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은 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나와 생각이 같은 이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 에드몽 웰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감정으로 덮은 역사 역시 진실과는 멀어집니다.

백년역사ch는 일제시대를 포함한 근현대 한일관계 속에서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역사적 균형과 사실의 디테일을 재조명하는 채널입니다.

이 채널은 단순히 ‘과거를 미화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과 편견에 치우친 한국 내 역사 서술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잊히거나 왜곡된 근대사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고자 합니다.

📽️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
- 흑백 근대 영상의 컬러 복원
- 교과서 속 왜곡 바로잡기
- 한일 비교사와 미공개 시선들
- 전문 자료에 근거한 비판적 해석

때로는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제대로 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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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역사CH

📚 1938년, 조선어사전이 출판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꿈만 꾸던 일을
한 사람이 해냈습니다.
10만 개의 단어를 혼자서 수집하고 정리해
일제강점기 한복판에 조선어사전을 출판한 사람.
그의 이름은 문세영.

저는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정리한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https://youtu.be/eTbh4kMMviw

그리고 이 사전을 복각해 판매하는 페이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전을 보고 싶으셨던 분들께 작은 안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 소개 페이지 보기:
👉www.notion.so/2434ea0d289a80948aebe7fc5408fc4d?sou…

🔹 이 영상과 링크는 상업적 목적이 전혀 없으며,
조선어사전의 실체를 소개하기 위한 순수한 안내입니다.

3 weeks ago | [YT] | 36

백년역사CH

안녕하세요. 백년역사입니다.
오늘 업로드해드린 1935년 영화 순태와 정희(가제)에서, 순태의 친구가 고향에서 보낸 전보를 받아 주인공 순태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친환위급 즉하래'라고 한글로 쓰여진 부분이 영화에서 뚜렷이 확인됩니다.
부친이 위독하니 곧 내려오라는 메세지를 최대한 간단히 전달한 것입니다.
전보라는 것은 보내는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마치 암호와도 같이 최대한 간단한 글자의 조합으로 메세지를 보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전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흔히들 오해하듯이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어를 탄압했다. 내지는 공적인 부문에서 조선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또는 1938년의 교육령 개정 이후부터 탄압했다 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이 페이지에 올린 두번째 이미지는 1938년에 한글로 착신된 실제 전보로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 공식 자료입니다.
세번째 이미지는 대한민국 전기통신사에 첨부된 자료로 "전보이용량의 연도별 추이표"입니다. 1904년부터 1943년까지의 전보 착발신 수량을 일문과 한글, 그리고 구문(영문)으로 구분하여 정리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 역시 일제 말기의 혼란상을 반영하여 1943년까지만 작성이 되어 있고, 또 42년도와 43년도는 언어의 구분이 없이 전체 착발신 수량만을 기재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940년까지는 한글로 전보의 착발신이 가능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확인되는 것이 1940년까지라는 의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당시 한글로 전보를 착발신 할 수 있는 것은 조선 지역 내에서 착발신하는 경우로 한정되었으며, 조선 내에서 조선 외의 지역으로 발신을 할 경우, 또 조선 외의 지역에서 조선 내 지역으로 발신하는 경우에는 한글 사용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인 부분 등의 운용상 문제로 인한 것이며, 지배국과 피식민국간의 언어 차별, 감정적 차별 따위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이미지의 자료는 현재 대한민국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1944년 12월 1일자로 시행된 "전보규칙"입니다.
제2장의 서법, 제11조에서 규정하기로, 언문전보(한글전보)에서 사용하는 글자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1944년 이전에 한글 전보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었다면, 다시 말해 전보에 있어서 한글 사용이 금지되었다면 당연히 전보규칙의 개정이 먼저 이루어졌어야 합니다.
따라서, 최소한 1944년 12월 현재로서는 조선 내에서 한글로 전보를 보낼 수도, 또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이 나오는데 근거자료로 말씀드렸던 것을 다시 정리하자면,
- 1938년도의 한글로 착신된 실제 전보 유물,
- 대한민국 전기통신사에 첨부된 1904~1943년 전보이용량의 연도별 추이표
- 국가법령정보센터의 1944년 12월 1일자 시행 전보규칙입니다.

만일 다른 자료를 통해 이와 상반된 내용이 확인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년역사 블로그에도 관련 글을 포스팅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blog.naver.com/kantertube/223405429789
blog.naver.com/kantertube/223387761405

1 year ago | [YT] | 52

백년역사CH

한 성심의 힘 영상은, 일본어 자막에 오류가 너무 많아서, 자막 수정 작업 후 다시 새롭게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1 year ago | [YT] | 22

백년역사CH

안녕하세요. 백년역사입니다.
구독자분들께서 잘 아시는 것 처럼, 요즘 채널에서는 오래된 흑백 영상을 컬러화하여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다음 업로드를 위해 준비 중인 작업은 1943년도작 영화로 우선 컬러변환, 오디오 음질 개선을 진행 중입니다.
이 영화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모두 출연하며 영화의 대사는 일본어를 위주로 하여 조선어도 함께 사용됩니다.

이 영화는 영화 속의 내용 외에도 당시의 생활이나 문화를 이해할만한 여러 볼만한 장면들이 있으며, 내용도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 이 영화도 여러분께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자막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대사(자막)전달을 통해 영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여, 구독자분들 중에 일본어 능력자가 계신다면 자막작업에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영상의 분량은 총 1시간 30분 가량이므로, 만일 도와주시는 분이 여러분이 된다면 분량을 나누어 협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각자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움을 청하는 정확한 내용은, 영상을 보시고 일본어 대사의 일본어 자막을 따주시는 것으로, 만일 도움을 주실 분이 일본분이라면 (일본어 대사 -> 일본어 자막)으로, 한국분이라면 (일본어 대사 -> 한국어 자막)으로 해주셔도 됩니다.

오디오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기 때문에 작업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업에 도움을 주실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시거나,
kantertube@gmail.com 으로 메일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한 영상을 널리 소개하는 작업에 여러분의 협조를 삼가 부탁드립니다.

백년역사 올림

1 year ago | [YT] | 56

백년역사CH

최근 업로드한 '한 성심의 힘' 영화 속에는 세금납부와 관련된 서류들이 보입니다.
아래 첫번째 이미지는 여자주인공이 납세일이 되자 서류에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는 잠깐 스쳐지나기 때문에 잘보이지 않지만, 캡쳐한 화면을 자세히 보면 화면 가장 위쪽에
"납세는 국민의 의무"라고 국한문혼용으로 쓰여진 것이 보입니다.
조선글은 최소한 40년대 이전까지는 조선에서 공용어로서 공문서에 쓰이고 있었던 것이 확인됩니다.

이하 4장의 이미지도 역시 세금납부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2번째 이미지 : 토지세 납세고지서(학률이가 누님에게 보여준 그 문서입니다.)
3번째 이미지 : 1929년 절후표 및 납기표(조선글과 한문의 혼용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4번째 이미지 : 납세는 문화의 기(본)이라고 조선글과 한문이 혼용되어 있습니다.
5번째 이미지 : 납세를 독려하는 포스터로, 관민일치하여 충실히 납세하자는 선전입니다.
(체납은 공민의 적 / 급히 말라 성공, 연체하지 말라 납세 / 서로 잊지못할 납세일 / 일찍 일어나기(조기)와 납세는 먼저함이 제일 /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납세를) 이라고 쓰인 문장 또한 조선어와 한문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2~4번 자료 출처 : e-뮤지엄)

1 year ago | [YT] | 53

백년역사CH

안녕하세요. 백년역사입니다.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백년역사는 한국역사의 근현대 부분에 있어서, 일본과 관계된 부분의 진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대사는 여러가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왜곡되고 날조되었으며,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짧지 않은 만큼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 왜곡된 부분들이 진실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단지 과거 역사의 한 부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또 앞으로 우리 미래의 세대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백년역사는 가급적 명확히 확인되는 1차 자료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함으로써,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들을 밝히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름의 노고에 비하면, 다루는 내용이나 주제가 아무래도 광고주들에게는 불편한 내용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업로드한 영상들의 경우 과반 이상이 수익창출이 불가한 등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원제로 영상을 차등 공개하는 것도 고민해 보았으나, 기본적으로 '유용한 정보는 더 많이 더 넓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소신과 원칙에 위배된다 생각하여 보류하였습니다.

현재 백년역사 채널이 수익창출이 가능한 영상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이제 겨우 한달에 미화 1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자료 수집을 위한 서적 구입비에도 턱 없이 모자란 수준이며, 특히 오래된 흑백 영상을 컬러로 변환 작업을 하는데에도 계속 장비 교체비용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보다 질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작업을 꾸준히 계속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보일지라도 진실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혹시라도 백년역사의 작업에 공감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새롭게 마련한 후원계좌를 통해서 백년역사 채널을 응원해주시기를 삼가 요청드립니다.

후원계좌 : 케이뱅크 100-213-602747 (예금주 이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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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원 여부를 떠나, 채널을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1 year ago (edited) | [YT] | 105

백년역사CH

영상 '북한의 발전상' 중에서,
흥남질소비료공장에 관한 내용을 보다보면,

"과거의 주인 노릇하던 일본 자본가들은 조선 땅에서 언제든지 마음을 놓지 못했던 것"이라며,
어떤 시설물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노동자들의 폭동 때에 자본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하지요.

그런데 실상 저 조그만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 숨는다고 해도 폭도들로부터 안전할리는 없어보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저 구조물은 공장에 폭발이나 화재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폭동이 일어났을때 일본인 자본가를 숨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말 몰라서 그렇게 설명했다면, 공장 시설에 대한 이해도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던 것이고, 알면서도 고의로 그렇게 설명했다면 '개돼지'를 농락하는 날조선전의 하나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해방 전에도 조선인들은 언제나 기회를 엿보며 일본인들이 주도하고 있던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했고, 일본인들도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거짓 선전을 위한 거짓 증거자료입니다.

또 참고로, 올려드린 첫 두 장의 사진 하단에 보이는 것은 공장 종사자들을 위한 사택들입니다.

1 year ago | [YT] | 72

백년역사CH

업로드한 영상, 인민학교의 하루 1947년과 관련하여.

해당영상은 1947년의 북한 실정을 홍보하는 영상이지만,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은 훌륭하게 완비된 교육시설입니다.

1942년 현재, 평안남도에는 총 221개의 공립국민학교가 운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 직원록)
참고로 당시 평안남도의 행정구역은 2부(府), 14개 군(郡)에 4읍 134면이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조선총독부의 목표치였던 1면 3개교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지만 최소 1면 1개교의 상황은 훨씬 넘어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안남도 소재 공립국민학교

1 평양약송국민학교
2 평양산수국민학교
3 평양선교국민학교
4 평양사동국민학교
5 평양종로국민학교
6 평양상수국민학교
7 평양성남국민학교
8 평양경림국민학교
9 평양신양국민학교
10 평양명균국민학교
11 평양남산국민학교
12 평양기림국민학교
13 평양서성국민학교
14 평양성동국민학교
15 평양동대원국민학교
16 평양미림국민학교
17 평양평천국민학교
18 평양대붕국민학교
19 평양성북국민학교
20 평양신율국민학교
21 평양신흥국민학교
22 평양중산국민학교
23 진남포욱구국민학교
24 진남포일출국민학교
25 진남포풍정국민학교
26 진남포가덕국민학교
27 진남포소화국민학교
28 진남포대동국민학교
29 고방국민학교
30 용인국민학교
31 김제국민학교
32 부산국민학교
33 형산국민학교
34 남곶(串)국민학교
35 자족국민학교
36 율리국민학교
37 재경국민학교
38 용산국민학교
39 대보국민학교
40 가포국민학교
41 임원국민학교
42 청룡국민학교
43 고평국민학교
44 낙랑국민학교
45 서포국민학교
46 용악국민학교
47 자족성문국민학교
48 부산신미국민학교
49 남곶석호국민학교
50 재경갈산국민학교
51 순천국민학교
52 재동동국민학교
53 순천관상국민학교
54 자산국민학교
55 은산국민학교
56 사인국민학교
57 신찬국민학교
58 북창국민학교
59 후탄국민학교
60 내남국민학교
61 성산국민학교
62 선소국민학교
63 재동남국민학교
64 득룡국민학교
65 맹산국민학교
66 맹산수정국민학교
67 옥천국민학교
68 원남국민학교
69 양덕용계국민학교
70 동양국민학교
71 화촌국민학교
72 오상국민학교
73 온천국민학교
74 평창국민학교
75 대륜국민학교
76 중리국민학교
77 성천국민학교
78 숭인국민학교
79 성천향풍국민학교
80 영천국민학교
81 대구국민학교
82 사가국민학교
83 통선국민학교
84 능중국민학교
85 삼덕국민학교
86 쌍룡국민학교
87 회창국민학교
88 대곡국민학교
89 삼흥국민학교
90 구룡국민학교
91 대평국민학교(1)
92 천성국민학교
93 용전국민학교
94 문흥국민학교
95 강동국민학교
96 승호리국민학교
97 흑령서국민학교
98 강동아달국민학교
99 고천국민학교
100 삼등국민학교
101 만달국민학교
102 원탄국민학교
103 봉진국민학교
104 고비국민학교
105 한대국민학교
106 흥령동국민학교
107 태령국민학교
108 중화국민학교
109 중화초현국민학교
110 상원국민학교
111 해압국민학교
112 풍동국민학교
113 신흥국민학교
114 양정국민학교
115 간동국민학교
116 동두국민학교
117 당정국민학교
118 천곡국민학교
119 상산국민학교
120 목제국민학교
121 용상국민학교
122 광량만국민학교
123 용강옥도국민학교
124 금곡국민학교
125 삼화국민학교
126 오신국민학교
127 서화국민학교
128 진지국민학교
129 대대국민학교
130 다미국민학교
131 해운국민학교
132 귀성국민학교
133 양곡국민학교
134 용원국민학교
135 신녕국민학교
136 동귀성국민학교
137 담부국민학교
138 지사국민학교
139 상서국민학교
140 풍정국민학교
141 강서덕흥국민학교
142 증산국민학교
143 함종국민학교
144 기양국민학교
145 반석국민학교
146 성암국민학교
147 성대국민학교
148 수산국민학교
149 적송국민학교
150 신정국민학교
151 초리국민학교
152 문동국민학교
153 보림국민학교
154 풍신국민학교
155 잉차국민학교
156 동진국민학교
157 현곡국민학교
158 영유국민학교
159 숙천국민학교
160 순안국민학교
161 어중국민학교
162 영유괴천국민학교
163 숙천관동국민학교
164 순안포정국민학교
165 동암국민학교
166 한천국민학교
167 청산국민학교
168 해소국민학교
169 노지국민학교
170 동송국민학교
171 용호국민학교
172 조운국민학교
173 서해국민학교
174 덕산국민학교
175 검산국민학교
176 공덕국민학교
177 양화국민학교
178 석암국민학교
179 덕산삼정국민학교
180 용호남양국민학교
181 안주국민학교
182 신안주국민학교
183 신리국민학교
184 안주청남국민학교
185 입석국민학교
186 만성국민학교
187 신안주청강국민학교
188 동명국민학교
189 연호국민학교
190 용화국민학교
191 운곡국민학교
192 용림국민학교
193 안주용연국민학교
194 용봉국민학교
195 개천국민학교
196 개천군우국민학교
197 조양국민학교
198 북원국민학교
199 중남국민학교
200 중서국민학교
201 봉동국민학교
202 용담국민학교 덕천국민학교
203 장상북국민학교
204 덕천읍남국민학교
205 풍덕국민학교
206 일하국민학교
207 잠도국민학교
208 성양국민학교
209 잠상국민학교
210 장성남국민학교
211 대평국민학교(2)
212 영원국민학교
213 영원영녕국민학교
214 대흥국민학교
215 덕화국민학교
216 신성국민학교
217 온화국민학교
218 소백국민학교
219 성룡국민학교
220 태극국민학교
221 영락국민학교

1 year ago (edited) | [YT] | 59

백년역사CH

최근 업로드한 "인천 잠수함.." 영상의 뒷부분에 나오는 농촌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해방 후인 1948년도의 산에는 왜 나무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참고할만한 신문기사들을 찾아보았습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49년 말까지의 기간 동안,
산림의 남벌과 도벌 관련하여 보도된 기사들입니다.

기사의 원문은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에서 제목으로 검색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No.

기사제목

신문명

발행일자

1 산야의 어린 나무를 남벌하지 말라 - 땔나무가 부족하여도 자숙하자.

자유신문 1945년10월31일


2 삼림을 남벌치 말라

신조선보 1945년11월10일


3 뽕나무를 남벌치 말라

신조선보 1945년12월13일


4 뽕나무 보호 ; 남벌 경계하자

자유신문 1945년12월13일


5 뽕나무를 남벌하지 말자. 농상국에서 경고

광주민보 1945년12월20일


6 남벌을 경고 - 수목을 애호하자

자유신문 1946년03월09일


7 산림남벌하는 무리에 형벌

영남일보 1946년03월22일


8 적산 부정점거와 산림남벌을 말라

영남일보 1946년05월08일


9 산불은 망국의 근본 ; 도벌남벌과 실화주의 ; 부당국은 일반의 각성촉진

대구시보 1946년05월12일


10 수목남벌은 국민의무배반

광주민보 1946년05월19일


11 가정문화 ; 영남폐견(상) ; 남벌로 쇠퇴한 산야!! 낙동강의 비극을 잊었는가?

부산신문 1946년05월27일


12 국토보전은 삼림애호부터 도벌과 남벌의 누습을 타파하라

광주민보 1946년06월11일


13 도벌남벌 삼가라

대구시보 1947년01월24일


14 지방란 ; 경주; 산림남벌을 적발

대구시보 1947년02월11일


15 도벌 남벌에 헐벗은 우리 산림을 가꾸자 ; 경기도

한성일보 1947년02월15일


16 치산치수에 적신호, 낙동강 7백리의 하저, 해방 후 1척이나 상승, 산림 남벌도벌 절대 삼가라

대구시보 1947년02월27일


17 남벌 이대로 계속되면 2년내로 모조리 대머리산, 수해의 참극을 예방하자.

대구시보 1947년02월27일


18 남벌방지와 애림사상 장려

농민주보 1947년03월01일


19 사설 : 조림촉진과 남벌을 경계

영남일보 1947년03월12일


20 남벌로 황폐한 임야에 나무 심어 푸르게 하자 - 오늘 식목일, 내년부터 녹화 10년계획

자유신문 1947년04월05일


21 남벌로 황폐한 임야에 나무 심어 푸르게 하자 - 수해는 필연, 위기에 선 임야 상태

자유신문 1947년04월05일


22 이재민 핑계로 도벌 남벌 ' 감시의 태만인가? 대책이 시급

한성일보 1947년04월09일


23 수목을 남벌말라 - 삼림보호강조주간을 실시

현대일보 1947년05월10일


24 도벌 남벌단속을 제7관구 경찰청에서 경고

부산신문 1947년05월10일


25 복구공사진력에는 감탄, 극도의 산림남벌유감, 농무부장 이훈구 박사 대구방문 담화

대구시보 1947년05월16일


26 문제의 광릉림 남벌은 상상이상 - 옥검찰관 조사담

현대일보 1947년05월27일


27 광릉 남벌피해는 상상 외, 민족적 양심으로 엄벌하겠다. 옥 검찰관 담화

자유신문 1947년05월28일


28 광릉림 남벌은 예상 이상 ; 민족적 양심으로서 용서할 수 없다. 검찰관 현지 조사담

민주중보 1947년05월28일


29 김해시 대산림 남벌사건

민주중보 1947년05월28일


30 산림 도벌 남벌자 엄중히 처단

부산신문 1947년10월03일


31 땔나무에 불안많다. 원인은 도벌, 남벌

현대일보 1947년10월24일


32 사막화하는 푸른 강토 ; 도벌, 남벌, 산불로 대머리산 ; 산림정책기구의 독립과 강화가 시급.

한성일보 1947년10월24일


33 도벌남벌 말자, 취체 엄중할 터

민중일보 1947년11월27일


34 서울지구 산림경찰관 무장 ; 산림남벌 방지가 목적

수산경제신문 1947년12월09일


35 사설 : 산림남벌과 국가의 장래

대구시보 1948년01월20일


36 산림남벌은 국가손실 ; 수도관할 각 서에서 취체에 전력

평화일보 1948년02월18일


37 뽕나무 남벌과 기업회피로 잠업복구는 무망, 뽕밭 확대계획이 시급

평화일보 1948년03월16일


38 임야 3천정보를 말단관리가 남벌

부산신문 1948년03월28일


39 일목일엽이 모두 보배, 녹화운동에 정신, 산림보안법 일층강화 낙엽채취라도 엄금

남선신문 1948년04월10일


40 풍기, 남벌 단속 , 산림 미화에 감찰활동

자유신문 1948년04월24일


41 현하 삼림과 국가의 운명

남선신문 1948년04월24일


42 산림을 애호하자 - 도벌 남벌 방화 방지책에 포천군당국 1역

현대일보 1948년04월25일


43 애화사적에도 도적손길, 빨가케 된 단종릉, 가증한 장작 모리배의 산림남벌

한성일보 1948년09월26일


44 도벌남벌이 빈번, 4월 중에 35건 적발

연합신문 1949년05월06일


45 사방사업의 급무는 보안림 남벌 취체

군산신문 1949년06월23일


46 산불에, 도벌남벌에 대해 이 농림장관이 경고

자유신문 1949년10월20일


47 부인나무꾼의 남벌로 근교산림보호 극히 우려

충청매일 1949년11월12일


48 삼림령 위반 증가 ; 남벌 도벌에 처벌 방침 - 이 농림장관 관하에 시달

자유신문 1949년11월20일


49 도벌, 남벌 처벌 : 시 당국에서 언명

자유신문 1949년11월22일


50 크리스마스용으로 전나무 남벌을 엄금

자유신문 1949년12월24일


51 구 왕궁 고목 남벌한 2명을 시경에서 체포

자유신문 1949년12월25일

1 year ago (edited) | [YT] | 50

백년역사CH

한국전쟁 당시 포로가 된 미군들이 수용되었던 포로수용소의 위치입니다.
평안북도 벽동군 동주리로, 산골 중의 산골이며, 외길로 통하는 외에는 압록강에 둘러쌓인 작은 반도입니다.
이곳에서 짧디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젊은 미군청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네요.

1 year ago | [YT] |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