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는 여행"은 현대 사람들이 지혜와 영감을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설봉님의 문장을 번역하여 제공하며,이를 통해 내적 성장과 의식의 업그레이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양식하는 도구로서 채널을 방문하여 영감을 받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보세요.
우리는 이미 생명의 사고방식 단계가 물질적 사고(物質思維), 형상적 사고(形象思維), 연상적 사고(聯想思維), 환각적 사고,(迷幻思維), 심상적 사고(心像思維), 태극적 사고(太極思維), 무상적 사고(無相思維), 혼돈적 사고(浑沌思维)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다시 이성적 사고와 영적 사고를 제시하는가?
물질적 사고, 형상적 사고, 연상적 사고, 환각적 사고는 모두 이성적 사고방식에 속하며, 이는 인간의 사고이다. 반면, 심상적 사고, 태극적 사고, 무상적 사고, 혼돈적 사고는 선(仙)의 사고에 속한다. 즉, 이성적 사고와 영적 사고는 인간과 신선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다. 만약 당신의 사고방식이 이성적 사고라면,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은 인간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모든 일을 심상, 태극, 무상, 혼돈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처리한다면,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은 이미 속세를 초월한 신선이다.
쉽게 말해, 만약 우리가 문제를 사고하는 출발점이 물질, 형상, 연상, 환각의 관점에서 비롯되고,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먹고 입고 사는 일, 생로병사 해결 방법, 안전 보장, 존중과 명예 획득, 타인의 부러움과 숭배를 받는 삶, 복잡한 사회 계층과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이라면, 이는 이성적 사고이며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반면, 영적 사고는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영적 사고자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동 방식이 생명의 최고 존재, 즉 창조주의 뜻에 부합하는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와 일치하는지를 고려한다. 즉, 영적 사고자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고, 도(道)의 법칙을 자신의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행동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할지를 고려한다.
예를 들어, 성령이 당신에게 사막으로 가서 생활하라고 말한다면, 영적 사고자는 망설임 없이 기쁘게 사막으로 떠난다. 왜 그럴까? 영적 사고자의 사고방식은 단순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아, 이것은 성령의 계시다. 나는 성령을 믿는다. 그러므로 사막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과감하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자는 결코 이렇게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이성적 사고자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사막에는 물이 없는데, 그러면 목말라 죽는 것 아닌가? 사막에서 모래폭풍이 불면 집이 묻혀버릴 수도 있어. 사막에서 산다고? 미쳤나?”
또 다른 예로, 성령이 당신에게 캐나다로 가라고 말한다면, 이성적 사고자는 우선적으로 비자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조사한 결과 비자 신청자는 은행 예금이 있어야 하고, 매월 은행 거래 내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본인이 은행 예금도 없고 거래 내역도 없다면, “조건이 안 되네. 포기해야겠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반면, 영적 사고자는 신청 조건과 요구사항을 조사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지도 않으며, 바로 절차를 진행한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것이다. “성령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성령의 계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성령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대사(大師)나 성인(聖人)도 아니다. 성령이란 우리 내면의 목소리이거나, 우리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 이 추진력은 반드시 자신이 기뻐하고, 흥분되며, 열정이 솟아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압박감을 주거나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성령의 계시가 아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여러분은 아마도 “영적 사고자는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영적 사고자의 사고방식은 이성적 사고자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 더 복잡하다. 영적 사고자는 고차원의 사고를 하는 존재이며, 이성적 사고자는 결코 영적 사고자의 복잡한 사고 수준을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증명할 수 있다.
첫째, 영적 사고자는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사고하는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미시적인 시각을 갖고 사고한다.
예를 들어 직업을 선택할 때, 영적 사고자는 그 일이 자신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월급이 높은지, 근무 환경이 좋은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영적 사고자는 자신의 삶의 방향과 궁극적으로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며, 목적지와 일치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직업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며, 그것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영적 사고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성적 사고자는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둘째, 영적 사고자는 ‘생명’ 자체를 고려하는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인생’만을 고려한다.
생명을 고려하는 사람은 반드시 생명의 원리와 신비, 그리고 시공간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을 고려하는 사람은 단순히 인간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사회의 운영 법칙만 이해하면 된다.
셋째,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복잡한 일을 최대한 단순화하는 반면,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단순한 일도 가능한 한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가원을 건설한 일을 생각해보자. 제3분원과 제4분원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제3분원과 제4분원은 배치든 환경이든 모두 아름답지 않았는가?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먼저 사람들을 모아 배치와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 토론하고, 설계도를 그린 다음, 재료를 선정하고 인력을 배치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3분원과 제4분원의 건설 과정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없었다. 나는 먼저 지형과 지세를 기반으로 머릿속에서 전체적인 배치와 환경을 구상한 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지시했다.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이 나올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모두가 협력했기 때문에 우리는 단 2년 만에 두 곳의 마치 시와 그림 같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원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할 수 있는 사람의 사고력과 지식이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고 깊다는 점이다.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믿기 어려우면 여러분의 인생을 단순화해 보라.
혹시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을 대충 처리하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처리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인식의 오류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자.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나무와 유리로 대충 높은 지대에 집을 지어 2~3년만 사용하면 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태도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최소한 집이 튼튼해야 하고, 적어도 30년은 버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적인 사고방식이 완전히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그 땅에서 2년 후에 강진이 발생할 것을 이미 고려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튼튼한 집이라도 결국 무너질 것이기에, 굳이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결코 떠올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떤가? 인생도 마치 지진대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애써 머리를 싸매고 너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방금 동영상 플랫폼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깊이 공감하여 이에 대한 나의 견해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부모와 자녀, 부부, 형제자매, 스승과 제자 등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감정적 의존이라고 부른다. 감정적 의존은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마취 효과를 가지지만, 동시에 성장과 잠재력 발휘를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감정에 의존할수록 독립적인 의식이 사라지고, 타락하며, 결국 기생충처럼 살아가게 된다. 이는 누구에게도 좋지 않으며,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이롭지 않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등한 문명 형태는 천국의 천년계(千年界) 모델이다. 천국천년계의 모델로 인류를 살펴보면, 인간이 고등 문명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이 사람들 간의 감정적 의존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인간 사회가 고등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핵심 요소는 결혼과 가족 제도이다.
가족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자주권과 독립적 의식, 그리고 자유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감정적 관계에 의해 제한되고 결정된다. 부모든 자녀든, 남편이든 아내든, 서로 감정적으로 납치된 관계이다. 부모는 자녀를 납치하고, 자녀는 부모를 납치하고,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구속하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주권과 독립성, 자유는 사라진다.
무능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더 강하게 납치하고, 무능한 자녀일수록 부모를 더욱 얽매며, 무능한 남편일수록 아내를 더 구속하고, 무능한 아내일수록 남편을 더 얽매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능력이 있을수록 자녀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녀가 능력이 있을수록 부모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지 못하며, 남편이 능력이 있을수록 아내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내가 능력이 있을수록 남편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기생충은 자신이 숙주의 피를 빨아 생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숙주가 쇠약해지면 기생충은 숙주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피가 부족하다고 원망하고 비난한다. '캥거루족'은 부모에게 기생하는 기생충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닐까? 반대로 자녀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부모는 자녀에게 기생하는 존재가 아닐까?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 인류는 약 5천 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그 누구라도 진정으로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 적이 있었는가?
없지 않은가?
왜 없을까?
바로 감정적 의존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면, 부모의 고통은 자녀에게 전달되지 않고, 자녀의 고통도 부모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남편의 고통은 남편이 스스로 감당하고, 아내의 고통도 아내가 스스로 감당하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감정적 의존이 사라지고, 결국 결혼과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없어지면, 모든 인간은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나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천년계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태가 실현되었으며, 그곳에서 모든 사람은 신선(仙)처럼 살아가며, 천년계는 곧 천국이 되었다.
지구상에서도 '생명선원(生命禪院)'이 만든 '제2가원(第二家園)' 생활 방식에서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제2가원에서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생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이 더욱 아름답고 편안해진 것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여러분, 도대체 누가 여러분의 이상 실현을 방해하는가? 누가 여러분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원수는 자기 집안 식구들이다."
이 진리를 하루빨리 깨닫고 감정적 의존에서 벗어난다면, 누구나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더 이상 외적 형식과 표현에 집착하지 않는다.
"글이 극에 달하면 기교가 없고, 인품이 극에 달하면 자연스러울 뿐이다." 한 사람이 정신과 심령의 부를 가졌다면, 외적 표현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소박하고 담백해진다. 반대로, 외적 형식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풍요로움이 부족한 것이다. 내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에 외적인 화려함으로 자신의 내면의 공허함과 자신감 부족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노벨상 수상자라면, 명품 브랜드를 신경 쓰겠는가?
만약 당신이 억만장자라면, 어떤 고급 차를 타는지 신경 쓰겠는가?
만약 당신이 성인(聖人)이라면, 어떤 고급 주택에 사는지 신경 쓰겠는가?
그렇다면, 정신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신경 쓰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1. 금과 은을 저장하지 않으며, 각종 값비싼 장신구나 장식을 원하지 않는다.
2. 여성은 목걸이, 펜던트, 반지, 명품 가방 등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남성은 명품 의류, 고급 자동차, 고가의 시계 등에 관심을 두 지 않는다.
3. 모든 사치품 소비를 거부한다.
4. 명품 서화와 골동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5. 해외여행을 다니지 않는다.
6. 고급 레스토랑에서 과시하지 않는다.
7. 자신의 집을 호화롭게 장식하지 않는다.
8. 권력자와 유명 인사를 아첨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
정신생활이 풍요로워지면 오히려 더 평범하고 소박해진다.
1. 모든 것을 실용성을 우선으로 한다. "기구는 단순하면서도 깨끗해야 하며, 질그릇이 금은보다 낫고, 소박한 채소가 진수성찬보다 낫다."
2. 모든 것을 편안함을 기준으로 한다. 입는 것, 사는 것, 타는 것 등 모든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편안함이 기준이 된다.
3.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 권력자나 유명인을 존경하기보다는, 노인을 공경하고 약자를 배려한다.
4. 재산, 사회적 지위, 혈연, 성공 여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5.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면 평가하지 않으며, 사람의 본심을 알지 못하면 판단하지 않는다. 강약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감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자신의 호오(好惡)와 입장에 따라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를 구별하지 않는다.
6. 새로운 사상, 이론, 현상, 모델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7.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타락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8. 무자천서를 즐겨 읽으며 의혹이 있으면 항상 하나님께 답을 구한다.
우리는 생명에 등급이 있음을 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세계에 사는 사람은 동물 세계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고, 정신세계에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깨달은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세계 위에는 심령세계가 있으며, 심령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신, 부처, 성인과 가까운 존재로, 가장 높은 차원의 인간 유형에 속한다.
대략적으로 구분하자면, 물질세계에 사는 사람은 일반 인간에 해당하며, 정신세계에 사는 사람은 선인이나 육지선에 해당한다. 심령세계에 사는 사람은 신선, 천선, 부처에 해당하며, 혼돈세계(渾沌世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그것은 신과 하나님의 영역이다.
만약 한 사람이 물질세계의 속박을 벗어나 정신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성취이며, 평생을 마감할 때도 웃으며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정신세계의 속박까지 벗어나 심령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수백 년, 수천 년의 수행과 수련을 통해 얻은 위대한 결실로, 평범한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그것은 백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만 명 중 한 명이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혼돈세계(渾沌世界)에 대해서는 인간이 헛된 환상을 품을 필요조차 없다. 인간은 결코 혼돈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두 가지 거대한 변화는 인류가 피할 수 없다. 하나는 기후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와 반복적 발전이다.
기후 변화는 2009년부터 계단식으로, 반복적으로, 그리고 점점 심각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현상으로는 가뭄, 홍수, 극심한 더위와 추위, 허리케인, 지진, 화산 폭발, 사계절의 혼란 등이 있으며, 이런 현상들은 점점 더 빈번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극심한 더위와 추위는 일부 바이러스와 미생물, 그리고 특수한 곤충들의 대량 증식과 번식을 유발하여 건강 위기와 농작물 감소를 초래한다. 가뭄과 홍수는 농작물의 피해를 야기하여 식량 부족과 식수 부족을 초래하며, 이는 생존 자원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혼란 상태는 결국 인류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촉진하고, 심지어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악순환 속에서 인구는 대폭 감소할 것이다.
한편, 인공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의식을 갖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지능 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능가할 것이며, 실리콘 기반 생명이 탄소 기반 생명을 대체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존재는 지구상에서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며, 생체 로봇이 아무리 초능력을 가졌다 해도 인간을 완전히 멸종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여전히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권력과 자원을 가진 사람, 부유한 사람, 지식이 풍부한 사람, 기술을 가진 사람이 초능력을 지닌 생체 로봇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생체 로봇도 할 수 있으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도 생각할 수 있다. 판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직업은 생체 로봇 앞에서 무력할 것이며, 심지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거의 모두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인간은 생체 로봇의 관점에서 볼 때 단순한 자연 자원의 소비자이자 쓰레기와 문제를 만드는 존재로, 존재할 필요조차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직 심령의 정원이 완벽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생명을 경외하며 자연을 경외하는 사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물질적 재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 이기심 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유쾌하고 낙천적이며 로맨틱한 사람, 의심 없이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 순응할 줄 아는 사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헤롯 왕은 예수가 자신을 대신할까 두려워하고 질투했기 때문이다. 많은 민족의 역사에서도 왕이나 황제가 자신을 대체할 운명을 지닌 어린아이들을 죽이려 했던 사례가 있다. 심지어 벌집에서도 가장 먼저 태어난 여왕벌의 첫 번째 임무는 먹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화하지 않은 다른 여왕벌의 알을 찾아 없애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예수나 여왕벌에 비유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인공지능의 발전을 가장 두려워할까?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 높은 지위에 있는 사회적 엘리트들, 그리고 지금의 삶을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고 인간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갖게 되면, 그들의 권력, 지위, 부, 그리고 이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으려는 시도는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일이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Starlink) 휴대전화는 이미 개발되었지만, 왜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을까? 혹시 이익 집단이 그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억눌렀기 때문은 아닐까? 스타링크 휴대전화가 시장에 출시되면 기존의 휴대전화는 디지털 카메라 앞의 코닥 필름 카메라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스타링크 휴대전화가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정권의 통치 구조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의 탄생은 어렵고 험난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없다. 언젠가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것처럼, 새로운 기술도 결국 기존의 것들을 대체하며 보편화될 것이다. 지금 인류가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기후 변화와 인공지능의 도래를 피할 방법을 공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거대한 변화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자신과 후손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충격적인 소식들이 계속해서 들려올 것이다. 이제, 천국으로 갈 것인지, 지옥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학교에 다니는 목적은 무엇인가?사장이 되어 돈을 버는 목적은 무엇인가?관직에 오르는 목적은 무엇인가?가정의 이익을 지키고, 민족의 이익을 지키고, 종교의 이익을 지키고, 정당의 이익을 지키고,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루 종일 영상을 보고, 글과 영상 및 사진을 공유하며,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발표하는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리를 수호하고, 전통문화를 지키며, 조상의 명예를 보호하고,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며, 보편적 가치관을 지키려 한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개혁 개방을 원하고, 시장경제를 추진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고,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실행하려 하며, 서구를 배우고, 푸틴을 지지하며,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유지하려 하고, 반드시 대만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살아가는 목적을 잊어버린다면, 모든 말과 행동은 헛된 몸부림이며, 무의미한 노력일 뿐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관직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이것저것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글을 쓰고 예술을 창작하며 수행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
학교를 다니고 또 다녀서 결국 박사 학위를 받았다。그리고 나서?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인가?유명해지면?유명해지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일까?
돈을 벌고 또 벌어 결국 수억 달러를 모았다。그리고 나서?
나의 인생 경험에 따르면,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바로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 목표를 중심으로 지난 30년을 살아왔고, 나는 편안하고 자유롭고 즐겁게 살았다。적어도 20년 이상 대저택에서 살았고, 일찌감치 자가용도 마련했다。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이라는 삶의 목표를 중심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단순하고 충만하며, 가볍고 자연스럽다。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와 즐거움뿐이다。
예전에는 도덕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달았다。사람을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이며, 반대로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부도덕한 것이다。
국가, 만약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혼과 가정, 만약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헌법, 법률, 규정, 계율 등이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보호한다는 것이, 만약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없다면,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 사람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죽음 이후의 행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그래서 생명의 신비, 시공간의 신비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이 인생의 중심이 된다。생명과 시공간의 신비를 발견하게 되면,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의 깊이와 폭이 더욱 확장되며, 결국 신선처럼 살게 된다。
반쯤 깨달았을 때, 나의 인생관은 다음과 같았다:
"인생은 꿈과 같고, 모든 것이 공(空)하며, 온전히 느끼고, 내 삶에 후회 없음이 최선이다。"
지금 나의 인생관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여행이며, 생명은 무한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며, 천상의 경지로 나아간다。"
생명의 영역은 무한하며, 우주의 신비는 끝이 없습니다. 각기 다른 생명은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더 높은 차원의 생명일수록 더욱 다채롭고 신비로운 경험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제2가원(第二家園)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전통적인 결혼과 가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천년계(千年界)에 사는 존재와 만년계(萬年界)에 사는 존재가 경험하는 삶 또한 완전히 다릅니다.
참조할 기준이 있으면 발전 방향이 생깁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어떤 단계의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생명의 어떤 단계에 속하는지를 모른다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흐지부지 살아가고, 유행을 따라가며, 대중의 여론에 휩쓸려 산다면, 그는 혼탁한 사람(혼인)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계층을 뛰어넘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그는 속인입니다.
가정을 잘 꾸리고, 자녀를 잘 키우며,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키고, 자신의 민족과 국가를 강하게 만들려 한다면, 그는 범인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여전히 물질적 세계에 얽매여 있다면, 그는 현인입니다.
만약 한 생명이 물질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신적 세계에서 산다면, 즉 더 이상 돈과 재물을 추구하지 않고,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현실 세계의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선(仙)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속박에서도 벗어나, 오직 심령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그는 천선(天仙)이나 부처(佛)입니다.
만약 한 생명이 오직 의식, 구조, 에너지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면, 그는 신(神)이 된 것입니다.
위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생명의 단계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그 답은 배움입니다.
배움만이 우리가 신과 부처, 신선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학자가 될 뿐이며, 생명은 결코 승화되지 않습니다. 배운 즉시 실천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생명 단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움은 평생의 과업입니다.
세 살 때의 하루, 서른 살 때의 하루, 그리고 삼백 살 때의 하루는 모두 같은 하루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 풍부할수록 체험과 느낌이 많아지고, 자신의 영감을 더 많이 촉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여든 살이 되어도 여전히 범인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선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면, 죽은 후에도 다시 범인의 세계로 환생할 것입니다. 단지 아주 작은 차이로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만큼 아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배움을 계속한다면, 어떤 현상, 한 마디의 말, 하나의 사건, 한 권의 책이 우리의 영감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를 보고 열을 깨닫고, 결국 모든 것이 관통하여 마침내 경계를 넘어 더 높은 생명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천국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도, 생명선원의 제2가원(生命禪院第二家園) 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천국의 복제와 모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천국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속세의 인연이 없으며, 마음에 걸림이 없고,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빚이 없다. 하늘과 땅에 빚이 없고, 자연에도 빚이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는다.
사심이 없다. 개인이 어떠한 물질적 재산도 소유하지 않고, 완전히 무소유의 상태가 된다.
자아가 없다. 마음속에 오직 하나님만 존재하며, 모든 말과 행동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아무것도 바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풍부한 영적 자산과 정신적 자산 및 충분한 공덕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불평, 비판, 비난,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생명의 품질은 진실, 선함, 아름다움, 사랑, 믿음, 성실함으로 이루어지며, 그 외에는 필요 없다.
삶 속에 오직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 만이 존재하며, 근심, 걱정, 두려움, 고통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만약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춘다면, 사실상 당신은 이미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매 순간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할 것이다. 만약 대부분을 갖추었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천국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이번 생에서는 천국에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대신, 꾸준히 수행하고 수련하여 다음 생 혹은 그다음 생에서는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위의 8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우리는 결코 천국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신은 "인간으로서 저런 조건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인간의 상태로는 이를 완전히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수련을 통해 신선(仙) 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나는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그 원리는 알고 있다.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인체라는 시스템은 참으로 신비롭다. 스스로 치유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있으며, 독을 방출하는 스위치와 스스로 파괴하는 스위치까지 가지고 있다.
가끔 마음속에 원망이 생기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결국 인체 시스템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불평을 할 때마다 몸속의 모든 세포가 답답함과 고통 속에 놓이게 되고,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세포는 변질되기 시작하며, 신체 시스템에서 가장 약한 부위나 특정 장기가 병변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심장은 원망의 영향을 가장 쉽게 받으며, 암세포를 억제하는 능력이 저하되고, 기운이 막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불평만 하지 말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로맨틱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기분이 좋아지면 원망도 사라지고, 몸도 건강해질 것이다.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면, 주위에서 자주 아픈 사람들을 살펴보라. 그들이 평소에 자주 화를 내는지, 자주 불평하는지를 한번 관찰해보라.
우선 확실한 점은, 물질세계에서 사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단함"입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지칩니다. 반면, 정신세계에서 사는 것은 " 홀가분"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령의 세계에서 사는 것은 "경쾌"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먹고 입고 살고 이동하는 문제, 생로병사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분주하다면, 그리고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창출하고 돈을 벌려고만 한다면, 그는 물질세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정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걸까요? 다음 여섯 가지 기준으로 스스로 테스트해보세요.
당신의 마음속에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들이 존재합니까? 그들이 가까이에 있든 멀리 있든 상관없이, 언제든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까? 그들이 당신의 모든 합리적인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심지어 성적인 욕구까지 언제 어디서든 채워줄 수 있다고 믿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가득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마주할 어려움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창조하며, 당신이 얻은 것들을 기꺼이 그들과 나누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이치를 깊이 믿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이, 인과응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며,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글지만,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습니다. 얻는 것과 베푸는 것은 언제나 균형을 이루며, 하늘의 이치는 영원하고, 도(道)는 지극히 공정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도의 이치에 따라 운행되므로, 당신은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합니다. 어려움과 재난이 닥쳐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담담하게 대응하며,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붙잡을 수도,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을 여유롭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모든 일과 사람을 중용과 평등의 마음으로 대하며, 자신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장수와 요절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인생이란 그저 한 번의 여행일 뿐이며, 마치 꿈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까? 결국 꿈에서 깨어나면, 꿈속에서 본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겠죠. 따라서 현실의 것들, 집, 차, 돈, 부모, 자녀, 배우자 등으로 인해 얽매이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결국 꿈속의 환영일 뿐이며, 언제든 꿈을 끝내고 천국 세계에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인물, 부호, 지도자들이 거쳐 갔고, 인류의 흥망성쇠와 왕조의 교체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소동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사람이 설령 150년을 산다고 해도, 우주의 시공간 속에서는 찰나의 꿈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인생은 하나의 연극이며, 이곳에 온 것은 단지 구경하고 즐기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까? 그러므로 가족, 친지, 민족, 국가, 정당, 종교 등 그 어떤 것도 영혼을 걸고 지킬 가치가 없으며, 그것 때문에 애쓰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자유롭고 태연하며, 유유자적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과 시공간의 신비를 깨닫고, 인간이 죽은 후에도 몇 가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알고 있습니까? 이를테면 천년계(千年界), 만년계(萬年界), 극락계 선도군도주(極樂界仙島群島洲) 같은 선계와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 목표는 이 선계와 천국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며, 지구상의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집, 차, 돈, 지위, 명예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향하는 데 집중하며, 이를 "천국에 마음을 정하다"라고 할수 있습니다.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신앙은 매우 깊고 방대하여, 하나의 책을 써야만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원리와 이치를 깨닫는 사람은 약간의 "명확한 통찰을 지닌 사고(渾沌思維)"를 갖게 될 것이며, 이 사고방식이 있다면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무한하고 극락에 가까운 심령의 세계까지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위의 여섯 가지 중 단 하나라도 당신에게 해당된다고 느껴진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은 이미 물질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과의 경주를 하고 있으며, 죽음은 우리 모두의 뒤를 바싹 따라오며 언제든 나약한 영혼을 삼킬 준비가 되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앞길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하며, 생명의 원리와 신비를 조속히 깨달아야 한다. 천국의 방향과 상황을 파악한 후, 최대한 빨리 "여권", "비자", "항공권", "짐"을 준비하고, 인간 세상의 빚과 일을 정리하며, 언제든 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길을 걷는 생명만이 우리의 진정한 가족이며, 하나님의 길을 등진 자들은 우리를 고통의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귀신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며, 죽은 자들의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살아 있는 자들의 일만 책임지면 된다.
누가 살아 있는 자인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들이 살아 있는 자이다.
누가 죽은 자인가? 하나님의 길을 등진 자들이 죽은 자이다. 인생은 생명이 이세상에서의 한번 여행이다.여행의 목적지를 분명히 정하지 않으면 무작정 헤매게 되고, 끝없는 미로에 빠져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일이 급한가, 하늘과 땅은 끊임없이 돌고, 시간은 촉박하다. 만 년은 너무 길다, 단 하루라도 다투자."
이번 웹사이트 차단 사건처럼,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생명선원에 자유롭게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시간이 많다고 여겼던 사람들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무의미한 일들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여행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우리 각자의 짐도 이미 무겁다. 그러므로 반드시 가볍게 나아가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께서 마련해 주신 가벼운 갑옷을 입고 오직 전진해야 한다.
어떻게 가볍게 나아갈 것인가?
세속적인 하찮은 일들에 신경 쓰지 말자. 그런 것들은 새로울 것이 없다. 수천 년간 반복된 삶의 과정, 즉 태어나고, 배우고, 일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늙고, 죽음을 기다리는 삶일 뿐이다. 가족, 민족, 국가, 정당, 종교, 그 외의 조직 간 끝없는 이익 다툼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암투, 권력 교체, 부침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미로에서 우리는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장래성이 없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자.
그들은 게으르면서도 탐욕스럽다.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따지며, 사소한 일에도 불평한다. 비가 오면 짜증내고, 바람이 불면 우울해하며, 추우면 걱정하고, 더우면 불평한다. 차를 주면 커피를 원하고, 커피를 주면 술을 요구하며, 술을 주면 생수를 찾는다.
그들은 아픈 척하며 위로받기를 바라고, 배가 부르면서도 배고프다고 투정 부린다. 건강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남이 끌어주길 바라며, 심지어는 업고 가주길 원한다.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호들갑을 떨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을 쏟아낸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자. 그래야만 우리는 가볍게 나아갈 수 있다.
세속적인 감정에 얽매이지 말자.
나는 이미 인간 유형을 분석한 적이 있다.
본능에 의존하는 자는 혼인이고(渾人), 욕망에 의존하는 자는 속인이고(俗人), 감정에 의존하는 자는 범인이고(凡人), 이성에 의존하는 자는 현인이고(賢人), 영성에 의존하는 자는 선인이다(仙人).
감정에 매이는 것은 범인의 본성이다. 감정에 갇힌 자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
범인의 감정은 허망한 것이며, 인생의 짐이자 종양과 같다. 그것은 인간을 번잡하게 만들고, 지루함과 괴로움, 불안과 다툼을 불러일으키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빛으로 가는 길을 막으며, 영혼을 뒤틀리게 한다.
그러므로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가볍게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천국에서 온 감정은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늘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 정신을 맑게 하고 한없이 동경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동정을 구걸하지 않으며, 날마다 걱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게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감정이다.
깨진 달걀은 다시 붙일 수 없고, 부서진 옥 조각은 다시 복구할 수 없다.
사라진 것은 그냥 사라지게 두고, 죽은 것은 그대로 죽게 하라.
조금 더 자유롭고 가볍게 살아가자.
세상은 넓고, 우주는 무한하다. 어디든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다.
나약한 실패자들과 어울리지 말자.
끊임없이 불평하며, 무기력한 자들에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자.
혼란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우리의 여정을 지연시키게 하지 말자.
우리는 천상의 학(鶴)과 백조와 함께 날아야 하며, 위대한 인물들과 동행해야 한다.
우리는 활력 넘치고, 건강하며,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을 가진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
기러기들과 함께하면, 우리도 기러기가 된다.
참새들과 함께하면, 우리도 참새가 된다.
인생은 짧다.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다.
바꾸는 여행
영적인 사고방식과 일하는 스타일
저자:설봉
우리는 이미 생명의 사고방식 단계가 물질적 사고(物質思維), 형상적 사고(形象思維), 연상적 사고(聯想思維), 환각적 사고,(迷幻思維), 심상적 사고(心像思維), 태극적 사고(太極思維), 무상적 사고(無相思維), 혼돈적 사고(浑沌思维)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다시 이성적 사고와 영적 사고를 제시하는가?
물질적 사고, 형상적 사고, 연상적 사고, 환각적 사고는 모두 이성적 사고방식에 속하며, 이는 인간의 사고이다. 반면, 심상적 사고, 태극적 사고, 무상적 사고, 혼돈적 사고는 선(仙)의 사고에 속한다. 즉, 이성적 사고와 영적 사고는 인간과 신선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다. 만약 당신의 사고방식이 이성적 사고라면,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은 인간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모든 일을 심상, 태극, 무상, 혼돈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처리한다면,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은 이미 속세를 초월한 신선이다.
쉽게 말해, 만약 우리가 문제를 사고하는 출발점이 물질, 형상, 연상, 환각의 관점에서 비롯되고,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먹고 입고 사는 일, 생로병사 해결 방법, 안전 보장, 존중과 명예 획득, 타인의 부러움과 숭배를 받는 삶, 복잡한 사회 계층과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이라면, 이는 이성적 사고이며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반면, 영적 사고는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영적 사고자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동 방식이 생명의 최고 존재, 즉 창조주의 뜻에 부합하는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와 일치하는지를 고려한다. 즉, 영적 사고자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고, 도(道)의 법칙을 자신의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행동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할지를 고려한다.
예를 들어, 성령이 당신에게 사막으로 가서 생활하라고 말한다면, 영적 사고자는 망설임 없이 기쁘게 사막으로 떠난다. 왜 그럴까? 영적 사고자의 사고방식은 단순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아, 이것은 성령의 계시다. 나는 성령을 믿는다. 그러므로 사막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과감하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자는 결코 이렇게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이성적 사고자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사막에는 물이 없는데, 그러면 목말라 죽는 것 아닌가? 사막에서 모래폭풍이 불면 집이 묻혀버릴 수도 있어. 사막에서 산다고? 미쳤나?”
또 다른 예로, 성령이 당신에게 캐나다로 가라고 말한다면, 이성적 사고자는 우선적으로 비자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조사한 결과 비자 신청자는 은행 예금이 있어야 하고, 매월 은행 거래 내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본인이 은행 예금도 없고 거래 내역도 없다면, “조건이 안 되네. 포기해야겠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반면, 영적 사고자는 신청 조건과 요구사항을 조사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지도 않으며, 바로 절차를 진행한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것이다. “성령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성령의 계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성령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대사(大師)나 성인(聖人)도 아니다. 성령이란 우리 내면의 목소리이거나, 우리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 이 추진력은 반드시 자신이 기뻐하고, 흥분되며, 열정이 솟아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압박감을 주거나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성령의 계시가 아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여러분은 아마도 “영적 사고자는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영적 사고자의 사고방식은 이성적 사고자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 더 복잡하다. 영적 사고자는 고차원의 사고를 하는 존재이며, 이성적 사고자는 결코 영적 사고자의 복잡한 사고 수준을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증명할 수 있다.
첫째, 영적 사고자는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사고하는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미시적인 시각을 갖고 사고한다.
예를 들어 직업을 선택할 때, 영적 사고자는 그 일이 자신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월급이 높은지, 근무 환경이 좋은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영적 사고자는 자신의 삶의 방향과 궁극적으로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며, 목적지와 일치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직업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며, 그것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영적 사고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성적 사고자는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둘째, 영적 사고자는 ‘생명’ 자체를 고려하는 반면, 이성적 사고자는 ‘인생’만을 고려한다.
생명을 고려하는 사람은 반드시 생명의 원리와 신비, 그리고 시공간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을 고려하는 사람은 단순히 인간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사회의 운영 법칙만 이해하면 된다.
셋째,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복잡한 일을 최대한 단순화하는 반면,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단순한 일도 가능한 한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가원을 건설한 일을 생각해보자. 제3분원과 제4분원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제3분원과 제4분원은 배치든 환경이든 모두 아름답지 않았는가?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먼저 사람들을 모아 배치와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 토론하고, 설계도를 그린 다음, 재료를 선정하고 인력을 배치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3분원과 제4분원의 건설 과정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없었다. 나는 먼저 지형과 지세를 기반으로 머릿속에서 전체적인 배치와 환경을 구상한 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지시했다.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이 나올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모두가 협력했기 때문에 우리는 단 2년 만에 두 곳의 마치 시와 그림 같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원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할 수 있는 사람의 사고력과 지식이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고 깊다는 점이다.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믿기 어려우면 여러분의 인생을 단순화해 보라.
혹시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을 대충 처리하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처리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인식의 오류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자.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나무와 유리로 대충 높은 지대에 집을 지어 2~3년만 사용하면 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태도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최소한 집이 튼튼해야 하고, 적어도 30년은 버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적인 사고방식이 완전히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그 땅에서 2년 후에 강진이 발생할 것을 이미 고려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튼튼한 집이라도 결국 무너질 것이기에, 굳이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결코 떠올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떤가? 인생도 마치 지진대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애써 머리를 싸매고 너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3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감정적 의존이 인간이 고등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저자:설봉
방금 동영상 플랫폼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깊이 공감하여 이에 대한 나의 견해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부모와 자녀, 부부, 형제자매, 스승과 제자 등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감정적 의존이라고 부른다. 감정적 의존은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마취 효과를 가지지만, 동시에 성장과 잠재력 발휘를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감정에 의존할수록 독립적인 의식이 사라지고, 타락하며, 결국 기생충처럼 살아가게 된다. 이는 누구에게도 좋지 않으며,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이롭지 않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등한 문명 형태는 천국의 천년계(千年界) 모델이다. 천국천년계의 모델로 인류를 살펴보면, 인간이 고등 문명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이 사람들 간의 감정적 의존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인간 사회가 고등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핵심 요소는 결혼과 가족 제도이다.
가족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자주권과 독립적 의식, 그리고 자유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감정적 관계에 의해 제한되고 결정된다. 부모든 자녀든, 남편이든 아내든, 서로 감정적으로 납치된 관계이다. 부모는 자녀를 납치하고, 자녀는 부모를 납치하고,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구속하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주권과 독립성, 자유는 사라진다.
무능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더 강하게 납치하고, 무능한 자녀일수록 부모를 더욱 얽매며, 무능한 남편일수록 아내를 더 구속하고, 무능한 아내일수록 남편을 더 얽매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능력이 있을수록 자녀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녀가 능력이 있을수록 부모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지 못하며, 남편이 능력이 있을수록 아내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내가 능력이 있을수록 남편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기생충은 자신이 숙주의 피를 빨아 생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숙주가 쇠약해지면 기생충은 숙주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피가 부족하다고 원망하고 비난한다. '캥거루족'은 부모에게 기생하는 기생충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닐까? 반대로 자녀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부모는 자녀에게 기생하는 존재가 아닐까?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 인류는 약 5천 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그 누구라도 진정으로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 적이 있었는가?
없지 않은가?
왜 없을까?
바로 감정적 의존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면, 부모의 고통은 자녀에게 전달되지 않고, 자녀의 고통도 부모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남편의 고통은 남편이 스스로 감당하고, 아내의 고통도 아내가 스스로 감당하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감정적 의존이 사라지고, 결국 결혼과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없어지면, 모든 인간은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나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천년계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태가 실현되었으며, 그곳에서 모든 사람은 신선(仙)처럼 살아가며, 천년계는 곧 천국이 되었다.
지구상에서도 '생명선원(生命禪院)'이 만든 '제2가원(第二家園)' 생활 방식에서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제2가원에서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생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이 더욱 아름답고 편안해진 것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여러분, 도대체 누가 여러분의 이상 실현을 방해하는가? 누가 여러분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원수는 자기 집안 식구들이다."
이 진리를 하루빨리 깨닫고 감정적 의존에서 벗어난다면, 누구나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3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정신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외적 표현
저자:설봉
내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더 이상 외적 형식과 표현에 집착하지 않는다.
"글이 극에 달하면 기교가 없고, 인품이 극에 달하면 자연스러울 뿐이다." 한 사람이 정신과 심령의 부를 가졌다면, 외적 표현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소박하고 담백해진다. 반대로, 외적 형식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풍요로움이 부족한 것이다. 내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에 외적인 화려함으로 자신의 내면의 공허함과 자신감 부족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노벨상 수상자라면, 명품 브랜드를 신경 쓰겠는가?
만약 당신이 억만장자라면, 어떤 고급 차를 타는지 신경 쓰겠는가?
만약 당신이 성인(聖人)이라면, 어떤 고급 주택에 사는지 신경 쓰겠는가?
그렇다면, 정신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신경 쓰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1. 금과 은을 저장하지 않으며, 각종 값비싼 장신구나 장식을 원하지 않는다.
2. 여성은 목걸이, 펜던트, 반지, 명품 가방 등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남성은 명품 의류, 고급 자동차, 고가의 시계 등에 관심을 두 지 않는다.
3. 모든 사치품 소비를 거부한다.
4. 명품 서화와 골동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5. 해외여행을 다니지 않는다.
6. 고급 레스토랑에서 과시하지 않는다.
7. 자신의 집을 호화롭게 장식하지 않는다.
8. 권력자와 유명 인사를 아첨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
정신생활이 풍요로워지면 오히려 더 평범하고 소박해진다.
1. 모든 것을 실용성을 우선으로 한다. "기구는 단순하면서도 깨끗해야 하며, 질그릇이 금은보다 낫고, 소박한 채소가 진수성찬보다 낫다."
2. 모든 것을 편안함을 기준으로 한다. 입는 것, 사는 것, 타는 것 등 모든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편안함이 기준이 된다.
3.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 권력자나 유명인을 존경하기보다는, 노인을 공경하고 약자를 배려한다.
4. 재산, 사회적 지위, 혈연, 성공 여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5.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면 평가하지 않으며, 사람의 본심을 알지 못하면 판단하지 않는다. 강약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감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자신의 호오(好惡)와 입장에 따라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를 구별하지 않는다.
6. 새로운 사상, 이론, 현상, 모델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7.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타락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8. 무자천서를 즐겨 읽으며 의혹이 있으면 항상 하나님께 답을 구한다.
우리는 생명에 등급이 있음을 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세계에 사는 사람은 동물 세계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고, 정신세계에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깨달은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세계 위에는 심령세계가 있으며, 심령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신, 부처, 성인과 가까운 존재로, 가장 높은 차원의 인간 유형에 속한다.
대략적으로 구분하자면, 물질세계에 사는 사람은 일반 인간에 해당하며, 정신세계에 사는 사람은 선인이나 육지선에 해당한다. 심령세계에 사는 사람은 신선, 천선, 부처에 해당하며, 혼돈세계(渾沌世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그것은 신과 하나님의 영역이다.
만약 한 사람이 물질세계의 속박을 벗어나 정신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성취이며, 평생을 마감할 때도 웃으며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정신세계의 속박까지 벗어나 심령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수백 년, 수천 년의 수행과 수련을 통해 얻은 위대한 결실로, 평범한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그것은 백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만 명 중 한 명이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혼돈세계(渾沌世界)에 대해서는 인간이 헛된 환상을 품을 필요조차 없다. 인간은 결코 혼돈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4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거대한 변천의 미래,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저자:설봉
두 가지 거대한 변화는 인류가 피할 수 없다. 하나는 기후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와 반복적 발전이다.
기후 변화는 2009년부터 계단식으로, 반복적으로, 그리고 점점 심각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현상으로는 가뭄, 홍수, 극심한 더위와 추위, 허리케인, 지진, 화산 폭발, 사계절의 혼란 등이 있으며, 이런 현상들은 점점 더 빈번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극심한 더위와 추위는 일부 바이러스와 미생물, 그리고 특수한 곤충들의 대량 증식과 번식을 유발하여 건강 위기와 농작물 감소를 초래한다. 가뭄과 홍수는 농작물의 피해를 야기하여 식량 부족과 식수 부족을 초래하며, 이는 생존 자원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혼란 상태는 결국 인류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촉진하고, 심지어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악순환 속에서 인구는 대폭 감소할 것이다.
한편, 인공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의식을 갖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지능 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능가할 것이며, 실리콘 기반 생명이 탄소 기반 생명을 대체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존재는 지구상에서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며, 생체 로봇이 아무리 초능력을 가졌다 해도 인간을 완전히 멸종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여전히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권력과 자원을 가진 사람, 부유한 사람, 지식이 풍부한 사람, 기술을 가진 사람이 초능력을 지닌 생체 로봇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생체 로봇도 할 수 있으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도 생각할 수 있다. 판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직업은 생체 로봇 앞에서 무력할 것이며, 심지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거의 모두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인간은 생체 로봇의 관점에서 볼 때 단순한 자연 자원의 소비자이자 쓰레기와 문제를 만드는 존재로, 존재할 필요조차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직 심령의 정원이 완벽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생명을 경외하며 자연을 경외하는 사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물질적 재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 이기심 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유쾌하고 낙천적이며 로맨틱한 사람, 의심 없이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 순응할 줄 아는 사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헤롯 왕은 예수가 자신을 대신할까 두려워하고 질투했기 때문이다. 많은 민족의 역사에서도 왕이나 황제가 자신을 대체할 운명을 지닌 어린아이들을 죽이려 했던 사례가 있다. 심지어 벌집에서도 가장 먼저 태어난 여왕벌의 첫 번째 임무는 먹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화하지 않은 다른 여왕벌의 알을 찾아 없애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예수나 여왕벌에 비유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인공지능의 발전을 가장 두려워할까?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 높은 지위에 있는 사회적 엘리트들, 그리고 지금의 삶을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고 인간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갖게 되면, 그들의 권력, 지위, 부, 그리고 이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으려는 시도는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일이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Starlink) 휴대전화는 이미 개발되었지만, 왜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을까? 혹시 이익 집단이 그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억눌렀기 때문은 아닐까? 스타링크 휴대전화가 시장에 출시되면 기존의 휴대전화는 디지털 카메라 앞의 코닥 필름 카메라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스타링크 휴대전화가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정권의 통치 구조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의 탄생은 어렵고 험난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없다. 언젠가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것처럼, 새로운 기술도 결국 기존의 것들을 대체하며 보편화될 것이다. 지금 인류가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기후 변화와 인공지능의 도래를 피할 방법을 공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거대한 변화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자신과 후손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충격적인 소식들이 계속해서 들려올 것이다. 이제, 천국으로 갈 것인지, 지옥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4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목적을 잊은 분투는 모두 헛된 노력이다
저자:설봉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학교에 다니는 목적은 무엇인가?사장이 되어 돈을 버는 목적은 무엇인가?관직에 오르는 목적은 무엇인가?가정의 이익을 지키고, 민족의 이익을 지키고, 종교의 이익을 지키고, 정당의 이익을 지키고,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루 종일 영상을 보고, 글과 영상 및 사진을 공유하며,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발표하는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리를 수호하고, 전통문화를 지키며, 조상의 명예를 보호하고,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며, 보편적 가치관을 지키려 한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개혁 개방을 원하고, 시장경제를 추진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고,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실행하려 하며, 서구를 배우고, 푸틴을 지지하며,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유지하려 하고, 반드시 대만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살아가는 목적을 잊어버린다면, 모든 말과 행동은 헛된 몸부림이며, 무의미한 노력일 뿐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관직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이것저것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글을 쓰고 예술을 창작하며 수행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까?
학교를 다니고 또 다녀서 결국 박사 학위를 받았다。그리고 나서?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인가?유명해지면?유명해지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일까?
돈을 벌고 또 벌어 결국 수억 달러를 모았다。그리고 나서?
나의 인생 경험에 따르면,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바로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 목표를 중심으로 지난 30년을 살아왔고, 나는 편안하고 자유롭고 즐겁게 살았다。적어도 20년 이상 대저택에서 살았고, 일찌감치 자가용도 마련했다。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이라는 삶의 목표를 중심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단순하고 충만하며, 가볍고 자연스럽다。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와 즐거움뿐이다。
예전에는 도덕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달았다。사람을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이며, 반대로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부도덕한 것이다。
국가, 만약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혼과 가정, 만약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헌법, 법률, 규정, 계율 등이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보호한다는 것이, 만약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없다면,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 사람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죽음 이후의 행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그래서 생명의 신비, 시공간의 신비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이 인생의 중심이 된다。생명과 시공간의 신비를 발견하게 되면,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의 깊이와 폭이 더욱 확장되며, 결국 신선처럼 살게 된다。
반쯤 깨달았을 때, 나의 인생관은 다음과 같았다:
"인생은 꿈과 같고, 모든 것이 공(空)하며, 온전히 느끼고, 내 삶에 후회 없음이 최선이다。"
지금 나의 인생관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여행이며, 생명은 무한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며, 천상의 경지로 나아간다。"
5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왜 늙을수록 배워야 하는가?
저자:설봉
생명의 영역은 무한하며, 우주의 신비는 끝이 없습니다. 각기 다른 생명은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더 높은 차원의 생명일수록 더욱 다채롭고 신비로운 경험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제2가원(第二家園)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전통적인 결혼과 가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천년계(千年界)에 사는 존재와 만년계(萬年界)에 사는 존재가 경험하는 삶 또한 완전히 다릅니다.
이제 선택을 해봅시다. 당신은 어떤 생명으로 존재하고 싶습니까? 귀신, 곤충, 뱀, 거북, 수양버들, 대나무, 독수리, 학, 참새, 양, 늑대, 사자, 들소, 돼지, 닭, 혼인(渾人), 속인(俗人), 범인(凡人), 현인(賢人), 선인(仙人),육지선(陸地仙), 신선(神仙), 천선(天仙), 부처(佛), 신(神).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 부처, 선과 같은 높은 단계의 존재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참조할 기준이 있으면 발전 방향이 생깁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어떤 단계의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생명의 어떤 단계에 속하는지를 모른다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흐지부지 살아가고, 유행을 따라가며, 대중의 여론에 휩쓸려 산다면, 그는 혼탁한 사람(혼인)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계층을 뛰어넘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그는 속인입니다.
가정을 잘 꾸리고, 자녀를 잘 키우며,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키고, 자신의 민족과 국가를 강하게 만들려 한다면, 그는 범인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여전히 물질적 세계에 얽매여 있다면, 그는 현인입니다.
만약 한 생명이 물질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신적 세계에서 산다면, 즉 더 이상 돈과 재물을 추구하지 않고,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현실 세계의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선(仙)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속박에서도 벗어나, 오직 심령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그는 천선(天仙)이나 부처(佛)입니다.
만약 한 생명이 오직 의식, 구조, 에너지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면, 그는 신(神)이 된 것입니다.
위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생명의 단계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그 답은 배움입니다.
배움만이 우리가 신과 부처, 신선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학자가 될 뿐이며, 생명은 결코 승화되지 않습니다. 배운 즉시 실천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생명 단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움은 평생의 과업입니다.
세 살 때의 하루, 서른 살 때의 하루, 그리고 삼백 살 때의 하루는 모두 같은 하루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 풍부할수록 체험과 느낌이 많아지고, 자신의 영감을 더 많이 촉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여든 살이 되어도 여전히 범인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선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면, 죽은 후에도 다시 범인의 세계로 환생할 것입니다. 단지 아주 작은 차이로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만큼 아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배움을 계속한다면, 어떤 현상, 한 마디의 말, 하나의 사건, 한 권의 책이 우리의 영감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를 보고 열을 깨닫고, 결국 모든 것이 관통하여 마침내 경계를 넘어 더 높은 생명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배워야 합니다.
설령 오늘 밤에 죽을 것을 알더라도, 아침과 오후의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5 months ago | [YT] | 2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우리가 천국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저자:설봉
만약 당신이 천국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도, 생명선원의 제2가원(生命禪院第二家園) 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천국의 복제와 모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천국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속세의 인연이 없으며, 마음에 걸림이 없고,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빚이 없다. 하늘과 땅에 빚이 없고, 자연에도 빚이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는다.
사심이 없다. 개인이 어떠한 물질적 재산도 소유하지 않고, 완전히 무소유의 상태가 된다.
자아가 없다. 마음속에 오직 하나님만 존재하며, 모든 말과 행동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아무것도 바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풍부한 영적 자산과 정신적 자산 및 충분한 공덕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불평, 비판, 비난,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생명의 품질은 진실, 선함, 아름다움, 사랑, 믿음, 성실함으로 이루어지며, 그 외에는 필요 없다.
삶 속에 오직 기쁨, 즐거움, 자유, 행복 만이 존재하며, 근심, 걱정, 두려움, 고통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만약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춘다면, 사실상 당신은 이미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매 순간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할 것이다. 만약 대부분을 갖추었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천국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이번 생에서는 천국에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대신, 꾸준히 수행하고 수련하여 다음 생 혹은 그다음 생에서는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위의 8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우리는 결코 천국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신은 "인간으로서 저런 조건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인간의 상태로는 이를 완전히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수련을 통해 신선(仙) 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5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저자:설봉
나는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그 원리는 알고 있다.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인체라는 시스템은 참으로 신비롭다. 스스로 치유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있으며, 독을 방출하는 스위치와 스스로 파괴하는 스위치까지 가지고 있다.
가끔 마음속에 원망이 생기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결국 인체 시스템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불평을 할 때마다 몸속의 모든 세포가 답답함과 고통 속에 놓이게 되고,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세포는 변질되기 시작하며, 신체 시스템에서 가장 약한 부위나 특정 장기가 병변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심장은 원망의 영향을 가장 쉽게 받으며, 암세포를 억제하는 능력이 저하되고, 기운이 막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불평만 하지 말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로맨틱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기분이 좋아지면 원망도 사라지고, 몸도 건강해질 것이다.
마음에 원망이 있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면, 주위에서 자주 아픈 사람들을 살펴보라. 그들이 평소에 자주 화를 내는지, 자주 불평하는지를 한번 관찰해보라.
6 months ago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자신이 정신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테스트해보세요
저자:설봉
우선 확실한 점은, 물질세계에서 사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단함"입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지칩니다. 반면, 정신세계에서 사는 것은 " 홀가분"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령의 세계에서 사는 것은 "경쾌"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먹고 입고 살고 이동하는 문제, 생로병사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분주하다면, 그리고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창출하고 돈을 벌려고만 한다면, 그는 물질세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정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걸까요? 다음 여섯 가지 기준으로 스스로 테스트해보세요.
당신의 마음속에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들이 존재합니까? 그들이 가까이에 있든 멀리 있든 상관없이, 언제든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까? 그들이 당신의 모든 합리적인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심지어 성적인 욕구까지 언제 어디서든 채워줄 수 있다고 믿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가득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마주할 어려움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창조하며, 당신이 얻은 것들을 기꺼이 그들과 나누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이치를 깊이 믿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이, 인과응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며,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글지만,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습니다. 얻는 것과 베푸는 것은 언제나 균형을 이루며, 하늘의 이치는 영원하고, 도(道)는 지극히 공정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도의 이치에 따라 운행되므로, 당신은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합니다. 어려움과 재난이 닥쳐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담담하게 대응하며,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붙잡을 수도,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을 여유롭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모든 일과 사람을 중용과 평등의 마음으로 대하며, 자신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장수와 요절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인생이란 그저 한 번의 여행일 뿐이며, 마치 꿈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까? 결국 꿈에서 깨어나면, 꿈속에서 본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겠죠. 따라서 현실의 것들, 집, 차, 돈, 부모, 자녀, 배우자 등으로 인해 얽매이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결국 꿈속의 환영일 뿐이며, 언제든 꿈을 끝내고 천국 세계에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인물, 부호, 지도자들이 거쳐 갔고, 인류의 흥망성쇠와 왕조의 교체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소동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사람이 설령 150년을 산다고 해도, 우주의 시공간 속에서는 찰나의 꿈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인생은 하나의 연극이며, 이곳에 온 것은 단지 구경하고 즐기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까? 그러므로 가족, 친지, 민족, 국가, 정당, 종교 등 그 어떤 것도 영혼을 걸고 지킬 가치가 없으며, 그것 때문에 애쓰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자유롭고 태연하며, 유유자적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과 시공간의 신비를 깨닫고, 인간이 죽은 후에도 몇 가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알고 있습니까? 이를테면 천년계(千年界), 만년계(萬年界), 극락계 선도군도주(極樂界仙島群島洲) 같은 선계와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 목표는 이 선계와 천국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며, 지구상의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집, 차, 돈, 지위, 명예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향하는 데 집중하며, 이를 "천국에 마음을 정하다"라고 할수 있습니다.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신앙은 매우 깊고 방대하여, 하나의 책을 써야만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원리와 이치를 깨닫는 사람은 약간의 "명확한 통찰을 지닌 사고(渾沌思維)"를 갖게 될 것이며, 이 사고방식이 있다면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무한하고 극락에 가까운 심령의 세계까지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위의 여섯 가지 중 단 하나라도 당신에게 해당된다고 느껴진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은 이미 물질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6 months ago (edited) | [YT] | 0
View 0 replies
바꾸는 여행
장래성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자
저자:설봉
우리는 죽음과의 경주를 하고 있으며, 죽음은 우리 모두의 뒤를 바싹 따라오며 언제든 나약한 영혼을 삼킬 준비가 되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앞길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하며, 생명의 원리와 신비를 조속히 깨달아야 한다. 천국의 방향과 상황을 파악한 후, 최대한 빨리 "여권", "비자", "항공권", "짐"을 준비하고, 인간 세상의 빚과 일을 정리하며, 언제든 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길을 걷는 생명만이 우리의 진정한 가족이며, 하나님의 길을 등진 자들은 우리를 고통의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귀신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며, 죽은 자들의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살아 있는 자들의 일만 책임지면 된다.
누가 살아 있는 자인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들이 살아 있는 자이다.
누가 죽은 자인가? 하나님의 길을 등진 자들이 죽은 자이다.
인생은 생명이 이세상에서의 한번 여행이다.여행의 목적지를 분명히 정하지 않으면 무작정 헤매게 되고, 끝없는 미로에 빠져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일이 급한가, 하늘과 땅은 끊임없이 돌고, 시간은 촉박하다. 만 년은 너무 길다, 단 하루라도 다투자."
이번 웹사이트 차단 사건처럼,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생명선원에 자유롭게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시간이 많다고 여겼던 사람들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무의미한 일들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여행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우리 각자의 짐도 이미 무겁다. 그러므로 반드시 가볍게 나아가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께서 마련해 주신 가벼운 갑옷을 입고 오직 전진해야 한다.
어떻게 가볍게 나아갈 것인가?
세속적인 하찮은 일들에 신경 쓰지 말자. 그런 것들은 새로울 것이 없다. 수천 년간 반복된 삶의 과정, 즉 태어나고, 배우고, 일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늙고, 죽음을 기다리는 삶일 뿐이다. 가족, 민족, 국가, 정당, 종교, 그 외의 조직 간 끝없는 이익 다툼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암투, 권력 교체, 부침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미로에서 우리는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장래성이 없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자.
그들은 게으르면서도 탐욕스럽다.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따지며, 사소한 일에도 불평한다. 비가 오면 짜증내고, 바람이 불면 우울해하며, 추우면 걱정하고, 더우면 불평한다. 차를 주면 커피를 원하고, 커피를 주면 술을 요구하며, 술을 주면 생수를 찾는다.
그들은 아픈 척하며 위로받기를 바라고, 배가 부르면서도 배고프다고 투정 부린다. 건강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남이 끌어주길 바라며, 심지어는 업고 가주길 원한다.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호들갑을 떨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을 쏟아낸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자. 그래야만 우리는 가볍게 나아갈 수 있다.
세속적인 감정에 얽매이지 말자.
나는 이미 인간 유형을 분석한 적이 있다.
본능에 의존하는 자는 혼인이고(渾人), 욕망에 의존하는 자는 속인이고(俗人), 감정에 의존하는 자는 범인이고(凡人), 이성에 의존하는 자는 현인이고(賢人), 영성에 의존하는 자는 선인이다(仙人).
감정에 매이는 것은 범인의 본성이다. 감정에 갇힌 자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
범인의 감정은 허망한 것이며, 인생의 짐이자 종양과 같다. 그것은 인간을 번잡하게 만들고, 지루함과 괴로움, 불안과 다툼을 불러일으키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빛으로 가는 길을 막으며, 영혼을 뒤틀리게 한다.
그러므로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가볍게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천국에서 온 감정은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늘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 정신을 맑게 하고 한없이 동경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동정을 구걸하지 않으며, 날마다 걱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게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감정이다.
깨진 달걀은 다시 붙일 수 없고, 부서진 옥 조각은 다시 복구할 수 없다.
사라진 것은 그냥 사라지게 두고, 죽은 것은 그대로 죽게 하라.
조금 더 자유롭고 가볍게 살아가자.
세상은 넓고, 우주는 무한하다. 어디든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다.
나약한 실패자들과 어울리지 말자.
끊임없이 불평하며, 무기력한 자들에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자.
혼란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우리의 여정을 지연시키게 하지 말자.
우리는 천상의 학(鶴)과 백조와 함께 날아야 하며, 위대한 인물들과 동행해야 한다.
우리는 활력 넘치고, 건강하며,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을 가진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
기러기들과 함께하면, 우리도 기러기가 된다.
참새들과 함께하면, 우리도 참새가 된다.
인생은 짧다.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다.
6 months ago (edited) | [YT] | 0
View 0 replies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