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처강

한국군이 도입할뻔한 무기 10가지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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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 영상의 스크립트를 게시글로 변환한
글입니다.

https://youtu.be/avPMo5-rl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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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SU-35UB 입니다.

소련은 1980년대에 SU-27시리즈라는 걸출한
대형 제공우세전투기를 개발해서
배치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기에도 단점이 있었어요.
레이더가 대형이기는 했지만, 동시요격능력도
없었구요. 레이더가 포착한 정보들을 트랙화
시켜서 조종사에게 알려주는 데이터처리장비가
너무나도 구렸습니다. 수호이사도 이 문제를 알고 있어서
프로세서와 레이더개량을 진행했고 동시에 SU-27의
기동성과 비행안정성, 추력을 동시에
환골탈태시킨 개량형을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SU-27M형입니다. 기체제어에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채택해서
훨씬 더 정교하게 조종면들을 움직일 수
있었구요. 카나드를 장비해서 최대 10G라는
엄청난 수준의 중력가속도를 견딜 수 있었으며
순식간에 120도 가량의 순간선회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죠. 레이더 역시 수동전자주사식인
BARS 레이더가 장비되어져서 15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그 중 6개의 표적과 동시교전을
할 수 있는 등 엄청나게 진보된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상맵핑과 장거리 대함탐지도
가능해서 대지상타격이나 대함공격도 무리 없이
수행가능한 전폭기로도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거기다가 기존의 SU-27과 같이 코부분의 IRST도
유지되고 있어서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고도 적기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은 오랜 지병끝에
붕괴되고야 말았습니다. 신생 러시아는
돈이 없는 관계로 SU-27M을 사줄 수가
없었죠. 따라서 수호이사는 SU-27M을 해외에
팔아먹어야 했어요. 그래서 이 SU-27M을
마치 새로 출시된 전투기처럼 보이게 하려고
SU-35라는 이름을 붙여서 세일즈를 했습니다.
여기에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하는 SU-35를 개발해서
훈련이나 전폭기용으로 어필하면 많이
팔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복좌기로 개발한 것이
바로 SU-35UB입니다.

때마침 한국은 대형 하이급 전폭기 40대를
도입하는 FX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FX사업 이전에는 한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불곰사업을 벌이면서 수많은
러시아제 무기들을 도입했었죠. 그래서
한국에 러시아제 전투기들도 판매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한국도 소량이기는
하지만, MIG-29도입을 타전한 적이 있기도
하구요. 거기다가 호재가 하나 겹쳤다면
서울에어쇼였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SU-35에
초고기동성을 위해서 추력편향노즐을 장착한
실험기를 서울에어쇼에 참가시켰는데요. 이때
한국인들은 공중에서 순식간에 기수를 틀어서
마치 정지해있는 듯한 코브라기동을 선보이는
등 엄청난 기동성과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이 실험기에 푹 빠져버렸던 것이죠. 이때부터
밀덕계에 러뽕들이 대량양산되었을 정도로
이 서울에어쇼는 수호이 전투기라는 존재를
한국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데뷔무대였습니다.

그래서 야심차게 수호이사가 FX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당시 한국이 대형
전폭기를 원하다보니까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해서
좀 더 원활한 대지타격업무가 가능한
SU-35UB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수호이사가 공산주의 국가 시스템에서
운영되던 수호이 설계국이 전신이었던 만큼
장사를 할줄 몰랐어요. 일단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서 40대 값에 60대를 준다는것은
장점이었는데요. 그 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측이 원하던 절충교역이나 기술이전 같은
다양한 옵션들을 제시하지는 못했던 것이죠.
게다가 기존에 쓰던 미제 전투기랑 완전 다른
별개의 후속군수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것도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정밀지상타격능력에서도
전문적인 타겟팅포드까지 장비하고 다양한 스마트병장을
운영할 수 있는 F-15K에 비해서 밀리는
편이었구요. 결국 수호이사에서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협상 도중에 사업참여를
포기하면서 한국이 SU-35UB를 도입하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PC-9 전선통제기입니다.

전선통제기란 전선 상공을 체공하면서
지상군의 이동과 전선의 변화를 감시하는
정찰기 겸 아군의 화력지원요청을 받아서
포병이나 공군의 화력지원을 유도해주는
종류의 항공기입니다. 한국군은 좀 더
체공시간이 길고 추력도 좀 강력해서 유사시
경공격기로도 쓸 수 있는 수준의 전선통제기를
원했는데요. 그래서 스위스의 필라투스사에게
PC-9 프로펠러기 도입을 타전했습니다.
PC-9은 1984년에 개발된 단엽
프로펠러기인데요. 기존에 많이 판매되었던
PC-7을 개량한 기체였습니다. 천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하고 있고 최고속도 600km/h라서
훈련기로도 사용이 가능한 기체였죠. 거기다가
무장장착량이 1톤이나 되어서 폭탄이나 로켓을
장비하고 게릴라를 소탕하는 COIN임무나
경공격임무도 가능했습니다. 사출좌석까지
장비하고 있어서 만약 임무를 뛰다가
피탄당했을 경우에 조종사의 생존성도
뛰어났죠. 그러나 스위스정부는 자신들이
영세중립국이라서 한국같은 분쟁국가에는
무기를 팔 수 없다고 수출을 가로막았습니다.

물론 GDF-001 35mm 대공포를 도입해올때와
마찬가지로 제 3국에서 택갈이를 하면 어찌저찌
도입해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추가비용과 시간을 지출할 정도로 엄청 중요한
무기체계는 아닌 관계로 PC-9 도입은
포기되었죠.

세 번째는 대한식 소총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인천에서 일본제
무기를 생산하던 인천조병창이 있었는데요.
이 인천조병창을 담당하던 채병덕 총감이
인천조병창의 생산설비들을 필사적으로
보존하는데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첫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조병창의 설비들은 미군정에서 다
박살내버렸지만, 어쨋든 이러한 노력들로
군대의 기초인 제식소총 개발이 이때부터
시작되게되었죠. 당시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미군에게 M1 개런드와 30-06
스프링필드탄을 공여받아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30-06 스프링필드탄을
사용하는 첫 제식소총을 개발하게 되었는데요.
그것이 바로 대한식소총입니다.

형태는 그냥 일본제 아리사카 소총을 갖다가
30-06 스프링필드탄에 맞게끔 개량하고
개런드 소총에서 쓰는 8발 클립을 끼워서
장전할 수 있게 만든 물건입니다. 당연하지만
볼트액션식이라서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를
개악시켰다고 봐도 무방한 소총이었구요.
8발 탄클립을 다 쓰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개런드
소총과는 달리 볼트액션식이다보니까 별도로 총 쏘면
가스압으로 탄클립을 튕겨내는 장치도
없잖아요? 그래서 불편하게 별도로 버튼을
눌러서 클립을 빼야했었습니다. 대한식소총의 제식도입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죠.

네 번째는 미라주 F1 전투기입니다.

1970년대 초까지 프랑스의 닷쏘사는
미라주 3와 5 전투기를 히트시키면서 성장세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미라주 3는 중거리
공대공능력이 팬텀기보다 한참 후달리는
물건이었구요. 사실상 고속, 고공 요격기
개념이었죠. 미라주 5는 대지타격능력은
좋지만, 이스라엘의 독특한 요구로 인해서
레이더가 빠진채 출시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중거리 공대공능력을 장비함과
동시에 대지타격능력도 일신시킨 전투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미라주 F1
전투기입니다. 최대이륙중량 16톤대로
기존의 미라주 3보다 훨씬 힘이 좋아졌구요.
최고속도는 마하 2급을 자랑했습니다.
여기서는 유도폭탄도 운영이 가능했죠.
레이더는 시라노 4 레이더가 장착되었는데요. 탐지거리가
기존보다 늘어났으며 기존의 마트라 530 미사일보다
사거리가 25km로 좀 더 길어진 수페르 530F
미사일을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미사일은
마하 4.5의 최대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적기가 대응할 시간을 줄여버린 미사일이죠.

다만 미라주 F1은 이전의 미라주 3나 5보다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판매량을 보여줘서 다쏘사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이때 한국이 이 미라주 F1
도입을 타전해왔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은 미국에 F-16 도입을 타전했지만,
미국은 한국의 핵개발과 인권상황을 문제로
다운그레이드형인 F-16/79형만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F-16 도입을 잠정
중단하고 다른 전투기를 도입하려고 했는데요.
이때 물망에 올랐던 것이 바로 미라주 F1
전투기였습니다. 엥??? 한국은 이스라엘제
크피르 전투기에 스웨덴제 비겐 전투기까지
도입하려고 했으면서 프랑스제 미라주 F1까지
도입하려고 했었다구요? 이거 완전 전투기
전시장아냐? 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스라엘제 크피르와는 달리 어느정도 중거리
공대공능력도 있는데다가 폭장량도 나쁘지 않으니까
하이급인 비겐 전투기보다는 등급이 낮은 미들급으로
사용하면 되겠다는 판단도 섰었구요.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미라주 F1
도입사업은 엎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다섯 번째는 F-16/79 전투기입니다.

한국이 비겐이나 크피르, 미라주 F1을
도입하려고 하게 만든 원흉인 전투기죠.
F-16은 원래 2만 3천파운드의 추력을 자랑하는
대추력의 F100 터보팬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 대추력의 최신
터보팬엔진을 2등 동맹국들한테 주기에는 너무
위험한거야. 그래서 기존의 팬텀기에서 쓰던
J79엔진을 F-16에 달아서 만든 것이 바로
F-16/79형이었습니다. 그러나 J79엔진은
터보제트 엔진이라서 연비가 터보팬 엔진인
F100보다 구렸죠. 일단 항속거리 칼맞고.
추력도 F100보다 6천파운드나 구렸죠.
이러면 폭장량, 비행성능 다 칼맞죠. 이런걸
한국정부한테 제시했으니 사겠냐고...
게다가 F-16은 자체중량도 단발 단좌
전투기 치고는 무게가 나가는 편이라서
추력이 절대 충분할 수가 없었어요.
한국이 안산다고 하자 대만같은 나라들한테
세일즈를 해봤는데요. 반응은 한국이랑
똑같았습니다.

여섯 번째는 Metis-M1 대전차미사일입니다.

한국은 불곰사업으로 러시아제 Metis-M
대전차미사일을 도입했는데요.
경대전차미사일이라서 무게가 가볍다보니까
한국의 산악지형에서 운영하기도 좋았구요.
관통력도 850mm나 나와주는데다가
텐덤탄두까지 장비된 똥파워 미사일이라서
한국군에서는 대만족했습니다. 사거리도
1.5km면 당시 이 포지션에서 운영되던
106mm 무반동총보다 길었으니 나쁘지
않았죠. 그래서 2차 불곰사업때까지 1만발
이상 도입해서 거진 한국군의 제식
경대전차미사일로서 사용을 했는데요.
마침 러시아에서는 Metis-M의 개량형인
Metis-M1을 개발했습니다. 사거리가 2km로
늘어났고 관통력도 950mm로 늘어났는데요.

러시아는 한국이 대량으로 Metis-M을 도입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한국에 Metis-M1도
제안했죠. 그러나 한국은 도입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Metis-M1이나 Metis-M이나
사수가 일일이 사각조절기랑 방위조절기
돌려가지고 미사일을 유도해줘야하는
시선지령유도방식이라는건 매한가지였거든요.
당시 한국은 재블린처럼 락온만 하면 알아서
날아가는 3세대 대전차미사일이자 탑어택까지
가능한 현궁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었으니
굳이 이걸 사올 이유가 없었죠.

일곱 번째는 스코르펜급 잠수함입니다.

냉전기에 프랑스는 핵잠수함을 개발해서
사용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식
잠수함의 조용하다는 장점은 어디 안가는지라
이 재래식 잠수함도 지속적으로 개발해서
사용했었습니다. 근데 때마침 독일이 209급 잠수함을
개발했죠. 독일은 얕은 수심에서 활동할
잠수함만 도입하기 때문에 HY-80강을 적용해서
고심도 작전이 가능한 이 잠수함은 자연스럽게
수출용으로 전환이 되었는데요. 무려 1차대전기부터
재래식 잠수함 장인인 독일답게 전세계에 불티나게
판매하는데에 성공했습니다. 이걸 보고 질투가 나서
프랑스랑 스페인이 합작으로 개발한 재래식 잠수함이
바로 스코르펜급 잠수함입니다. 체급은 1500톤급으로
독일제 209급보다는 좀 더 크다는 것이
장점이었구요. ATP형 어뢰발사관을
장착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죠.

이게 뭐냐면 기존에는 스윔아웃, 즉 어뢰발사관에
물을 채우고 어뢰를 발사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연히 초기 추진속도가 느렸습니다. 게다가
대함미사일 같은 무장은 캡슐에 담아서
쏴준 다음 물 위로 올라온 다음에서야
미사일이 점화되는 방식인데요. 따라서 캡슐에
별도로 추진체계를 달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게 압축공기방식인데 어뢰를 빠르게
추진시킬 수 있고 자체추진수단이 없는
캡슐도 발진이 가능했죠. 그러나 압축공기를
수중에서 쏴주면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고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단점을 모두 극복한 체계가 ATP방식의
어뢰발사관이었죠. 별도의 터빈을 사용해서
압축수로 무장을 발사하는 방식인데요.
다만 별도의 터빈을 갖춰야 해서 체계가 크기
때문에 스코르펜급의 체급이 209급보다는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스코르펜급은 한국이 잠수함을 도입하려던
장보고 1급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경쟁자는 역시 독일의 209급이었죠. 당시
209급보다 크고 뛰어난 체계들을 많이
갖추어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었는데요.
문제는 독일의 HDW가 아예 한국에 엄청난
분량의 기술이전과 동시에 한국이 직접
209급을 생산과 판매를 해도 좋다고 판권까지
나눠줬다는 것이죠. 이런 파격적인 조건에
밀려서 결국 스코르펜급의 도입은 무산되었습니다.

여덟번째는 G-550 CAEW 조기경보기입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예로부터 조기경보기 도입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미해군이 항공모함에서
함상 조기경보기로 쓰던 E-2를 도입해서
써봤는데요. 문제는 E-2가 가진 UHF대역
레이더는 평지나 해상에서나 쓸모 있지
복잡한 산악지형에서는 뭐가 표적이고
뭐가 지형인지 구분조차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값비싼 E-3를
도입해오기에는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자체적인 조기경보기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93년에 나온 것이
바로 G-550 CAEW였죠.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를 생산하는 걸프스트림사의 G-550에
자국산 팔콘레이더시스템을 얹은 물건인데요.
AESA레이더라가지고 별도로 구동부가
필요 없고 자체적으로 송수신 모듈들이 빔을
쏴서 탐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탄도탄 표적에 대한 탐지,
추적기능까지 갖추었죠.

이렇게 뛰어난 물건인 G550 CAEW는
한국이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려는 E-X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군은 E-737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사유는 불과 10년전에 도입했었던 백두,
금강정찰기의 악몽 때문이었습니다.
호커 800이라는 쪼매난 비즈니스 제트기에
정찰용 장비들을 탑재하다보니까 좋은 장비를
달아줄 수가 없어가지고 능력치가 너무
딸렸구요. 작은 기체에 과도하게 무거운 장비를
쑤셔넣다보니까 체공시간이나 최대고도
같은 비행성능도 싸그리 다 저질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국군에서는 한때 비즈니스
제트기 혐오풍조가 일던 와중이었으니 결국
G550이 채택될 수가 없었습니다.

아홉 번째는 Su-57 전투기입니다.

러시아는 1990년대에 심각한 경제난을
거치면서 전투기전력에서 미국에게
뒤쳐져버리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수호이사를 필두로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SU-57 입니다. 최대이륙중량 35톤급으로
F-22보다는 힘이 딸리긴 하지만, 어쨋든
마하 2로 날아다니기에는 충분한 체급이었고
F-35보다는 크고 대형이었죠. 내부무장창이
커서 무장도 좀 더 큰 물건을 탑재할 수도
있었구요. 기동성도 F-22 랩터에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텔스 설계는 기본이고
온몸을 AESA 레이더패널로 두르는 아주
특이한 설계였습니다. 여기에 전방에 적외선
탐지추적 시스템인 IRST가 센서퓨전되면서
F-22같은 스텔스기를 원활하게 카운터스텔스
할 수 있다고 광고는 하고 다녔는데요.

정작 러시아가 이 전투기를 개발하다보니 가장
큰 문제인 돈 문제에 직면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약판매를 좀 해보려고 했는데요.
마침 한국이 스텔스기를 도입하려던 3차
FX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죠. 이때
러뽕밀덕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그러나
아까 다루었던 SU-35UB와 똑같은 이유로
러시아는 사업참여를 포기했습니다. 어차피
한국이 러시아제 무장을 대량도입하고
별도의 후속군수지원체계를 갖추는 리스크를
감수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대신 러시아는 KF-21 개발사업의
파트너로 수호이사를 밀었습니다. 어쨋든
사업파트너로 참여해서 한국을 SU-57
개발계획의 자금을 대줄 쩐주 포지션으로
넣어주고 공동개발 타이틀만 하나 던져주면
개이득이라는 판단이었죠. 그처나 아무래도 미국제
전투기 개념에 익숙한 한국이다보니까
결국 록히드 마틴으로 파트너사가 정해지면서
SU-57이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어졌습니다.

열 번째는 KA-52 공격헬기입니다.

소련은 1980년대 말에 KA-50이라는 아주
걸출한 1인승 공격헬기를 조용히 개발했습니다.
카모프사 특유의 이중반전로터를 장비해가지고
이전까지 사용하던 MI-24 하인드에 비해서
악천후시 작전능력이 증대되었구요.
최대이륙중량은 10톤급으로 당시 미국의
아파치 공격헬기와 동급이었죠. 게다가
기동성도 엄청나서 안정적인 호버링 비행에
게처럼 옆으로 이동하는 비행도 가능했구요.
산뒤에서 급상승해서 기수를 아래로 유지한채
무장을 쏟아부어서 산사면에 위치한 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죠. 전자장비도 쉬크발
이라는 뛰터난 사격통제장비가 장착되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Vihkr 대전차미사일과 셋트로
연동되는 물건인데요. 전방에 고정된
전자광학센서로 표적을 지정하면 헬기가
자동으로 표적을 향하게끔 자세를 유지하면서
대전차미사일이 명중할때까지 유도해주는
물건입니다. 게다가 동시에 두 발의
대전차미사일을 유도해주는 것도 가능했죠.

이 1인승 공격헬기의 지휘용 공격헬기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KA-52였습니다.
병렬형 좌석에 무장통제사와 조종사가
탑승하는 형태였는데요. 복좌형이다보니까
아무래도 조종하면서 동시에 무장운영까지
하기가 훨씬 더 편해졌죠. 반대로 기존의
KA-50은 조종사 혼자서 다 해야하다보니까
이게 조종사가 정신이 없는거야. 물론
쉬크발이라는 아주 뛰어난 사격통제장비의
도움을 받기는 해도 문제가 많았죠. 그래서
지휘용으로 만들어진 KA-52가 일반
공격헬기로 위치가 격상되면서 지금은
KA-52가 주력으로 판매되는 중입니다.

이때 카모프사는 한국이 공격헬기를 도입하려는
AH-X 사업을 시작하자 KA-52를 제안했죠.
당시 한국에서는 불곰사업으로 많은 수의
KA-32 헬기를 운영하고 있었고 성능적인
부분은 호평일색일 정도라서 카모프사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군
관계자들이 아르세니예프에 있는 카모프
공장에 가서 KA-52에 탑승해보기까지 했죠.
무장도 한국군이 원하는 무장이 있으면
돈만 주면 뭐든지 다해병님이신 이스라엘의
IAI사랑 협업해서 통합해주겠다고 했죠.
그러나 결정적으로 카모프사는 입찰에
포기했습니다. 미국제 무장을 KA-52에
통합해야하는데 미국의 협조가 필요했거든요.
협조 해줄리가 없지... 그리고 한국군도 러시아제
무기의 극악한 후속군수지원능력에 쌍욕을
퍼붓는 중이었어서 실제로 사업에 참여한다고
해도 한국측에서 절레절레 할 것이 뻔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3차 불곰사업이 진행중이었지만,
한국군에서 러시아제 무기를 더 들여오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건 빼박입니다.

5 days ago | [Y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