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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ago | [YT] | 18

보처강

프랑스의 초고속 전투기, 슈페르 그리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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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 영상의 스크립트를 게시글로 변환한
글입니다.

https://youtu.be/tTwt7JLA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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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닷쏘사가 우라강과 미스테르 시리즈로
명성을 떨치자 옆에서 부들부들 하던 회사가
하나 있었어요. 바로 같은 프랑스 국적의
항공기 제작사였던 노르사였죠. 노르사는
1944년에 만들어져가지고 닷쏘보다 훨씬 더
역사도 깊고 빵빵한 기술진들을 보유한데다가
프랑스정부의 두터운 지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사가 만든 전투기들은
신생 좋좋소기업인 닷쏘제 전투기들한테
밀려서 하나도 채택되지를 못했었습니다.
심지어 함상전투기인 N.2200은 실패작으로
분류가 되며 프랑스군에서 외면을 했죠.
물론 다른 종류의 항공기들을 노르사에서
생산해서 잘 팔고 있었으니까 경영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노르사의 기술진들은
항공기술의 꽃인 전투기 시장에서 닷쏘에게
밀린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프랑스정부에서는 일단 전투기는
현실적인 스펙과 실용적인 운영편의성을 갖춘
닷쏘사것으로 사용을 하지만, 훨씬 더 우수한
기술진과 계측장비들을 갖춘 노르사에
미래 항공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용역들을
주기로 했습니다. 노르사는 이 연구용역을
받아서 실험적인 기술을 적용한 기술실증기들을
만든 다음에 이 기술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데이터들을 수집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노르사는 기술실증기로 만든
물건이 운좋게 정말로 군용으로 적합하다면
기술실증기를 양산기체로 개조해서 프랑스군에
대량납품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닷쏘사 일변도의 전투기시장을
부셔버릴 수 있다는 판단이 슨 것이죠.

1953년, 프랑스의 SFECMAS사는
초음속에서 적합한 날개형태를 연구하려고
아세날 1301이라는 델타익, 즉 삼각날개를
갖춘 기술실증기를 만들었는데요. 풍동실험과
비행실험을 거친 결과 고속에서의 성능이 좋은
공력특성을 가질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속을 내려고 날개에 후퇴각을
많이 주면 이걸 부러지지 않게 버텨주려고
날개 뿌리를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야하는데
그럼 중량이 늘어나고 무게중심도 이상하게
변하겠죠. 하지만 델타익은 날개 뿌리를
동체 전체로 가져갈 수 있다보니 날개를
얇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속에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단점이 저속에서는
비행안정성이 좋지 않고 유도항력이 많이
발생하면서 장거리 비행에는 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요. 어차피 당시
프랑스군이 원하던 전투기는 적 전투기랑
맞짱 뜨는 전투기가 아니었거든요.

프랑스는 당시 폭격기가 뜨면 고속으로
따라붙어서 격추시키는 전형적인
요격기를 원한다고 떡하니 적어놓은 사업도
추진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오히려
목표로 하는 고속성능 기준이 너무 높아서
당시 기술로 구현이 불가능하다보니까
부득이하게 성능요구사항을 프랑스군이
낮춰줬을 정도로 당시 프랑스군은 고속
요격기에 대해서 갈증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이 아세날 1301을 개발한 SFECMAS와
노르가 합체! 하면서 노르 아비아시옹이라는
더 거대해지고 더 뛰어난 회사가 태어났죠.

그래서 곧바로 노르사는 흡수한 아세날 1301을
토대로 델타익 기술실증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4년에 등장한
제흐포트였습니다. 제흐포트는 최고속도
마하 1.1의 초음속 실험기였구요. 프랑스제
국산 제트엔진인 아타 101시리즈 엔진에
애프터버너를 장착한 엔진을 사용하는데요.
애프터버너는 압축된 배기가스에 연료를
분사해서 한 번 더 추진력을 얻어주는
장치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초음속 제트기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할때 다른 업체들은
제트엔진으로 날다가 초음속이 필요해지면
미리 달고 있던 보조로켓을 점화해서 초음속에
도달하는 덜떨어진 방식을 채용했었거든요.
순수 터보제트 엔진만으로 초음속에 도달한 것은
굉장히 기념비적인 일이었죠.

노르사는 제흐포트를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프랑스군의 전투기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제흐포트가
등장한지 두달 뒤에 닷쏘가 슈페르 미스테르의
시제기를 개발해서 첫 비행을 성공시키고야
말았죠. 슈페르 미스테르는 제흐포트처럼
애프터버너를 채용한 초음속 전투기였습니다.
노르사는 또 다시 부들부들 하면서 이참에
슈페르 미스테르를 아득히 뛰어넘는
전투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서
듣도보도 못한 신기술들을 죄다 섭렵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램제트 엔진이었습니다. 램제트 엔진은
빠른 속도로 막대한 공기가 연소실 안에
들어오면 자체적인 충격파로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엔진인데요. 이게 고속에서는 효율이 엄청
좋고 별도로 구동되는 터빈같은게 없어서
기계적으로 엄청 단순했어요. 근데
출력은 어마어마해서 이론상 마하 2 이상의
속도에 도달하는것도 아주 간단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빠른속도로 막대한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는게 전제조건이다보니까
속도가 초음속이 안넘어가면 작동을 못해요.
그래서 노르사는 이 물건을 어떻게 해야
전투기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최초에 출격시에 로켓으로 추진시켜주고
초음속에 도달하면 램제트 엔진으로 가동하는
방법도 생각했는데요. 마치 램제트 엔진으로
가동되는 요즘 초음속미사일들이랑 비슷한
원리였죠. 그러나 이러면 착륙하려고 접근할때도
램제트를 쓸 수 없으니 순수 활공비행으로
착륙해야겠고 그럼 착륙 난이도가 어마어마
하겠죠. 무동력 활공비행은 나쁘게 말하자면
완만한 추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고심끝에 내놓은 방법은 바로 복합사이클엔진!
저속에서는 터보제트 엔진으로 작동하고
고속에서는 터보제트 엔진의 터빈이 제껴지고
쇼크콘을 전진시켜서 램제트 엔진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엔진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난이도가 빡셀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복합사이클엔진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일단 엔진을 장착할 기체부터 설계한 다음
터보제트 엔진만 장착시켜서 잘 나는지
실험해보려고 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5년에 등장한 그리퐁이었습니다.
개량된 아타 101 터보제트 엔진과
애프터버너를 장착해서 최고속도는
마하 1.3이었습니다. 왜 하필 마하 1.3으로
목표속도가 정해졌냐면 당시 램제트 엔진을
가동시키려면 최소한 마하 1.3까지는
터보제트 엔진의 깡추력으로 가속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그리퐁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죠.
기체에는 델타익 뿐만 아니라 프랑스 최초로
카나드, 즉 귀날개까지 장비했습니다.
덕분에 공기흡입구 주변에서 발생하는
불규칙한 와류를 상쇄시킬 수 있었고
비행안정성도 더 좋아졌으며 추가적인
양력이 발생되면서 기동성도 좋아졌죠.
델타익과 카나드 구성은 궁극적으로는
나중에 라팔 전투기에서도 적용되게 됩니다.

일단 그리퐁이 꽤 안정적인 성능과 신뢰성을
보이자 곧바로 복합사이클엔진을 장착한
개량형을 선보였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7년에 등장한 그리퐁2 였습니다.
복합사이클엔진 덕분에 최고속도는 무려
마하 2.19에 달했구요. 이 상태에서 엄청나게
높은 기동성과 안정성을 자랑했습니다.
고공성능도 좋아서 당시 기준으로는 전투기들이
올라가는것 자체가 어려웠던 고도 18km까지
순식간에 상승이 가능했죠. 노르사와 프랑스군
관계자들은 환호했습니다. 프랑스군은 곧바로
그리퐁2를 단발 단좌 요격기로 개조해서
도입하는 것을 검토했구요. 이러한 엄청난
성능에 힘입어서 미국 역시 연구비를
후원해줄테니 연구데이터를 공유하자고까지
제안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노르사는
만족하지 않았죠. 이제 겨우 중간단계에
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원하던 것은 마하 3의 속도를
가진 초고속 요격전투기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마하 2라는 속도는 미국과 소련이
이미 일반적인 터보제트 엔진만으로도
달성에 성공했고 실제로 그런 전투기들이
실전배치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복잡하고 비싸기만한 복합사이클엔진을
사용하면서 마하 2의 속도를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죠. 어차피 프랑스 국내에서도
곧 있으면 터보제트엔진 만으로도 이
복합사이클엔진의 속도를 따라잡는
전투기가 나올것으로 봤구요.

그래서 노르사는 궁극의 램제트 전투기인
슈페르 그리퐁의 개발을 시작했죠.
슈페르 그리퐁은 그리퐁을 엄청 대형화 시켜서
복합사이클엔진 두 개를 장착한 쌍발
램제트 요격기였구요. 목표속도는
마하 3이었죠. 성층권 고도에서도 활동 할 수
있었구요. 큰 기체다보니까 당시 떨어지는
기술로 인해서 크기가 크게 출시되었던
노르사의 AA.20 공대공미사일도 두 발
이상 달고 날아다닐 수가 있었죠. 여기에
레이더까지 장착해서 당시로서는 꿈의
요격기로 불릴만 했습니다. 슈페르
그리퐁의 제작을 위해서 노르사는 마찰열을
효과적으로 견딜 수 있는 재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르사는 미국에서 티타늄 합금을
수입해오는 협상도 진행했죠.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리퐁 2에서
터져나왔습니다. 프랑스군에서 이 물건을
군용으로 채택할 수 있나 확인해봤더니
너무 문제가 많은 전투기였던 것이죠.
일단 사진 봐보시죠. 복합사이클엔진은
말 그대로 엔진 두개를 하나로 합쳐놓은거나
마찬가지다보니까 엔진이 무겁고 엄청 큽니다.
그럼 일단 기체 중량과 부피 중에서 엔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큽니다. 근데 이게 마하 1.3까지
터보제트엔진 하나가 쌩추력으로 가속을
해줘야하다보니까 기체를 크고 무겁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랬다가는 마하 1.3에
도달 못하면 램제트엔진 못쓰잖아. 그럼
나머지 부분에 연료를 많이 탑재할 수 있겠어요?

거기다가 터보제트 엔진은 안그래도 연비가
별로인데 저 무거운 전투기를 마하 1.3까지
애프터버너 키고 가속시켜줘야하다보니까
더 연비가 구려졌어요. 램제트 엔진을
가동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램제트 엔진에
연료분사량 조절기능 따위는 없었고
그냥 온 오프 버튼이 끝이었어요. 그래서
항속거리는 고작 700km였습니다.
이정도면 항속거리 짧다고 욕먹은 우라강보다
더 짧구요. 체공시간으로 따지자면 불과
몇십분 정도라서 요격용으로도 써먹기가
어려웠습니다. 커버리지가 좁다면
적의 폭격기 편대가 그리퐁2가 출몰하는
비행장 주변만 슥 피해가면 그대로
무력화당하는 것일테니까요. 비슷한
예시로는 나치독일제 로켓전투기인 코멧이 있죠.

그러면 슈페르 그리퐁은 문제가 더 심각하겠죠.
엔진이 두 개니까 기름을 두 배로 많이
먹을텐데 연료탑재량은 아까전에 언급한
문제로 여전히 심각할테니까요. 결국
슈페르 그리퐁은 시제기마저도 만들어보지
못하고 좌초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리퐁2는
1961년까지 테스트용도로 날아다니기는
했는데요. 군용으로 채택해달라고 노르사가 말을
안꺼낸것은 아니었지만, 속도는 비슷한데
다른 성능은 더 좋은 닷쏘사의 미라주3를
도입하게 되면서 군용으로 채택되는 일 없이
순수하게 실험기로만 사용하다가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노르사는 드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했는지 전투기시장에서는 완전히
철수했구요. 미사일이나 수송기를 만드는
회사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닷쏘에게 완벽히 패배해버린 셈이었죠.

3 days ago | [YT] | 26

보처강

여자친구랑 늦은 여름휴가를 왔습니다

오늘 진짜 힘겨운 경기였습니다.
연장 12회까지 가가지고 롯데가 승리를 했네요.
여친은 LG팬인데 자기가 보는 경기는 다 이긴다고
롯데를 오늘 만큼은 응원해주셨습니다.
덕분에 11회까지는 무재배 할 줄 알았는데 12회에
로옷데의 고승민 안타안타~

끝내기 터져서 목청 떨어져라 소리지르다 왔네요.
역시 제가 롯데 경기만 보면 진다고 패기소리
듣는데 승기가 옆에 있으니 기적의 승리를 하는군요.
오늘로서 롯데는 강등의 위기에서 다시 3위로
올라섰습니다.

1. 승리의 롯데
2. 자리 사진
3. 롯데 VS KT 경기사진
4. 롯데 자이언츠 마스코트 피니
5. 선물받은 춘식이 롯데 자이언츠 콜라보 인형 들고가서
예쁘게 자리 앞에 디스플레이 하고 응원함
6. 광안리 춘식이
7. 광안리 사진
8. 광안리 야경
9. 달맞이길
10.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4 days ago (edited) | [YT] | 42

보처강

여러분은 좌우 정치진영이 역전된 6974번 지구에 살고 계십니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

짤 1. 트럼프도 친중 좌파라며 FBI에 신고하는 보수
짤 2. 한미동맹을 철회하고 한중동맹(...) 맺자는 보수
짤 3. 오성홍기에 절하는 보수단체

참고로 핵무장과 북벌을 주장하는 보처강 채널은
골수좌파(???) 채널로 분류되며 CIA와 KFC에
신고가 다수 들어간 채널입니다. (사진 4번 참고)
또한 북벌과 핵무장을 반대하며 보처강채널을
공격하는 분들은 대개 보수(...)분들이구요...

여러분은 이런 역전세계에 살고 계십니다.

6 days ago | [YT] | 87

보처강

한국군이 도입할뻔한 무기 10가지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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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 영상의 스크립트를 게시글로 변환한
글입니다.

https://youtu.be/avPMo5-rl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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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SU-35UB 입니다.

소련은 1980년대에 SU-27시리즈라는 걸출한
대형 제공우세전투기를 개발해서
배치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기에도 단점이 있었어요.
레이더가 대형이기는 했지만, 동시요격능력도
없었구요. 레이더가 포착한 정보들을 트랙화
시켜서 조종사에게 알려주는 데이터처리장비가
너무나도 구렸습니다. 수호이사도 이 문제를 알고 있어서
프로세서와 레이더개량을 진행했고 동시에 SU-27의
기동성과 비행안정성, 추력을 동시에
환골탈태시킨 개량형을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SU-27M형입니다. 기체제어에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채택해서
훨씬 더 정교하게 조종면들을 움직일 수
있었구요. 카나드를 장비해서 최대 10G라는
엄청난 수준의 중력가속도를 견딜 수 있었으며
순식간에 120도 가량의 순간선회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죠. 레이더 역시 수동전자주사식인
BARS 레이더가 장비되어져서 15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그 중 6개의 표적과 동시교전을
할 수 있는 등 엄청나게 진보된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상맵핑과 장거리 대함탐지도
가능해서 대지상타격이나 대함공격도 무리 없이
수행가능한 전폭기로도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거기다가 기존의 SU-27과 같이 코부분의 IRST도
유지되고 있어서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고도 적기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은 오랜 지병끝에
붕괴되고야 말았습니다. 신생 러시아는
돈이 없는 관계로 SU-27M을 사줄 수가
없었죠. 따라서 수호이사는 SU-27M을 해외에
팔아먹어야 했어요. 그래서 이 SU-27M을
마치 새로 출시된 전투기처럼 보이게 하려고
SU-35라는 이름을 붙여서 세일즈를 했습니다.
여기에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하는 SU-35를 개발해서
훈련이나 전폭기용으로 어필하면 많이
팔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복좌기로 개발한 것이
바로 SU-35UB입니다.

때마침 한국은 대형 하이급 전폭기 40대를
도입하는 FX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FX사업 이전에는 한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불곰사업을 벌이면서 수많은
러시아제 무기들을 도입했었죠. 그래서
한국에 러시아제 전투기들도 판매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한국도 소량이기는
하지만, MIG-29도입을 타전한 적이 있기도
하구요. 거기다가 호재가 하나 겹쳤다면
서울에어쇼였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SU-35에
초고기동성을 위해서 추력편향노즐을 장착한
실험기를 서울에어쇼에 참가시켰는데요. 이때
한국인들은 공중에서 순식간에 기수를 틀어서
마치 정지해있는 듯한 코브라기동을 선보이는
등 엄청난 기동성과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이 실험기에 푹 빠져버렸던 것이죠. 이때부터
밀덕계에 러뽕들이 대량양산되었을 정도로
이 서울에어쇼는 수호이 전투기라는 존재를
한국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데뷔무대였습니다.

그래서 야심차게 수호이사가 FX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당시 한국이 대형
전폭기를 원하다보니까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해서
좀 더 원활한 대지타격업무가 가능한
SU-35UB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수호이사가 공산주의 국가 시스템에서
운영되던 수호이 설계국이 전신이었던 만큼
장사를 할줄 몰랐어요. 일단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서 40대 값에 60대를 준다는것은
장점이었는데요. 그 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측이 원하던 절충교역이나 기술이전 같은
다양한 옵션들을 제시하지는 못했던 것이죠.
게다가 기존에 쓰던 미제 전투기랑 완전 다른
별개의 후속군수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것도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정밀지상타격능력에서도
전문적인 타겟팅포드까지 장비하고 다양한 스마트병장을
운영할 수 있는 F-15K에 비해서 밀리는
편이었구요. 결국 수호이사에서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협상 도중에 사업참여를
포기하면서 한국이 SU-35UB를 도입하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PC-9 전선통제기입니다.

전선통제기란 전선 상공을 체공하면서
지상군의 이동과 전선의 변화를 감시하는
정찰기 겸 아군의 화력지원요청을 받아서
포병이나 공군의 화력지원을 유도해주는
종류의 항공기입니다. 한국군은 좀 더
체공시간이 길고 추력도 좀 강력해서 유사시
경공격기로도 쓸 수 있는 수준의 전선통제기를
원했는데요. 그래서 스위스의 필라투스사에게
PC-9 프로펠러기 도입을 타전했습니다.
PC-9은 1984년에 개발된 단엽
프로펠러기인데요. 기존에 많이 판매되었던
PC-7을 개량한 기체였습니다. 천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하고 있고 최고속도 600km/h라서
훈련기로도 사용이 가능한 기체였죠. 거기다가
무장장착량이 1톤이나 되어서 폭탄이나 로켓을
장비하고 게릴라를 소탕하는 COIN임무나
경공격임무도 가능했습니다. 사출좌석까지
장비하고 있어서 만약 임무를 뛰다가
피탄당했을 경우에 조종사의 생존성도
뛰어났죠. 그러나 스위스정부는 자신들이
영세중립국이라서 한국같은 분쟁국가에는
무기를 팔 수 없다고 수출을 가로막았습니다.

물론 GDF-001 35mm 대공포를 도입해올때와
마찬가지로 제 3국에서 택갈이를 하면 어찌저찌
도입해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추가비용과 시간을 지출할 정도로 엄청 중요한
무기체계는 아닌 관계로 PC-9 도입은
포기되었죠.

세 번째는 대한식 소총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인천에서 일본제
무기를 생산하던 인천조병창이 있었는데요.
이 인천조병창을 담당하던 채병덕 총감이
인천조병창의 생산설비들을 필사적으로
보존하는데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첫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조병창의 설비들은 미군정에서 다
박살내버렸지만, 어쨋든 이러한 노력들로
군대의 기초인 제식소총 개발이 이때부터
시작되게되었죠. 당시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미군에게 M1 개런드와 30-06
스프링필드탄을 공여받아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30-06 스프링필드탄을
사용하는 첫 제식소총을 개발하게 되었는데요.
그것이 바로 대한식소총입니다.

형태는 그냥 일본제 아리사카 소총을 갖다가
30-06 스프링필드탄에 맞게끔 개량하고
개런드 소총에서 쓰는 8발 클립을 끼워서
장전할 수 있게 만든 물건입니다. 당연하지만
볼트액션식이라서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를
개악시켰다고 봐도 무방한 소총이었구요.
8발 탄클립을 다 쓰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개런드
소총과는 달리 볼트액션식이다보니까 별도로 총 쏘면
가스압으로 탄클립을 튕겨내는 장치도
없잖아요? 그래서 불편하게 별도로 버튼을
눌러서 클립을 빼야했었습니다. 대한식소총의 제식도입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죠.

네 번째는 미라주 F1 전투기입니다.

1970년대 초까지 프랑스의 닷쏘사는
미라주 3와 5 전투기를 히트시키면서 성장세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미라주 3는 중거리
공대공능력이 팬텀기보다 한참 후달리는
물건이었구요. 사실상 고속, 고공 요격기
개념이었죠. 미라주 5는 대지타격능력은
좋지만, 이스라엘의 독특한 요구로 인해서
레이더가 빠진채 출시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중거리 공대공능력을 장비함과
동시에 대지타격능력도 일신시킨 전투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미라주 F1
전투기입니다. 최대이륙중량 16톤대로
기존의 미라주 3보다 훨씬 힘이 좋아졌구요.
최고속도는 마하 2급을 자랑했습니다.
여기서는 유도폭탄도 운영이 가능했죠.
레이더는 시라노 4 레이더가 장착되었는데요. 탐지거리가
기존보다 늘어났으며 기존의 마트라 530 미사일보다
사거리가 25km로 좀 더 길어진 수페르 530F
미사일을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미사일은
마하 4.5의 최대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적기가 대응할 시간을 줄여버린 미사일이죠.

다만 미라주 F1은 이전의 미라주 3나 5보다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판매량을 보여줘서 다쏘사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이때 한국이 이 미라주 F1
도입을 타전해왔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은 미국에 F-16 도입을 타전했지만,
미국은 한국의 핵개발과 인권상황을 문제로
다운그레이드형인 F-16/79형만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F-16 도입을 잠정
중단하고 다른 전투기를 도입하려고 했는데요.
이때 물망에 올랐던 것이 바로 미라주 F1
전투기였습니다. 엥??? 한국은 이스라엘제
크피르 전투기에 스웨덴제 비겐 전투기까지
도입하려고 했으면서 프랑스제 미라주 F1까지
도입하려고 했었다구요? 이거 완전 전투기
전시장아냐? 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스라엘제 크피르와는 달리 어느정도 중거리
공대공능력도 있는데다가 폭장량도 나쁘지 않으니까
하이급인 비겐 전투기보다는 등급이 낮은 미들급으로
사용하면 되겠다는 판단도 섰었구요.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미라주 F1
도입사업은 엎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다섯 번째는 F-16/79 전투기입니다.

한국이 비겐이나 크피르, 미라주 F1을
도입하려고 하게 만든 원흉인 전투기죠.
F-16은 원래 2만 3천파운드의 추력을 자랑하는
대추력의 F100 터보팬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 대추력의 최신
터보팬엔진을 2등 동맹국들한테 주기에는 너무
위험한거야. 그래서 기존의 팬텀기에서 쓰던
J79엔진을 F-16에 달아서 만든 것이 바로
F-16/79형이었습니다. 그러나 J79엔진은
터보제트 엔진이라서 연비가 터보팬 엔진인
F100보다 구렸죠. 일단 항속거리 칼맞고.
추력도 F100보다 6천파운드나 구렸죠.
이러면 폭장량, 비행성능 다 칼맞죠. 이런걸
한국정부한테 제시했으니 사겠냐고...
게다가 F-16은 자체중량도 단발 단좌
전투기 치고는 무게가 나가는 편이라서
추력이 절대 충분할 수가 없었어요.
한국이 안산다고 하자 대만같은 나라들한테
세일즈를 해봤는데요. 반응은 한국이랑
똑같았습니다.

여섯 번째는 Metis-M1 대전차미사일입니다.

한국은 불곰사업으로 러시아제 Metis-M
대전차미사일을 도입했는데요.
경대전차미사일이라서 무게가 가볍다보니까
한국의 산악지형에서 운영하기도 좋았구요.
관통력도 850mm나 나와주는데다가
텐덤탄두까지 장비된 똥파워 미사일이라서
한국군에서는 대만족했습니다. 사거리도
1.5km면 당시 이 포지션에서 운영되던
106mm 무반동총보다 길었으니 나쁘지
않았죠. 그래서 2차 불곰사업때까지 1만발
이상 도입해서 거진 한국군의 제식
경대전차미사일로서 사용을 했는데요.
마침 러시아에서는 Metis-M의 개량형인
Metis-M1을 개발했습니다. 사거리가 2km로
늘어났고 관통력도 950mm로 늘어났는데요.

러시아는 한국이 대량으로 Metis-M을 도입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한국에 Metis-M1도
제안했죠. 그러나 한국은 도입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Metis-M1이나 Metis-M이나
사수가 일일이 사각조절기랑 방위조절기
돌려가지고 미사일을 유도해줘야하는
시선지령유도방식이라는건 매한가지였거든요.
당시 한국은 재블린처럼 락온만 하면 알아서
날아가는 3세대 대전차미사일이자 탑어택까지
가능한 현궁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었으니
굳이 이걸 사올 이유가 없었죠.

일곱 번째는 스코르펜급 잠수함입니다.

냉전기에 프랑스는 핵잠수함을 개발해서
사용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식
잠수함의 조용하다는 장점은 어디 안가는지라
이 재래식 잠수함도 지속적으로 개발해서
사용했었습니다. 근데 때마침 독일이 209급 잠수함을
개발했죠. 독일은 얕은 수심에서 활동할
잠수함만 도입하기 때문에 HY-80강을 적용해서
고심도 작전이 가능한 이 잠수함은 자연스럽게
수출용으로 전환이 되었는데요. 무려 1차대전기부터
재래식 잠수함 장인인 독일답게 전세계에 불티나게
판매하는데에 성공했습니다. 이걸 보고 질투가 나서
프랑스랑 스페인이 합작으로 개발한 재래식 잠수함이
바로 스코르펜급 잠수함입니다. 체급은 1500톤급으로
독일제 209급보다는 좀 더 크다는 것이
장점이었구요. ATP형 어뢰발사관을
장착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죠.

이게 뭐냐면 기존에는 스윔아웃, 즉 어뢰발사관에
물을 채우고 어뢰를 발사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연히 초기 추진속도가 느렸습니다. 게다가
대함미사일 같은 무장은 캡슐에 담아서
쏴준 다음 물 위로 올라온 다음에서야
미사일이 점화되는 방식인데요. 따라서 캡슐에
별도로 추진체계를 달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게 압축공기방식인데 어뢰를 빠르게
추진시킬 수 있고 자체추진수단이 없는
캡슐도 발진이 가능했죠. 그러나 압축공기를
수중에서 쏴주면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고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단점을 모두 극복한 체계가 ATP방식의
어뢰발사관이었죠. 별도의 터빈을 사용해서
압축수로 무장을 발사하는 방식인데요.
다만 별도의 터빈을 갖춰야 해서 체계가 크기
때문에 스코르펜급의 체급이 209급보다는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스코르펜급은 한국이 잠수함을 도입하려던
장보고 1급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경쟁자는 역시 독일의 209급이었죠. 당시
209급보다 크고 뛰어난 체계들을 많이
갖추어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었는데요.
문제는 독일의 HDW가 아예 한국에 엄청난
분량의 기술이전과 동시에 한국이 직접
209급을 생산과 판매를 해도 좋다고 판권까지
나눠줬다는 것이죠. 이런 파격적인 조건에
밀려서 결국 스코르펜급의 도입은 무산되었습니다.

여덟번째는 G-550 CAEW 조기경보기입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예로부터 조기경보기 도입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미해군이 항공모함에서
함상 조기경보기로 쓰던 E-2를 도입해서
써봤는데요. 문제는 E-2가 가진 UHF대역
레이더는 평지나 해상에서나 쓸모 있지
복잡한 산악지형에서는 뭐가 표적이고
뭐가 지형인지 구분조차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값비싼 E-3를
도입해오기에는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자체적인 조기경보기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93년에 나온 것이
바로 G-550 CAEW였죠.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를 생산하는 걸프스트림사의 G-550에
자국산 팔콘레이더시스템을 얹은 물건인데요.
AESA레이더라가지고 별도로 구동부가
필요 없고 자체적으로 송수신 모듈들이 빔을
쏴서 탐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탄도탄 표적에 대한 탐지,
추적기능까지 갖추었죠.

이렇게 뛰어난 물건인 G550 CAEW는
한국이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려는 E-X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군은 E-737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사유는 불과 10년전에 도입했었던 백두,
금강정찰기의 악몽 때문이었습니다.
호커 800이라는 쪼매난 비즈니스 제트기에
정찰용 장비들을 탑재하다보니까 좋은 장비를
달아줄 수가 없어가지고 능력치가 너무
딸렸구요. 작은 기체에 과도하게 무거운 장비를
쑤셔넣다보니까 체공시간이나 최대고도
같은 비행성능도 싸그리 다 저질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국군에서는 한때 비즈니스
제트기 혐오풍조가 일던 와중이었으니 결국
G550이 채택될 수가 없었습니다.

아홉 번째는 Su-57 전투기입니다.

러시아는 1990년대에 심각한 경제난을
거치면서 전투기전력에서 미국에게
뒤쳐져버리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수호이사를 필두로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SU-57 입니다. 최대이륙중량 35톤급으로
F-22보다는 힘이 딸리긴 하지만, 어쨋든
마하 2로 날아다니기에는 충분한 체급이었고
F-35보다는 크고 대형이었죠. 내부무장창이
커서 무장도 좀 더 큰 물건을 탑재할 수도
있었구요. 기동성도 F-22 랩터에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텔스 설계는 기본이고
온몸을 AESA 레이더패널로 두르는 아주
특이한 설계였습니다. 여기에 전방에 적외선
탐지추적 시스템인 IRST가 센서퓨전되면서
F-22같은 스텔스기를 원활하게 카운터스텔스
할 수 있다고 광고는 하고 다녔는데요.

정작 러시아가 이 전투기를 개발하다보니 가장
큰 문제인 돈 문제에 직면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약판매를 좀 해보려고 했는데요.
마침 한국이 스텔스기를 도입하려던 3차
FX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죠. 이때
러뽕밀덕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그러나
아까 다루었던 SU-35UB와 똑같은 이유로
러시아는 사업참여를 포기했습니다. 어차피
한국이 러시아제 무장을 대량도입하고
별도의 후속군수지원체계를 갖추는 리스크를
감수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대신 러시아는 KF-21 개발사업의
파트너로 수호이사를 밀었습니다. 어쨋든
사업파트너로 참여해서 한국을 SU-57
개발계획의 자금을 대줄 쩐주 포지션으로
넣어주고 공동개발 타이틀만 하나 던져주면
개이득이라는 판단이었죠. 그처나 아무래도 미국제
전투기 개념에 익숙한 한국이다보니까
결국 록히드 마틴으로 파트너사가 정해지면서
SU-57이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어졌습니다.

열 번째는 KA-52 공격헬기입니다.

소련은 1980년대 말에 KA-50이라는 아주
걸출한 1인승 공격헬기를 조용히 개발했습니다.
카모프사 특유의 이중반전로터를 장비해가지고
이전까지 사용하던 MI-24 하인드에 비해서
악천후시 작전능력이 증대되었구요.
최대이륙중량은 10톤급으로 당시 미국의
아파치 공격헬기와 동급이었죠. 게다가
기동성도 엄청나서 안정적인 호버링 비행에
게처럼 옆으로 이동하는 비행도 가능했구요.
산뒤에서 급상승해서 기수를 아래로 유지한채
무장을 쏟아부어서 산사면에 위치한 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죠. 전자장비도 쉬크발
이라는 뛰터난 사격통제장비가 장착되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Vihkr 대전차미사일과 셋트로
연동되는 물건인데요. 전방에 고정된
전자광학센서로 표적을 지정하면 헬기가
자동으로 표적을 향하게끔 자세를 유지하면서
대전차미사일이 명중할때까지 유도해주는
물건입니다. 게다가 동시에 두 발의
대전차미사일을 유도해주는 것도 가능했죠.

이 1인승 공격헬기의 지휘용 공격헬기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KA-52였습니다.
병렬형 좌석에 무장통제사와 조종사가
탑승하는 형태였는데요. 복좌형이다보니까
아무래도 조종하면서 동시에 무장운영까지
하기가 훨씬 더 편해졌죠. 반대로 기존의
KA-50은 조종사 혼자서 다 해야하다보니까
이게 조종사가 정신이 없는거야. 물론
쉬크발이라는 아주 뛰어난 사격통제장비의
도움을 받기는 해도 문제가 많았죠. 그래서
지휘용으로 만들어진 KA-52가 일반
공격헬기로 위치가 격상되면서 지금은
KA-52가 주력으로 판매되는 중입니다.

이때 카모프사는 한국이 공격헬기를 도입하려는
AH-X 사업을 시작하자 KA-52를 제안했죠.
당시 한국에서는 불곰사업으로 많은 수의
KA-32 헬기를 운영하고 있었고 성능적인
부분은 호평일색일 정도라서 카모프사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군
관계자들이 아르세니예프에 있는 카모프
공장에 가서 KA-52에 탑승해보기까지 했죠.
무장도 한국군이 원하는 무장이 있으면
돈만 주면 뭐든지 다해병님이신 이스라엘의
IAI사랑 협업해서 통합해주겠다고 했죠.
그러나 결정적으로 카모프사는 입찰에
포기했습니다. 미국제 무장을 KA-52에
통합해야하는데 미국의 협조가 필요했거든요.
협조 해줄리가 없지... 그리고 한국군도 러시아제
무기의 극악한 후속군수지원능력에 쌍욕을
퍼붓는 중이었어서 실제로 사업에 참여한다고
해도 한국측에서 절레절레 할 것이 뻔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3차 불곰사업이 진행중이었지만,
한국군에서 러시아제 무기를 더 들여오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건 빼박입니다.

1 week ago | [YT] | 17

보처강

우연히 알고리즘에 뜬 게시글인데요. 무슨말인지 해석해주실분 계신가요?

1 week ago | [YT] | 42

보처강

8월 23일 보처강 채널 멤버십 업데이트 공지

멤버십 선공개 영상 2개가 업로드되었습니다.

1. 각국 정부가 은폐한 81명의 죽음,
이타비아 870편 추락사고

2. 한국군의 흑역사 모음! 한국군 안습전설 3편

채널의 멤버십 프로그램에 가입하신 분들께
모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며 더 좋은 컨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멤버십 가입링크

youtube.com/channel/UC3vT1NuSY4F-XiH3rs8DtzA/join

1 week ago | [YT] | 17

보처강

미국이 사준 닷쏘사의 전투기, 미스테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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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 영상의 스크립트를 게시글로 변환한
글입니다.

https://youtu.be/JIho0GkWZ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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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쏘는 우라강 전투기의 대성공으로 프랑스의
항공산업을 다시 일으켜세우는데에 성공했고
파산의 위기에서도 탈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라강 전투기는 직선익의 초창기
제트기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었죠. 특히나
한국전쟁에서 직선익 제트전투기인 F-80, F-84,
글로스터 미티어가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MIG-15에게
맥을 못추면서 이제 직선익 전투기는 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닷쏘사는 아예
기존 우라강 전투기에 30도의 후퇴각을
준 주익을 채택한 전투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게 바로 1951년에 등장한 미스테르2 입니다.

그래도 우라강 전투기에 비해서 여러 부분이
바뀌었는데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드디어
국산 제트엔진이 달렸다는 것이죠. 프랑스는
나치독일치하에서도 과학자들이 알음알음
제트엔진을 연구해왔었는데요. 전후에 프랑스
점령지에 독일제 BMW003 제트엔진을
입수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할 수가
있었죠. 지금도 여러 제트엔진을 개발해서
전세계에 납품하는 스네크마사(현 사프란 에어크래프트
엔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죠. 여기에 전후 독일의
제트엔진 전문가들을 프랑스로 영입해오는데에
성공하면서 최초의 프랑스 국산 제트엔진인
6600파운드추력의 아타 101 엔진이 개발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롤스로이스 닌 엔진에 비해서 추력이
소폭 늘어났다보니까 기체도 자연스레
조금 더 커져서 자체중량은 5톤이 되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전작인 우라강이 너무 짧은
항속거리 때문에 불만이 많았으니까 기체를
키워서 연료를 더 집어넣는 개량은 필수였었죠.
커진 힘과 체급은 무장에도 투자가
되어졌습니다. 30mm DEFA기관포 두 문이
장착되어졌는데요. 이전의 우라강 전투기에서
20mm 기관포를 써본 프랑스군에서는
프랑스 안보환경상 적 전투기와의 교전보다는
침투해오는 적국의 폭격기를 요격해야하는
필요성이 더 컸기 때문에 화력강화를 한 것이죠.
핵폭탄을 떨구기 전에 찢어발겨버려야 하니까요.
고속으로 침투하는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서
고속성능에 특화된 후퇴익을 채용했구요.
강한엔진이랑 결합되어져서 이전의 우라강보다
시속 100km/h정도 빨라진 1060km/h의
최고속도를 낼 수가 있었죠. 그리고 미스테르2를
급강하시키면 초음속을 돌파할 수 있어서
프랑스 최초의 초음속 돌파기록도 미스테르 2가
가져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미스테르2는 프랑스군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70대를 주문하면서
또 다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스테르2는 도입되자마자 구식화가
되고야 말았죠. 때는 1950년대 중반이었고
초음속 전투기들도 속속들이 등장하던 마당에
아음속 후퇴익 전투기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았던 것이죠. 이때문에 프랑스군은
미스테르2를 추가구매하지 않기로 하고
차세대 전투기가 도입되기 전까지의
땜빵 전투기로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닷쏘사에서도 미스테르2가 우라강에 비해서
드라마틱하게 성능이 좋아졌다고 보기는
애매하다고 판단해가지고 1953년, 곧바로
후속작을 내놨는데요. 그것이 바로 미스테르4입니다.

엔진은 7700파운드의 추력을 자랑하는
베르동 엔진이 장착되었는데요. 이게 무슨
엔진이냐면 롤스로이스 테이 엔진을 프랑스에서
면허생산한 것입니다. 그럼 국산엔진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아타 101엔진보다
더 추력이 좋은 엔진은 개발이 지연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영국제를 수입해다가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강해진 엔진과
고속성능을 내기 위해서 더 다듬어진 설계로
최대이륙중량은 9톤까지 늘어났고 최고속도도
1100km까지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힘이
좋아졌으니 기체를 더 키워서 항속거리를
늘렸죠. 그래서 항속거리는 무려 2천km까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라강에 비해서는
무려 두 배 이상 항속거리가 늘어나게 된
것이죠. 여기에 폭격기를 한방에 찢어
발길 수 있는 공대공로켓 전용 장착대가
설치가 되어가지고 공대공로켓 운영이 쉬워졌습나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미스테르4를 사기
싫어했었습니다. 이미 프랑스는 초음속
전투기사업을 진행중이었거든요. 아니
쫌있으면 초음속 전투기가 나오는데 아무리
개량형이라지만 뭐하러 아음속 전투기를 또 사?
하지만 내돈으로 사는게 아니라면 어떨까요?
당시 미국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국가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마셜플랜을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정책 중에서는 국방분야의 원조도
있었습니다. 원래는 미국제 무기를 사서
유럽에 공여해줬는데, 유럽도 자체적으로
군수산업을 키우라고 미국의 돈으로
각자국가들의 전투기를 사서 나토군 공용
전투기로 배속시켜가지고 각국에 임대해주는
정책을 진행했던 것이죠. 그니까 전투기
소유권은 미국한테 있는데 나토군 공용으로
쓰라고 주는거고 각 국가들에 배치시켜주는
것이었죠. 그래서 미국이 당장 전투기를 사라고
막대한 돈을 줬는데, 당장 살 전투기는
미스테르4 밖에 없는거야. 그래서 프랑스가
미스테르4를 240대나 도입했던 것이죠.

그래도 미스테르2보다는 성능이 더 좋아져서
해외에도 많이 팔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우라강에 이어서 미스테르2를 사려고
줄을 섰었는데요. 불과 2년뒤에 미스테르4가
나오자 닷쏘사에 추가금 주고 미스테르4를
60대정도 업어갔죠. 이때 도입된 미스테르4는
훨씬 더 성능이 좋은 초음속 전투기인 MIG-19를
상대로도 우위를 차지했었구요.
길어진 항속거리를 토대로 1967년 6일전쟁
당시에는 지상공격용으로도 활약해서 단
6일만에 이스라엘이 아랍연합을 박살내는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에 1970년대까지
활약하다가 퇴역했죠. 인도군도 110대를
사가서 파키스탄과의 전투에 투입을 했구요.
이런식으로 애매한 개량형이라서 모두가
걱정하던 미스테르 4도 운좋게 400대 넘게
판매고를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닷쏘는 미스테르 4의 성공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음을 모르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957년, 미스테르를 진정한 초음속
전투기로서 진화시켰는데요. 그것이 바로
슈페르 미스테르 전투기입니다. 더 빠른 속도를
위해서 후퇴각을 더 많이 준 주익을
채택했는데요. 무려 45도 각도에 달했죠.
미스테르 2에서는 불과 30도 각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입니다. 엔진에도
애프터버너를 장착해서 최대 1만 파운드의
추력을 자랑할 수 있었죠. 덕분에
수평비행시에도 마하 1.1로 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공기흡입구와 동체 형상도
마치 개의 입모양처럼 툭 튀어나온 형상으로
바뀌었는데요. 고속에서도 원활하게 공기흡입을
하면서 동시에 좀 더 유선형으로 잘 빠져서
항력을 최소화하고 공기흐름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디자인이었죠. 동시기에 나온 미국제
슈퍼세이버 전투기역시 동일한 동체디자인을
가지고 있구요. 둘 다 마하 1급의 초음속
전투기라는 공통점도 있죠.

대신 애프터버너가 추가되었다보니까 좀 더
엔진 직경이 길어지고 무거워져서 자체중량도
7톤까지 증가되었는데요. 엔진의 추력이
좋아져가지고 최대이륙중량도 10톤으로
늘어나서 문제가 없었죠. 4개의 하드포인트에
2.5톤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어서 지상공격의
효율도 좀 더 늘어났습니다. 다만 엔진 직경과
크기를 위해서 동체가 커졌다보니까 오히려
연료탑재량을 칼을 맞아서 항속거리가 1천km로
줄어들었죠. 프랑스군은 진짜 이번에는
미스테르 시리즈를 그만 사려고 했습니다.
어차피 쫌있으면 제대로된 마하 2급의 전투기가
개발되니까요.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했습니다. 당연히 옛날부터
수에즈 운하를 통제하던 영국과 수에즈 운하를
통해서 안정적인 무역을 하던 프랑스가
극대노했죠. 여기에 이집트에게 아예
수에즈 운하 이용을 영정먹은 이스라엘이
합심해서 2차 중동전쟁이 벌어졌는데요.
성공적으로 이집트군을 몰아붙였지만,
소련이 끼어들었습니다.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은 이집트에서 철군하지 않으면
영국과 프랑스에 핵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여기에 미국마저도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행동에 반발하면서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깨갱하고 이 전쟁을
끝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프랑스군은
소련의 핵폭격기를 급하게 막으려면 마하 2급의
요격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150대의 슈페르 미스테르를 다급하게
주문하면서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었죠.

이스라엘도 이참에 24대의 슈페르 미스테르를
도입하면서 슈페르 미스테르도 170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스테르 시리즈 총합해서 약 750대의 판매고를
올렸으니 닷쏘사는 또 다시 성과급으로 파티를
할 수가 있게 되었죠. 이스라엘은 슈페르
미스테르를 6일전쟁과 욤키푸르 전쟁때
알뜰살뜰하게 써먹으면서 아랍군의 MIG-19
전투기와 대적하는데에 활약을 했습니다. 둘은
실제로 비슷한 성능이었으니 호각으로
싸웠어야 정상이었는데요. 문제는 아랍군이
운영을 너무 못해가지고 MIG-19 전투기가
슈페르 미스테르는 커녕 그 전작인 미스테르4
한테도 힘을 못쓰는 상황이 펼쳐졌죠.
역시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법입니다.

이스라엘군은 전투기가 태부족인 나라여가지고
다른 미스테르들이 퇴역한 이후에도 슈페르
미스테르 만큼은 마개조를 해서 사용했는데요.
이스라엘제 단거리 열추적 공대공미사일인
사프리르1 미사일을 인티해서 사용했구요.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는 아랍국가들이
프랑스에게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면 밸브를
잠그겠다고 협박해댔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이스라엘에 무기와 부품을 금수해버리자
아예 미국제 J52 터보제트엔진으로 바꾸는
마개조를 거쳐서 사용하게 되었죠.
그리고 미국과도 인연이 있는데요. 1967년,
이스라엘은 미국의 정보함인 리버티호를
고의적으로 공격해서 대파시켰습니다.
이때 공격에 주력으로 동원이 되었던 전투기는
미라주 3CJ 전투기였지만, 슈페르 미스테르
전투기들도 교대로 상공에 출몰해서 지원임무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죠.

프랑스에서는 1977년에 전부 퇴역시켰구요.
이스라엘도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6대 이상
손실되어가지고 너무 숫자가 적으니까
유지하기가 버거워 진거야.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퇴역시키고 온두라스군에게 중고로
넘겨줬죠. 돈도 없고 외국에서 제대로된
전투기를 사오기도 어려운 온두라스는 이
슈페르 미스테르를 무려 1996년까지 쓰다가
퇴역시키면서 슈페르 미스테르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총평하자면 미스테르 시리즈는 분명 우라강보다
여러모로 더 좋은 전투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항공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에
나와가지고 애매한 성능의 전투기가
되어버렸죠. 하지만 운좋게 아다리가 어떻게
잘 맞아 떨어지면서 불티나게 팔렸던 전투기였습니다.

1 week ago | [YT] | 20

보처강

땅 좀 주고 휴전하라는 이야기가 개소리인 이유

2014년에 이미 해봤는데 결국 이꼬라지 났거든...

1 week ago | [YT] | 66

보처강

진짜 이럴 수도 있군요

사직구장 직관가려고 예매를 하려고 했는데
일찍 어플을 켜서 대기줄 슬 필요도 없이 룰루랄라
기다리면서 짬뽕을 시켜먹었습니다.

근데 짬뽕국물이 폰 액정으로 튀더니 정확하게 새로고침
버튼을 자극하였는지 예매시작 6분전 7천명짜리
대기열에 탑승...

예매 실패

앞으로 롯데자이언츠 사직구장 예매를 할때는
식사를 모두 마친 뒤 경건한 자세로 앉아서
기다려야겠습니다.

1 week ago (edited) | [Y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