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공부하는 재미는 한자어의 본래 뜻을 알았을 때 느끼는 지적 만족에 있을 것이다. 그 낱말이 고유명사라면 다른 감동을 주기도 한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친구가 특별한 계기로 단짝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일까, 가끔은 집요하게 어떤 이름들을 찾아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 최근 '산수유'에 관한 공부도 그러하였다.
봄이면 어김없이 노랗게 찾아오는 '산수유'란 이름을 이번엔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도대체 '수유(茱萸)'란 무슨 뜻이며 어디에서 온 말인가. 茱와 萸는 다른 낱말을 만들지 않고 오로지 '수유'만을 위한 글자다. 왜 '수'와 '유'를 쓰는가에 대한 설명은 분명하지 않으나, 茱에 포함된 朱(붉을 주)는 붉다는 뜻이므로 산수유의 빨간 열매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萸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열매를 생으로 먹을 수 있다거나 나무의 형태가 여위고 작아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萸에 포함된 臾(잠깐 유)에 그런 뜻이 있느냐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서 멈출 수밖엔 도리가 없다.
웬만한 초목에는 한두 개의 전설이 있듯 산수유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태항산은 전국시대 칠웅의 하나였던 조(趙)나라의 영역이었다. 어느 날 태항산의 약초꾼이 '산유'라는 열매를 왕에게 바쳤으나, 볼품없어 보이는 열매는 왕의 분노와 함께 내쳐진다. 그러나 주(朱)씨 성을 가진 어의가 이 열매를 재배하여 약재를 만들었다. 몇 년 후 왕이 요통으로 고생할 때 어의는 산유로 왕의 병을 고치게 된다. 산유로 치료한 것을 안 왕이 그 이름에 朱를 넣어 '산주유(山朱萸)'라 하였고 여기에서 '山茱萸'란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니 '수유'란 이름을 가진 나무가 여럿 나온다. 산수유, 오수유(吳茱萸), 식수유(食茱萸) 그리고 수유나무다. 모두 茱萸란 한자어를 쓰고 있다. 이 중에서 산수유만 층층나뭇과고 나머지는 모두 운향과라 하니 품종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열매는 모양이 각각 다르다. 수유나무는 쉬나무, 식수유는 머귀나무라는 순우리말 이름을 가지고도 있다. '쉬'는 수유에서, '머귀'는 먹을 식(食)자에서 온 듯하다. 산수유는 우리와 중국이 원산지이며, 나머지는 대체로 중국 원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유'란 이름의 이들 나무의 열매는 모두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 강원도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이 '동백꽃'이란 단편에서 말한 동백꽃이 실상은 생강나무라 한다. 4월쯤 붉은색 또는 흰색의 큰 꽃이 피는 동백꽃과는 전혀 다르다. 노란 동백꽃으로 표현된 이 꽃은 1930년대 강원도에선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줄기나 잎에 난 상처에서 진한 생강 향이 나서 붙은 이름이다. 무, 생강, 과일 따위를 갈아 즙을 내거나 채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면이 거칠게 생긴 도구를 강판(薑板)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보면 생강(生薑)을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자로 낱말을 공부하며 얻는 가외의 즐거움이다. 한자를 버리고 어찌 우리말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제목의 시가 절절히 와닿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아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진정 산수유가 되었다.
한자마당
[이경엽의 한자마당] '산수유' 낱말 유래
산유로 만든 약재로 왕의 병 낫게 한 주씨 성 어의 찬양…열매 이름에 朱를 넣었다
영남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발행일 2023-03-31 제38면
한자를 공부하는 재미는 한자어의 본래 뜻을 알았을 때 느끼는 지적 만족에 있을 것이다. 그 낱말이 고유명사라면 다른 감동을 주기도 한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친구가 특별한 계기로 단짝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일까, 가끔은 집요하게 어떤 이름들을 찾아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 최근 '산수유'에 관한 공부도 그러하였다.
봄이면 어김없이 노랗게 찾아오는 '산수유'란 이름을 이번엔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도대체 '수유(茱萸)'란 무슨 뜻이며 어디에서 온 말인가. 茱와 萸는 다른 낱말을 만들지 않고 오로지 '수유'만을 위한 글자다. 왜 '수'와 '유'를 쓰는가에 대한 설명은 분명하지 않으나, 茱에 포함된 朱(붉을 주)는 붉다는 뜻이므로 산수유의 빨간 열매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萸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열매를 생으로 먹을 수 있다거나 나무의 형태가 여위고 작아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萸에 포함된 臾(잠깐 유)에 그런 뜻이 있느냐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서 멈출 수밖엔 도리가 없다.
웬만한 초목에는 한두 개의 전설이 있듯 산수유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태항산은 전국시대 칠웅의 하나였던 조(趙)나라의 영역이었다. 어느 날 태항산의 약초꾼이 '산유'라는 열매를 왕에게 바쳤으나, 볼품없어 보이는 열매는 왕의 분노와 함께 내쳐진다. 그러나 주(朱)씨 성을 가진 어의가 이 열매를 재배하여 약재를 만들었다. 몇 년 후 왕이 요통으로 고생할 때 어의는 산유로 왕의 병을 고치게 된다. 산유로 치료한 것을 안 왕이 그 이름에 朱를 넣어 '산주유(山朱萸)'라 하였고 여기에서 '山茱萸'란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니 '수유'란 이름을 가진 나무가 여럿 나온다. 산수유, 오수유(吳茱萸), 식수유(食茱萸) 그리고 수유나무다. 모두 茱萸란 한자어를 쓰고 있다. 이 중에서 산수유만 층층나뭇과고 나머지는 모두 운향과라 하니 품종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열매는 모양이 각각 다르다. 수유나무는 쉬나무, 식수유는 머귀나무라는 순우리말 이름을 가지고도 있다. '쉬'는 수유에서, '머귀'는 먹을 식(食)자에서 온 듯하다. 산수유는 우리와 중국이 원산지이며, 나머지는 대체로 중국 원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유'란 이름의 이들 나무의 열매는 모두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 강원도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이 '동백꽃'이란 단편에서 말한 동백꽃이 실상은 생강나무라 한다. 4월쯤 붉은색 또는 흰색의 큰 꽃이 피는 동백꽃과는 전혀 다르다. 노란 동백꽃으로 표현된 이 꽃은 1930년대 강원도에선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줄기나 잎에 난 상처에서 진한 생강 향이 나서 붙은 이름이다. 무, 생강, 과일 따위를 갈아 즙을 내거나 채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면이 거칠게 생긴 도구를 강판(薑板)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보면 생강(生薑)을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자로 낱말을 공부하며 얻는 가외의 즐거움이다. 한자를 버리고 어찌 우리말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제목의 시가 절절히 와닿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아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진정 산수유가 되었다.
한자연구가
2 years ago (edited) | [YT] |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