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계(法界)를 보는 안목”
지범스님의 법문 요지는 화엄불교의 네 가지 법계 이해에서 출발한다.
- 이법계(理法界): 모든 현상의 바탕인 ‘이(理)’, 즉 공(空)·진여의 차원이다.
- 사법계(事法界): 개개의 구체적 현상(事) 세계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바탕(理)과 현상(事)이 서로 걸림없이 하나로 통한다.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모든 현상들이 서로 막힘 없이 서로를 비추고 들어선다.
스님은 “사사무애를 통달하지 못하면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생사해탈은 추상적 사유만으로가 아니라, 관계로 얽힌 이 현실(事) 한복판에서 무애(無礙)를 체득할 때 열린다는 뜻이다.
2)“화두타파(話頭打破)와 조주 선사의 가르침”
법문은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챙기는 수행을 핵심으로 삼는다. 화두는 이론을 늘리는 공부가 아니라, 마지막 한 가닥 의심을 온전히 붙들어 결정적으로 뚫는 일이다(타파). 이에 비유해 조주(趙州) 선사와 객승의 일화가 언급된다. 전승의 요지는 이렇다. 객승이 만행(萬行)을 떠나겠다고 하자, 조주가 “부처가 있는 곳에도 가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에도 가지 말라”는 취지로 일러 준다. 이는 “있는/없는”이라는 분별의 두 극단에 기대지 말고, 언어와 사량(思量)을 놓아 바로 보라는 지침이다. “만나는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말라”는 식의 표현은 말·생각에 의지해 확인받으려는 마음을 끊고 직지인심(直指人心) 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결국 화두 수행은 이·사(理/事)의 분별을 끊어 이사무애·사사무애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는 직행로라는 것을 강조한다.
3)“동중일여·몽중일여·오매일여와 전후제단”
수행이 무르익으면 동중일여(動中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가 드러난다. 움직일 때나 멈출 때나(動/靜), 깨어있을 때나 꿈속에서도(寤/寐) 한결같은 알아차림이 이어진다. 여기에 전후제단(前後際斷), 즉 과거·미래의 경계가 끊어져 지금-여기가 또렷해진다. 선어(禪語)로 “크게 한 번 죽고(大死) 다시 산다(大活)”고 하는데, 이는 자아집착이 철저히 무너지고 살아 있는 지혜의 작용이 현전함을 가리킨다. 이런 뜻에서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한다고 말한다.
화두를 성성하게 들고 가 분별을 끊어 무애의 안목을 여는 길. 바로 그 자리가 곧 동몽오매일여요, 전후가 끊어진 지금은 여기이며, 생사해탈에 이르는 관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보문선원
177회. [일요법회-지범스님] 전후제단의 깨달음 : 크게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
(법문: https://youtu.be/DVhLZlKHDds)
1) “법계(法界)를 보는 안목”
지범스님의 법문 요지는 화엄불교의 네 가지 법계 이해에서 출발한다.
- 이법계(理法界): 모든 현상의 바탕인 ‘이(理)’, 즉 공(空)·진여의 차원이다.
- 사법계(事法界): 개개의 구체적 현상(事) 세계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바탕(理)과 현상(事)이 서로 걸림없이 하나로 통한다.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모든 현상들이 서로 막힘 없이 서로를 비추고 들어선다.
스님은 “사사무애를 통달하지 못하면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생사해탈은 추상적 사유만으로가 아니라, 관계로 얽힌 이 현실(事) 한복판에서 무애(無礙)를 체득할 때 열린다는 뜻이다.
2)“화두타파(話頭打破)와 조주 선사의 가르침”
법문은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챙기는 수행을 핵심으로 삼는다. 화두는 이론을 늘리는 공부가 아니라, 마지막 한 가닥 의심을 온전히 붙들어 결정적으로 뚫는 일이다(타파). 이에 비유해 조주(趙州) 선사와 객승의 일화가 언급된다. 전승의 요지는 이렇다. 객승이 만행(萬行)을 떠나겠다고 하자, 조주가 “부처가 있는 곳에도 가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에도 가지 말라”는 취지로 일러 준다. 이는 “있는/없는”이라는 분별의 두 극단에 기대지 말고, 언어와 사량(思量)을 놓아 바로 보라는 지침이다. “만나는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말라”는 식의 표현은 말·생각에 의지해 확인받으려는 마음을 끊고 직지인심(直指人心) 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결국 화두 수행은 이·사(理/事)의 분별을 끊어 이사무애·사사무애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는 직행로라는 것을 강조한다.
3)“동중일여·몽중일여·오매일여와 전후제단”
수행이 무르익으면 동중일여(動中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가 드러난다. 움직일 때나 멈출 때나(動/靜), 깨어있을 때나 꿈속에서도(寤/寐) 한결같은 알아차림이 이어진다. 여기에 전후제단(前後際斷), 즉 과거·미래의 경계가 끊어져 지금-여기가 또렷해진다. 선어(禪語)로 “크게 한 번 죽고(大死) 다시 산다(大活)”고 하는데, 이는 자아집착이 철저히 무너지고 살아 있는 지혜의 작용이 현전함을 가리킨다. 이런 뜻에서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한다고 말한다.
화두를 성성하게 들고 가 분별을 끊어 무애의 안목을 여는 길. 바로 그 자리가 곧 동몽오매일여요, 전후가 끊어진 지금은 여기이며, 생사해탈에 이르는 관문이다.
1 week ago | [Y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