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닷쏘사가 우라강과 미스테르 시리즈로 명성을 떨치자 옆에서 부들부들 하던 회사가 하나 있었어요. 바로 같은 프랑스 국적의 항공기 제작사였던 노르사였죠. 노르사는 1944년에 만들어져가지고 닷쏘보다 훨씬 더 역사도 깊고 빵빵한 기술진들을 보유한데다가 프랑스정부의 두터운 지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사가 만든 전투기들은 신생 좋좋소기업인 닷쏘제 전투기들한테 밀려서 하나도 채택되지를 못했었습니다. 심지어 함상전투기인 N.2200은 실패작으로 분류가 되며 프랑스군에서 외면을 했죠. 물론 다른 종류의 항공기들을 노르사에서 생산해서 잘 팔고 있었으니까 경영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노르사의 기술진들은 항공기술의 꽃인 전투기 시장에서 닷쏘에게 밀린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프랑스정부에서는 일단 전투기는 현실적인 스펙과 실용적인 운영편의성을 갖춘 닷쏘사것으로 사용을 하지만, 훨씬 더 우수한 기술진과 계측장비들을 갖춘 노르사에 미래 항공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용역들을 주기로 했습니다. 노르사는 이 연구용역을 받아서 실험적인 기술을 적용한 기술실증기들을 만든 다음에 이 기술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데이터들을 수집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노르사는 기술실증기로 만든 물건이 운좋게 정말로 군용으로 적합하다면 기술실증기를 양산기체로 개조해서 프랑스군에 대량납품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닷쏘사 일변도의 전투기시장을 부셔버릴 수 있다는 판단이 슨 것이죠.
1953년, 프랑스의 SFECMAS사는 초음속에서 적합한 날개형태를 연구하려고 아세날 1301이라는 델타익, 즉 삼각날개를 갖춘 기술실증기를 만들었는데요. 풍동실험과 비행실험을 거친 결과 고속에서의 성능이 좋은 공력특성을 가질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속을 내려고 날개에 후퇴각을 많이 주면 이걸 부러지지 않게 버텨주려고 날개 뿌리를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야하는데 그럼 중량이 늘어나고 무게중심도 이상하게 변하겠죠. 하지만 델타익은 날개 뿌리를 동체 전체로 가져갈 수 있다보니 날개를 얇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속에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단점이 저속에서는 비행안정성이 좋지 않고 유도항력이 많이 발생하면서 장거리 비행에는 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요. 어차피 당시 프랑스군이 원하던 전투기는 적 전투기랑 맞짱 뜨는 전투기가 아니었거든요.
프랑스는 당시 폭격기가 뜨면 고속으로 따라붙어서 격추시키는 전형적인 요격기를 원한다고 떡하니 적어놓은 사업도 추진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오히려 목표로 하는 고속성능 기준이 너무 높아서 당시 기술로 구현이 불가능하다보니까 부득이하게 성능요구사항을 프랑스군이 낮춰줬을 정도로 당시 프랑스군은 고속 요격기에 대해서 갈증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이 아세날 1301을 개발한 SFECMAS와 노르가 합체! 하면서 노르 아비아시옹이라는 더 거대해지고 더 뛰어난 회사가 태어났죠.
그래서 곧바로 노르사는 흡수한 아세날 1301을 토대로 델타익 기술실증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4년에 등장한 제흐포트였습니다. 제흐포트는 최고속도 마하 1.1의 초음속 실험기였구요. 프랑스제 국산 제트엔진인 아타 101시리즈 엔진에 애프터버너를 장착한 엔진을 사용하는데요. 애프터버너는 압축된 배기가스에 연료를 분사해서 한 번 더 추진력을 얻어주는 장치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초음속 제트기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할때 다른 업체들은 제트엔진으로 날다가 초음속이 필요해지면 미리 달고 있던 보조로켓을 점화해서 초음속에 도달하는 덜떨어진 방식을 채용했었거든요. 순수 터보제트 엔진만으로 초음속에 도달한 것은 굉장히 기념비적인 일이었죠.
노르사는 제흐포트를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프랑스군의 전투기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제흐포트가 등장한지 두달 뒤에 닷쏘가 슈페르 미스테르의 시제기를 개발해서 첫 비행을 성공시키고야 말았죠. 슈페르 미스테르는 제흐포트처럼 애프터버너를 채용한 초음속 전투기였습니다. 노르사는 또 다시 부들부들 하면서 이참에 슈페르 미스테르를 아득히 뛰어넘는 전투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서 듣도보도 못한 신기술들을 죄다 섭렵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램제트 엔진이었습니다. 램제트 엔진은 빠른 속도로 막대한 공기가 연소실 안에 들어오면 자체적인 충격파로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엔진인데요. 이게 고속에서는 효율이 엄청 좋고 별도로 구동되는 터빈같은게 없어서 기계적으로 엄청 단순했어요. 근데 출력은 어마어마해서 이론상 마하 2 이상의 속도에 도달하는것도 아주 간단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빠른속도로 막대한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는게 전제조건이다보니까 속도가 초음속이 안넘어가면 작동을 못해요. 그래서 노르사는 이 물건을 어떻게 해야 전투기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최초에 출격시에 로켓으로 추진시켜주고 초음속에 도달하면 램제트 엔진으로 가동하는 방법도 생각했는데요. 마치 램제트 엔진으로 가동되는 요즘 초음속미사일들이랑 비슷한 원리였죠. 그러나 이러면 착륙하려고 접근할때도 램제트를 쓸 수 없으니 순수 활공비행으로 착륙해야겠고 그럼 착륙 난이도가 어마어마 하겠죠. 무동력 활공비행은 나쁘게 말하자면 완만한 추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고심끝에 내놓은 방법은 바로 복합사이클엔진! 저속에서는 터보제트 엔진으로 작동하고 고속에서는 터보제트 엔진의 터빈이 제껴지고 쇼크콘을 전진시켜서 램제트 엔진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엔진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난이도가 빡셀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복합사이클엔진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일단 엔진을 장착할 기체부터 설계한 다음 터보제트 엔진만 장착시켜서 잘 나는지 실험해보려고 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5년에 등장한 그리퐁이었습니다. 개량된 아타 101 터보제트 엔진과 애프터버너를 장착해서 최고속도는 마하 1.3이었습니다. 왜 하필 마하 1.3으로 목표속도가 정해졌냐면 당시 램제트 엔진을 가동시키려면 최소한 마하 1.3까지는 터보제트 엔진의 깡추력으로 가속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그리퐁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죠. 기체에는 델타익 뿐만 아니라 프랑스 최초로 카나드, 즉 귀날개까지 장비했습니다. 덕분에 공기흡입구 주변에서 발생하는 불규칙한 와류를 상쇄시킬 수 있었고 비행안정성도 더 좋아졌으며 추가적인 양력이 발생되면서 기동성도 좋아졌죠. 델타익과 카나드 구성은 궁극적으로는 나중에 라팔 전투기에서도 적용되게 됩니다.
일단 그리퐁이 꽤 안정적인 성능과 신뢰성을 보이자 곧바로 복합사이클엔진을 장착한 개량형을 선보였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7년에 등장한 그리퐁2 였습니다. 복합사이클엔진 덕분에 최고속도는 무려 마하 2.19에 달했구요. 이 상태에서 엄청나게 높은 기동성과 안정성을 자랑했습니다. 고공성능도 좋아서 당시 기준으로는 전투기들이 올라가는것 자체가 어려웠던 고도 18km까지 순식간에 상승이 가능했죠. 노르사와 프랑스군 관계자들은 환호했습니다. 프랑스군은 곧바로 그리퐁2를 단발 단좌 요격기로 개조해서 도입하는 것을 검토했구요. 이러한 엄청난 성능에 힘입어서 미국 역시 연구비를 후원해줄테니 연구데이터를 공유하자고까지 제안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노르사는 만족하지 않았죠. 이제 겨우 중간단계에 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원하던 것은 마하 3의 속도를 가진 초고속 요격전투기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마하 2라는 속도는 미국과 소련이 이미 일반적인 터보제트 엔진만으로도 달성에 성공했고 실제로 그런 전투기들이 실전배치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복잡하고 비싸기만한 복합사이클엔진을 사용하면서 마하 2의 속도를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죠. 어차피 프랑스 국내에서도 곧 있으면 터보제트엔진 만으로도 이 복합사이클엔진의 속도를 따라잡는 전투기가 나올것으로 봤구요.
그래서 노르사는 궁극의 램제트 전투기인 슈페르 그리퐁의 개발을 시작했죠. 슈페르 그리퐁은 그리퐁을 엄청 대형화 시켜서 복합사이클엔진 두 개를 장착한 쌍발 램제트 요격기였구요. 목표속도는 마하 3이었죠. 성층권 고도에서도 활동 할 수 있었구요. 큰 기체다보니까 당시 떨어지는 기술로 인해서 크기가 크게 출시되었던 노르사의 AA.20 공대공미사일도 두 발 이상 달고 날아다닐 수가 있었죠. 여기에 레이더까지 장착해서 당시로서는 꿈의 요격기로 불릴만 했습니다. 슈페르 그리퐁의 제작을 위해서 노르사는 마찰열을 효과적으로 견딜 수 있는 재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르사는 미국에서 티타늄 합금을 수입해오는 협상도 진행했죠.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리퐁 2에서 터져나왔습니다. 프랑스군에서 이 물건을 군용으로 채택할 수 있나 확인해봤더니 너무 문제가 많은 전투기였던 것이죠. 일단 사진 봐보시죠. 복합사이클엔진은 말 그대로 엔진 두개를 하나로 합쳐놓은거나 마찬가지다보니까 엔진이 무겁고 엄청 큽니다. 그럼 일단 기체 중량과 부피 중에서 엔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큽니다. 근데 이게 마하 1.3까지 터보제트엔진 하나가 쌩추력으로 가속을 해줘야하다보니까 기체를 크고 무겁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랬다가는 마하 1.3에 도달 못하면 램제트엔진 못쓰잖아. 그럼 나머지 부분에 연료를 많이 탑재할 수 있겠어요?
거기다가 터보제트 엔진은 안그래도 연비가 별로인데 저 무거운 전투기를 마하 1.3까지 애프터버너 키고 가속시켜줘야하다보니까 더 연비가 구려졌어요. 램제트 엔진을 가동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램제트 엔진에 연료분사량 조절기능 따위는 없었고 그냥 온 오프 버튼이 끝이었어요. 그래서 항속거리는 고작 700km였습니다. 이정도면 항속거리 짧다고 욕먹은 우라강보다 더 짧구요. 체공시간으로 따지자면 불과 몇십분 정도라서 요격용으로도 써먹기가 어려웠습니다. 커버리지가 좁다면 적의 폭격기 편대가 그리퐁2가 출몰하는 비행장 주변만 슥 피해가면 그대로 무력화당하는 것일테니까요. 비슷한 예시로는 나치독일제 로켓전투기인 코멧이 있죠.
그러면 슈페르 그리퐁은 문제가 더 심각하겠죠. 엔진이 두 개니까 기름을 두 배로 많이 먹을텐데 연료탑재량은 아까전에 언급한 문제로 여전히 심각할테니까요. 결국 슈페르 그리퐁은 시제기마저도 만들어보지 못하고 좌초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리퐁2는 1961년까지 테스트용도로 날아다니기는 했는데요. 군용으로 채택해달라고 노르사가 말을 안꺼낸것은 아니었지만, 속도는 비슷한데 다른 성능은 더 좋은 닷쏘사의 미라주3를 도입하게 되면서 군용으로 채택되는 일 없이 순수하게 실험기로만 사용하다가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노르사는 드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했는지 전투기시장에서는 완전히 철수했구요. 미사일이나 수송기를 만드는 회사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닷쏘에게 완벽히 패배해버린 셈이었죠.
보처강
프랑스의 초고속 전투기, 슈페르 그리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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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 영상의 스크립트를 게시글로 변환한
글입니다.
https://youtu.be/tTwt7JLA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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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닷쏘사가 우라강과 미스테르 시리즈로
명성을 떨치자 옆에서 부들부들 하던 회사가
하나 있었어요. 바로 같은 프랑스 국적의
항공기 제작사였던 노르사였죠. 노르사는
1944년에 만들어져가지고 닷쏘보다 훨씬 더
역사도 깊고 빵빵한 기술진들을 보유한데다가
프랑스정부의 두터운 지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사가 만든 전투기들은
신생 좋좋소기업인 닷쏘제 전투기들한테
밀려서 하나도 채택되지를 못했었습니다.
심지어 함상전투기인 N.2200은 실패작으로
분류가 되며 프랑스군에서 외면을 했죠.
물론 다른 종류의 항공기들을 노르사에서
생산해서 잘 팔고 있었으니까 경영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노르사의 기술진들은
항공기술의 꽃인 전투기 시장에서 닷쏘에게
밀린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프랑스정부에서는 일단 전투기는
현실적인 스펙과 실용적인 운영편의성을 갖춘
닷쏘사것으로 사용을 하지만, 훨씬 더 우수한
기술진과 계측장비들을 갖춘 노르사에
미래 항공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용역들을
주기로 했습니다. 노르사는 이 연구용역을
받아서 실험적인 기술을 적용한 기술실증기들을
만든 다음에 이 기술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데이터들을 수집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노르사는 기술실증기로 만든
물건이 운좋게 정말로 군용으로 적합하다면
기술실증기를 양산기체로 개조해서 프랑스군에
대량납품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닷쏘사 일변도의 전투기시장을
부셔버릴 수 있다는 판단이 슨 것이죠.
1953년, 프랑스의 SFECMAS사는
초음속에서 적합한 날개형태를 연구하려고
아세날 1301이라는 델타익, 즉 삼각날개를
갖춘 기술실증기를 만들었는데요. 풍동실험과
비행실험을 거친 결과 고속에서의 성능이 좋은
공력특성을 가질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속을 내려고 날개에 후퇴각을
많이 주면 이걸 부러지지 않게 버텨주려고
날개 뿌리를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야하는데
그럼 중량이 늘어나고 무게중심도 이상하게
변하겠죠. 하지만 델타익은 날개 뿌리를
동체 전체로 가져갈 수 있다보니 날개를
얇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속에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단점이 저속에서는
비행안정성이 좋지 않고 유도항력이 많이
발생하면서 장거리 비행에는 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요. 어차피 당시
프랑스군이 원하던 전투기는 적 전투기랑
맞짱 뜨는 전투기가 아니었거든요.
프랑스는 당시 폭격기가 뜨면 고속으로
따라붙어서 격추시키는 전형적인
요격기를 원한다고 떡하니 적어놓은 사업도
추진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오히려
목표로 하는 고속성능 기준이 너무 높아서
당시 기술로 구현이 불가능하다보니까
부득이하게 성능요구사항을 프랑스군이
낮춰줬을 정도로 당시 프랑스군은 고속
요격기에 대해서 갈증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이 아세날 1301을 개발한 SFECMAS와
노르가 합체! 하면서 노르 아비아시옹이라는
더 거대해지고 더 뛰어난 회사가 태어났죠.
그래서 곧바로 노르사는 흡수한 아세날 1301을
토대로 델타익 기술실증기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4년에 등장한
제흐포트였습니다. 제흐포트는 최고속도
마하 1.1의 초음속 실험기였구요. 프랑스제
국산 제트엔진인 아타 101시리즈 엔진에
애프터버너를 장착한 엔진을 사용하는데요.
애프터버너는 압축된 배기가스에 연료를
분사해서 한 번 더 추진력을 얻어주는
장치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초음속 제트기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할때 다른 업체들은
제트엔진으로 날다가 초음속이 필요해지면
미리 달고 있던 보조로켓을 점화해서 초음속에
도달하는 덜떨어진 방식을 채용했었거든요.
순수 터보제트 엔진만으로 초음속에 도달한 것은
굉장히 기념비적인 일이었죠.
노르사는 제흐포트를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프랑스군의 전투기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제흐포트가
등장한지 두달 뒤에 닷쏘가 슈페르 미스테르의
시제기를 개발해서 첫 비행을 성공시키고야
말았죠. 슈페르 미스테르는 제흐포트처럼
애프터버너를 채용한 초음속 전투기였습니다.
노르사는 또 다시 부들부들 하면서 이참에
슈페르 미스테르를 아득히 뛰어넘는
전투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서
듣도보도 못한 신기술들을 죄다 섭렵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램제트 엔진이었습니다. 램제트 엔진은
빠른 속도로 막대한 공기가 연소실 안에
들어오면 자체적인 충격파로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엔진인데요. 이게 고속에서는 효율이 엄청
좋고 별도로 구동되는 터빈같은게 없어서
기계적으로 엄청 단순했어요. 근데
출력은 어마어마해서 이론상 마하 2 이상의
속도에 도달하는것도 아주 간단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빠른속도로 막대한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는게 전제조건이다보니까
속도가 초음속이 안넘어가면 작동을 못해요.
그래서 노르사는 이 물건을 어떻게 해야
전투기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최초에 출격시에 로켓으로 추진시켜주고
초음속에 도달하면 램제트 엔진으로 가동하는
방법도 생각했는데요. 마치 램제트 엔진으로
가동되는 요즘 초음속미사일들이랑 비슷한
원리였죠. 그러나 이러면 착륙하려고 접근할때도
램제트를 쓸 수 없으니 순수 활공비행으로
착륙해야겠고 그럼 착륙 난이도가 어마어마
하겠죠. 무동력 활공비행은 나쁘게 말하자면
완만한 추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고심끝에 내놓은 방법은 바로 복합사이클엔진!
저속에서는 터보제트 엔진으로 작동하고
고속에서는 터보제트 엔진의 터빈이 제껴지고
쇼크콘을 전진시켜서 램제트 엔진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엔진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난이도가 빡셀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복합사이클엔진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일단 엔진을 장착할 기체부터 설계한 다음
터보제트 엔진만 장착시켜서 잘 나는지
실험해보려고 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5년에 등장한 그리퐁이었습니다.
개량된 아타 101 터보제트 엔진과
애프터버너를 장착해서 최고속도는
마하 1.3이었습니다. 왜 하필 마하 1.3으로
목표속도가 정해졌냐면 당시 램제트 엔진을
가동시키려면 최소한 마하 1.3까지는
터보제트 엔진의 깡추력으로 가속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그리퐁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죠.
기체에는 델타익 뿐만 아니라 프랑스 최초로
카나드, 즉 귀날개까지 장비했습니다.
덕분에 공기흡입구 주변에서 발생하는
불규칙한 와류를 상쇄시킬 수 있었고
비행안정성도 더 좋아졌으며 추가적인
양력이 발생되면서 기동성도 좋아졌죠.
델타익과 카나드 구성은 궁극적으로는
나중에 라팔 전투기에서도 적용되게 됩니다.
일단 그리퐁이 꽤 안정적인 성능과 신뢰성을
보이자 곧바로 복합사이클엔진을 장착한
개량형을 선보였는데요. 그것이 바로
1957년에 등장한 그리퐁2 였습니다.
복합사이클엔진 덕분에 최고속도는 무려
마하 2.19에 달했구요. 이 상태에서 엄청나게
높은 기동성과 안정성을 자랑했습니다.
고공성능도 좋아서 당시 기준으로는 전투기들이
올라가는것 자체가 어려웠던 고도 18km까지
순식간에 상승이 가능했죠. 노르사와 프랑스군
관계자들은 환호했습니다. 프랑스군은 곧바로
그리퐁2를 단발 단좌 요격기로 개조해서
도입하는 것을 검토했구요. 이러한 엄청난
성능에 힘입어서 미국 역시 연구비를
후원해줄테니 연구데이터를 공유하자고까지
제안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노르사는
만족하지 않았죠. 이제 겨우 중간단계에
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원하던 것은 마하 3의 속도를
가진 초고속 요격전투기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마하 2라는 속도는 미국과 소련이
이미 일반적인 터보제트 엔진만으로도
달성에 성공했고 실제로 그런 전투기들이
실전배치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복잡하고 비싸기만한 복합사이클엔진을
사용하면서 마하 2의 속도를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죠. 어차피 프랑스 국내에서도
곧 있으면 터보제트엔진 만으로도 이
복합사이클엔진의 속도를 따라잡는
전투기가 나올것으로 봤구요.
그래서 노르사는 궁극의 램제트 전투기인
슈페르 그리퐁의 개발을 시작했죠.
슈페르 그리퐁은 그리퐁을 엄청 대형화 시켜서
복합사이클엔진 두 개를 장착한 쌍발
램제트 요격기였구요. 목표속도는
마하 3이었죠. 성층권 고도에서도 활동 할 수
있었구요. 큰 기체다보니까 당시 떨어지는
기술로 인해서 크기가 크게 출시되었던
노르사의 AA.20 공대공미사일도 두 발
이상 달고 날아다닐 수가 있었죠. 여기에
레이더까지 장착해서 당시로서는 꿈의
요격기로 불릴만 했습니다. 슈페르
그리퐁의 제작을 위해서 노르사는 마찰열을
효과적으로 견딜 수 있는 재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르사는 미국에서 티타늄 합금을
수입해오는 협상도 진행했죠.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리퐁 2에서
터져나왔습니다. 프랑스군에서 이 물건을
군용으로 채택할 수 있나 확인해봤더니
너무 문제가 많은 전투기였던 것이죠.
일단 사진 봐보시죠. 복합사이클엔진은
말 그대로 엔진 두개를 하나로 합쳐놓은거나
마찬가지다보니까 엔진이 무겁고 엄청 큽니다.
그럼 일단 기체 중량과 부피 중에서 엔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큽니다. 근데 이게 마하 1.3까지
터보제트엔진 하나가 쌩추력으로 가속을
해줘야하다보니까 기체를 크고 무겁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랬다가는 마하 1.3에
도달 못하면 램제트엔진 못쓰잖아. 그럼
나머지 부분에 연료를 많이 탑재할 수 있겠어요?
거기다가 터보제트 엔진은 안그래도 연비가
별로인데 저 무거운 전투기를 마하 1.3까지
애프터버너 키고 가속시켜줘야하다보니까
더 연비가 구려졌어요. 램제트 엔진을
가동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램제트 엔진에
연료분사량 조절기능 따위는 없었고
그냥 온 오프 버튼이 끝이었어요. 그래서
항속거리는 고작 700km였습니다.
이정도면 항속거리 짧다고 욕먹은 우라강보다
더 짧구요. 체공시간으로 따지자면 불과
몇십분 정도라서 요격용으로도 써먹기가
어려웠습니다. 커버리지가 좁다면
적의 폭격기 편대가 그리퐁2가 출몰하는
비행장 주변만 슥 피해가면 그대로
무력화당하는 것일테니까요. 비슷한
예시로는 나치독일제 로켓전투기인 코멧이 있죠.
그러면 슈페르 그리퐁은 문제가 더 심각하겠죠.
엔진이 두 개니까 기름을 두 배로 많이
먹을텐데 연료탑재량은 아까전에 언급한
문제로 여전히 심각할테니까요. 결국
슈페르 그리퐁은 시제기마저도 만들어보지
못하고 좌초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리퐁2는
1961년까지 테스트용도로 날아다니기는
했는데요. 군용으로 채택해달라고 노르사가 말을
안꺼낸것은 아니었지만, 속도는 비슷한데
다른 성능은 더 좋은 닷쏘사의 미라주3를
도입하게 되면서 군용으로 채택되는 일 없이
순수하게 실험기로만 사용하다가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노르사는 드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했는지 전투기시장에서는 완전히
철수했구요. 미사일이나 수송기를 만드는
회사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닷쏘에게 완벽히 패배해버린 셈이었죠.
3 days ago | [YT]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