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 꿈이 밥이 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현실로 • 일 정 : 2025년 9월 30일 (화) / 16:00-18:00 • 장 소 :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 87, 2층 오터스 맵 • 모집인원 : 20명 내외 • 참 가 비 : 무료 • 일 정 표 16:00-16:10 오프닝 및 행사 안내 16:10-17:20 북토크 17:20-17:50 질의응답 17:50-18:00 사인회 및 기념촬영 • 신청링크 : forms.gle/23PfxS7JpEqUjstr6 • 주차안내 :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차량 이용 시, 북성로 신협 옆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 문의처 : 010-4781-6011 / 마르텔로 연구원 최우성
9월 4일. 서류상의 내가 태어난 날이다. 실제 생일은 이보다 빠르다. 하지만 당시 수원세브란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탓에,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르는 미약한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뱃속이 아닌 인큐베이터에서, 나는 삶의 첫 라운드를 위태롭게 시작했다. 출생신고는 당연히 미뤄졌다. 호적에 올리는 것이 무의미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나는 살아남았고,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51년이 흐른 오늘, 공교롭게도 나의 13번째 책이 인쇄에 들어갔다. 제목은 ‘포기할까 했더니 아직 3라운드’.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어떤 상징일까.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을 책의 첫 장을 상상한다. 그것은 세상에 막 태어난 존재의 여린 숨결과도 같다. 51년 전, 그날의 나처럼.
이번 책의 제목처럼, 나 역시 수없이 포기를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글쓰기는 외로운 싸움이다. 누구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라운드다. 워드프로세서의 검은 배경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나는 내 안의 수많은 적들과 마주해야 했다. 재능의 한계, 경험의 부족, 세상에 대한 무지. 그것들은 링 위의 상대보다 더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날려왔다. 몇 번이고 무릎을 꿇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이제 그만 링에서 내려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오늘, 인쇄소의 기계가 나의 13번째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51년 전, 인큐베이터 속에서 위태롭게 숨을 쉬던 아이처럼, 이 책 또한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나는 링의 한가운데 서서, 새로운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공 소리를 듣는다.
박스원 덕은관 고민수 관장과 땀으로 흥건한 몸을 이끌고 체육관 건물 1층의 롯데리아로 들어섰다. 훅, 하고 끼쳐오는 에어컨의 찬 공기가 끈적한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은 운동을 끝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지상의 낙원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기보다 먼저 포스기 앞으로 향했다. 그 앞에는 이미 초로의 신사 한 분이 서 계셨다. 화면 위를 부유하는 그의 손가락은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연신 허공을 맴돌았다. 우리를 발견한 그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먼저 하세요." 그 말속에는 미안함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패트가 두 장 들어간 더블엑스 세트 두 개를 시키고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묻었다. 등 뒤의 창문 너머로 이제막 시작한 여름 낮의 맹렬함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열기를 못 이기는 순간, 세상의 속도가 한 단계쯤 느려지는 듯한 체념을 통한 평온. 나는 그 안락함 속에서 갓 끝낸 운동의 잔상을 곱씹고 있었다. 고 관장이 샌드백을 가리키며 외치던 소리, 공기를 가르던 글러브의 마찰음,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심장에서 터져 나오던 북소리 같은 고동. 그 모든 격렬함이 이제는 먼 곳의 일처럼 아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 관장이 문득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어르신, 계속 헤매시는 것 같은데 제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의 시선은 우리가 들어올 때 마주쳤던 그 신사를 향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주문 기계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양보받고, 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꼼짝없이 그 문명의 이기(利器) 앞에서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 관장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 걸음에는 어떤 망설임도 과시도 없었다. 마치 링 위에서 상대의 빈틈을 향해 내딛는 스텝처럼, 군더더기 없고 정확했다. "어르신, 좀 도와드릴까요?"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 신사는 기다렸다는 듯 구원받은 표정을 지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고, 이내 주문이 끝났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우리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신사의 모습은, 한 끼의 식사가 그에게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불고기버거 세트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쩌면 그 하루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허기와 막막함으로 점철된 오후의 시작점에서 마주하고 싶었던 작은 위안. 한 끼의 식사는 때로 우주 하나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넘칠 때 선의를 베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때 우리는 누구나 잠시 부처나 예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하루의 절반을 땀으로 채운 뒤, 고된 노동의 정점에서 맞이하는 꿀 같은 휴식의 순간에 타인의 곤경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행위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것은 단순한 인성(人性)을 넘어선 지성(知性)의 영역이다.
타인을 헤아리는 능력은 타고난 성품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연마된 지성의 발현에 가깝다. 상대의 표정, 망설이는 손짓, 어색한 침묵 속에서 그의 내면을 읽어내는 것. 그의 곤란함이 단지 기계 조작의 미숙함에 그치지 않고, 어쩌면 존엄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음을 간파하는 것. 이는 고도의 공감 능력과 상황 판단력을 요구하는 지적 활동이다. 풍부하게 발달한 대뇌의 어느 한 부분이 타인의 우주를 상상하고 그 무게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문득 얼마 전 그에게서 왼손 보디 샷을 특훈 받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번번이 팔 힘에 의지해 주먹을 뻗었고, 샌드백은 그저 둔탁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그때 고 관장이 내 골반을 잡아주며 말했다. "팔로 치는 게 아닙니다. 몸통을 돌리세요. 회전축이 살아 있어야 힘이 실립니다." 그는 말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내 몸을 직접 움직여주며 회전의 감각을 새겨 넣었다. 골반이 돌고, 허리가 따라 돌고, 그 회전력이 어깨를 거쳐 주먹 끝에 응축되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샌드백이 마치 찢어질 듯이 깊게 파였다. 내 주먹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그는 상대의 몸을 이해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나의 몸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 그것이 그의 ‘눈높이 교육’의 본질이었다. 롯데리아의 포스기 앞에서 서성이던 노신사의 마음을 읽어낸 것과, 샌드백 앞에서 헛힘만 쓰던 나의 문제점을 간파한 것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였다. 둘 다 대상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성의 산물이다.
복싱은 상대와의 거리, 타이밍, 호흡을 읽는 싸움이다. 링 위에서 벌어지는 수 싸움은 고도의 지적 유희에 가깝다. 상대의 눈빛과 미세한 근육의 떨림에서 다음 수를 예측하고, 찰나의 순간에 최적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수천, 수만 번의 스파링을 통해 그는 인간의 움직임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도와 감정까지 읽어내는 훈련을 해왔을 것이다. 그에게 링은 비단 사각의 밧줄로 둘러싸인 공간만이 아니었다. 세상 전체가 그의 링이었고, 모든 관계가 그에게는 거리와 호흡을 조절해야 할 대상이었으리라.
나는 이런 사람에게서 복싱을 배웠다. 그의 도움으로 자리를 찾은 노신사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히 샌드백을 강하게 치는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빈틈을 파고드는 법인 동시에, 타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법이기도 했다. 나의 바디 샷은 이제 더 이상 헛돌지 않을 것이다. 그 주먹에 담긴 회전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지성의 무게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기분 좋은 날이다. 대단한 성취나 특별한 사건 때문은 아니다. 그저 사소한 것들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단단하고 고요한 만족감이다.
쿠팡에서 주문한 스포츠 테이프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년간 여러 제품을 전전했지만, 무릎을 이토록 기분 좋게 잡아주는 물건은 드물었다. 적당한 탄성으로 관절의 불안함을 잠재우고, 훈련 내내 한 치의 불편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춘 파트너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움직임을 지지했다. 소모품에 불과한 테이프 하나가 이토록 든든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24,900원에 구매한 스포츠 이어폰도 제 몫을 다했다. 저렴한 가격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귀에 꽂자 선명한 베이스가 터져 나왔다. 외부 소음은 적당히 차단되었고, 땀에도 끄떡없었다. 집에 돌아와 케이스에 넣고 배터리 잔량을 확인해보니 지난 며칠 동안 사용했는데 아직 91%다. 이런 게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일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한 시간 동안 몸을 달군 뒤, 아파트 필로티의 서늘한 공간으로 나섰다. 몇 마리가의 러브버그가 날라다녔지만 이제 익숙해졌다. 텅 빈 회색 공간에 제임스 브라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폰에서 터져 나오는 “people get up and drive your funky soul”에 맞춰 스텝을 밟고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다. 펑키(Funky)한 리듬은 심장 박동과 엉겨 붙었고, 땀방울은 그의 소울풀한 샤우팅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40분간의 움직임은 운동이 아닌 춤에 가까웠다.
견고하게 무릎을 지지하는 테이프, 귀에 감기는 선명한 음악, 그리고 제임스 브라운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육체.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화가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고작 테이프와 이어폰, 그리고 오래된 노래가 주는 만족감이다. 어쩌면 삶의 즐거움이란, 이런 사소한 것들의 완벽한 합이 만들어내는 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의 운동이 기다려진다.
집에서 체육관까지 향하는 길목.좌회전 한 번이면 조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나온다. 그날도 평소처럼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조카에게서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었다. 학교 도서관의 서가.
그 중간쯤에 익숙한 글자가 시야를 잡아챘다. ‘허세라서 소년이다.’ 내가 쓴 책이었다. 알고 보니 그 학교에는 그 책 말고도 내 책이 두 권 더 있다고 했다.도서관 속 내 이름. 누군가의 일상 속에 우연히 스며든 문장.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 등줄기가 따뜻해지고,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어째선이 조카에게 약간의 용돈도 보냈다. 그날 저녁, 출판사에서 보낸 우편물 안엔
9쇄 발행에 대한 감사 편지와 증정본 두 권이 들어 있었다.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왠지 모르게“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이 움직일 때는 늘 그런 것 같다. 이유가 뚜렷한 게 아니라, 기류 같은 게 등을 밀 때. 나는 꽤 오랜 시간 청소년 진로 특강, 소년원 강연, 기업 동기부여 강사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다. 재능기부는 하지 않는다. 프로라면, 일에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무료 강연은 다른 강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 그게 내 신념이었다. 어떻게든 지켜왔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업계도, 계약도 아니었다. 그저 내 조카가 다니는 학교였고, 그 아이가 언젠가 내 강연을 강당에서 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아주 작지만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제안하는 강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전화부터 걸었다. 수업 시간일까 조심스러웠지만, 몇 번의 연결 끝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통화가 이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허세라서 소년이다』라는 책을 쓴 김남훈이라고 합니다.
제 조카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그런데요?”
이미 시작된 어조는 어딘지 불편했다.
“학교 도서관에 제 책이 있다고 들었어요.
혹시 일정 맞으면 학생들 진로특강이나 동기부여 강연 같은 걸,
제가 무료로라도 한번—”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김남훈입니다.”
(탁탁탁. 키보드 소리)
“네, 그런데요?”
“혹시 제가 선생님 편하실 때 학교로 찾아뵈어도 괜찮을까요?”
“…네. 그러세요. 오시기 전에 연락 주세요.”
말끝은 닫혀 있었다. 어디서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환대도, 거절도 아니었다. 그저 기류가 없었다.
이틀 뒤, 나는 조심스레 학교를 찾았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웃으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화단엔 봄꽃이 피어 있었고, 복도 끝에는 자판기에서 철커덩 캔음료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도서관 앞에 섰다.노크 후 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사서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안경은 코끝에 걸려 있었고,
그 너머의 시선은 내가 누구인지 벌써 알고 있다는 듯, 낯섦 없이 건조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전화드린 김남훈입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그 말은 한 줄기의 데이터였다.음의 떨림도, 감정의 여백도 없는 기계적인 문장.
그리고 마치 내 방문을 예측이라도 한 듯 다른 선생님이 곧장 나타났다.
학년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강연을 하시겠다고요?”
“네. 제 조카가 이 학교를 다녀서요. 제가 강연을 많이 다니거든요.‘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요.
진로와 직업 관련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긴 인문계 학교고요. 보시다싶이 여긴 도서관이거든요.”
앗.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거지. 갑자기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마냥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도서관에 제 책이 세 권 있다는 얘길 듣고…”
“올해는 일정이 다 찼고요. 인문계라 체육 쪽 수요는 별로 없어요.”
“아…제가 운동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니구요. 전 프로레슬러이기도 하지만,
진로 관련 강연도 많이 하고 있어서요…”
“(말을 자르며)
내년에 예체능 선생님께 이야기해보고 관심 있는 학생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호호.”
그때 나는 알았다. 이곳에는 내 말이 닿지 않는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
모두 흩어져버렸다. 의미 없는 공기의 떨림. 그들은 나를 ‘운동하는 사람’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재차 규정했다. 그러니 인문계 고등학교 특히 도서관에선 의미와 쓸모를 찾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만으로 사람을 정의하면, 그건 오해가 아니라, 단절이다.
나는 내가 말한 문장을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실제로 ‘들은’ 사람이 없음을 느꼈다. 여기 있는 벽은 너무 단단했다. 교무실의 공기는 이미 배경 좋은 합격자를 내정한 면접장처럼 모든 결론이 사전에 결정돼 있었다.
나는 웃었다. 자칫 진상으로 찍혀서 조카에게 불필요한 악영향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꼭 기회 주세요.” 그리고 돌아섰다.
교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햇빛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교정을 뛰어다녔고,
내 시계는 오후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의 말에
이렇게 귀를 닫은 적이 있었던가? 고정관념, 직업, 껍질. 그 단어들이 하나의 벽이 되어 누군가의 가능성을 가로막은 적은 없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떠올랐다. 그 수많은 학교들, 나를 초대해주었던 선생님들.
처음엔 낯설었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아이들과의 연결을 만들어주었던
진짜 교육자들. 그들에게 더 고마워졌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를 이제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누군가는 또 다른 교무실에서 나를 환영해줄 것이란 걸.
왜냐면 아직도 세상에는 문을 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 문을 열어줄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저의 책. 쿠팡을 통해서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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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ago | [YT] |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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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광주청년드림은행. ‘꿈이 밥이 되는 방법’ 강연 잘 마쳤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수고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인사드립니다. 내일은 대구에서 뵙겠습니다. ^^ #포기할까했더니아직3라운드
1 month ago | [YT] |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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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북토크안내] 포기할까 했는데 아직 3라운드 in 대구
• 부제 : 꿈이 밥이 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현실로
• 일 정 : 2025년 9월 30일 (화) / 16:00-18:00
• 장 소 :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 87, 2층 오터스 맵
• 모집인원 : 20명 내외
• 참 가 비 : 무료
• 일 정 표
16:00-16:10 오프닝 및 행사 안내
16:10-17:20 북토크
17:20-17:50 질의응답
17:50-18:00 사인회 및 기념촬영
• 신청링크 : forms.gle/23PfxS7JpEqUjst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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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처 : 010-4781-6011 / 마르텔로 연구원 최우성
1 month ago | [YT]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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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북토크 및 각종 이벤트 현장에서 사용할 배너 제작. 180cm로 뽑았더니 쫄대를 접어도 오토바이 트렁크에 수납은 못할 듯. #포기할까했는데아직3라운드 #절찬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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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onth ago | [YT]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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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안녕히세요. 김남훈 입니다. 곧 방송을 통해서 상세히 알려드릴 예정입니다만 먼저 게시글로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저의 에세이집 ‘포기할까 했는데 아직 3라운드‘가 발간되었습니다. 7년 만의 신간입니다. 저의 삶에 대한 테도를 통해 ‘버티며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구독자 여러분들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라딘, 교보, 예스24, 쿠팡 등 온라인으로 구매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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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김남훈 드림
1 month ago | [YT]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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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포기할까 했더니 아직 3라운드'
9월 4일. 서류상의 내가 태어난 날이다. 실제 생일은 이보다 빠르다. 하지만 당시 수원세브란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탓에,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르는 미약한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뱃속이 아닌 인큐베이터에서, 나는 삶의 첫 라운드를 위태롭게 시작했다. 출생신고는 당연히 미뤄졌다. 호적에 올리는 것이 무의미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나는 살아남았고,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51년이 흐른 오늘, 공교롭게도 나의 13번째 책이 인쇄에 들어갔다. 제목은 ‘포기할까 했더니 아직 3라운드’.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어떤 상징일까.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을 책의 첫 장을 상상한다. 그것은 세상에 막 태어난 존재의 여린 숨결과도 같다. 51년 전, 그날의 나처럼.
이번 책의 제목처럼, 나 역시 수없이 포기를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글쓰기는 외로운 싸움이다. 누구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라운드다. 워드프로세서의 검은 배경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나는 내 안의 수많은 적들과 마주해야 했다. 재능의 한계, 경험의 부족, 세상에 대한 무지. 그것들은 링 위의 상대보다 더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날려왔다. 몇 번이고 무릎을 꿇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이제 그만 링에서 내려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오늘, 인쇄소의 기계가 나의 13번째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51년 전, 인큐베이터 속에서 위태롭게 숨을 쉬던 아이처럼, 이 책 또한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나는 링의 한가운데 서서, 새로운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공 소리를 듣는다.
9월 4일, 나의 두 번째 생일. 새로운 라운드는 시작되었다.
1 month ago | [YT]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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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고양시 생체 복싱대회. 2라운드 RSC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 months ago | [YT] |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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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바디샷과 불고기 버거>
박스원 덕은관 고민수 관장과 땀으로 흥건한 몸을 이끌고 체육관 건물 1층의 롯데리아로 들어섰다. 훅, 하고 끼쳐오는 에어컨의 찬 공기가 끈적한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은 운동을 끝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지상의 낙원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기보다 먼저 포스기 앞으로 향했다. 그 앞에는 이미 초로의 신사 한 분이 서 계셨다. 화면 위를 부유하는 그의 손가락은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연신 허공을 맴돌았다. 우리를 발견한 그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먼저 하세요." 그 말속에는 미안함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패트가 두 장 들어간 더블엑스 세트 두 개를 시키고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묻었다. 등 뒤의 창문 너머로 이제막 시작한 여름 낮의 맹렬함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열기를 못 이기는 순간, 세상의 속도가 한 단계쯤 느려지는 듯한 체념을 통한 평온. 나는 그 안락함 속에서 갓 끝낸 운동의 잔상을 곱씹고 있었다. 고 관장이 샌드백을 가리키며 외치던 소리, 공기를 가르던 글러브의 마찰음,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심장에서 터져 나오던 북소리 같은 고동. 그 모든 격렬함이 이제는 먼 곳의 일처럼 아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 관장이 문득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어르신, 계속 헤매시는 것 같은데 제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의 시선은 우리가 들어올 때 마주쳤던 그 신사를 향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주문 기계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양보받고, 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꼼짝없이 그 문명의 이기(利器) 앞에서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 관장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 걸음에는 어떤 망설임도 과시도 없었다. 마치 링 위에서 상대의 빈틈을 향해 내딛는 스텝처럼, 군더더기 없고 정확했다. "어르신, 좀 도와드릴까요?"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 신사는 기다렸다는 듯 구원받은 표정을 지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고, 이내 주문이 끝났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우리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신사의 모습은, 한 끼의 식사가 그에게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불고기버거 세트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쩌면 그 하루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허기와 막막함으로 점철된 오후의 시작점에서 마주하고 싶었던 작은 위안. 한 끼의 식사는 때로 우주 하나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넘칠 때 선의를 베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때 우리는 누구나 잠시 부처나 예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하루의 절반을 땀으로 채운 뒤, 고된 노동의 정점에서 맞이하는 꿀 같은 휴식의 순간에 타인의 곤경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행위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것은 단순한 인성(人性)을 넘어선 지성(知性)의 영역이다.
타인을 헤아리는 능력은 타고난 성품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연마된 지성의 발현에 가깝다. 상대의 표정, 망설이는 손짓, 어색한 침묵 속에서 그의 내면을 읽어내는 것. 그의 곤란함이 단지 기계 조작의 미숙함에 그치지 않고, 어쩌면 존엄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음을 간파하는 것. 이는 고도의 공감 능력과 상황 판단력을 요구하는 지적 활동이다. 풍부하게 발달한 대뇌의 어느 한 부분이 타인의 우주를 상상하고 그 무게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문득 얼마 전 그에게서 왼손 보디 샷을 특훈 받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번번이 팔 힘에 의지해 주먹을 뻗었고, 샌드백은 그저 둔탁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그때 고 관장이 내 골반을 잡아주며 말했다. "팔로 치는 게 아닙니다. 몸통을 돌리세요. 회전축이 살아 있어야 힘이 실립니다." 그는 말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내 몸을 직접 움직여주며 회전의 감각을 새겨 넣었다. 골반이 돌고, 허리가 따라 돌고, 그 회전력이 어깨를 거쳐 주먹 끝에 응축되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샌드백이 마치 찢어질 듯이 깊게 파였다. 내 주먹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그는 상대의 몸을 이해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나의 몸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 그것이 그의 ‘눈높이 교육’의 본질이었다. 롯데리아의 포스기 앞에서 서성이던 노신사의 마음을 읽어낸 것과, 샌드백 앞에서 헛힘만 쓰던 나의 문제점을 간파한 것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였다. 둘 다 대상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성의 산물이다.
복싱은 상대와의 거리, 타이밍, 호흡을 읽는 싸움이다. 링 위에서 벌어지는 수 싸움은 고도의 지적 유희에 가깝다. 상대의 눈빛과 미세한 근육의 떨림에서 다음 수를 예측하고, 찰나의 순간에 최적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수천, 수만 번의 스파링을 통해 그는 인간의 움직임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도와 감정까지 읽어내는 훈련을 해왔을 것이다. 그에게 링은 비단 사각의 밧줄로 둘러싸인 공간만이 아니었다. 세상 전체가 그의 링이었고, 모든 관계가 그에게는 거리와 호흡을 조절해야 할 대상이었으리라.
나는 이런 사람에게서 복싱을 배웠다. 그의 도움으로 자리를 찾은 노신사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히 샌드백을 강하게 치는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빈틈을 파고드는 법인 동시에, 타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법이기도 했다. 나의 바디 샷은 이제 더 이상 헛돌지 않을 것이다. 그 주먹에 담긴 회전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지성의 무게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인간어뢰 -
3 months ago | [YT]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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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사소한 것들의 완벽한 조화>
기분 좋은 날이다. 대단한 성취나 특별한 사건 때문은 아니다. 그저 사소한 것들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단단하고 고요한 만족감이다.
쿠팡에서 주문한 스포츠 테이프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년간 여러 제품을 전전했지만, 무릎을 이토록 기분 좋게 잡아주는 물건은 드물었다. 적당한 탄성으로 관절의 불안함을 잠재우고, 훈련 내내 한 치의 불편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춘 파트너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움직임을 지지했다. 소모품에 불과한 테이프 하나가 이토록 든든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24,900원에 구매한 스포츠 이어폰도 제 몫을 다했다. 저렴한 가격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귀에 꽂자 선명한 베이스가 터져 나왔다. 외부 소음은 적당히 차단되었고, 땀에도 끄떡없었다. 집에 돌아와 케이스에 넣고 배터리 잔량을 확인해보니 지난 며칠 동안 사용했는데 아직 91%다. 이런 게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일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한 시간 동안 몸을 달군 뒤, 아파트 필로티의 서늘한 공간으로 나섰다. 몇 마리가의 러브버그가 날라다녔지만 이제 익숙해졌다. 텅 빈 회색 공간에 제임스 브라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폰에서 터져 나오는 “people get up and drive your funky soul”에 맞춰 스텝을 밟고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다. 펑키(Funky)한 리듬은 심장 박동과 엉겨 붙었고, 땀방울은 그의 소울풀한 샤우팅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40분간의 움직임은 운동이 아닌 춤에 가까웠다.
견고하게 무릎을 지지하는 테이프, 귀에 감기는 선명한 음악, 그리고 제임스 브라운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육체.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화가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고작 테이프와 이어폰, 그리고 오래된 노래가 주는 만족감이다. 어쩌면 삶의 즐거움이란, 이런 사소한 것들의 완벽한 합이 만들어내는 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의 운동이 기다려진다.
- 인간어뢰 -
4 months ago | [YT]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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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연구소 : 터프한 인생실험실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집에서 체육관까지 향하는 길목.좌회전 한 번이면 조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나온다. 그날도 평소처럼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조카에게서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었다. 학교 도서관의 서가.
그 중간쯤에 익숙한 글자가 시야를 잡아챘다. ‘허세라서 소년이다.’ 내가 쓴 책이었다. 알고 보니 그 학교에는 그 책 말고도 내 책이 두 권 더 있다고 했다.도서관 속 내 이름. 누군가의 일상 속에 우연히 스며든 문장.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 등줄기가 따뜻해지고,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어째선이 조카에게 약간의 용돈도 보냈다. 그날 저녁, 출판사에서 보낸 우편물 안엔
9쇄 발행에 대한 감사 편지와 증정본 두 권이 들어 있었다.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왠지 모르게“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이 움직일 때는 늘 그런 것 같다. 이유가 뚜렷한 게 아니라, 기류 같은 게 등을 밀 때. 나는 꽤 오랜 시간 청소년 진로 특강, 소년원 강연, 기업 동기부여 강사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다. 재능기부는 하지 않는다. 프로라면, 일에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무료 강연은 다른 강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 그게 내 신념이었다. 어떻게든 지켜왔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업계도, 계약도 아니었다. 그저 내 조카가 다니는 학교였고, 그 아이가 언젠가 내 강연을 강당에서 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아주 작지만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제안하는 강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전화부터 걸었다. 수업 시간일까 조심스러웠지만, 몇 번의 연결 끝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통화가 이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허세라서 소년이다』라는 책을 쓴 김남훈이라고 합니다.
제 조카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그런데요?”
이미 시작된 어조는 어딘지 불편했다.
“학교 도서관에 제 책이 있다고 들었어요.
혹시 일정 맞으면 학생들 진로특강이나 동기부여 강연 같은 걸,
제가 무료로라도 한번—”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김남훈입니다.”
(탁탁탁. 키보드 소리)
“네, 그런데요?”
“혹시 제가 선생님 편하실 때 학교로 찾아뵈어도 괜찮을까요?”
“…네. 그러세요. 오시기 전에 연락 주세요.”
말끝은 닫혀 있었다. 어디서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환대도, 거절도 아니었다. 그저 기류가 없었다.
이틀 뒤, 나는 조심스레 학교를 찾았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웃으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화단엔 봄꽃이 피어 있었고, 복도 끝에는 자판기에서 철커덩 캔음료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도서관 앞에 섰다.노크 후 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사서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안경은 코끝에 걸려 있었고,
그 너머의 시선은 내가 누구인지 벌써 알고 있다는 듯, 낯섦 없이 건조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전화드린 김남훈입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그 말은 한 줄기의 데이터였다.음의 떨림도, 감정의 여백도 없는 기계적인 문장.
그리고 마치 내 방문을 예측이라도 한 듯 다른 선생님이 곧장 나타났다.
학년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강연을 하시겠다고요?”
“네. 제 조카가 이 학교를 다녀서요. 제가 강연을 많이 다니거든요.‘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요.
진로와 직업 관련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긴 인문계 학교고요. 보시다싶이 여긴 도서관이거든요.”
앗.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거지. 갑자기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마냥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도서관에 제 책이 세 권 있다는 얘길 듣고…”
“올해는 일정이 다 찼고요. 인문계라 체육 쪽 수요는 별로 없어요.”
“아…제가 운동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니구요. 전 프로레슬러이기도 하지만,
진로 관련 강연도 많이 하고 있어서요…”
“(말을 자르며)
내년에 예체능 선생님께 이야기해보고 관심 있는 학생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호호.”
그때 나는 알았다. 이곳에는 내 말이 닿지 않는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
모두 흩어져버렸다. 의미 없는 공기의 떨림. 그들은 나를 ‘운동하는 사람’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재차 규정했다. 그러니 인문계 고등학교 특히 도서관에선 의미와 쓸모를 찾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만으로 사람을 정의하면, 그건 오해가 아니라, 단절이다.
나는 내가 말한 문장을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실제로 ‘들은’ 사람이 없음을 느꼈다. 여기 있는 벽은 너무 단단했다. 교무실의 공기는 이미 배경 좋은 합격자를 내정한 면접장처럼 모든 결론이 사전에 결정돼 있었다.
나는 웃었다. 자칫 진상으로 찍혀서 조카에게 불필요한 악영향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꼭 기회 주세요.” 그리고 돌아섰다.
교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햇빛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교정을 뛰어다녔고,
내 시계는 오후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의 말에
이렇게 귀를 닫은 적이 있었던가? 고정관념, 직업, 껍질. 그 단어들이 하나의 벽이 되어 누군가의 가능성을 가로막은 적은 없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떠올랐다. 그 수많은 학교들, 나를 초대해주었던 선생님들.
처음엔 낯설었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아이들과의 연결을 만들어주었던
진짜 교육자들. 그들에게 더 고마워졌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를 이제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누군가는 또 다른 교무실에서 나를 환영해줄 것이란 걸.
왜냐면 아직도 세상에는 문을 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 문을 열어줄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 인간어뢰 -
4 months ago | [YT]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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