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를바라보다

2. 경수



아차산은 파릇파릇 새순으로 가득 찬 그래서 산 전체가 연록색인 그런 산이었다. 산 중간중간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수 놓는다 해서 산의 연록색이란 느낌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 아차산 아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 끝에 경수네 집이 있었다.
경수네 집은 2층 단독집으로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집안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대추나무가 자태를 드리우며 새잎을 채워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미 뽑아버린 쪽파 줄기가 누워있고 조그마한 상추들이 이제 막 심었는지 아담하기 그지 없었다.


현관을 열고 마루로 들어서면 회사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되지 않은 바쁜 아빠가 식사를 하고 있고 앞치마를 두르고 경수와 미란의 식사를 마저 준비하는 엄마의 요리 향기가 가득차 있었다.
아빠가 젊었을 때 잘생겼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진에서나 확인할 수 있고 현재는 배 나온 아저찌의 모습뿐이다. 젊을 때 수영을 해서 그런 지 몸이 제법 다부진 것 같아 보이긴 해도 회사 다니면서 매주 빠짐없이 참석한 회식의 결과야 어찌 막을 수 있었으랴
이에 비해 엄마의 미모는 살아있다. 미모뿐만 아니라 외형전체가 살아있다. 고1 아들과 중3 딸을 둔 엄마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어찌 아빠가 엄마를 꼬셨는지 알 수 없는 부분. 엄마는 당시 양궁선수로 둘이 체대에서 만난 cc라는데 아빠의 재미없는 아재 개그를 볼 때마다 요리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콩깍지라는게 있긴 있나 보다.



경수는 중3 때까지만 해도 살도 좀 찌고 머리도 더벅머리라 동생 미란이도 오빠보기를 돌같이 했다. 정말 돌같이 했다. 진짜 돌.
경수가 말을 걸면
“돌이 말을 거네”
경수가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돌이 굴러다니네”
시크하게 혹은 멍때리는 표정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가끔 미란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경수의 잘생김에 호들갑을 떨면 멍한 표정으로 오빠 경수를 응시한 후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돌이 쓰잘데기없이 잘생겨봤자 돌이지 뭐~“
이런 무시에도 경수는 동생이 좋았다. 아마 엄마를 닮아서리라
젊을 때 엄마를 쏙 빼닮은 미란은 오빠에게는 냉랭하지만 동네 인싸다. 친구들과 동네를 주름잡지는 못해도 중3 딸들의 필수코스는 모두 섭렵한 상태다. 화장이며 교복치마 줄이기, 인생네컷에 코인노래방까지 ‘아주 논다’도 아니지만 ‘좀 논다’는 된다.
그래서 그런지 경수는 미란이 걱정이 된다.



경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키도 부쩍 자랐다. 친구 정환과 운동삼아 다니던 체육관에서 태권도도 조금 권투도 조금 배우기 시작하면서 몸이 다부져지기 시작했다. 그전에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코치가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은 알았다. 아마 엄마 아빠의 유전자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근육이 붙는 정도와 운동능력이 좋아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랐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 두툼한 팔뚝을 얻었다. 엄마는 이런 경수의 모습을 보고 태몽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미신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경수나 미란이 아니다.



이제 다부져진 몸이된 경수가 고1이 되고 멋을 알면서 이발소에서 헤어클럽을 다니기 시작하게되자 본격적인 ‘멋찜’이란게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수는 집에 올 때 작은 선물 상자를 종종 들고 들어 온 적이 있는데 미란의 친구들이나 그 친구들의 친구들, 그 친구들의 친구들 사이로 소문이 퍼져 아차산의 ‘은우’라 불리우게 된다. 소문이란게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과장되고 부풀려지는 법, 거기에 여자애들의 동경심이 동경심을 낳고, 애정과 징투에, 욕심과 사랑으로 경수네 짐을 휘감게 된다. 물론 미란은 잘생기고 몸좋은 돌멩이라 부르지만 말이다.



그 경수가 이제 고등학교 농구코트에서 농구경기를 하고 있다.
‘퉁~~퉁퉁~~~’
공을 튀기는 소리가 여자아이들의 함성소리에 묻혀졌다. 남자 고등학생들의 거친 숨소리도, 흐르는 땀방울이 반짝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셔도, 코드에 미끄러지다 멈춰지는 낥카로운 마찰음도 모두 여자애들의 사자후에 묻혀졌다. 약시 팬덤이란~~
”오빠 나 죽어~~~“
”경수오빠~~!!사랑해요“
”나의사랑 너의사랑 권경수!!!“
경수사랑 팬클럽이라해도 믿어 의심치 못할 그 사이로 경수의 점프가 아름다웠다. 손에 든 공은 긴 포물선을 그리고 링에 다가가는 순간 같은 편 정환의 골밑 싸움이 치열하다. 포물선을 그리던 농구공은 링 근처에 다가가더니 링을 스치지도 못하고 코드바닥에 떨어진다. 공은 골밑 싸움하던 친구들 중의 누군지 모를 머리통을 맞추고는 라인 아웃이 되었다. 그래도 여자아이들의 함성은 끊어지지 않으니~~정환의 어이없는 눈빛과 경수의 어색함~~여자아이들의 환호~~모든 것은 외모지상주의구나~~



정환의 노력에도 농구경기는 아쉽게 패배.
경수의 몇 번의 뻘짓이 있었지만 응원하는 여자아이들은 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 팀에 경수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경수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몸을 닦고 포타리스웨터를 마실 때 열광했다. 이 미친 인기에 다같이 몸서리칠 때였다. 분명 그 때부터였다.

이 함성소리 뒤편에 작은 여중생하나가 있었다. 경수는 응원하는 여자애들의 함성 뒤편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그 여자아이에게 시선이 멈췄다. 그냥 우연이었기도 했고 누군가 경수에게 그족을 보라고 고개를 인위적으로 돌린 것 같기도 했고 필연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냥 경수가 봐야만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 여학생의 얼굴도 가방도 펄럭거리는 치마도 구겨신은 신발도 아닌 그 여자아이의 그림자..
뿔달린 그림자를 말이다.

경수의 몸은 반응했다. 마시던 포카리를 친구에게 건네고 땀닦던 수건을 어깨에 걸치며 땀으로 적셔있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흩뿌리며 그 여자아이에게 말이다. 여자아이들의 함성은 더 커졌지만 여자아이의 그림자는 여자아이의 그림자 모습이 아닌 뿔이 있는 그림자가 명확해져 갔다. 그리고 경수가 다가서며 분명히 확인하려 하는 순간 갑자기 오른팔이 아려오며 푸른 힘줄이 두 팔뚝에서 튀어 올라왔다. 푸르스름한 기운과 함께.

2 months ago | [Y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