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보문선원

안녕하세요.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보문선원입니다.
"보문선원"은 상도동 보문사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유일하게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수행을 할 수 있는 선원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보문사 보문선원은 "선(禪)"의 대중화와 세계화 그리고 생활화를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선(禪)"이란 본래 삼문(三門)의 하나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몰입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보문선원은 여러분들과 대중이 이러한 "선(禪)"에 보다 편하게 접근하고, 이를 보다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자 합니다.

보문사 보문선원은 모든 여러분들을 위하여 언제나 열려있으며,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보문선원

177회. [일요법회-지범스님] 전후제단의 깨달음 : 크게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
(법문: https://youtu.be/DVhLZlKHDds)



1) “법계(法界)를 보는 안목”
지범스님의 법문 요지는 화엄불교의 네 가지 법계 이해에서 출발한다.



- 이법계(理法界): 모든 현상의 바탕인 ‘이(理)’, 즉 공(空)·진여의 차원이다.
- 사법계(事法界): 개개의 구체적 현상(事) 세계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바탕(理)과 현상(事)이 서로 걸림없이 하나로 통한다.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모든 현상들이 서로 막힘 없이 서로를 비추고 들어선다.


스님은 “사사무애를 통달하지 못하면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생사해탈은 추상적 사유만으로가 아니라, 관계로 얽힌 이 현실(事) 한복판에서 무애(無礙)를 체득할 때 열린다는 뜻이다.


2)“화두타파(話頭打破)와 조주 선사의 가르침”
법문은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챙기는 수행을 핵심으로 삼는다. 화두는 이론을 늘리는 공부가 아니라, 마지막 한 가닥 의심을 온전히 붙들어 결정적으로 뚫는 일이다(타파). 이에 비유해 조주(趙州) 선사와 객승의 일화가 언급된다. 전승의 요지는 이렇다. 객승이 만행(萬行)을 떠나겠다고 하자, 조주가 “부처가 있는 곳에도 가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에도 가지 말라”는 취지로 일러 준다. 이는 “있는/없는”이라는 분별의 두 극단에 기대지 말고, 언어와 사량(思量)을 놓아 바로 보라는 지침이다. “만나는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말라”는 식의 표현은 말·생각에 의지해 확인받으려는 마음을 끊고 직지인심(直指人心) 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결국 화두 수행은 이·사(理/事)의 분별을 끊어 이사무애·사사무애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는 직행로라는 것을 강조한다.


3)“동중일여·몽중일여·오매일여와 전후제단”
수행이 무르익으면 동중일여(動中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가 드러난다. 움직일 때나 멈출 때나(動/靜), 깨어있을 때나 꿈속에서도(寤/寐) 한결같은 알아차림이 이어진다. 여기에 전후제단(前後際斷), 즉 과거·미래의 경계가 끊어져 지금-여기가 또렷해진다. 선어(禪語)로 “크게 한 번 죽고(大死) 다시 산다(大活)”고 하는데, 이는 자아집착이 철저히 무너지고 살아 있는 지혜의 작용이 현전함을 가리킨다. 이런 뜻에서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한다고 말한다.


화두를 성성하게 들고 가 분별을 끊어 무애의 안목을 여는 길. 바로 그 자리가 곧 동몽오매일여요, 전후가 끊어진 지금은 여기이며, 생사해탈에 이르는 관문이다.

1 week ago | [YT] | 2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보문선원

176회. [초하루법회-지범스님] <9일 정진의 힘> 떠남을 비추고 머묾을 살리다

(법문 : https://youtu.be/raiaUJIwVCc)


1) 천도와 축원, 한 마음으로 여는 초하루
지범스님은 초하루의 뜻을 먼저 밝히셨다. 오늘 우리는 떠난 이를 돕는 천도와 살아 있는 이를 살리는 축원을 한 마음으로 올린다고 하셨다. 천도는 영가가 어둠을 벗고 밝은 길로 나아가도록 공덕을 지어 돕는 일이며, 축원은 살아 있는 이의 보체강녕과 바른 인연을 비는 일이라고 설명하셨다. 두 길은 따로가 아니라 자비 하나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니, 세상살이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생사는 둘이 아니라는 법의 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말은 줄이고 뜻을 분명히 하여 오늘의 마음가짐을 세우자고 당부하셨다.


2) 연기·공·중도의 눈으로 실천하는 9일 정진
이어 스님은 수행의 눈을 연기·공·중도라고 정리하셨다. 모든 것은 서로 기대어 일어나고 사라지니 실체에 집착할 것이 없고, 그 바른 ‘봄’이 곧 중도라 하셨다. 이 눈으로 보면 생과 사는 둘이 아니므로, 수행에서는 묵언으로 산란을 거두고 장좌불와로 게으름을 누르며 용맹정진으로 흐트러짐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호흡을 고르게 세우고 일어남·머묾·사라짐을 또렷이 보라고 일러 주셨다. 9일 정진의 살림은 아침에 염불과 108배로 몸과 마음을 열고, 낮에는 반야심경 독송과 염불로 집착의 매듭을 풀며, 저녁에는 좌선과 참회로 하루를 정리한 뒤 그 공덕을 영가와 가족, 이웃, 모든 생명에게 회향하는 흐름으로 제시하셨다. 특히 발원의 말은 간결하고 정확해야 한다며, “영가가 미혹을 벗고 편안히 나아가길 빈다”, “살아 있는 모든 이가 보체강녕하고 지혜로 서로를 이롭게 하길 빈다”와 같이 뜻을 또렷이 드러내라고 지도하셨다.


3) 회향의 결심—말은 줄이고 행으로 채우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의 결심을 분명히 하셨다. 말은 줄이고 행으로 채우며, 앉아 비추고 서서 돕고 걸으며 회향하자고 하셨다. 우리의 발원이 영가에게는 길이 되고 살아 있는 이에게는 힘이 되기를 빈다고 하시며, “영가가 어둠을 벗고 밝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몸과 마음이 강녕하여, 연기와 공, 중도의 지혜로 서로를 살리게 하소서.”라고 발원을 이끄셨다. 그리고 초하루의 이 한 마음으로 아홉 날을 온전히 걷자고 법문을 맺으셨다.

1 week ago | [Y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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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회. [일요법회-지범스님] 참선, 마음을 닦는 일상
(법문 : https://youtu.be/9wL7aBhJK0k )


1) 불교는 마음을 밝히는 종교

한국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불교의 전통 위에 서 있다. 화려한 문화보다 신심을 바탕으로 발전해왔고, 불교는 우리 삶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고 다듬는 길로 이어져 왔다.


2) 수행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하는 길

부처님의 성지를 찾아다니는 순례는 결국 자기 안의 부처를 만나는 여정이다. 수행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참선은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반가부좌 자세로 앉는 것은 단순한 자세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건강해야 가능한 수행이다. 여기에 108배와 법문 청취를 꾸준히 더하면 수행의 패턴이 잡히고 삶이 젊어진다. 불교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참선을 이어가야 한다.


3) 꾸준한 참선이 삶을 맑게 한다

참선은 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닦는 실천이다. 매일 새롭게 마음을 바라보면, 삶은 조금씩 맑아지고 평온해진다. 깨달음은 먼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수행 속에 있다.

2 weeks ago | [Y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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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회. [일요법문-지범스님] 깨달음의 순간, 오매일여를 넘어
(법문 : https://youtu.be/FyJBz729Tac )

1) 수행의 본질, 계율과 습관의 힘 지범스님은 수행의 어려움을 단순히 시간의 길이나 노력의 양으로 보지 않는다. 스님은 “평소에 계율과 습관을 잘 지키면 철야정진이 어렵지 않다”고 설하신다. 이는 수행의 핵심이 ‘평상심(平常心)’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평소의 행이 올바르면 특별한 정진(精進)도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즉, 수행은 일상의 연속이며, ‘한순간의 깨달음’을 위한 토대는 바로 ‘매일의 실천’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2) 오매일여와 돈오돈수의 가르침
2-1. 오매일여(寤寐一如): 깨어 있을 때나 잘 때나 한결같은 마음 ‘오매일려를 통해 벗어났을 때 과거·현재·미래가 끊어진다’는 구절은, 수행자가 분별심에서 벗어나 일심(一心)의 상태에 이르면 시간과 존재의 분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상태는 단순한 명상적 고요가 아니라, 생사(生死)의 집착과 분별이 완전히 끊어진 ‘무심(無心)’의 경지다.여기서 “죽은 사람을 완전히 살려야 죽은 사람이 태어난다”는 표현은, 기존의 ‘아상(我相)’과 ‘망념의 나’를 완전히 버리고 나서야 참된 ‘참나(眞我)’가 드러난다는 비유적 법문이다.
2-2. 돈오돈수(頓悟頓修): 단박 깨닫고 단박 닦는다 성철스님의 “먼저 깨치고 뒤에 닦음이 없으니 닦음으로 깨친다”는 가르침은, ‘깨달음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뜻한다. 깨달음(돈오)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그 깨달음을 일상 속에서 실현하는 행(돈수)은 동시에 일어난다. 지범스님은 이를 “발심이 없는 깨달음은 없다”고 설명하며, 깨달음은 결코 지적 인식이 아니라 진정한 발심(發心) — 즉, 중생을 제도하고 진리를 향한 결심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2-3. 돈오점수(頓悟漸修)와 돈오돈수의 통합 스님은 “돈오점수는 발심으로 보고, 돈오돈수는 깨달음의 근본을 든다”고 하셨다. 이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두 사상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된다는 뜻이다. ‘돈오점수’는 깨달은 후 점차 익혀가는 발심의 과정이며, ‘돈오돈수’는 깨달음 그 자체가 곧 수행이 되는 경지이다. 따라서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 처음 마음을 내는 그 순간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의 자리라는 결론에 이른다.

3) 깨달음의 순간, 일상 속에서 태어나다 지범스님의 법문은 ‘돈오돈수’를 추상적인 교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실천으로 풀어낸다. “계율과 습관을 지키는 평상심의 수행 → 오매일려의 일심 → 돈오돈수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수행이 곧 삶이며, 깨달음이 곧 실천임을 일깨운다. 즉, 깨달음은 먼 곳의 경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보고 바로 행하는’ 마음 속에 이미 있다.

3 weeks ago (edited) | [Y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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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회. [일요법회-지범스님] 참선 수행, 고요함과 인욕으로 여는 깨달음
( 법문 : https://youtu.be/D84ovmmoWuw )


1) 고요 속에서 시작되는 수행
수행은 마음을 닦아 번뇌를 가라앉히고 고요한 생각을 지어가는 데서 출발한다. 이 고요는 단순한 정적 상태가 아니라 수행 전반을 이끄는 근본 토대이다.


2) 선 수행의 길과 수행자의 태도
선은 생각의 생멸을 끊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길이며, 이를 위해 화두를 성성적적으로 참구하는 간화선이 강조된다. 깨달음은 종착점이 아니라 과정의 절반에 불과하므로 끊임없는 참선이 필요하다. 참선은 노년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맑은 정신으로 회향하게 하며, 수행자는 타면자악(남이 나를 해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그것을 인내하며 수양의 기회로 삼는다)처럼 모욕을 인내하는 인욕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3) 맑은 정신으로 완결되는 참선
참선 수행은 화두 참구와 인욕의 실천을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는 단순한 사유가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한 훈련이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회향할 때 수행은 완결된다.

1 month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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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회. [일요법회-지범스님] 운명을 바꾸는 힘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
(법문 : https://youtu.be/Vyiq4W-DbAU )



1) 선행과 기도
사람들은 흔히 “팔자는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행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지범스님의 일요법문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선행과 기도, 참선이 삶을 바꾸는 열쇠임을 전한다.


2) 내려놓기
지범스님은 운명을 바꾸려면 먼저 선행을 쌓고, 꾸준히 기도를 드리며, 생활 속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팔자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직접 새벽마다 참선과 기도를 이어가며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실천하셨다. 그 과정에서 욕심과 집착이 내려놓아지고, 현재의 순간이 극락임을 체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불교의 가르침은 생사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고 전한다. 한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바로 그 자리가 번뇌 없는 세계, 곧 극락이라는 것이다.


3) 습관
결국 운명을 바꾸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선행을 실천하고, 기도와 참선으로 마음을 단련하며, 습관을 바꾸는 작은 실천 속에서 삶은 달라진다. 불교가 말하듯 생사에 얽매이지 않고 한 생각을 내려놓는다면, 지금 이 순간이 곧 극락임을 깨달을 수 있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1 month ago | [YT]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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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회. [일요법회-지범스님] 무상한 세상 속에서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삶

(법문 ; https://youtu.be/nbkVvQfVpTY)

1) 참선과 수행의 길
참선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참선은 혼자만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해야 하고, 집에서도 하루에 한 시간씩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그 중에서 철야(徹夜) 정진을 통해 공부의 힘을 얻을 수 있다. 수행은 단순한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꾸준히 이어가는 삶의 태도임을 강조한다.


2) 불법과 깨달음의 본질
1. 부처님의 출현 : 부처님은 진리에서 오신 분이며, 천상에서도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2. 번뇌와 부처 : 번뇌가 사라지면 곧 부처가 된다. 깨달은 사람은 삿된 말을 하더라도 결국 바른 길로 돌아오고, 삿된 사람은 바른 말을 해도 결국 삿된 길로 흘러간다. 깨달음과 무지는 언행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3. 무상과 실천 : 세상은 늘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에 더욱 불법을 실천해야 한다. 불법은 무상한 세상 속에서 삶을 바르게 이끄는 기준이다.


3) 불법 실천의 필요성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모든 것은 무상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참선과 수행, 그리고 불법의 실천이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1 month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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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회. [백중법회-지범스님] 백중, 바른 마음으로 길을 여는 날
(법문 : https://youtu.be/VtHvnGGrWd0 )


1) 백중의 의미
백중(우란분재)은 선망부모와 일체 중생을 위해 공덕을 닦고 그 공덕을 회향하는 불교의 큰 행사다. 단순한 추모의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다스려 바른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날이다.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말을 들어도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삿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바른 가르침조차 그릇되게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2) 목련존자의 교훈과 수행의 길
백중의 유래는 목련존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많은 죄업으로 지옥에 떨어졌고, 목련존자가 지혜와 신통으로도 홀로 구제할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과 함께 공덕을 지어 회향해야만 부모를 구제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목련존자는 이에 따라 여러 차례 공덕을 닦아 마침내 어머니를 천상에 태어나게 하였다. 이는 백중이 개인의 힘이 아닌, 대중의 힘과 나눔의 공덕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선지식들의 가르침은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일깨운다.


(1) 화엄경은 ‘선용기심(善用其心)’이라 하여, 바르게 마음을 쓰는 것이 수행의 근본임을 밝힌다.
(2) 무여스님은 청정한 행으로 말과 행동이 하나 된 삶을 실천하셨다.
(3)적명스님은 도인은 말과 행실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난다고 말씀하셨다.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바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불법은 삶 속에서 살아난다.


3) 바른 마음과 실천의 회향
백중은 단순히 돌아가신 이를 위한 제사가 아니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쓰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부모와 일체 중생에게 공덕을 회향하는 자리다. 말이 아니라 실천이 진실을 드러내며, 개인의 정성보다 대중의 힘이 더 큰 구제를 이룬다.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전하듯, 오늘 우리가 바른 마음으로 행하고 회향할 때, 자신도 맑아지고 중생도 함께 이로워진다.

2 months ago | [YT] | 1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보문선원

169회. [일요법회-지범스님]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염불과 참선
(법문 : https://youtu.be/q5Wi_osIs9g )


1) 마음을 바로 세우는 길
불교 수행의 근본은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다. 팔만대장경을 다 읽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본질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맑히는 데 있다.


2) 염불과 업장 소멸
불교에서는 염불 수행을 통해 업장을 소멸하고, 나아가 성불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특히 아미타불을 꾸준히 염송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영가 천도 또한 지극정성으로 이루어져 집안이 평안해진다고 전한다. 염불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수행이다. 여기에 참선을 겸하면 망념이 쉬고 고요해져, 어떤 경계가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을 수 있다.


3) 흔들림 없는 평안
염불과 참선은 불교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수행이다. 꾸준히 정진하면 업을 녹이고 집안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자리를 얻게 된다.

2 months ago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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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회. [칠성기도-지범스님] 칠성기도 : 내 안의 부처를 믿고 출현시키다.
(법문 : https://youtu.be/M_X7s8-I0TQ)


1) 외부 신앙을 통한 내면의 부처 출현
칠성님, 산신님, 관세음보살 등 외부 부처는 우리 마음속 부처를 일깨우기 위한 방편이다. 칠성기도도 단지 무병장수나 소원을 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부처를 드러내기 위한 수행의 하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행은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2) 내면의 부처를 위한 수행 조건

발심
부처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이 수행의 시작이다. 생사에 얽매이지 않는 깨달음을 얻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선지식과의 만남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바른 가르침을 전해주는 눈 밝은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은 수행의 길을 함께 밝혀주는 등불이다.


끊임없는 수행의 자세
수행은 단기적인 열정이 아니라, 매일 지속되는 삶의 태도다. 인터넷처럼 빠르고 편한 길이 아닌, 꾸준하고 진지한 실천이 필요하다. 일타스님이 말한 것처럼, 잠깐의 연비는 쉽지만, 매일 연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짜 수행이다.


3) 스스로 도인이 되어야 한다
보문사는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그 의미는 결국 스스로가 도인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내 마음이 이고득락 되어야 하며, 수행자는 자기 안의 부처를 믿고 그 부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수행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책임이다.

2 months ago | [Y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