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마당 유튜브 채널은 부수자 특강과 기초 한자 1800자 강의는 한자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부수자 214자에 대한 강의가 10회 업로드 되어 있으며,
기초 한자 1800자 강의도 46회로 나누어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한자마당의 강의 내용이 교재로 출판되었습니다.
교재는 부수자와 1,800자 강의 영상을 순서에 따라 교재로 만든 것입니다.

교재가 필요하시면 휴대폰으로 문자 주문 부탁 드립니다.

* 교재명 : 유튜브 한자특강 1800


[주문자 성명 및 주소를 정확히 기입하여 주십시오]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으며, 주문 판매만 하고 있습니다.

* 문자 주문 전화 : 010-3118-8822

* 금 액 : 18,000원 (책값 15,000원 + 송료 3,000원)

* 입금계좌 : 농협 351-3118-8822-63

* 예금주 : 이경엽(도서출판 백추)



가능한 한 매일 한자이야기 낱말이야기를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2022년 1월 기준 약 830여 개의 한자이야기 영상이 준비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한자를 재미있고 유익하게 공부할 수 있는 마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자마당

10만 구독자님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 ‘한자마당’이 여러분들의 큰 사랑을 받아 구독자가 드디어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모든 유투버들이 갖는 첫 번째 꿈이 10만 구독자이겠습니다만,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자라는 딱딱한 내용이지만 그동안 애청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한자마당’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공부가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months ago (edited) | [YT] | 496

한자마당

오늘 저희 한자마당 강의를 하루 쉬겠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추운 날씨지만 모든 분께서 健體康心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5 months ago (edited) | [YT] | 134

한자마당

한자마당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매주 일요일마다 올리는 영상 '한자로 둘러 보는 서울 한 바퀴'를 촬영하여 제 컴퓨터로 전송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피치 못하게 오늘 영상을 보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낱말이야기 영상으로 찾아 뵐 수 있도록 기계를 잘 점검해 보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0 months ago | [YT] | 184

한자마당

저희 한자마당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유튜브에서 한자마당을 시작한 날이 2019년 5월 19일입니다. 벌써 만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시청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자이야기 낱말이야기 영상도 오늘(2004. 5. 24.)까지 1669개를 올렸고, 내일이면 1670회가 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올린 #1669회 영상 '사단과 사달 그 반전의 이야기'에서 좀 '사달'이 났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제가 잘못 해석하여 낱말의 설명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내일 #1670회 영상에서 오류를 바로잡고 또 오류가 생긴 원인에 대하여 해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1669회(사단과 사달) 영상을 보신 분들은 꼭 시청해 주시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11 months ago | [YT] | 211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한자의 미래


우리말에 건재한 한자…사용 줄일 게 아니라 활용하는 법 찾아야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7- 28

한자는 언제까지 살아남을까? 겉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한자는 이미 무대를 내려온 상태다. 한자를 섞어 쓴 읽을 거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직접 한자를 쓰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이쯤 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한자가 사라졌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자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한글로만 충분하다는 소리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자여 안녕!'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한자는 우리의 문자 만은 아니다. 루쉰이 한자가 멸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말한 지 한 세기를 넘었으나, 지금 중국에서 한자는 그대로 유효하다. 간체자를 많이 만들었으나 그것 역시 또 하나의 한자일 뿐이다. 일본도 신자체를 도입하였으나, 한자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 시점에서 볼 때 중국과 일본이 한자를 버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루쉰의 '한자 망국론'은 어느 곳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한자를 지난 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고 뽐내는 기색이 가득한 곳은 오직 한국 뿐 아닐까?

우리가 쓰던 한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신문과 공문서와 책에서 미련 없이 한자를 버렸다. 한자로 쓰인 수많은 책은 아마도 도서관 수장고에서도 치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승리에 취해 있는 지금도 한자는 범접하지 못할 자세로 국어사전에 똬리를 틀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를 모두 털어내지 않는 한 한국어는 한자에서 해방되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고 한자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국어사전을 한자의 구속에서 해방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한자는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열혈 운동가들은 어디에서 무엇 하는가,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는데……

한자를 혐오하는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반대로,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이 표의 문자를 옭아매고 있던 족쇄를 풀어주고 있다. 문자를 종이에 한 장 한 장 인쇄하던 시대에는 한글과 로마자처럼 자판을 통한 입력 속도가 빠른 음소 문자가 편리하였으나 인터넷, AI 시대에 들어서며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빠른 입력이 더는 우수한 문자를 가리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대용량의 기억 장치 속에 축적된 문자 정보는 한글이나 한자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우리말을 버리고 전혀 다른 언어로 읽고 쓰는 방법 외에는 없다. 우리말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한자는 여전히 우리말의 DNA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를 없애지 못하고, 우리말에서 한자 DNA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길은 분명하다. 중국과 일본이 한자를 버리지 않듯 우리도 그 문자의 효용을 살려 최대한 활용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한자가 어렵다는 말은 사실일 수도 있겠으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백 번을 양보하여 그것이 어렵다고 하여도 효용이 크다면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맞는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말에 맞춤 제작된 한글이 있으므로 배워야 할 한자의 수를 중국과 일본에 비할 수 없이 줄일 수 있다.

이제 다시 '한자여 안녕!'이란 인사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남을 반가워하는 인사다. 한자의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자연구가

1 year ago (edited) | [YT] | 111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한자는 몰라도 한자어는 알자!

우리말 속 한자어 이해하려면 2천자 내외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충분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4-28 제38면인쇄



우리의 언어 생활에 한자는 이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일상에서 한자로 된 자료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한자로 무엇을 적는 일은 더욱 적다. 기껏해야 부조금 겉봉에 필체 자랑삼아 몇 자 적는 경우 뿐이다. 이때도 이름은 반드시 한글로 적는다. 혹 부조금을 받는 사람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내 이름자를 읽지 못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는 한자 사용과 공부를 둘러싼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주장을 하나씩 가지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논쟁이 하루라도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몽하듯 설득할 필요도 없다. 억지로 배우게 할 일이 아니며 억지로 막을 일도 아니다. 각자 필요한 공부를 원하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다.

한자를 배우려는 사람을 도우면서 한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수준 높은 한문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말은 아니다. 상급의 한자 능력 시험을 목표로 하거나, 중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할 사람을 향한 말도 아니다. 우리말 속의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이다. 그들에게 한자 공부의 강박감을 없앨 수 있는 말을 하고 싶다. "한자는 몰라도 한자어는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한자보다 한자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자가 목적이 아니라 한자어를 아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말 속에 많은 한자어가 있지만 자주 쓰는 낱말은 대체로 2천 자 내외의 한자로 해결된다. 물론 2천이 적은 숫자는 아니며 그 글자로 모든 낱말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에 포함된 한자를 모두 알 필요는 없다. 가장 기본이 되는 200여 개의 부수자부터 익히고, 능력 시험 3급 수준에 해당하는 1,800자를 정성껏 한 번 훑는 것으로 일단 한자 공부를 끝내는 것이 좋겠다. 완벽하게 외우지 않아도 좋으며 시간이 지나 잊어버려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이제 "한자는 몰라도 된다"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한자 책을 덮어도 된다.

이때부터 마음에 둘 것이 바로 "한자는 몰라도 한자어는 알아야"라는 생각이다. 일상 용어든 전문 용어든 그 속에 포함된 한자는 몰라도 괜찮다. 위에서 공부한 실력이면 최소한 자전이나 국어사전에서 스스로 한자를 찾거나 구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르는 낱말은 그때그때 확인하면 될 일이다. 자전에서 한자를 찾아 확인할 수 있고, 비슷하게 생긴 글자들을 구별할 수만 있어도 한자어 이해를 위한 준비는 충분하다.

한자를 몰라도 된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물론 위에서 말한 최소한의 공부를 거쳤음을 전제로 한다. 알파벳이라도 알면 영어사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부수자도 모르면 한자어에는 까막눈이 된다. 우선 기초자를 익히자. 높은 수준의 공부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아가면 된다.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145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산수유' 낱말 유래

산유로 만든 약재로 왕의 병 낫게 한 주씨 성 어의 찬양…열매 이름에 朱를 넣었다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3-31 제38면


한자를 공부하는 재미는 한자어의 본래 뜻을 알았을 때 느끼는 지적 만족에 있을 것이다. 그 낱말이 고유명사라면 다른 감동을 주기도 한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친구가 특별한 계기로 단짝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일까, 가끔은 집요하게 어떤 이름들을 찾아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 최근 '산수유'에 관한 공부도 그러하였다.

봄이면 어김없이 노랗게 찾아오는 '산수유'란 이름을 이번엔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도대체 '수유(茱萸)'란 무슨 뜻이며 어디에서 온 말인가. 茱와 萸는 다른 낱말을 만들지 않고 오로지 '수유'만을 위한 글자다. 왜 '수'와 '유'를 쓰는가에 대한 설명은 분명하지 않으나, 茱에 포함된 朱(붉을 주)는 붉다는 뜻이므로 산수유의 빨간 열매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萸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열매를 생으로 먹을 수 있다거나 나무의 형태가 여위고 작아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萸에 포함된 臾(잠깐 유)에 그런 뜻이 있느냐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서 멈출 수밖엔 도리가 없다.

웬만한 초목에는 한두 개의 전설이 있듯 산수유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태항산은 전국시대 칠웅의 하나였던 조(趙)나라의 영역이었다. 어느 날 태항산의 약초꾼이 '산유'라는 열매를 왕에게 바쳤으나, 볼품없어 보이는 열매는 왕의 분노와 함께 내쳐진다. 그러나 주(朱)씨 성을 가진 어의가 이 열매를 재배하여 약재를 만들었다. 몇 년 후 왕이 요통으로 고생할 때 어의는 산유로 왕의 병을 고치게 된다. 산유로 치료한 것을 안 왕이 그 이름에 朱를 넣어 '산주유(山朱萸)'라 하였고 여기에서 '山茱萸'란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니 '수유'란 이름을 가진 나무가 여럿 나온다. 산수유, 오수유(吳茱萸), 식수유(食茱萸) 그리고 수유나무다. 모두 茱萸란 한자어를 쓰고 있다. 이 중에서 산수유만 층층나뭇과고 나머지는 모두 운향과라 하니 품종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열매는 모양이 각각 다르다. 수유나무는 쉬나무, 식수유는 머귀나무라는 순우리말 이름을 가지고도 있다. '쉬'는 수유에서, '머귀'는 먹을 식(食)자에서 온 듯하다. 산수유는 우리와 중국이 원산지이며, 나머지는 대체로 중국 원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유'란 이름의 이들 나무의 열매는 모두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 강원도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이 '동백꽃'이란 단편에서 말한 동백꽃이 실상은 생강나무라 한다. 4월쯤 붉은색 또는 흰색의 큰 꽃이 피는 동백꽃과는 전혀 다르다. 노란 동백꽃으로 표현된 이 꽃은 1930년대 강원도에선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줄기나 잎에 난 상처에서 진한 생강 향이 나서 붙은 이름이다. 무, 생강, 과일 따위를 갈아 즙을 내거나 채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면이 거칠게 생긴 도구를 강판(薑板)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보면 생강(生薑)을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자로 낱말을 공부하며 얻는 가외의 즐거움이다. 한자를 버리고 어찌 우리말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제목의 시가 절절히 와닿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아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진정 산수유가 되었다.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75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한자'를 벗어던진 우리말

尹 집무실 명칭 '대통령실'…한 국가의 청사 이름 수준이 낮아진 듯하다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3-03 제38면


'아이·서울·유(I·SEOUL·U)'라는 서울시의 브랜드 슬로건이 바뀌는 모양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설치돼 있던 브랜드 조형물이 철거되었고, 서울광장 등 곳곳의 조형물이 순차 철거될 것이라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후속 슬로건 개발에 착수하여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과 '서울 포 유(Seoul for you)'를 최종 후보로 선정하였고, 현재 결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는 1월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탄생시켰다. 대구시는 어떤가? 이십 년 가까이 사용해 오던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를 '파워풀 대구(Powerful DAEGU)'로 작년에 이미 바꾼 상태다. 이쯤이면 이 글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벌써 눈치챘을 터이다. 한자가 떠난 후 대한민국의 대도시들은 겉보기에는 하나같이 진정한(?) 메트로폴리탄으로 변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새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명칭 국민공모가 결국 무위로 끝난 일을 생각하면 적잖이 아쉽다. 많은 상금까지 내걸었는데도 당선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큰 이유의 하나로 우리의 어휘 수준이 낮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부 청사의 이름이란 모름지기 한자어가 잘 어울린다는 선입견을 전제로 한 생각이다. 순우리말로도 얼마든지 좋은 이름을 만들 수 있겠지만, 나라의 상징 건물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한자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에서 그렇다. '대통령실'이란 보통명사를 잠정적으로 정하여 사용하는 것에 큰 저항이 없는 것을 보니 이제는 다들 체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이라 할 삼봉 정도전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경복궁의 건물 하나하나 문 하나하나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인 삼봉을 생각하면 나라의 최고 청사 이름 하나조차 제대로 짓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다.

신문에서 한자를 없앴다고 열독률이 높아졌는지, 한글만으로 된 교과서가 읽기 쉬워졌기에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더 나아졌는지 통계가 없어 알 수는 없다. 대학 전공 서적에 괄호를 치고 영어를 넣으면 한자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자가 떠난 후의 빈자리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차지하는 현상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영어를 쓰기 위해 한자를 떠나보냈는가 아니면 진정 한글과 토박이말을 사랑하기에 한자를 버렸는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하는 후속 조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자라는 외투를 벗어 던진 우리말이 겨울바람 앞에 움츠리며 떨고 있는 단벌 신사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대도시가 영어 슬로건을 갖는 것이 잘못될 이유는 없다. 국가 기관의 건물 이름이 꼭 한자어라야 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그러나 한자와 이별한 후 아니 우리가 한자를 버린 이후 한자어의 뜻이 희미해지거나 뒤틀린 채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애써 모른 체하는 일은 우리말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제 다시 한자를 쓰자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며, 사실 그렇게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한자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말을 풍성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한자 공부를 두려워하고 꺼려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한자를 무자비하게 내버릴 때의 결단력의 백 분의 일만큼만이라도 이제 한자 공부를 시작할 용기로 바꾸면 안 되는 일인가?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109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근정훈장' 명칭 유감… 이름과 실제가 다른 근정훈장 다섯 등급 명칭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2-03 제38면


'근정훈장'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설명이 이렇다. "군인과 군무원을 제외한 공무원 및 사립 학교의 교원으로서 그 직무에 힘써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청조(靑條)·황조(黃條)·홍조(紅條)·녹조(綠條)·옥조(玉條)의 다섯 등급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근정훈장'이란 명칭은 무난하게 보이나, 등급을 가리키는 청조장, 황조장 등의 이름은 문제가 많다. 국가의 공식 훈장에 대한 이름치고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근거와 논리가 전혀 없다. 이름을 보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하고 대체로 수긍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근정훈장의 다섯 등급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근정(勤政)은 경복궁의 근정전과 같은 글자다. 근정전의 '정'은 정치를 뜻하겠지만, 근정훈장의 '정'은 정부 관리나 그들의 직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므로 서훈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볼 때 적절한 작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조'니 '황조'니 하는 다섯 등급의 이름은 그렇지 않다. 우선, 한자 '條(줄 조)'를 모르면 그 뜻을 알 수 없다. '청조'는 푸른색 줄을 뜻한다. 따라서 푸른색 줄이 있어야 '근정훈장 청조장'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청조장'에는 푸른색 줄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푸른색 줄이 없으면 '청조장'이 아니며, 노란색 줄이 없으면 '황조장'으로 불러선 안 된다. 그러나 근정훈장 다섯 등급을 모두 살펴보아도 이름에 해당하는 색의 줄은 보이질 않는다. 이름과 실제가 맞질 않는다. 붉은색 기와집을 지어놓고 '청와대'라 부르는 격이다.

근정훈장의 유래를 살펴보면 왜 그런 명칭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유를 알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금의 근정훈장은 1952년에 만들어진 '소성(素星)훈장'을 1967년에 이름을 바꾼 것이다. 또한 청조를 비롯한 다섯 등급은 소성훈장 때 이미 있던 것이다. 애초에 '소성'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나 다섯 등급을 색으로 구분한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근정훈장으로 바꾼 이유가 바로 그 불분명한 명칭에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원래의 소성훈장은 이름 그대로 금속제의 '흰 별'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청조 소성훈장'은 푸른색 줄이 있는 리본에 흰 별 모양의 금속을 매단 것일 뿐 어떤 의미나 가치는 찾아볼 수 없다. 파란색이 왜 노란색보다 높은 등급인지 누구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성훈장의 경우 최소한 이름의 뜻과 훈장의 실제 모양만은 일치하였다. 붕어빵에 붕어는 없을지라도 모양만은 붕어를 본뜬 것처럼.

그러나 다섯 등급의 근정훈장은 '근정'이란 이름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제시하질 않는다. 애초에 등급을 따질 수 없는 색깔로 서열을 나누면서도 훈장 실물의 모양은 명칭과 철저히 무관하다. 의미가 없는 이름은 바꾸어야 한다. 색을 서열화해서도 곤란하다. 국가 행정기관이 사실과 다른 이름을 붙인다든지 이름과 다른 실물을 만드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청조·황조란 명칭을 고집하는 것은 한자를 모르는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다. 청조장에 푸른색 줄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이름을 붙인 사람들조차 의미를 몰라서 그랬을까 궁금해진다. 한 나라 훈장의 명칭이라면, 이름과 실제가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근정훈장이 제대로 된 이름을 달고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83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문해력과 문장력… 줄임말·철자법 파괴 같은 비문이 문해력에 끼치는 악영향 고려해야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2-12-30 제38면



문장을 잘못 쓰면 문해가 어려워진다!


글을 쓰는 이유는 읽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메시지가 정확히 전달되었다면 그 글은 잘 쓴 글이며 또한 제대로 읽힌 글이 된다. 그러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글은 원인과 책임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글이 잘못 쓰였거나 아니면 제대로 읽히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글을 두고 읽는 사람의 문해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원인을 충분히 진단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이 상품이라면 문해력은 최종 소비자의 몫이지만, 글을 쓴 최초 생산자는 문장력으로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소비자가 그 상품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효용은 극대화되지 못한다. 또한, 수요가 아무리 절실해도 상품 자체가 불량하면 이것 역시 소비자의 효용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글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것은 문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겠으나 문장에도 책임이 있을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의 어휘력과 문해력을 염려하는 소리가 높은데 우리는 과연 문제의 본질을 꼼꼼히 모두 점검하고 있는가?

우리의 낮은 문해력을 두고 말할 때 독서의 부족이나 빈약한 어휘력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 당연하므로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다. 한자어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어휘의 측면에서 한자와 한자어 공부에 좀 더 노력할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서와 어휘력을 중시하는 주장은 대체로 글을 읽는 독자의 위치에서 이 문제를 보게 된다. 읽을 글이 있다는 것은 글을 쓴 필자가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모든 필자가 좋은 문장을 생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읽기를 권할 수 있거나 읽어 나무랄 데 없는 글은 대체로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것이겠지만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글들은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쓴 이른바 '비문(非文)'으로 가득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오가는 수많은 SNS의 문장은 글 줄임이 대세이며 철자법 파괴는 유행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두서없는 메시지와 댓글이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부정확하거나 부적합한 어휘와 무심한 오탈자는 수수께끼 풀이를 넘어 곤혹스럽게까지 만든다. 멀쩡한 문해력을 가진 사람도 교묘히 직조된 것 같은 비문에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가 문해력을 이야기할 때면 비문이 미치는 악영향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비문을 비롯한 문장 파괴는 우리말과 우리글의 어려운 문법에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글은 쉬워도 한국어는 어렵다는 주장은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의 의견만은 아니다. 우리 자신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어렵지 않고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모든 것은 준비하기에 달려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중에 독서를 강조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중시하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쓰는 사람이 비문을 생산하면 읽는 사람은 저절로 문해력이 낮아진다. 문해력의 해결책을 독서와 어휘력에만 두지 말고 문장력에도 일정한 책임을 두고 교육의 방향을 잡고 내용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글을 적는 내내 이 글 또한 독자의 문해력 저하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할까 걱정과 두려움이 태산보다 높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경엽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