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복음이 닿는 역사의 종착지이자 시작점입니다. 누가-행전 내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이어지는 복음의 여정을 달려왔다면,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로마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복음의 여정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그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불현듯 끝나는 사도행전의 결말은 무엇인가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게 합니다. 아직 글로 기록되지 않은 복음의 미래가 있습지다. 이 열린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가-행전의 3부를 이어 갈 것입니다. 사도들처럼, 바울처럼, 고난을 이겨 내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아직 닫혀 있는 수많은 문을 열고 복음을 외칠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지금 사도행전을 읽는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뜰힘
하나님 나라는 무조건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침묵할 수 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을 권리가 전혀 없다.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이 저편에서 나를 맞아 주지 않으실 수도 있으며,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탓할 수 없다. 예수님이 내 죗값을 치르고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의무나 책임은 전혀 없다. 그분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이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감히 말하거니와, 최고의 정통 그리스도인도 자신에게 베풀어진 은혜에 끊임없이 놀라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부당하다거나 은혜가 마땅히 우리 몫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침묵 중에서 #헬무트틸리케#두란노서원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해도, 너무나도 흐릿해 보여도 우리는 사랑을 받아왔고, 또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를 둘러셔고 있습니다. 이를 신뢰하고 주의 깊게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고 조용히 있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랑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도해 보십시오. 분노가 절망을 표현해도 좋으니 그분께 말을 건네십시오. 그리로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묻고, 또 생가해보십시오. 사랑은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택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사랑을 찾고, 사랑을 택하고, 사랑을 익히십시오, 안토니우스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노력하며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러하실 겁니다.” #주께서사랑하시듯사랑하라 #로버타본디#비아
오순절에 한 곳에 모여 있던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재했습니다. 진정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성령은 특별한 사람에게 특정한 시기에 임했으며, 그것으로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승천 후 일어난 성령의 임재는 남녀노소의 구별도 없이, 인종적 사회적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났으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의 부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시대 말입니다. 각기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성령의 목적이며, 또한 교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을 복음으로 묶는 것 말입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뜰힘
천군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며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합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온 평화입니다. 평화의 헬라어인 ‘에이레네‘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화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개인적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적 개념입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없고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산다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곤고함을 없애 주어야 함께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의 치료자로 나선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곤고함과 핍절함이 채워지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새로운 의의 시대에만, 하나님의 평화가 가능합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뜰힘
어떤 보상도 없고 고난과 고통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게 고난 속에서 지쳐 갈때, 왜 모른 척하냐며 하나님에게 절규할 때,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을 때, 그때 무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죽음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면서 부활이 일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기대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것도 맞습니다. 그것만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가 걸었던 죽음의 길을 따를 수 있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그렇게 예수의 길에 삶을 던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뜰힘
겸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친구뿐만 아니라 주변, 세상, 나와 친밀하지 않은 이들, 기도와 예배를 통해 들리는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도록 합니다. 겸손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겸손은 우리 자신과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서도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정의로운 심판의 대리자가 아닙니다. #주께서사랑하시듯사랑하라 중에서 #로버타본디#비아
마가복음에는 많은 기적 이야기가 나오지만, 예수가 죽음의 길을 가며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시간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절규는 하나님에게 조차 버림받은 것처럼 처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복음의 시작에 있던 죽음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지나왔으며 그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해줍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뜰힘
마가복음은 이 서문들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음을 향하는 예수의 모습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 무엇이지를 생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북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라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그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을, 마가복음은 전하고 싶어 합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뜰힘
손을들라
발음이 안 좋은 것을… 장비발로 커버 하려고 마이크를 바꿨는데…
오히려 이상한 잡음이….ㅜㅜ
2 months ago | [YT]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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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로마는 복음이 닿는 역사의 종착지이자 시작점입니다. 누가-행전 내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이어지는 복음의 여정을 달려왔다면,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로마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복음의 여정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그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불현듯 끝나는 사도행전의 결말은 무엇인가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게 합니다. 아직 글로 기록되지 않은 복음의 미래가 있습지다. 이 열린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가-행전의 3부를 이어 갈 것입니다. 사도들처럼, 바울처럼, 고난을 이겨 내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아직 닫혀 있는 수많은 문을 열고 복음을 외칠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지금 사도행전을 읽는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 #뜰힘
5 months ago | [YT]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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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하나님 나라는 무조건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침묵할 수 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을 권리가 전혀 없다.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이 저편에서 나를 맞아 주지 않으실 수도 있으며,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탓할 수 없다. 예수님이 내 죗값을 치르고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의무나 책임은 전혀 없다. 그분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이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감히 말하거니와, 최고의 정통 그리스도인도 자신에게 베풀어진 은혜에 끊임없이 놀라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부당하다거나 은혜가 마땅히 우리 몫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침묵 중에서
#헬무트틸리케 #두란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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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해도, 너무나도 흐릿해 보여도 우리는 사랑을 받아왔고, 또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를 둘러셔고 있습니다. 이를 신뢰하고 주의 깊게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고 조용히 있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랑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도해 보십시오. 분노가 절망을 표현해도 좋으니 그분께 말을 건네십시오. 그리로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묻고, 또 생가해보십시오. 사랑은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택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사랑을 찾고, 사랑을 택하고, 사랑을 익히십시오, 안토니우스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노력하며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러하실 겁니다.”
#주께서사랑하시듯사랑하라
#로버타본디 #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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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오순절에 한 곳에 모여 있던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재했습니다. 진정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성령은 특별한 사람에게 특정한 시기에 임했으며, 그것으로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승천 후 일어난 성령의 임재는 남녀노소의 구별도 없이, 인종적 사회적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났으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의 부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시대 말입니다. 각기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성령의 목적이며, 또한 교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을 복음으로 묶는 것 말입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 #뜰힘
5 months ago | [YT]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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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천군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며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합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온 평화입니다. 평화의 헬라어인 ‘에이레네‘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화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개인적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적 개념입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없고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산다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곤고함을 없애 주어야 함께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의 치료자로 나선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곤고함과 핍절함이 채워지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새로운 의의 시대에만, 하나님의 평화가 가능합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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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어떤 보상도 없고 고난과 고통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게 고난 속에서 지쳐 갈때, 왜 모른 척하냐며 하나님에게 절규할 때,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을 때, 그때 무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죽음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면서 부활이 일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기대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것도 맞습니다. 그것만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가 걸었던 죽음의 길을 따를 수 있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그렇게 예수의 길에 삶을 던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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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겸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친구뿐만 아니라 주변, 세상, 나와 친밀하지 않은 이들, 기도와 예배를 통해 들리는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도록 합니다. 겸손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겸손은 우리 자신과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서도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정의로운 심판의 대리자가 아닙니다.
#주께서사랑하시듯사랑하라 중에서
#로버타본디 #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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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마가복음에는 많은 기적 이야기가 나오지만, 예수가 죽음의 길을 가며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시간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절규는 하나님에게 조차 버림받은 것처럼 처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복음의 시작에 있던 죽음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지나왔으며 그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해줍니다.
#신약수업 중에서
#김호경 #뜰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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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들라
마가복음은 이 서문들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음을 향하는 예수의 모습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 무엇이지를 생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북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라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그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을, 마가복음은 전하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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