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서울·유(I·SEOUL·U)'라는 서울시의 브랜드 슬로건이 바뀌는 모양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설치돼 있던 브랜드 조형물이 철거되었고, 서울광장 등 곳곳의 조형물이 순차 철거될 것이라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후속 슬로건 개발에 착수하여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과 '서울 포 유(Seoul for you)'를 최종 후보로 선정하였고, 현재 결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는 1월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탄생시켰다. 대구시는 어떤가? 이십 년 가까이 사용해 오던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를 '파워풀 대구(Powerful DAEGU)'로 작년에 이미 바꾼 상태다. 이쯤이면 이 글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벌써 눈치챘을 터이다. 한자가 떠난 후 대한민국의 대도시들은 겉보기에는 하나같이 진정한(?) 메트로폴리탄으로 변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새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명칭 국민공모가 결국 무위로 끝난 일을 생각하면 적잖이 아쉽다. 많은 상금까지 내걸었는데도 당선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큰 이유의 하나로 우리의 어휘 수준이 낮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부 청사의 이름이란 모름지기 한자어가 잘 어울린다는 선입견을 전제로 한 생각이다. 순우리말로도 얼마든지 좋은 이름을 만들 수 있겠지만, 나라의 상징 건물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한자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에서 그렇다. '대통령실'이란 보통명사를 잠정적으로 정하여 사용하는 것에 큰 저항이 없는 것을 보니 이제는 다들 체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이라 할 삼봉 정도전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경복궁의 건물 하나하나 문 하나하나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인 삼봉을 생각하면 나라의 최고 청사 이름 하나조차 제대로 짓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다.
신문에서 한자를 없앴다고 열독률이 높아졌는지, 한글만으로 된 교과서가 읽기 쉬워졌기에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더 나아졌는지 통계가 없어 알 수는 없다. 대학 전공 서적에 괄호를 치고 영어를 넣으면 한자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자가 떠난 후의 빈자리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차지하는 현상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영어를 쓰기 위해 한자를 떠나보냈는가 아니면 진정 한글과 토박이말을 사랑하기에 한자를 버렸는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하는 후속 조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자라는 외투를 벗어 던진 우리말이 겨울바람 앞에 움츠리며 떨고 있는 단벌 신사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대도시가 영어 슬로건을 갖는 것이 잘못될 이유는 없다. 국가 기관의 건물 이름이 꼭 한자어라야 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그러나 한자와 이별한 후 아니 우리가 한자를 버린 이후 한자어의 뜻이 희미해지거나 뒤틀린 채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애써 모른 체하는 일은 우리말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제 다시 한자를 쓰자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며, 사실 그렇게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한자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말을 풍성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한자 공부를 두려워하고 꺼려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한자를 무자비하게 내버릴 때의 결단력의 백 분의 일만큼만이라도 이제 한자 공부를 시작할 용기로 바꾸면 안 되는 일인가?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한자'를 벗어던진 우리말
尹 집무실 명칭 '대통령실'…한 국가의 청사 이름 수준이 낮아진 듯하다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3-03 제38면
'아이·서울·유(I·SEOUL·U)'라는 서울시의 브랜드 슬로건이 바뀌는 모양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설치돼 있던 브랜드 조형물이 철거되었고, 서울광장 등 곳곳의 조형물이 순차 철거될 것이라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후속 슬로건 개발에 착수하여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과 '서울 포 유(Seoul for you)'를 최종 후보로 선정하였고, 현재 결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는 1월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탄생시켰다. 대구시는 어떤가? 이십 년 가까이 사용해 오던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를 '파워풀 대구(Powerful DAEGU)'로 작년에 이미 바꾼 상태다. 이쯤이면 이 글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벌써 눈치챘을 터이다. 한자가 떠난 후 대한민국의 대도시들은 겉보기에는 하나같이 진정한(?) 메트로폴리탄으로 변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새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명칭 국민공모가 결국 무위로 끝난 일을 생각하면 적잖이 아쉽다. 많은 상금까지 내걸었는데도 당선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큰 이유의 하나로 우리의 어휘 수준이 낮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부 청사의 이름이란 모름지기 한자어가 잘 어울린다는 선입견을 전제로 한 생각이다. 순우리말로도 얼마든지 좋은 이름을 만들 수 있겠지만, 나라의 상징 건물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한자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에서 그렇다. '대통령실'이란 보통명사를 잠정적으로 정하여 사용하는 것에 큰 저항이 없는 것을 보니 이제는 다들 체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이라 할 삼봉 정도전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경복궁의 건물 하나하나 문 하나하나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인 삼봉을 생각하면 나라의 최고 청사 이름 하나조차 제대로 짓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다.
신문에서 한자를 없앴다고 열독률이 높아졌는지, 한글만으로 된 교과서가 읽기 쉬워졌기에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더 나아졌는지 통계가 없어 알 수는 없다. 대학 전공 서적에 괄호를 치고 영어를 넣으면 한자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자가 떠난 후의 빈자리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차지하는 현상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영어를 쓰기 위해 한자를 떠나보냈는가 아니면 진정 한글과 토박이말을 사랑하기에 한자를 버렸는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하는 후속 조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자라는 외투를 벗어 던진 우리말이 겨울바람 앞에 움츠리며 떨고 있는 단벌 신사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대도시가 영어 슬로건을 갖는 것이 잘못될 이유는 없다. 국가 기관의 건물 이름이 꼭 한자어라야 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그러나 한자와 이별한 후 아니 우리가 한자를 버린 이후 한자어의 뜻이 희미해지거나 뒤틀린 채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애써 모른 체하는 일은 우리말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제 다시 한자를 쓰자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며, 사실 그렇게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한자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말을 풍성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한자 공부를 두려워하고 꺼려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한자를 무자비하게 내버릴 때의 결단력의 백 분의 일만큼만이라도 이제 한자 공부를 시작할 용기로 바꾸면 안 되는 일인가?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