둥지를 틀고 새살림이 시작된 것이다.

‘이동’하면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동막걸리가 인기 좋다. 이동갈비 또한 명성이 자자하다. 길가마다 갈비식당이 즐비하다. 포천에 왔으니 이동막걸리도 마시고 갈비도 뜯어야 하지 않겠는가. 갈비 맛을 보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식당 뒤편에 조성된 인공폭포는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어 장관을 이루었다. 식당 안은 갈비 맛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말이기도 한 탓에 빈자리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빈자리가 보였다. 밑반찬이 깔리고 숯불이 나왔다. 열기가 후끈했다. 생갈비가 나왔다. 서비스 만점, 타지 않게 잘 구워 주었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이동갈비는 고소하고 쫄깃함에 잠시 행복했다. 집으로 오는 길 반짝이는 별을 보며 시골 정취를 만끽했다.

집에 도착하여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시골이라 민원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주로 군인이 사는 시골 동네에 젊은 분들이 많았다. 다음날 근무를 위해서는 깊은 잠을 자야 하는데 고성방가에 잠을 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래를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륨을 줄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수다를 떨다가 목이 마르면 시원한 맥주를 음료수로 대신했다.

취기가 있어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새우잠에 뒤척이다가 먼저 일어났다. 옆에 있는 아내를 깨웠다. 조금만 더 잔다고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부스럭거리면 민폐다. 어둠이 겉이기 시작했다. 다시 아내를 깨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처제도 깨웠다. 동서는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온천 가는 것을 포기했다. 둘째를 임신하여 만삭인 처제는 부끄럽다며 거절했다. 온천에 가본 지 오래고 출산 전 온천욕은 태아에게 좋겠다고 설득하여 온천장에 갔다.

새벽인데도 주차장에 차량 들이 제법 많았다. 세면도구를 챙겼다. 남자들이야 아무것도 필요 없다. 면도기 하나면 족하다. 버린 것 주워 써도 문제없다. 하지만 위생상 그럴 순 없었다. 때 수건과 일회용 면도기를 사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잠시 샤워하고 온천욕을 즐기려는 순간 나를 찾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 두 시간 약속하고 들어가면 세 시간 넘어서 나오는 아내와 처제인데 이상했다. 대충 물기를 닦고 나와 보니 처제와 아내가 구세주를 만난 듯 반겼다. 빨리 의정부에 있는 병원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아기가 온천수에 놀랐는지 발길질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진통이 왔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괜히 잘 자는 처제를 데리고 온 게 무리였나 보다. 집에 있는 동서에게 급히 연락하여 출산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라 했다. 처제는 진통을 이겨내느라 얕은 신음을 뱉어냈다. 일단 집으로 가서 동서를 태우고 의정부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진통은 더해 앓는 소리는 커지는데 달릴 수는 없고 눈앞이 캄캄했다. 더욱이 아기가 위치를 잘못 잡아 조만간 수술하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지체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에 머리가 쭈뼛 식은땀이 흘렀다. 정상 분만도 어려운데 거꾸로 있는 아기가 차 안에서 나온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는 속도를 내라 외쳤지만, 빙판길이면서 꼬불꼬불 산길에서 가속 페달을 밟을 수가 없었다. 가슴은 쿵쾅쿵쾅 폭포수가 된 땀은 등줄기를 적셨다.

한 시간 넘게 곡예 운전 끝에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을 거쳐 산부인과로 올라갔다. “이제 오면 어떻게 합니까.” 의사 선생님은 호들갑을 떨며 나무랐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아기의 발이 자궁 밖으로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보호자 서명과 동시에 마취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내 그리고 동서는 안절부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입이 바싹 마르면서 숨이 가빠 오고 가슴이 답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간호사 선생님이 나왔다. “예쁜 딸을 순산했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마취해서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자궁 밖으로 나와 버린 발 때문에 수술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연분만으로 순산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도왔다. “만세! 만세! 만세!”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졌다. 잠시 큰 한숨을 내쉬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동서와 아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의 제안으로 온천욕을 하는 바람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병원 가는 내내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갔었다. 잘못되면 어쩌나. 원망은 나에게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평생 죄책감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기분전환 차 모처럼 온천여행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수술하지 않고 순산하는 바람에 병원비를 절약할 수가 있었고, 그때 병원에 처제를 긴급 호송한 달구지는 큰 사고 없이 타다가 막내 처제에게 넘겨주었다. 짧은 순간 긴장의 연속인 가운데 태어난 조카 ‘유진’이는 노래도 잘하고 마음씨도 곱기가 비단결이다. 내년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설계 전문가로 거듭날 것이다. 비록 미완성 온천여행이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다.

1 year ago (edited)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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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안녕하십니까. 신부 아빠 이용식입니다.

5월은 신록의 계절이라 합니다.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여기저기 장미축제를 알리는 홍보물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장미꽃 유혹을 뿌리치고 손영우, 이예진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부턴가 결혼식에 가면 눈시울이 뜨거워 곤란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슴 뭉클하면서 핑 도는 눈물은 콧잔등을 적시고 입안에 짠맛을 더해 줍니다.

즐거워야 할 결혼식에서 눈물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냥 품 안에 있을 것만 같았던 아이가 성장하여 제가 한 것처럼 똑같은 과정을 밟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어려움에 봉착하면 누가 해결해줄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흐르는 눈물은 무조건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피는 춘삼월부터 준비해온 결혼식입니다. 장미꽃 만발하는 오늘에서야 빛을 보게 되는군요. 이 좋은 날, 아빠의 덕담은 잔소리로 들릴 것 같습니다. MZ세대에 걸맞게 다짐으로 하겠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챙겨야 할 관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피로를 가중합니다. 과감하게 타파하겠습니다. 경로효친 사상은 지워 버리겠습니다. 집안 대소사에 일일이 참석하는 것을 의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공경의 시대가 아니라 존중의 시대입니다. 비대면 결재, 온라인거래가 빠르게 정착하였습니다.

옛날에는 문안 인사를 드리고자 직접 왕래했습니다. 문명의 이기로 전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인사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즉문즉답해야 하는 전화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민폐이기도 합니다. 특히 상하관계는 더욱더 어렵지요.

문자 카톡 얼마나 좋습니까. 답변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이미 젊은 층은 주 통신수단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약문자 기능을 활용하면 시기를 놓쳐 난처한 경우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안부 전화를 위해 번호를 누르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부모·자식 간에 불통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계좌번호로 대신하겠습니다. 입금된 돈은 보관하기 편리하고 지출하기 좋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신지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식사 한번 하셔야죠” 이런 문자 보다는 계좌에 찍힌 난수표를 더 선호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 바로 실천하겠습니다.

서운한 감 없지 않아 덕담하나 하겠습니다. 영우, 예진아 “잘 살아라.” 인생은 답이 없다고 한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백발의 청춘이 되었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스스로 찾아 생각하고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하기를 바란다.

하나 더, 자식은 필수조건이다. 다툼이 있을 때 말리고 판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양가 부모가 아니다. 형제자매는 더더욱 아니다. 오직 자식만이 가능할 뿐이다.

지금까지 뜨겁게 경청하여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시는 일 잘 되시고 댁내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1 year ago (edited)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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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여인

@복잡한 시장에서 나왔다. 기온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이제 후텁지근하기까지 하다. 공영주차장에 이르렀다. 정산하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누가 부른다. “저기요. 제가 운전을 잘 못 해서 그러는데 차를 빼주면 안 되겠습니까”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는 여인은 몹시 당황해 보였다. 잠시 차를 빼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 그러지요”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주차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안내했다. “차가 어디 있는데요” 주차장에 있는 차를 빼달라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그녀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네비게이션만 믿고 오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갇혔다는 것이다. 그녀는 너무 길어 후진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어떻게 돌려서 나갔으면 하는 의견이다.

골목은 재개발이 진행되는 협소한 곳으로 건축자재가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하수관이 길 반은 잡아먹고 있었다. 하수관은 콘크리트 흄관으로 들어 옮길 수 없다. 중장비도 길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수관 한 개만 옮기면 회전반경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흄관을 들어 옮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꿈적도 하지 않는다. 남자가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볼 생각에 과장 행동을 한 것이다.

차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나 역시 쉽지 않았지만 일단 차를 돌려 나가기 위해 앞뒤로 움직여 보았다. 회전반경이 좁아 불가능했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차 주변을 빠르게 오가며 간섭했다. 후진은 골목이 좁고 길어 안된다고 주장한다. “후진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후진으로 강행했다.

그녀는 차 옆에 빠짝 붙어 무당처럼 날뛴다. “위험해요. 천천히 따라오세요” 정신 못 차리고 따라오면서 혼란스럽게 하는 그녀에게 경고메시지를 날렸다. 그런데도 근접하여 좌로 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간섭했다. 좁지만 속도를 냈다. 달려오는 그녀를 따돌리기 위해서다. “위험해요. 전봇대 있어요” 멈출지 모르는 그녀는 급한 성격의 길치 여인 것 같았다.

150m 정도 후진 끝에 빠져나갈 수 있는 다리가 나왔다. 나 역시 긴장하여 땀이 났다.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며 주변을 살폈다. 이 여인 나를 백발의 할배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운전의 달인 고수라 할 수 있는데, ‘여보시오 백발의 청춘입니다.’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다리 위에 안전하게 주차하고 나왔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공손해졌다. “미안해서 어쩌죠. 수고비라도 드려야 하는데” 바쁜데 발목 잡아서 미안하다며 굽신거렸다. “저기 그런데요. 진접은 어떻게 가나요?”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길치 사모님이었다. “다리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한 다음 다시 우회전 곧장 가서 사거리에서 좌회전 태릉 쪽으로 직진하세요” 고개를 갸우뚱,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다. “네비찍고 가십시오” 그녀는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차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보내고 공영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만났다. 작은 일이지만 남을 도왔다는 것에 기분이 뿌듯했다. 하지만 아내는 불안해서 손에 땀이 났다고 한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차량을 맡겼으면 멀찍이서 지켜보면 될 것을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간섭하는 오두방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아내는 “큰일 했어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차를 빼주는 사이 출차가 지연되어 500원의 추가금을 내야 했다.

1 year ago (edited)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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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버리고 떠난 여인

!하늘과 땅만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한 유년 시절 약간의 배고픔이 있었지만 행복했다. 사방팔방 보이는 것은 하늘이요 산과 들녘뿐, 가끔 쏜살같이 날아가는 전투기의 모습이 문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깊은 산골에서 즐겁게 뛰놀며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큰 아픔 없이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는 것도 어린 시절 마음껏 뛰논 덕분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분교였었다. 학생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초등학교로 승격되면서 학교의 모습도 바뀌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 1개 반만 있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설립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주변은 나무도 풀도 없었다. 운동장 역시 자갈에 흙먼지가 폴폴 나는 울퉁불퉁한 맨땅이었다. 넘어지면 무릎이 깨졌다.

오전수업이 끝나면 으레 자갈 줍기 등 환경정비에 동원되었다. 심지어 십 리도 넘는 개울가에 가서 돌멩이를 주워오는 일까지 강요당했다. 지금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늘 같은 선생님의 명령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친구는 없었다. 작은 손길이 더해지면서 제법 나무와 숲이 우거졌다. 운동장도 평평하게 다듬어 넘어져도 다치지 않았다. 작은 동심이 하나 되어 땀 흘려 가꾼 결과, 변해가는 학교의 모습이 소문나서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도 견학을 오곤 했다. 자그마한 손이 뭉쳐 가꾸고 다듬어 멋진 학교로 만든 것이다.

시골 학교의 선생님들 역시 우리들의 부모님과 별다름이 없었다. 휴일에는 농사짓고 방과 후에는 윷놀이를 즐기면서 막걸리 드시는 평범한 선생님들이었다. 그런 시골 학교에 청색 나팔바지를 휘날리며 인형 같은 처녀 선생님이 부임하였다. 일직이 보지도 못했던 화려한 옷차림과 높은 하이힐은 우리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늘에 내려온 천사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처녀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 되었다. 우린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구릿빛 고리타분한 남선생님들에게서 막걸리 냄새나 풍기면서 가르침을 받았던 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선생님에게서 풍기는 향수는 코끝을 자극했다. 선생님 주위에는 까까머리 머슴애들과 단발머리 계집아이들이 뒤를 따라다니며 깔깔거렸다.

부임하자마자 선생님은 우리가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였다. 뛰놀기만 했으니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우리에게 공부하는 법도 쉽게 잘도 가르쳐 주었다. 틈만 나면 자습이나 시켰던 선생님들과는 달라도 매우 달랐다. 펜팔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우리에게 부임하기 전의 학교와 연결을 해주어 많은 친구가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바깥세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골 학교에서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선생님은 동내 빈 사랑방 하나 빌려 자취했다. 시골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시장에 갈 필요가 없다. 고구마를 비롯하여 채소 등 좋아하는 것들을 날라다 주었다. 시골에서는 콜드크림만 있어도 행복했던 그 시절 방안을 몰래 훔쳐보니 사과 상자 위에 화장품이 가득했다. 선생님은 화장을 아주 짙게 하고 다는 멋쟁이었다.

선생님이 오시면서 꿈같은 동화의 세계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래도 가르쳐 주었고 노래하며 함께하는 학습 방법이 재미가 쏠쏠하여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다. 특히 나를 아주 귀엽게 보았는지 아주 잘해주었다. 나 역시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싫지 않았다. 점점 선생님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으로서 존경하는 마음보다 한 여인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뭘 알아서 그런 감정이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의 우리는 사랑과 존경의 뜻을 알고 있었다. 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늘 행복했다.

우리와 선생님과의 관계를 시기라도 하듯 언제부턴가 방해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처녀가 자그마한 시골 학교에 대변혁을 일으키자 발해공작이 시작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4학년 담임선생님이 유독 도와주는 척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방과 후 선생님을 돕기 위해 남아 있으면 밖으로 내몰았다. 교실 안에서 남과 여 둘이 있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유부남 선생님이 점점 미워졌다. 성격도 괴팍하여 발길로 걷어차고 대나무 뿌리로 마구 때리기도 하였다.

유부남 선생님은 도와준다는 핑계로 접근하며 치근덕거렸다. 같이 있는 시간이 점점 잦아졌다.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은 눈이지만 우리를 속일 수는 없었다. 동네 구석에 포진하고 있는 친구들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골목마다 CCTV가 감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부남 선생님이 자취방을 드나드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안 좋은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시골 마을에 소문이 퍼지는 그것은 일순간이다. 분노의 활화산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밉다, 미워, 정말 밉다. 철부지 어린이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행각은 도를 넘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었다.

풍성한 가을이 무르익어갈 무렵 선생님은 사라졌다. 교장 선생님은 창피해서 어떻게 말할 수도 없는 듯 난처해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여러분에게 인사도 못 하고 떠나게 되었다는 짧은 한마디만 하고는 눈시울을 붉힌 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작은 학교에 두 분의 선생님이 사라졌으니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저학년을 맞고 있는 선생님들이 교대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자율학습이 더 많았다.

담임선생님이 없는 교실은 썰렁했다. 공부는 뒤 전이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담임선생님 없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나서서 수업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남자 선생님이 부임했다.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나타난 선생님은 조금만 잘못해도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무서운 선생님이 부임하자 학교생활은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해 겨울 하얀 눈이 내리고 동장군이 맹위를 떨칠 무렵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꿈과 희망을 안겨준 담임선생님에게서 온 편지였다. 발신지는 서울이었다. 선생님이 보내온 편지를 교실 앞에 나가서 큰소리로 읽어 주었다. 인사도 못 하고 갑자기 떠나야만 했던 사연을 읽어 내려가자 조용해지면서 적막감이 흘렀다.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끼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은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 이후 선생님의 소식은 아무도 들을 수가 없었다. 문뜩 선생님이 보고 싶다.

1 year ago (edited) | [Y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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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미터기 이설 및 보호통 방수 요청

1. 힘찬 도약, 희망찬 고흥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군수님을 비롯하여 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2. 검침원은 포두면 길두리 안동중앙길00번지 2023년 9월 20일 검침시 보호통 누수를 인지하고 사용자 ㅇㅇ에게 이설을 해주겠다고 설명하였으나 이를 이행치 않아 2023년 9월 29일 국민신문고에 민원 신청하여 2023년 10월 11일 상하수도사업소의 소파 공문 시달되면 공사를 추진한다고 답변하였습니다.

3. 하지만 겨울이 다가옴에도 이행치 않아 2023년 12월 15일 다시 국민신문고에 민원 신청하여 상수도대행업체가 출동하여 굴착 확인 결과 재래식 화장실에서 오수가 넘쳐 발생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정화조 청소 업체에 수거토록 요청하여 바로 조치하였습니다.

4. 그러나 여전히 보호통에 물이 고여 있고 비가 오면 넘쳐 길가를 흥건히 적시고 있습니다. 겨울철에 동결되어 낙상 위험이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지적하곤 했습니다. 비만 오면 다리가 아픈 팔순 장모님께서 물을 퍼내느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5. 계량기가 설치된 장소는 재래식 화장실과 연접하고 수맥이 흐르는 곳으로 장인께서 다른 곳에 설치토록 강력히 주장했지만 무시하고 강행하였습니다. 그곳은 오수관로 공사로 인해 지하수 물길을 차단하는 바람에 보호통 연결 배관 틈새로 지하수가 역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6. 포두면 상·하수 담당과 시공업체에게 화장실 오수가 아니고 지하수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재래식 오수가 원인이라고 청소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7. 누수 발생시 수돗물인지 지하수 인지 잔류염소 검사로 쉽게 판단할 수 있음에도 무슨 일인지 굴착기를 동원하여 굴착하고는 이상 없다면서 오히려 사용자에게 오수가 원인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수도 행정이야말로 규탄받아 마땅합니다.

8. 상수도공사 표준시방서(환경부) 5.2.3 수도미터기 및 보호통 3. 시공 (1) 수도미터기는 대지경계선에 가장 근접한 부지 내에 검침하기에 편리한 장소로서 오수나 빗물이 유입되거나 장애물이 놓이기 쉬운 장소를 피하여 설치해야 한다. 라고 되어 있음에도 수맥이 흐르는 곳에 설치하고 보호통 수도관 연결부위를 방수하지 않아 발생한 부실 공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9. 바라옵건대 수도미터기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 설치하고 보호통 내부 수도관 연결부위를 방수 조치 바라며 지하수가 우수관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물길을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1 year ago (edited)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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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들어 준 조청^

까치 까치설날은 때때옷 입고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도시로 나간 형님 누님이 고향에 오는 날이기도 하다. 며칠 전부터 들뜬 분위기는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특히, 엄마들은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중에서도 가래떡을 뽑기 위해 쌀을 불려야 한다. 달콤한 조청도 만들어야 한다.

엄마는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틔웠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온기를 유지하면 싹이 튼다. 깨물어 보면 달짝지근하다. 맥아를 건조한 다음 맷돌에 갈아 가루를 만든다. 바로 이것이 조청의 원료가 되는 엿기름이다.

엿기름은 단술을 만들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간단하다. 찬밥에 엿기름을 넣고 미지근한 물을 붓고는 따뜻한 곳에 하루만 숙성해도 달콤한 단술이 만들어진다. 한자어로는 식혜라 하지만 소싯적에는 단술이라 했다. 단 것이 없었던 어렵고 힘든 세상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역력하다.

단술은 조청을 만드는 원료이다. 가마솥에 넣고 고아 수증기를 날려 보내야 한다. 눌어붙음을 방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저어주어야 한다. 불 조절 역시 경험으로 터득한 비법이 동원되어야 농도가 적당한 조청을 만들 수 있다. 조청과 두부를 만드는 것이 명절 음식 중 시간과 노력이 가장 많이 가는 작업 끝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

조청을 끈적할 때까지 고아 굳히면 엿이 된다. 굳어진 엿을 열을 가해 늘리기를 반복하면 흰색으로 변하면서 구멍이 송송한 가래엿이 만들어진다. 엿장수가 아닌 이상 조청 단계에서 멈추어 꿀단지에 보관하고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종지에 담아냈다.

떡살은 방앗간에까지 운반해야 한다. 그 양이 많다 보니 손수레에 실어 내가 도맡아 했다. 엄마는 뒤에서 밀고 나는 앞에서 끌고는 오리정도 가야만 떡방앗간이 나온다. 평지를 가는 길이기에 힘들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이상을 끌고 가야 한다. 방앗간에 도착하면 이미 만들어진 떡을 얻어 허기를 면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피며 기다렸다.

가래떡은 떡국용과 무늬로 누른 떡, 두 가지로 뽑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은 차가운 물에 담겼다. 잘린 떡은 소쿠리에 담아 손수레에 실었다. 다시 집으로 가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웃집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양이 많지 않은 집은 머리에 이고 들고 갔다.

집에 다다라 조청을 찍어 먹어보았다. 꿀맛이다. 꿀을 먹어보지 않아 그 맛이 어떤지는 몰라도 달콤 쫄깃하면서 넘어가는 가래떡 맛은 설 명절 음식 중에 으뜸이다.

명절이면 때때옷을 장만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던 엄마는 요양병원에 있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고 하지만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만 하는 엄마가 불쌍하다.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다는 현실에 얼마나 속상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이 글썽인다. ‘엄마! 조청 만들어 줘요?’ 면회 가면 말해 볼 것이다.

1 year ago (edited)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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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날 밤 아이들은 무엇을 했을까.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다. 휘영청 둥근달을 보며 소원도 빌고 잡귀도 몰아내는 날이다. 부럼도 깨트려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날이기도 하다. 어둠이 내리면 횃불 놀이로 시끌벅적하다. 겨우내 갖고 놀았던 연도 실을 끊어 날려 보내야 한다. 어른들은 윷놀이하면서 보름날을 즐긴다. 윷놀이는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

대나무로 연살을 만든다. 대나무 살을 창호지에 붙여 가오리연을 만들었다. 방패연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잘못 만들면 뱅뱅 돌다가 추락하고 만다. 그에 비해 가오리연은 대나무 살 두 개면 족하다. 창호지가 없어도 달력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얼레도 직접 만들었다. 연을 날리기 위해 뒷걸음치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굴러떨어졌어도 다치지는 않았다. 겨우내 갖고 놀던 연은 보름날 날려 보내야 한다. 보름 이후 연을 날리면 달아났던 액운이 다시 온다고 하여 절대 날릴 수가 없었다.

신나게 뛰어놀다 보면 저녁밥은 꿀맛이다. 식사 후 깡통을 들고 논바닥에 모였다. 깡통 옆구리에 구멍을 냈다. 장작불을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를 주어와야 한다. 불을 머금은 장작을 깡통에 넣고 하늘을 향해 돌린다. 불꽃이 살아나면 건조된 소똥을 깡통에 넣고 다시 힘차게 돌린다. 불꽃이 절정에 올랐을 때 하늘로 집어 던지면 불씨가 쏟아진다. 환상적인 불꽃 축제가 이어지는 것이다. 여러 개의 횃불이 솟구치며 만들어진 불꽃은 도깨비불처럼 춤을 추었다. 그 시절 깡통 구하기가 쉽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는 아니다. 부러움을 사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보름날 밤 즐겨 했던 횃불 놀이는 보기 어렵다.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늦게까지 불놀이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 현기증이 밀려오면서 쓰러질 것만 같다.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훔쳐 먹기로 한 것이다. 동네 구석구석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밥과 닭서리 조로 나뉘어 흩어진 아이들은 일순간에 식자재를 들고 나타난다. 냄비에 물을 끓여 털을 뽑아 소금 한 줌 넣고 삶아내면 그만이다. 보름날이라 오곡밥이 주를 이룬다. 장독을 열고 훔쳐 온 김치는 손으로 쭉쭉 찢어 먹었다. 어둠 속에서 불을 지피며 먹는 야식은 정말 꿀맛이다.

다음날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도둑맞은 집 어른들이 골목을 누비며 물증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날쌘돌이의 야밤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온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잡히면 죽는다” 엄포를 놓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주말이며 보름날인 저녁에 잡곡밥과 각종 나물 반찬을 만들어 만찬을 즐길 계획이다. 땅콩과 호두를 준비하여 부럼을 깨며 액운을 멀리 보내는 의식도 할 것이다. 날씨가 흐려 보름달 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무사 무탈을 기원하고 바라옵건대 희망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도록 두 손 모아 기원할 것이다. 설부터 신명 나는 축제는 오늘로써 끝이다. 내일부터는 일 년 농사를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1 year ago (edited)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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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처리반장^

밥통을 열어보았다. 바닥이 반질반질 빛이 난다. 아침을 토스트로 해결했었다. 엊저녁에 남은 찬밥이 어데 갔을까. 볶음밥을 해먹을 계획이었다. 낭패다. 다시 밥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귀찮기도 하다.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먹다 남은 통닭이 보였다. 언제의 통닭일까. 아마도 일주일은 넘어 보인다. 저것을 컵라면에 넣고 끓이면 괜찮은 한 끼 식사가 될 것 같았다.

물을 냄비에 담고 컵라면을 개봉하여 부었다. 잘 안 빠진다. 거꾸로 힘차게 흔들어 보았다. 밀착된 면이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 바닥에 내리쳤다. 안에 들어 있는 말린 채소가 산산이 흩어졌다. 아깝다. 쓸어 담아 물에 퐁당 떨어트렸다. 물이 끓기 시작했다. 통닭을 가늘게 찢어 투척했다. 강한 불에 맹렬히 끓어오르는 물 사이로 닭고기가 춤을 추었다. 청양고추 하나 송송 썰어 대파와 함께 넣었다. 매운 기운과 구수함이 더해진 국물은 진국이 되어 코끝을 자극한다. 완성이다.

빵 쪼가리가 땡땡 얼어 있었다. 먹다 남은 빵이다. 나는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크림빵을 먹고 나면 설사 직방이다. 화장실 들락날락하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먹을 만큼만 사 오면 냉장고에서 잠잘 일 없을 것인데, 으레 산더미처럼 사 온다. 가족 모두 다 같이 먹자는 것이란다. 신속히 먹자는 것이, 내 주장이지만 냉장고로 들어간 빵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누가 먹으라는 것인가. 전업주부로 전락한 나를 식순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놔두면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 물에 넣어 삶아 보았다. 약한 불에 말이다. 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크림을 제거하고 굳어 딱딱했던 빵은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했다.

김치통을 열어보았다. 해묵은 김치에서 쉰내가 진동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국물을 버리고 묵은지를 물에 담갔다. 소금기를 빼야 했다. 양념을 준비했다. 멸치 대가리를 비틀어 버리고 내장을 발라냈다. 전자레인지에 넣어 비린내를 제거했다. 수분이 달아난 멸치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부어 불꽃을 키웠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고 볶았다. 다시 멸치를 넣고 버무렸다. 냄새 좋다. 소금기가 빠진 묵은지를 잘게 썰어 넣었다. 가장 센 불로 지지고 볶고 뒤집어 다시 한번 볶아 불을 줄였다. 설탕 한 숟가락과 참기름을 두어 방울 떨어뜨려 맛을 더했다. 맛있다. 다들 맛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아이 참네, 냉장고 깊숙이 못 보던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갓김치다.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맛있는 갓김치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살림에서 손을 놓은 그녀는 버리자고 한다. “아니올시다. 벌 받습니다” 단호히 거절하고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삼겹살에서 기름이 쏟아져 나왔다. 프라이팬을 기울여 기름을 모았다. 고기를 꺼내고 나서 갓김치를 구웠다.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으로 말이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극구 말린다. 편견이다. 적당히 먹으면 좋고 나쁜 음식이 따로 없다는 것이 나의 진리다. 그러거나 말거나 뒤집기를 반복하여 볶아 냈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갓김치는 먹음직스러웠다. 상추에 삼겹살 한 조각, 마늘과 방금 볶아 낸 갓김치 한 조각을 넣어 쌈을 해서 먹어 보았다. 꿀맛이다. 삼겹살에 갓김치 만찬은 아주 훌륭했다. 평점 9점을 받았다. 난 폐기물처리반장이다.

1 year ago (edited) | [Y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