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화창했다. 구름도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
도서관 옥상 끝 난간에 여자아이가 서 있다. 난간을 이리저리 힘없이 그러나 위채롭게 걸어가고 있다.
‘쾅!!!’
옥상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크지만 뚜렷한 눈매, 오똑한 콧날, 부드러운 입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옥상문을 부수며 들어오는 경수. 잘 생겼다. 반팔 티셔츠 차림에 오른팔에는 아까보다 푸른 기운이 더욱 강하게 감싸고 있다.
경수의 팔은 뿔달린 그림자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푸른 기운이 감싼다. 그림자에게로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경수는 소녀를 발견하자마자 소녀에게 달려가면서 오른팔에 들고 있던 물로 만든 수검을 날렸다.
‘에잇~~!!’
수검은 푸른 빛을 안고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검은 영적인 검이기에 맞는 사람에게 신체적인 손상은 없다. 다만 물에 젖을 뿐~~물론 그 안에 있건 불결한 것은 상처를 입지만 말이다.
소녀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던 수검은 소녀의 심장을 뚫기 직전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은 검에 막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흐흐흐흐~~”
경수는 음침한 소리에 놀라 크게 소리를 지른다.
“너는 무엇이냐~~?!!”
“어린 소녀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경수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주위 아파트를 울린다.
“흐흐흐흐흐~~”
그리고 귀가에 소곤소곤대는 소리가 음침하게 들려온다.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供え物だ。소나에 모노다~~~”
경수는 뒷주머니에 생수병을 빼어내어 공중에 물을 뿌리면서 소리친다
“뭐라고?~~~이 새끼가~~”
검지와 중지를 모아 물이 뿌려진 물방울 사이로 검이란 글자를 쓰며 팔을 휘두른다.
경수의 손에는 아까보단 작은 검들이 네 개가 만들어지며 양손에 두 개씩 나누어 가졌다.
왼손과 오른손에 작은 검을 하나씩 소녀에게 날리며 소녀를 향해 뛰어간다.
소녀의 그림자에서 검은 검이 나올 것을 대비해 시간을 두고 오른 손의 남은 검을 던지고 왼손의 검은 들고 있는 채로 달려간다.
예상대로 소의 그림자에서는 검은 검이 출현하고 날라오는 두 검을 차래로 막아낸다.
그리고 다시 날라오는 검 하나를 막으려는 순간 경수가 검은 그림자의 눈앞에 나타나며
소녀의 가승에 왼손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수검으로 소녀의 가슴을 찌른다.
‘퍽~~~’
소녀의 가슴에서 물방울로 변한 수검
소녀는 경수에게 안기고 검은 그림자속의 뿔은 스르륵 사라진다.
“흐흐흐흐흐흐~~~”
“供え物だ。소나에 모노다~~~”
소름이 돋을 듯한 작은 목소리가 귀에 소곤소곤 대며 사라진다.
소녀는 기절한 듯 경수에게 안겨있다.
소녀는 정신을 되찾은 듯 눈을 뜨는데 뿌연 얼굴이 점차 뚜렷해지며 잘생긴 오빠가 날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경수는 소녀의 허리를 받치고 안고 있는데 눈이 아래로 내려가자 소녀의 가승 언저리가 물에 젖어 속옷 실루엣이 교묘히 비친다. 경수는 깜짝 놀라 소녀를 놓치고 당황해 한다. 옆에는 쓰러진 생수병에 물이 조금씩 흘러 마당을 적시고 있다.
어디서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자그마한 모든 게 커져만 가~~~’
언제나 수검을 사용하면 이게 문제다. 피해자가 여성이면 서로 창피하기 일쑤다. 겨울이면 외투가 두꺼워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여름이면 물에 젖은 실루엣이 아찔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수동 최씨 아저씨는 좋은 구경이라며 부러워하지만 경수는 아직 어리다.
그림자를 잡기 위해 던지 수검은 언제나 피해자의 심장을 향해 던져야 한다. 처음에 싸울 때는 그림자를 향해 던졌지만 소용 없었다. 피해자는 여전히 그림자에 잠식당해 있었고 몸으로 막아도 피해자는 인사불성이었다. 눈은 뒤짚혀 있고 막무가내로 죽으려고만 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어린 나이라 힘도 스피드도 부족했다. 수검을 만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몸으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싸우면서 그림자를 없애는 요령도 생기고 배달일을 하면서 짐을 나르다 보니 근육도 점차 붙었다.
소녀가 일어나며 경수에게 묻는다.
“어떻게 된 거예요~~?”
경수는 소녀의 젖은 교복 때문에 눈을 하늘로 돌리며 말한다.
“학생이 옥상에 올라와서 저기서 떨어지려 했어요~~”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는 소녀의 가방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
소녀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며 말한다.
“아 ~~그래요~~?”
경수는 여전히 먼산을 보며 소녀에게 겸연쩍게 말한다.
“그러지 마요.~~다 지나가요~~아무것도 아니에요~~”
경수의 말을 들은 소녀가 바닥에 눞혀져 있던 가방을 들고 수줍게 경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저 배고파요~~”
경수가 당황해 한다.
“아~~~배~~배고프구나~~~”
이것도 문제다. 난 뿔달린 그림자를 찾아 자살을 막으려 한 것 뿐인데~~
피해자 소녀들과의 마지막은 언제나 밥이다.
“그래 밥먹자~~”
“생일 축하 합니다~~~생일축하 합니다~~사랑하는 우리 채영이~~”
생일축하 노래가 거실 한아름 가득찼다.
오랜만에 아빠는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서 채영이가 좋아하는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이제 대학생도 되고 했으니 예쁜 옷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빠가 한 번 골라봤어~~”
“짜잔~~~스커트~~랑 블라우스~~!!”
“와 아빠 최고~~근데 내 사이즈는 어찌 알아?”
“아~~그거는 엄마에게 물어봤지~~”
엄마가 내심 부러운 듯 심술난 듯 투정을 부린다
“와 이쁘다~~근데 너무 레이스가 많은 거 아냐?”
“우리 공주님에게는 레이스가 맞지~~”
“어머 어머~ 뭐야 나보다 딸이 좋단 말이야?~~”
“남편!! 이리와 봐~~”
엄마의 손가락이 아빠를 향하며 손가락을 까딱인다.
도망가는 아빠. 쫒아가는 엄마~~
“엄마~~엄마 선물은~~?~~엄마?”
아빠를 쫒아다니는 엄마는 채영이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채영이 주위를 빙빙 돌던 아빠와 엄마는 어느 방안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환하던 거실이 일순간 어두워진다.
“엄마~?
“아빠~~!!”
고요해진다. 적막에 숨이 막힌다.
“아빠~~~~~!!!” 채영이 소리친다.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검붉은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작게 소곤거리며 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즐거웠나?’
“누구세요?~~~”
‘니가 꿈꾸는 삶을 내가 잠시 보여준거야~~어때 즐겁지?
“네~~근데 누구세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꿈꾸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지~~그저 엄마 아빠의 작은 관심만 필요한 건데~~‘
’근데 네 아빠는 어디있나? 그리고 네 엄마는?~~‘
채영은 안방문을 열어 방안을 확인한다. 아무도 없다. 작은방으로 달려가 작은방을 열어 젖힌다. 또한 아무도 없다. 또 다른 방, 화장실, 창고 모두 열어 젖히지만 결국 아무도 없다.
어둠은 물어보았다.
’없지~~?‘
그리고 어둠은 확정지었다.
’없어~~~!!‘
그리고 속삭였다.
’난 알고 있어~~ 너는 혼자야~~‘
그리고 계속 소근거린다.
’너는 사랑받아야 할 아이야~~근데 넌 혼자야~~‘
’엄마도 아빠도 너보다 자신들의 일이 더 소중하지~~‘
’너는 엄마 아빠에게 귀찮은 존재일 뿐이야‘
채영은 눈물이 났다. 눈물을 참고 싶었지만 계속 눈물이 났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한창 엄마 아빠의 관심이 필요한 여고딩이지만 엄마와 아빠는 집에 없다. 아빠는 일이 바빠 짐에 잘 안 들어온지 오래고 엄마도 언젠가부터 밤 늦게 집에 들아와 새벽이 되면 나가기 일쑤다. 냉장고에는 몇 개의 배달음식이 남겨져 차갑게 식어있고 식탁위에는 언제 쓴지 모를 짧은 메모뿐이다.
’돈 보냈으니 밥 사 먹어‘
어둠이 뭐라하든 사실이다. 그냥 오늘 행복한 하룻밤의 꿈이다. 눈물이 쏟아졌다.
어둠이 속삭였다.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슬퍼해~~계속!!~~슬퍼해도 돼~~‘
’으흐흐흐흐‘
’으흐흐흐흐흐흐‘
소름돋는 웃음 소리가 채영에게는 위로 같았다.
채영이는 그때부터 표정이 안 좋아졌다. 친구들도 멀리하고 혼자 다니기 일쑤였다.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어깨는 쳐졌으며 땀을 많이 흘려 몸에서 쉰 내가 날 정도였다. 친한 친구 몇 명이 있었지만 채영이의 서늘함에 조금씩 말걸기를 주저했다. 채영이는 점점 힘이 없어졌다. 팔을 흔들며 걸을 수도 없고 선생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귀찮았고 모든 것이 짜증났다.
’그래~~슬퍼해~~우울해도 돼~~‘
’엄마 아빠도 관심 없는데~~ 좀 귀찮으면 어때?‘
귀속에 어둠이 계속 속삭였다.
빠르게 속삭일 때마다 귀를 간지러웠다.
어느덧 수업은 끝나고 터덜터덜 도서관으로 향한다.
턱~~턱~~쓱~~쓱~~발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신발끄는 소리가 번갈아 난다.
신발소리에서 채영이의 힘없음과 귀찮음과 짜증이 가득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신발끝자락에 그림자가 일렁였다.
순간 그림자 속에서 어둠에 회색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오늘이야~~‘
’맑고 순수한 영혼~~‘
’착하지? ~~으흐흐흐흐’
‘자 어서 가자~~~’
‘얼마나 좋아~~’
‘오늘은 니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
‘잊지마~~내가 니 편이라는 걸~~~으흐흐흐흐흐’
채영이 걸어간 그 길 뒤로 두리번거리는 경수가 있다.
태초신은 하나였다. 하나면서 셋이었고 아홉이었으며 열둘이었다.
태초신은 의지가 생기면 하나에서 분열한다. 의지가 셋이면 셋으로 분열하고, 의지가 아홉이면 아홉으로 분열한다. 의지가 다시 합쳐지면 다시 하나가 되고 의지를 내어주면 분열된 다른 의지에게 흡수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태초의 신이 하나일 때 강력했고 신의 의지가 나뉘어 여럿이 되면 나뉜 만큼 힘이 약해졌다. 그러니 태초의 신은 의지가 나뉘는 것을 경계했다.
다른 문명이 신을 어찌 부르든 반도에서 태초신은 환인 하나였다. 그리고 둘이 되었다. 하늘을 살고자 하는 환인과 바다에 살고자 하는 용왕이 그러했다.
하늘의 환인은 땅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 전에 아들을 낳아 땅을 환웅에게 주었다. 환웅의 아들이 한국의 역사에 새겨진 단군왕검이다.
용왕 또한 의지가 나뉘기 전에 아들 다섯을 낳아 다섯 바다를 나누어 주었다. 온화한 첫째에게는 태평양을 차가운 둘째에게는 대서양을 성격이 불같은 셋째는 인도양을 소심하고 조용한 넷째 다섯째에게는 북극해와 남극해를 각각 맡겼다.
나무는 자라고 숲은 무성하며 하늘은 가볍고 물은 차가워 태평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일이 일어났다.
태평양의 서북쪽이자 단군왕검의 동해에 바다 밑 땅이 찢어지고 용암이 흘러나온 것이다..
바다는 큰 파도를 만들고 폭풍우가 세상을 가득 메웠다.
단군왕검은 놀라 용왕을 찾았고 용왕도 갑작스러운 변고에 환인을 찾았다.
그리고 환인의 의지가 나누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세계가 확장되고 인간의 죽음 후 인간들을 모두 하늘나라로 다시 부를 수 없었다. 인간의 생전의 선악을 구분하여 선한 인간은 다시 환인의 세계로 부르면 되지만 악한 인간은 다시 부를 수 없어 연옥이란 공간에 잠시 머물게 했는데 그곳을 관장할 신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환인은 자식을 낳아 연옥을 맡기려 했으나 자식을 낳아 맡기기도 전에 환인의 의지 중 악을 흥미롭게 보는 의지가 먼저 분열되어 연옥과 지옥의 세계를 지금의 동해 바다아래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환인의 또 다른 의지, 바로 염라였다.
용왕과 환인의 오랜 대화 뒤에
하백이 조용히 술을 따르며 정중히 여쭌다.
”용왕님, 오늘은 저희 집에서 머무옵소서.“
”인연과 의지가 이끄니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오“
오랜 술자리가 다시 끝나고
하백의 집으로 옮겨 다과상을 차리는데 하백은 세 딸을 불러 용왕의 술 시중을 들게한다.
그러나 유화는 없고 위화와 훤화만 들어온다.
”유화는 어디있는 게냐?
위화와 훤화는 눈치를 살피다 말하길
“일전에 만났던 해모수와의 언약이 있어 유화는 나올 수 없다 합니다.”
“이런~~”
하는 수 없이 하백은 위화와 훤화만 용왕의 술상을 받들게 한다.
용왕이 훤화를 보며 말하길
“훤화(원추리꽃)은 화려하나 하루만에 꽃이 지니 신의가 없구려, 내 짝이 되기 어렵겠구나”
그리고 위화를 보더니
“위화(갈대꽃)은 수수하나 신의가 있으니 내 인연과 맞다”하였다.
밤새 용왕의 노래소리와 위화의 춤이 어울리니
큰 파도가 일렁이다가 잠잠해지고 부서지며 공중에 흩뿌려졌다.
7일째 되는 날
위화는 태기가 있고 배가 불러옴에 방에 들어가 아이를 낳는데 낳고 보니 아이가 아니라 알이었다. 알은 스스로 상서로운 빛을 내고 있기에 이불로 덮어 두고 하루 밤 하루 낮이 지내는데 북에서는 현무가 남에서는 주작이 서에서는 백호가 동에서는 청룡이 알을 보호하고 지켰다.
다시 7일이 지나고 알을 깨고 한 아이가 나오는데 울음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리고 눈빛은 별처럼 빛났다. 다시 7일이 지나자 걷고 말하기 시작했으며 다시 7일이 지난 후에는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데 한 끗도 어긋남이 없었다.
용왕은 아들의 아름을 처용이라 짓고 동해의 모든 일을 맡기고자 했다.
처용은 어머니의 땅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이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누어진 뒤에도 처용 이름으로 신라에 살 때도 있었으나 때로는 고구려의 을지문덕으로 환생하고 때로는 신라의 문무대왕으로 환생하여 어머니의 땅이 온전하도록 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명확하지 않으나 어머니의 땅이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해질 때마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 처용의 환생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고려의 강감찬이나 임진왜란의 이순신이 처용의 환생인인지 모를 일이다.
독도의 동도.
꼭대기 봉우리(지금의 대한봉)에 흰 도포에 흰 갓을 쓴 사내가 일본을 바라보며 서 있다.
눈매는 날카로우나 한없이 부드럽고 눈썹은 진하며 굵고 진한 목선에 하늘거리는 도포. 처용이었다.
큰 칼을 들어 동쪽을 가르키는데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일본 후지산이 있었다.
‘쿠궁~~~~’
해와 달을 뒤집는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으 솟아오르더니 독도에서도 보일만큼
큰 불꽃이 하늘로 타올랐다.
후지산이 폭발한 것이다.
“우연은 필연이니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구나”
처용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어머니의 땅 조선으로 향했다.
앞으로 올 무시무시한 싸움을 위해 자신의 현신을 찾기 위해.
아차산은 파릇파릇 새순으로 가득 찬 그래서 산 전체가 연록색인 그런 산이었다. 산 중간중간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수 놓는다 해서 산의 연록색이란 느낌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 아차산 아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 끝에 경수네 집이 있었다.
경수네 집은 2층 단독집으로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집안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대추나무가 자태를 드리우며 새잎을 채워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미 뽑아버린 쪽파 줄기가 누워있고 조그마한 상추들이 이제 막 심었는지 아담하기 그지 없었다.
현관을 열고 마루로 들어서면 회사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되지 않은 바쁜 아빠가 식사를 하고 있고 앞치마를 두르고 경수와 미란의 식사를 마저 준비하는 엄마의 요리 향기가 가득차 있었다.
아빠가 젊었을 때 잘생겼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진에서나 확인할 수 있고 현재는 배 나온 아저찌의 모습뿐이다. 젊을 때 수영을 해서 그런 지 몸이 제법 다부진 것 같아 보이긴 해도 회사 다니면서 매주 빠짐없이 참석한 회식의 결과야 어찌 막을 수 있었으랴
이에 비해 엄마의 미모는 살아있다. 미모뿐만 아니라 외형전체가 살아있다. 고1 아들과 중3 딸을 둔 엄마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어찌 아빠가 엄마를 꼬셨는지 알 수 없는 부분. 엄마는 당시 양궁선수로 둘이 체대에서 만난 cc라는데 아빠의 재미없는 아재 개그를 볼 때마다 요리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콩깍지라는게 있긴 있나 보다.
경수는 중3 때까지만 해도 살도 좀 찌고 머리도 더벅머리라 동생 미란이도 오빠보기를 돌같이 했다. 정말 돌같이 했다. 진짜 돌.
경수가 말을 걸면
“돌이 말을 거네”
경수가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돌이 굴러다니네”
시크하게 혹은 멍때리는 표정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가끔 미란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경수의 잘생김에 호들갑을 떨면 멍한 표정으로 오빠 경수를 응시한 후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돌이 쓰잘데기없이 잘생겨봤자 돌이지 뭐~“
이런 무시에도 경수는 동생이 좋았다. 아마 엄마를 닮아서리라
젊을 때 엄마를 쏙 빼닮은 미란은 오빠에게는 냉랭하지만 동네 인싸다. 친구들과 동네를 주름잡지는 못해도 중3 딸들의 필수코스는 모두 섭렵한 상태다. 화장이며 교복치마 줄이기, 인생네컷에 코인노래방까지 ‘아주 논다’도 아니지만 ‘좀 논다’는 된다.
그래서 그런지 경수는 미란이 걱정이 된다.
경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키도 부쩍 자랐다. 친구 정환과 운동삼아 다니던 체육관에서 태권도도 조금 권투도 조금 배우기 시작하면서 몸이 다부져지기 시작했다. 그전에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코치가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은 알았다. 아마 엄마 아빠의 유전자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근육이 붙는 정도와 운동능력이 좋아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랐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 두툼한 팔뚝을 얻었다. 엄마는 이런 경수의 모습을 보고 태몽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미신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경수나 미란이 아니다.
이제 다부져진 몸이된 경수가 고1이 되고 멋을 알면서 이발소에서 헤어클럽을 다니기 시작하게되자 본격적인 ‘멋찜’이란게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수는 집에 올 때 작은 선물 상자를 종종 들고 들어 온 적이 있는데 미란의 친구들이나 그 친구들의 친구들, 그 친구들의 친구들 사이로 소문이 퍼져 아차산의 ‘은우’라 불리우게 된다. 소문이란게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과장되고 부풀려지는 법, 거기에 여자애들의 동경심이 동경심을 낳고, 애정과 징투에, 욕심과 사랑으로 경수네 짐을 휘감게 된다. 물론 미란은 잘생기고 몸좋은 돌멩이라 부르지만 말이다.
그 경수가 이제 고등학교 농구코트에서 농구경기를 하고 있다.
‘퉁~~퉁퉁~~~’
공을 튀기는 소리가 여자아이들의 함성소리에 묻혀졌다. 남자 고등학생들의 거친 숨소리도, 흐르는 땀방울이 반짝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셔도, 코드에 미끄러지다 멈춰지는 낥카로운 마찰음도 모두 여자애들의 사자후에 묻혀졌다. 약시 팬덤이란~~
”오빠 나 죽어~~~“
”경수오빠~~!!사랑해요“
”나의사랑 너의사랑 권경수!!!“
경수사랑 팬클럽이라해도 믿어 의심치 못할 그 사이로 경수의 점프가 아름다웠다. 손에 든 공은 긴 포물선을 그리고 링에 다가가는 순간 같은 편 정환의 골밑 싸움이 치열하다. 포물선을 그리던 농구공은 링 근처에 다가가더니 링을 스치지도 못하고 코드바닥에 떨어진다. 공은 골밑 싸움하던 친구들 중의 누군지 모를 머리통을 맞추고는 라인 아웃이 되었다. 그래도 여자아이들의 함성은 끊어지지 않으니~~정환의 어이없는 눈빛과 경수의 어색함~~여자아이들의 환호~~모든 것은 외모지상주의구나~~
정환의 노력에도 농구경기는 아쉽게 패배.
경수의 몇 번의 뻘짓이 있었지만 응원하는 여자아이들은 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 팀에 경수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경수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몸을 닦고 포타리스웨터를 마실 때 열광했다. 이 미친 인기에 다같이 몸서리칠 때였다. 분명 그 때부터였다.
이 함성소리 뒤편에 작은 여중생하나가 있었다. 경수는 응원하는 여자애들의 함성 뒤편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그 여자아이에게 시선이 멈췄다. 그냥 우연이었기도 했고 누군가 경수에게 그족을 보라고 고개를 인위적으로 돌린 것 같기도 했고 필연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냥 경수가 봐야만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 여학생의 얼굴도 가방도 펄럭거리는 치마도 구겨신은 신발도 아닌 그 여자아이의 그림자..
뿔달린 그림자를 말이다.
경수의 몸은 반응했다. 마시던 포카리를 친구에게 건네고 땀닦던 수건을 어깨에 걸치며 땀으로 적셔있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흩뿌리며 그 여자아이에게 말이다. 여자아이들의 함성은 더 커졌지만 여자아이의 그림자는 여자아이의 그림자 모습이 아닌 뿔이 있는 그림자가 명확해져 갔다. 그리고 경수가 다가서며 분명히 확인하려 하는 순간 갑자기 오른팔이 아려오며 푸른 힘줄이 두 팔뚝에서 튀어 올라왔다. 푸르스름한 기운과 함께.
여름엔 언제나 그렇듯 더운 바람이 땀으로 번질번질한 팔뚝을 때린다. '붕~~' 시끄러운 배기음을 내며 도로 위를 지나는 오토바이 배달 기사. '빠른 배달 퀵 배송'이란 글자가 검은 박스에 노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빨간 신호등이 끝나고 좌회전 신호와 직진 신호가 동시에 켜지자 오토바이는 천천히 좌회전을 하며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다.
"배달이요~~"
아파트 차단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자 경비원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차단문을 올려준다. 배달기사는 경비실쪽을 향해 손 경례를 하며 지나가는데 경비실 안은 어둑하니 보이지도 않는다. 아파트 동을 두 세 개 지나 마주한 곳은 제법 큰 놀이터. 아파트값이 비싼 동네라 뭐 다를게 있겠냐 싶지만 이 놀이터는 생각보다 좋다. 어디를 본 떠 만든 듯한 인공폭포에서는 시원해 보이는 물줄기가 흐르고 그 물줄기를 타고 작은 냇가가 형성되어 있다. 냇가 주변에는 동네 아이들이 맨발로 물장구치기 바쁘다. 아이들이 타는 시소도 반짝 윤이 나고 정글짐도 멋지다. 헬멧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땀으로 범범된 머리카락을 흐트러 뜨린다.
"배달 시키신 분~~아아랑 모카빵이요~~"
날렵하지만 선 굵은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어머~~여기요 여기~~"
아이들의 엄마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손짓을 하며 부른다.
"거봐~~잘생겼지? 맞아 맞아~~호호호호"
배달기사가 배달 상자에서 커피와 빵이 담긴 봉지를 꺼내 들고 오는 동안 아줌마들의 목소리는 들릴 정도로 컸다. 단지가 사방으로 막혀 있어 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리라 배달기사는 아줌마들의 곁눈질과 수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달 물건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188cm의 큰 키에 넓은 어깨 다부진 체격 거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집에서 평범한 남편들만 보고 있던 아줌마들에게는 일주일에 한두번 누릴 수 있는 호강이었지 모른다. 아줌마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물건을 건네주고 돌아서는 찰나 아줌마들은 그에게 이런 저런 칭찬을 해댄다.
"아니 너무 잘생기셨어요~~" "대학생이예요? 아르바이트?" "아 ~~~네.네.네"
마지못해 웃으며 아줌마들에게서 벗어나려 고개를 돌렸다.
그때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오토바이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축쳐진 어깨와 무거운 가방. 땀으로 반질반질해진 얼굴안에 담고 있는 상심 가득한 얼굴 얇은 티와 반바지. 탁탁 소리를 내며 끌려가던 슬리퍼 그리고 여고생의 그림자
'그림자~~~' '뿔이 달린 그림자~~?!'
'뿔이 달린 그림자!!'
배달기사는 아줌마들의 말섞임을 뒤로 하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냇가 근처로 갔다. 자세를 낮추어 검지와 중지를 모으고 물 위에 한자로 "검"를 새기기 시작했다. 물방울들이 일렁이더니 물 속에서 검의 모습이 드러나고 검의 손잡이를 쥐자 온전히 검으로 나타났다. 검을 쥔 손은 푸른 빛이 감싸고 검을 쥔 팔의 힘줄들이 하나 둘 씩 팔뚝위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모여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해 한다. "아저씨 쩔어" "와 신기해~~" "이거 무슨 마술이여요?" 그러나 아줌마들의 눈엔 배달기사가 냇물의 손을 담그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검을 든 배달기사는 검을 들고 아까 지나간 여고생이 간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뿔이 난 그림자를 없애야 해' '여고생이 위험해' 조금씩 빨라지던 걸음은 점점 급해지고 있다.
오징어게임 3 기생충 다음으로 가장 깊이 있는 시나리오였음
인간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면과
순간 상황마다 바뀔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잘 드러나고
돈을 중심으로 한 인간 세상에
사람다움은 어떻게 완성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음.
1 "왜 다시 게임을 하는가?"는
"사람은 게임 속 말이 아니다"를 게임 자체를 통해서 증명하려 했던 것.
게임의 부당성을 게임 밖이 아니라
게임 안의 사람들을 통해 근본적으로 없애려 했던 것
2 임시완의 연기가 일품이었음.
조유리에 대한 애정과 돈에 대한 욕망의 카오스를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번뇌를 순간적으로 잘 드러냄.
이정재가 임시완을 믿지 못한 것과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라는 이병헌의 대사가
오버랩되면서 드라마의 백미를 이룸
3. 숨박꼭질의 살인게임은
이정재가 게임에 다시 참여함으로써
이병헌이 이정재에게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임을 각인시키려 했던 것.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실.
이정재의 믿음을 깨기 위해 게임의 룰이 깨진 것.
이병헌은 이정재의 사람다움을 깨고 싶었던 것.
이병헌은 살인으로써 최종 우승자가 되었으니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싶었던 것
이정재의 게임참여는 게임의 룰이 흔들리게 했으니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음.
4 감독이 혼자 대본을 쓰는 게 맞음.
오징어 게임1편의 계층 사회의 상징성 에서 벗어나 2편 3편이 더 인간의 본질 탐구에 가까워 깊이 있는 시나리오였음. 이런 것은 같이 쓸 수 없음
ps. 클리셰를 지켜야 한다고? 아들이 엄마를 죽였어야 한다고? 아니다. 평론가들이 클리셰만 알고 낯설게 하기는 모르나 보다. 엄마가 아들을 죽이고 자살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더 생각해 보게 한다.
너머를바라보다
소설은 네이버 웹소설에서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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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5. 뿔 달린 그림자
날씨는 화창했다. 구름도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
도서관 옥상 끝 난간에 여자아이가 서 있다. 난간을 이리저리 힘없이 그러나 위채롭게 걸어가고 있다.
‘쾅!!!’
옥상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크지만 뚜렷한 눈매, 오똑한 콧날, 부드러운 입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옥상문을 부수며 들어오는 경수. 잘 생겼다. 반팔 티셔츠 차림에 오른팔에는 아까보다 푸른 기운이 더욱 강하게 감싸고 있다.
경수의 팔은 뿔달린 그림자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푸른 기운이 감싼다. 그림자에게로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경수는 소녀를 발견하자마자 소녀에게 달려가면서 오른팔에 들고 있던 물로 만든 수검을 날렸다.
‘에잇~~!!’
수검은 푸른 빛을 안고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검은 영적인 검이기에 맞는 사람에게 신체적인 손상은 없다. 다만 물에 젖을 뿐~~물론 그 안에 있건 불결한 것은 상처를 입지만 말이다.
소녀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던 수검은 소녀의 심장을 뚫기 직전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은 검에 막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흐흐흐흐~~”
경수는 음침한 소리에 놀라 크게 소리를 지른다.
“너는 무엇이냐~~?!!”
“어린 소녀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경수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주위 아파트를 울린다.
“흐흐흐흐흐~~”
그리고 귀가에 소곤소곤대는 소리가 음침하게 들려온다.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供え物だ。소나에 모노다~~~”
경수는 뒷주머니에 생수병을 빼어내어 공중에 물을 뿌리면서 소리친다
“뭐라고?~~~이 새끼가~~”
검지와 중지를 모아 물이 뿌려진 물방울 사이로 검이란 글자를 쓰며 팔을 휘두른다.
경수의 손에는 아까보단 작은 검들이 네 개가 만들어지며 양손에 두 개씩 나누어 가졌다.
왼손과 오른손에 작은 검을 하나씩 소녀에게 날리며 소녀를 향해 뛰어간다.
소녀의 그림자에서 검은 검이 나올 것을 대비해 시간을 두고 오른 손의 남은 검을 던지고 왼손의 검은 들고 있는 채로 달려간다.
예상대로 소의 그림자에서는 검은 검이 출현하고 날라오는 두 검을 차래로 막아낸다.
그리고 다시 날라오는 검 하나를 막으려는 순간 경수가 검은 그림자의 눈앞에 나타나며
소녀의 가승에 왼손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수검으로 소녀의 가슴을 찌른다.
‘퍽~~~’
소녀의 가슴에서 물방울로 변한 수검
소녀는 경수에게 안기고 검은 그림자속의 뿔은 스르륵 사라진다.
“흐흐흐흐흐흐~~~”
“供え物だ。소나에 모노다~~~”
소름이 돋을 듯한 작은 목소리가 귀에 소곤소곤 대며 사라진다.
소녀는 기절한 듯 경수에게 안겨있다.
소녀는 정신을 되찾은 듯 눈을 뜨는데 뿌연 얼굴이 점차 뚜렷해지며 잘생긴 오빠가 날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경수는 소녀의 허리를 받치고 안고 있는데 눈이 아래로 내려가자 소녀의 가승 언저리가 물에 젖어 속옷 실루엣이 교묘히 비친다. 경수는 깜짝 놀라 소녀를 놓치고 당황해 한다. 옆에는 쓰러진 생수병에 물이 조금씩 흘러 마당을 적시고 있다.
어디서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자그마한 모든 게 커져만 가~~~’
언제나 수검을 사용하면 이게 문제다. 피해자가 여성이면 서로 창피하기 일쑤다. 겨울이면 외투가 두꺼워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여름이면 물에 젖은 실루엣이 아찔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수동 최씨 아저씨는 좋은 구경이라며 부러워하지만 경수는 아직 어리다.
그림자를 잡기 위해 던지 수검은 언제나 피해자의 심장을 향해 던져야 한다. 처음에 싸울 때는 그림자를 향해 던졌지만 소용 없었다. 피해자는 여전히 그림자에 잠식당해 있었고 몸으로 막아도 피해자는 인사불성이었다. 눈은 뒤짚혀 있고 막무가내로 죽으려고만 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어린 나이라 힘도 스피드도 부족했다. 수검을 만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몸으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싸우면서 그림자를 없애는 요령도 생기고 배달일을 하면서 짐을 나르다 보니 근육도 점차 붙었다.
소녀가 일어나며 경수에게 묻는다.
“어떻게 된 거예요~~?”
경수는 소녀의 젖은 교복 때문에 눈을 하늘로 돌리며 말한다.
“학생이 옥상에 올라와서 저기서 떨어지려 했어요~~”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는 소녀의 가방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
소녀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며 말한다.
“아 ~~그래요~~?”
경수는 여전히 먼산을 보며 소녀에게 겸연쩍게 말한다.
“그러지 마요.~~다 지나가요~~아무것도 아니에요~~”
경수의 말을 들은 소녀가 바닥에 눞혀져 있던 가방을 들고 수줍게 경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저 배고파요~~”
경수가 당황해 한다.
“아~~~배~~배고프구나~~~”
이것도 문제다. 난 뿔달린 그림자를 찾아 자살을 막으려 한 것 뿐인데~~
피해자 소녀들과의 마지막은 언제나 밥이다.
“그래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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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4. 절망으로 가득찬 영혼
“생일 축하 합니다~~~생일축하 합니다~~사랑하는 우리 채영이~~”
생일축하 노래가 거실 한아름 가득찼다.
오랜만에 아빠는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서 채영이가 좋아하는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이제 대학생도 되고 했으니 예쁜 옷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빠가 한 번 골라봤어~~”
“짜잔~~~스커트~~랑 블라우스~~!!”
“와 아빠 최고~~근데 내 사이즈는 어찌 알아?”
“아~~그거는 엄마에게 물어봤지~~”
엄마가 내심 부러운 듯 심술난 듯 투정을 부린다
“와 이쁘다~~근데 너무 레이스가 많은 거 아냐?”
“우리 공주님에게는 레이스가 맞지~~”
“어머 어머~ 뭐야 나보다 딸이 좋단 말이야?~~”
“남편!! 이리와 봐~~”
엄마의 손가락이 아빠를 향하며 손가락을 까딱인다.
도망가는 아빠. 쫒아가는 엄마~~
“엄마~~엄마 선물은~~?~~엄마?”
아빠를 쫒아다니는 엄마는 채영이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채영이 주위를 빙빙 돌던 아빠와 엄마는 어느 방안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환하던 거실이 일순간 어두워진다.
“엄마~?
“아빠~~!!”
고요해진다. 적막에 숨이 막힌다.
“아빠~~~~~!!!” 채영이 소리친다.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검붉은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작게 소곤거리며 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즐거웠나?’
“누구세요?~~~”
‘니가 꿈꾸는 삶을 내가 잠시 보여준거야~~어때 즐겁지?
“네~~근데 누구세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꿈꾸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지~~그저 엄마 아빠의 작은 관심만 필요한 건데~~‘
’근데 네 아빠는 어디있나? 그리고 네 엄마는?~~‘
채영은 안방문을 열어 방안을 확인한다. 아무도 없다. 작은방으로 달려가 작은방을 열어 젖힌다. 또한 아무도 없다. 또 다른 방, 화장실, 창고 모두 열어 젖히지만 결국 아무도 없다.
어둠은 물어보았다.
’없지~~?‘
그리고 어둠은 확정지었다.
’없어~~~!!‘
그리고 속삭였다.
’난 알고 있어~~ 너는 혼자야~~‘
그리고 계속 소근거린다.
’너는 사랑받아야 할 아이야~~근데 넌 혼자야~~‘
’엄마도 아빠도 너보다 자신들의 일이 더 소중하지~~‘
’너는 엄마 아빠에게 귀찮은 존재일 뿐이야‘
채영은 눈물이 났다. 눈물을 참고 싶었지만 계속 눈물이 났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한창 엄마 아빠의 관심이 필요한 여고딩이지만 엄마와 아빠는 집에 없다. 아빠는 일이 바빠 짐에 잘 안 들어온지 오래고 엄마도 언젠가부터 밤 늦게 집에 들아와 새벽이 되면 나가기 일쑤다. 냉장고에는 몇 개의 배달음식이 남겨져 차갑게 식어있고 식탁위에는 언제 쓴지 모를 짧은 메모뿐이다.
’돈 보냈으니 밥 사 먹어‘
어둠이 뭐라하든 사실이다. 그냥 오늘 행복한 하룻밤의 꿈이다. 눈물이 쏟아졌다.
어둠이 속삭였다.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슬퍼해~~계속!!~~슬퍼해도 돼~~‘
’으흐흐흐흐‘
’으흐흐흐흐흐흐‘
소름돋는 웃음 소리가 채영에게는 위로 같았다.
채영이는 그때부터 표정이 안 좋아졌다. 친구들도 멀리하고 혼자 다니기 일쑤였다.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어깨는 쳐졌으며 땀을 많이 흘려 몸에서 쉰 내가 날 정도였다. 친한 친구 몇 명이 있었지만 채영이의 서늘함에 조금씩 말걸기를 주저했다. 채영이는 점점 힘이 없어졌다. 팔을 흔들며 걸을 수도 없고 선생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귀찮았고 모든 것이 짜증났다.
’그래~~슬퍼해~~우울해도 돼~~‘
’엄마 아빠도 관심 없는데~~ 좀 귀찮으면 어때?‘
귀속에 어둠이 계속 속삭였다.
빠르게 속삭일 때마다 귀를 간지러웠다.
어느덧 수업은 끝나고 터덜터덜 도서관으로 향한다.
턱~~턱~~쓱~~쓱~~발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신발끄는 소리가 번갈아 난다.
신발소리에서 채영이의 힘없음과 귀찮음과 짜증이 가득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신발끝자락에 그림자가 일렁였다.
순간 그림자 속에서 어둠에 회색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오늘이야~~‘
’맑고 순수한 영혼~~‘
’착하지? ~~으흐흐흐흐’
‘자 어서 가자~~~’
‘얼마나 좋아~~’
‘오늘은 니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
‘잊지마~~내가 니 편이라는 걸~~~으흐흐흐흐흐’
채영이 걸어간 그 길 뒤로 두리번거리는 경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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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3 용왕의 6번째 아들.
태초신은 하나였다. 하나면서 셋이었고 아홉이었으며 열둘이었다.
태초신은 의지가 생기면 하나에서 분열한다. 의지가 셋이면 셋으로 분열하고, 의지가 아홉이면 아홉으로 분열한다. 의지가 다시 합쳐지면 다시 하나가 되고 의지를 내어주면 분열된 다른 의지에게 흡수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태초의 신이 하나일 때 강력했고 신의 의지가 나뉘어 여럿이 되면 나뉜 만큼 힘이 약해졌다. 그러니 태초의 신은 의지가 나뉘는 것을 경계했다.
다른 문명이 신을 어찌 부르든 반도에서 태초신은 환인 하나였다. 그리고 둘이 되었다. 하늘을 살고자 하는 환인과 바다에 살고자 하는 용왕이 그러했다.
하늘의 환인은 땅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 전에 아들을 낳아 땅을 환웅에게 주었다. 환웅의 아들이 한국의 역사에 새겨진 단군왕검이다.
용왕 또한 의지가 나뉘기 전에 아들 다섯을 낳아 다섯 바다를 나누어 주었다. 온화한 첫째에게는 태평양을 차가운 둘째에게는 대서양을 성격이 불같은 셋째는 인도양을 소심하고 조용한 넷째 다섯째에게는 북극해와 남극해를 각각 맡겼다.
나무는 자라고 숲은 무성하며 하늘은 가볍고 물은 차가워 태평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일이 일어났다.
태평양의 서북쪽이자 단군왕검의 동해에 바다 밑 땅이 찢어지고 용암이 흘러나온 것이다..
바다는 큰 파도를 만들고 폭풍우가 세상을 가득 메웠다.
단군왕검은 놀라 용왕을 찾았고 용왕도 갑작스러운 변고에 환인을 찾았다.
그리고 환인의 의지가 나누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세계가 확장되고 인간의 죽음 후 인간들을 모두 하늘나라로 다시 부를 수 없었다. 인간의 생전의 선악을 구분하여 선한 인간은 다시 환인의 세계로 부르면 되지만 악한 인간은 다시 부를 수 없어 연옥이란 공간에 잠시 머물게 했는데 그곳을 관장할 신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환인은 자식을 낳아 연옥을 맡기려 했으나 자식을 낳아 맡기기도 전에 환인의 의지 중 악을 흥미롭게 보는 의지가 먼저 분열되어 연옥과 지옥의 세계를 지금의 동해 바다아래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환인의 또 다른 의지, 바로 염라였다.
용왕과 환인의 오랜 대화 뒤에
하백이 조용히 술을 따르며 정중히 여쭌다.
”용왕님, 오늘은 저희 집에서 머무옵소서.“
”인연과 의지가 이끄니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오“
오랜 술자리가 다시 끝나고
하백의 집으로 옮겨 다과상을 차리는데 하백은 세 딸을 불러 용왕의 술 시중을 들게한다.
그러나 유화는 없고 위화와 훤화만 들어온다.
”유화는 어디있는 게냐?
위화와 훤화는 눈치를 살피다 말하길
“일전에 만났던 해모수와의 언약이 있어 유화는 나올 수 없다 합니다.”
“이런~~”
하는 수 없이 하백은 위화와 훤화만 용왕의 술상을 받들게 한다.
용왕이 훤화를 보며 말하길
“훤화(원추리꽃)은 화려하나 하루만에 꽃이 지니 신의가 없구려, 내 짝이 되기 어렵겠구나”
그리고 위화를 보더니
“위화(갈대꽃)은 수수하나 신의가 있으니 내 인연과 맞다”하였다.
밤새 용왕의 노래소리와 위화의 춤이 어울리니
큰 파도가 일렁이다가 잠잠해지고 부서지며 공중에 흩뿌려졌다.
7일째 되는 날
위화는 태기가 있고 배가 불러옴에 방에 들어가 아이를 낳는데 낳고 보니 아이가 아니라 알이었다. 알은 스스로 상서로운 빛을 내고 있기에 이불로 덮어 두고 하루 밤 하루 낮이 지내는데 북에서는 현무가 남에서는 주작이 서에서는 백호가 동에서는 청룡이 알을 보호하고 지켰다.
다시 7일이 지나고 알을 깨고 한 아이가 나오는데 울음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리고 눈빛은 별처럼 빛났다. 다시 7일이 지나자 걷고 말하기 시작했으며 다시 7일이 지난 후에는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데 한 끗도 어긋남이 없었다.
용왕은 아들의 아름을 처용이라 짓고 동해의 모든 일을 맡기고자 했다.
처용은 어머니의 땅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이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누어진 뒤에도 처용 이름으로 신라에 살 때도 있었으나 때로는 고구려의 을지문덕으로 환생하고 때로는 신라의 문무대왕으로 환생하여 어머니의 땅이 온전하도록 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명확하지 않으나 어머니의 땅이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해질 때마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 처용의 환생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고려의 강감찬이나 임진왜란의 이순신이 처용의 환생인인지 모를 일이다.
독도의 동도.
꼭대기 봉우리(지금의 대한봉)에 흰 도포에 흰 갓을 쓴 사내가 일본을 바라보며 서 있다.
눈매는 날카로우나 한없이 부드럽고 눈썹은 진하며 굵고 진한 목선에 하늘거리는 도포. 처용이었다.
큰 칼을 들어 동쪽을 가르키는데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일본 후지산이 있었다.
‘쿠궁~~~~’
해와 달을 뒤집는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으 솟아오르더니 독도에서도 보일만큼
큰 불꽃이 하늘로 타올랐다.
후지산이 폭발한 것이다.
“우연은 필연이니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구나”
처용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어머니의 땅 조선으로 향했다.
앞으로 올 무시무시한 싸움을 위해 자신의 현신을 찾기 위해.
같은 시각
후지산의 붉은 용암사이로 뿔달린 검은 그림자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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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2. 경수
아차산은 파릇파릇 새순으로 가득 찬 그래서 산 전체가 연록색인 그런 산이었다. 산 중간중간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수 놓는다 해서 산의 연록색이란 느낌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 아차산 아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 끝에 경수네 집이 있었다.
경수네 집은 2층 단독집으로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집안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대추나무가 자태를 드리우며 새잎을 채워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미 뽑아버린 쪽파 줄기가 누워있고 조그마한 상추들이 이제 막 심었는지 아담하기 그지 없었다.
현관을 열고 마루로 들어서면 회사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되지 않은 바쁜 아빠가 식사를 하고 있고 앞치마를 두르고 경수와 미란의 식사를 마저 준비하는 엄마의 요리 향기가 가득차 있었다.
아빠가 젊었을 때 잘생겼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진에서나 확인할 수 있고 현재는 배 나온 아저찌의 모습뿐이다. 젊을 때 수영을 해서 그런 지 몸이 제법 다부진 것 같아 보이긴 해도 회사 다니면서 매주 빠짐없이 참석한 회식의 결과야 어찌 막을 수 있었으랴
이에 비해 엄마의 미모는 살아있다. 미모뿐만 아니라 외형전체가 살아있다. 고1 아들과 중3 딸을 둔 엄마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어찌 아빠가 엄마를 꼬셨는지 알 수 없는 부분. 엄마는 당시 양궁선수로 둘이 체대에서 만난 cc라는데 아빠의 재미없는 아재 개그를 볼 때마다 요리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콩깍지라는게 있긴 있나 보다.
경수는 중3 때까지만 해도 살도 좀 찌고 머리도 더벅머리라 동생 미란이도 오빠보기를 돌같이 했다. 정말 돌같이 했다. 진짜 돌.
경수가 말을 걸면
“돌이 말을 거네”
경수가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돌이 굴러다니네”
시크하게 혹은 멍때리는 표정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가끔 미란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경수의 잘생김에 호들갑을 떨면 멍한 표정으로 오빠 경수를 응시한 후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돌이 쓰잘데기없이 잘생겨봤자 돌이지 뭐~“
이런 무시에도 경수는 동생이 좋았다. 아마 엄마를 닮아서리라
젊을 때 엄마를 쏙 빼닮은 미란은 오빠에게는 냉랭하지만 동네 인싸다. 친구들과 동네를 주름잡지는 못해도 중3 딸들의 필수코스는 모두 섭렵한 상태다. 화장이며 교복치마 줄이기, 인생네컷에 코인노래방까지 ‘아주 논다’도 아니지만 ‘좀 논다’는 된다.
그래서 그런지 경수는 미란이 걱정이 된다.
경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키도 부쩍 자랐다. 친구 정환과 운동삼아 다니던 체육관에서 태권도도 조금 권투도 조금 배우기 시작하면서 몸이 다부져지기 시작했다. 그전에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코치가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은 알았다. 아마 엄마 아빠의 유전자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근육이 붙는 정도와 운동능력이 좋아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랐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 두툼한 팔뚝을 얻었다. 엄마는 이런 경수의 모습을 보고 태몽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미신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경수나 미란이 아니다.
이제 다부져진 몸이된 경수가 고1이 되고 멋을 알면서 이발소에서 헤어클럽을 다니기 시작하게되자 본격적인 ‘멋찜’이란게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수는 집에 올 때 작은 선물 상자를 종종 들고 들어 온 적이 있는데 미란의 친구들이나 그 친구들의 친구들, 그 친구들의 친구들 사이로 소문이 퍼져 아차산의 ‘은우’라 불리우게 된다. 소문이란게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과장되고 부풀려지는 법, 거기에 여자애들의 동경심이 동경심을 낳고, 애정과 징투에, 욕심과 사랑으로 경수네 짐을 휘감게 된다. 물론 미란은 잘생기고 몸좋은 돌멩이라 부르지만 말이다.
그 경수가 이제 고등학교 농구코트에서 농구경기를 하고 있다.
‘퉁~~퉁퉁~~~’
공을 튀기는 소리가 여자아이들의 함성소리에 묻혀졌다. 남자 고등학생들의 거친 숨소리도, 흐르는 땀방울이 반짝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셔도, 코드에 미끄러지다 멈춰지는 낥카로운 마찰음도 모두 여자애들의 사자후에 묻혀졌다. 약시 팬덤이란~~
”오빠 나 죽어~~~“
”경수오빠~~!!사랑해요“
”나의사랑 너의사랑 권경수!!!“
경수사랑 팬클럽이라해도 믿어 의심치 못할 그 사이로 경수의 점프가 아름다웠다. 손에 든 공은 긴 포물선을 그리고 링에 다가가는 순간 같은 편 정환의 골밑 싸움이 치열하다. 포물선을 그리던 농구공은 링 근처에 다가가더니 링을 스치지도 못하고 코드바닥에 떨어진다. 공은 골밑 싸움하던 친구들 중의 누군지 모를 머리통을 맞추고는 라인 아웃이 되었다. 그래도 여자아이들의 함성은 끊어지지 않으니~~정환의 어이없는 눈빛과 경수의 어색함~~여자아이들의 환호~~모든 것은 외모지상주의구나~~
정환의 노력에도 농구경기는 아쉽게 패배.
경수의 몇 번의 뻘짓이 있었지만 응원하는 여자아이들은 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 팀에 경수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경수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몸을 닦고 포타리스웨터를 마실 때 열광했다. 이 미친 인기에 다같이 몸서리칠 때였다. 분명 그 때부터였다.
이 함성소리 뒤편에 작은 여중생하나가 있었다. 경수는 응원하는 여자애들의 함성 뒤편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그 여자아이에게 시선이 멈췄다. 그냥 우연이었기도 했고 누군가 경수에게 그족을 보라고 고개를 인위적으로 돌린 것 같기도 했고 필연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냥 경수가 봐야만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 여학생의 얼굴도 가방도 펄럭거리는 치마도 구겨신은 신발도 아닌 그 여자아이의 그림자..
뿔달린 그림자를 말이다.
경수의 몸은 반응했다. 마시던 포카리를 친구에게 건네고 땀닦던 수건을 어깨에 걸치며 땀으로 적셔있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흩뿌리며 그 여자아이에게 말이다. 여자아이들의 함성은 더 커졌지만 여자아이의 그림자는 여자아이의 그림자 모습이 아닌 뿔이 있는 그림자가 명확해져 갔다. 그리고 경수가 다가서며 분명히 확인하려 하는 순간 갑자기 오른팔이 아려오며 푸른 힘줄이 두 팔뚝에서 튀어 올라왔다. 푸르스름한 기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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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1. 배달기사
여름엔 언제나 그렇듯 더운 바람이 땀으로 번질번질한 팔뚝을 때린다.
'붕~~'
시끄러운 배기음을 내며 도로 위를 지나는 오토바이 배달 기사.
'빠른 배달 퀵 배송'이란 글자가 검은 박스에 노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빨간 신호등이 끝나고 좌회전 신호와 직진 신호가 동시에 켜지자 오토바이는 천천히 좌회전을 하며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다.
"배달이요~~"
아파트 차단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자 경비원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차단문을 올려준다.
배달기사는 경비실쪽을 향해 손 경례를 하며 지나가는데 경비실 안은 어둑하니 보이지도 않는다.
아파트 동을 두 세 개 지나 마주한 곳은 제법 큰 놀이터.
아파트값이 비싼 동네라 뭐 다를게 있겠냐 싶지만 이 놀이터는 생각보다 좋다.
어디를 본 떠 만든 듯한 인공폭포에서는 시원해 보이는 물줄기가 흐르고 그 물줄기를 타고 작은 냇가가 형성되어 있다. 냇가 주변에는 동네 아이들이 맨발로 물장구치기 바쁘다. 아이들이 타는 시소도 반짝 윤이 나고 정글짐도 멋지다.
헬멧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땀으로 범범된 머리카락을 흐트러 뜨린다.
"배달 시키신 분~~아아랑 모카빵이요~~"
날렵하지만 선 굵은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어머~~여기요 여기~~"
아이들의 엄마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손짓을 하며 부른다.
"거봐~~잘생겼지? 맞아 맞아~~호호호호"
배달기사가 배달 상자에서 커피와 빵이 담긴 봉지를 꺼내 들고 오는 동안
아줌마들의 목소리는 들릴 정도로 컸다.
단지가 사방으로 막혀 있어 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리라
배달기사는 아줌마들의 곁눈질과 수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달 물건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188cm의 큰 키에 넓은 어깨 다부진 체격 거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집에서 평범한 남편들만 보고 있던 아줌마들에게는 일주일에 한두번 누릴 수 있는 호강이었지 모른다.
아줌마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물건을 건네주고 돌아서는 찰나
아줌마들은 그에게 이런 저런 칭찬을 해댄다.
"아니 너무 잘생기셨어요~~"
"대학생이예요? 아르바이트?"
"아 ~~~네.네.네"
마지못해 웃으며 아줌마들에게서 벗어나려 고개를 돌렸다.
그때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오토바이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축쳐진 어깨와 무거운 가방.
땀으로 반질반질해진 얼굴안에 담고 있는 상심 가득한 얼굴
얇은 티와 반바지.
탁탁 소리를 내며 끌려가던 슬리퍼 그리고 여고생의 그림자
'그림자~~~'
'뿔이 달린 그림자~~?!'
'뿔이 달린 그림자!!'
배달기사는 아줌마들의 말섞임을 뒤로 하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냇가 근처로 갔다.
자세를 낮추어 검지와 중지를 모으고 물 위에 한자로 "검"를 새기기 시작했다.
물방울들이 일렁이더니 물 속에서 검의 모습이 드러나고 검의 손잡이를 쥐자 온전히 검으로 나타났다.
검을 쥔 손은 푸른 빛이 감싸고 검을 쥔 팔의 힘줄들이 하나 둘 씩 팔뚝위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모여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해 한다.
"아저씨 쩔어"
"와 신기해~~"
"이거 무슨 마술이여요?"
그러나 아줌마들의 눈엔 배달기사가 냇물의 손을 담그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검을 든 배달기사는 검을 들고 아까 지나간 여고생이 간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뿔이 난 그림자를 없애야 해'
'여고생이 위험해'
조금씩 빨라지던 걸음은 점점 급해지고 있다.
2 months ago | [YT]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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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오징어게임 3
기생충 다음으로 가장 깊이 있는 시나리오였음
인간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면과
순간 상황마다 바뀔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잘 드러나고
돈을 중심으로 한 인간 세상에
사람다움은 어떻게 완성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음.
1 "왜 다시 게임을 하는가?"는
"사람은 게임 속 말이 아니다"를 게임 자체를 통해서 증명하려 했던 것.
게임의 부당성을 게임 밖이 아니라
게임 안의 사람들을 통해 근본적으로 없애려 했던 것
2 임시완의 연기가 일품이었음.
조유리에 대한 애정과 돈에 대한 욕망의 카오스를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번뇌를 순간적으로 잘 드러냄.
이정재가 임시완을 믿지 못한 것과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라는 이병헌의 대사가
오버랩되면서 드라마의 백미를 이룸
3. 숨박꼭질의 살인게임은
이정재가 게임에 다시 참여함으로써
이병헌이 이정재에게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임을 각인시키려 했던 것.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실.
이정재의 믿음을 깨기 위해 게임의 룰이 깨진 것.
이병헌은 이정재의 사람다움을 깨고 싶었던 것.
이병헌은 살인으로써 최종 우승자가 되었으니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싶었던 것
이정재의 게임참여는 게임의 룰이 흔들리게 했으니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음.
4 감독이 혼자 대본을 쓰는 게 맞음.
오징어 게임1편의 계층 사회의 상징성 에서 벗어나 2편 3편이 더 인간의 본질 탐구에 가까워 깊이 있는 시나리오였음. 이런 것은 같이 쓸 수 없음
ps. 클리셰를 지켜야 한다고? 아들이 엄마를 죽였어야 한다고? 아니다.
평론가들이 클리셰만 알고 낯설게 하기는 모르나 보다.
엄마가 아들을 죽이고 자살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유튜버는 덕후일 뿐...깊이는 없네~~
3 months ago (edited) | [Y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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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너머를 바다보다는
소년공 출신인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합니다.
이는
기득권 세력으로 태어나
방구석에서 공부만 한 사람이 나라를 이끄는 것보다
서민의 삶을 살았고
그 속에서 필요에 의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민중의 삶을 몰랐던 지도자보다
민중의 삶에 귀 기울인 사람이 나라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강대한 대한민국
선진국 대한민국도 좋지만
내일의 대한민국은
모두가 행복한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너머를 바라보다는
어설픈 교육자의 정치적 중립보다
한 명의 투표자로서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드러내 표현하겠습니다.
4 months ago (edited)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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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신경림 선생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은 시를 잊어가고
우리는 계속 좋은 시인들을 잃고 있으니
우리 세상이 더 삭막해질까 걱정입니다.
1 year ago (edited) | [Y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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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를바라보다
댓글을 통해
이과지문에 대한 내용이해를 원하시는 학생들이 많은데
국어영역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문과 교육과 출신이고
국문과는 문법 문학 고전 등의 학문은 배우지만
비문학 지문의 다양한 읽기 내용은 국문과의 수업내용이 아닙니다.
즉, 다양한 비문학의 내용이해는 이과학생인 여러분이 저보다 낫습니다.
저는 문과생입니다.
제 수업은 국어영역을
오로지 국어영역의 범위안에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수업입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이과내용에 대해
내용을 미리 공부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전문가인 척
속이는 행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낯선 지문을 단 10분안에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을 매번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낯선 내용의 전문적인 영역을 빠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국어적인 측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혹은 최소한의 이해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만들어진 수업니다.
수능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2 years ago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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