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왓챠피디아에서 화제가 됐던 한 사용자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감상평에 댓글창에서 보았던 문장입니다.
해당 댓글은 영화를 비판하는 취지였던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어요. 영화 속에서 멀쩡하고 신사적인 모습으로 묘사된 다수의 크리스마스 모험가들이 떠올랐거든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밤 운전을 하는 아빠 라샤드와 잔인하게 시민들을 짓밟은 정부 요원 에그발을 바히드와 동료들은 도저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20대를 고스란히 앗아가고, 신체적, 정신적, 성적 고문을 자행하고, 망가진 척추와 PTSD를 안겨 준 이가 지극히 평범한 얼굴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것.
피해자들에게 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비참한 사실일까요.
그렇다면 이토록 예사로운 범인(凡人)이 엽기적인 악행의 범인(犯人)으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가에 대한 충성심, 사상에 대한 확신... 이러한 거창한 개념은 사실 필요 없고 "먹고살기 위해서" 라는 한 마디면 된다는 결론이 한 순간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다른 종자로 난 것이 아니라 그저 한쪽이 보다 높은 곳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을 뿐이고, 사실 전자도 언제든지 정권에 의해 폐기될 장기말임에도, 비겁하게 기꺼이 악에 물든 자와 이에 짓이겨진 자로 인해 부조리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더 단단해졌습니다.
나무 밑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고, 한 번 엎질러진 악은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얼룩을 입힙니다.
에그발의 멱살을 붙잡고 왜 그랬냐고 추궁하고 싶었던 바히드는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않기로 합니다.
원수와 그를 지지하는 아내이지만 출산을 돕고, 새로운 세대를 세상으로 안내하고 환영하며, 딸아이에게 굳이 아빠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불합리한 정부가 만들어 낸, 모두가 뇌물을 요구하는 기이한 세상에서 그는 올곧음을 지켜내기로 합니다.
🍿 스토리만큼이나 중요한 '텔링' - <웨폰> &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비교하기 🍿
최근 개봉한 두 편의 흥미로운 영화, <웨폰>과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두 가지 큰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방금 본 내용에 대해서 타인과 생각을 나누고, 열띤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는 점과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주인공을 채택하고 MPOV로 이야기를 펼쳐 낸다는 점이죠.
<웨폰>은 유사한 시점의 사건들을 젊고 열정적인 교육자로 시작해 자식 세대를 지켜 주고 싶은 성실한 아버지, 한심한 범죄자와 부패한 공권력, 무력한 아이까지 여러 명의 관점에서 한 번씩 반복합니다.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환기하고 모든 관객이 최소 한 명에게는 이입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매 관점마다 조금씩 새로운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이야기를 빌드업하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작법이에요.
참신한 부분도 많지만 소름 돋게 기발하진 않은 각본이 바로 이러한 전개 탓에 한 시도 지루하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충족시키는 결과물로 이어진 듯해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소재만 따지면 <웨폰>을 능가하고도 남을 무척 흥미로운 스토리를 자랑합니다.
세계를 멸망시킬 핵전쟁이 개시되기 전 20분, 그 짧은 시간을 한 번은 현장의 말단 공무원들, 한 번은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인사들, 한 번은 대통령과 국방 장관의 관점으로 보여 주죠.
그러나 <웨폰>에 비해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이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는 이유는 파편화된 서사들 각각이 풍성하지도, 하나의 지점에서 만족스럽게 만나지도 않기 때문일 거예요.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리액션과 처음 핵을 격추하려는 공무원들의 고군분투는 분량에 비해 내용이 뻔한 데다 동어 반복이 심하고, 결정권자들의 고뇌, 체념, 결단 등을 다룬 것은 좋지만 해당 인물들 다수가 어설픈 면모가 강조돼 충분히 깊이 있는 고찰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죠.
이 경우 스토리 자체는 장점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부각하는 스토리텔링이 영화의 매력을 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복 전략의 확실한 논거와 당위를 제시한 브레이디 장군과 완성도 높은 서사를 지녔던 베이커 장관 등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워지네요.
때로는 "무엇"을 보여 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 주는지가 중요할 수 있음을 새삼 되새기게 되는 두 작품이었기에 비교하며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그저 사고였을 뿐> 후기: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현실의 록조 대령은 무심한 아버지가 아니다."
얼마 전 왓챠피디아에서 화제가 됐던
한 사용자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감상평에
댓글창에서 보았던 문장입니다.
해당 댓글은 영화를 비판하는 취지였던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어요.
영화 속에서 멀쩡하고 신사적인 모습으로 묘사된
다수의 크리스마스 모험가들이 떠올랐거든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밤 운전을 하는 아빠 라샤드와
잔인하게 시민들을 짓밟은 정부 요원 에그발을
바히드와 동료들은 도저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20대를 고스란히 앗아가고,
신체적, 정신적, 성적 고문을 자행하고,
망가진 척추와 PTSD를 안겨 준 이가
지극히 평범한 얼굴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것.
피해자들에게 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비참한 사실일까요.
그렇다면 이토록 예사로운 범인(凡人)이
엽기적인 악행의 범인(犯人)으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가에 대한 충성심, 사상에 대한 확신...
이러한 거창한 개념은 사실 필요 없고
"먹고살기 위해서" 라는 한 마디면 된다는 결론이
한 순간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다른 종자로 난 것이 아니라
그저 한쪽이 보다 높은 곳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을 뿐이고,
사실 전자도 언제든지 정권에 의해 폐기될 장기말임에도,
비겁하게 기꺼이 악에 물든 자와 이에 짓이겨진 자로 인해
부조리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더 단단해졌습니다.
나무 밑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고,
한 번 엎질러진 악은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얼룩을 입힙니다.
에그발의 멱살을 붙잡고 왜 그랬냐고 추궁하고 싶었던
바히드는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않기로 합니다.
원수와 그를 지지하는 아내이지만 출산을 돕고,
새로운 세대를 세상으로 안내하고 환영하며,
딸아이에게 굳이 아빠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불합리한 정부가 만들어 낸,
모두가 뇌물을 요구하는 기이한 세상에서
그는 올곧음을 지켜내기로 합니다.
척추의 고통과 귓가의 의족 소리는
여전히 언제나 그를 따라다닐 테지만요.
삐걱삐걱, 그 사소한 굉음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봅니다.
#그저사고였을뿐 #자파르파나히 #이란
1 week ago | [YT]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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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베일리와 버드> 후기: 고작 12살짜리 아이에게 어디선가 벌어지는 일들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밥 먹듯이 타는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신작 <베일리와 버드>는
저에게 영화의 존재 의의를 떠올리게 해 준 작품입니다.
주류 미디어에서 잘 다뤄지지 않거나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되는 빈민가의 일상을,
그것도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관점에서
섬세하게 담아내는 작품은 언제나 소중하죠.
베일리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무책임한 아빠의 날림 같은 결혼식에도,
철없는 오빠의 일탈과 야반 도주에도,
불쌍한 엄마의 폭력적인 남자친구에도,
베일리의 반대는 철저히 무시당하죠.
이처럼 새장에 갇힌 새 신세인 베일리에게
상처 입은 야생 새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베일리는 버드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으나 찾지 못하고,
가까스로 만난 이는 부모라 할 수 없는
외롭고 허탈한 여정에 함께합니다.
그 끝에서 반드시 지긋지긋한 새장에서
자유로운 낙원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덜 외롭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의지하게 되며 힘을 얻는 두 사람이에요.
갑자기 베일리의 상황이 바뀌진 않겠지만,
어린 시절 이 잠깐의 연대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그를 지탱해 주는
자그마한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게 됩니다.
카메라가 잘 닿지 않는 곳,
자기 목소리를 낼 힘이 없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대우하며
그의 이야기를 펼쳐 준 영화가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모두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어떤 부분에선 잠이 오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어린 베일리를 알아가고, 응원하게 되는
그 모든 순간에 진정으로 감사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큰 화면으로
베일리의 이야기에 함께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권해 드립니다.
#베일리와버드
1 week ago | [YT]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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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 <부고니아> 후기: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꿀벌지기 이야기 🐝🐝🐝
작년 12월 뉴욕 한복판에서 발생한
보험사 대표 피살 사건이 기억납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대중의 반응은 총격범의 분노에 공감을 표하고
기업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꼬집는 분위기가 많았죠.
엠마 스톤이 분한 제약회사 CEO 미셸 역시
처음에는 억울한 피해자로만 보이나,
인간성이 절제된 듯한 그의 말투와 사고 방식에
얼마 안 가 우리는 불쾌한 기시감을 느끼게 됩니다.
미셸네 회사의 비윤리적 실험으로 인해 엄마를,
환경 파괴로 인해 아끼는 벌들을 잃게 된 납치범 테디는
아무리 침착하게 말하려 해도 감정이 폭발하지만요.
🐝🐝🐝
놀라운 점은 영화가 테디를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또 하나의 가해자로 그린다는 점에 있어요.
테디는 장애가 있는 동생 돈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그가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 제한하고 통제합니다.
"미셸은 우리를 조종하려 하니 조심해" 라는 그의 말에
"네가 하는 건 조종이 아니야?" 라고 묻고 싶어지는 이유죠.
그의 모순이 가장 격렬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아무래도
"벌들은 성실해서 좋다"는 미셸에게
"착취하기 좋다는 소리냐"며 비꼬는 장면일 거예요.
이게 왜 이상하냐고요? 테디 본인이 바로 양봉장 주인이잖아요!
🐝🐝🐝
원작에서도 병구가 결코 선인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훨씬 더 연민 어린 시각으로 묘사되었죠.
그렇기에 원작이 병구(病球)가 만식(萬食)을,
즉 만물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는 인류를
병들고 황폐해진 지구가 심판하려는 내용인 반면
이번 작품은 테디도 만식의 또 다른 모습이라 말하는 듯합니다.
빵집 주인의 이기심이 좋은 빵을 만든다는 격언과 달리
해로운 빵을 속여서 팔거나 종업원을 혹사하고,
공동체를 해쳐서 이윤을 추구하는 빵집 주인이 많죠.
그런데, 빵집 손님이나 직원은 무고한 사람일까요?
"나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상당수는 사실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의 타락에 기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설국열차>가 미셸과 같은 이들을 타도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논한 지 10여 년이 지나
<부고니아>는 한 발 더 나아가 미셸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성찰이 필요함을 말하는 작품 같네요.
...라는 이야기를 현재 유튜브 영상으로도 제작 중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불평등과 계급 갈등이 심해지는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날카로운 경고를 날리는 작품,
<부고니아>를 추천해 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떻게 지구를 구하고 계신가요?
#부고니아
1 week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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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페셜 싱어롱 이벤트>를 놓치면 안 되는 세 가지 이유
오늘이 한국에서 <케데헌>을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6월에 한 번 싱어롱 상영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지 않았지만,
한국에 계신 분이라면 이번 기회를 꼭 잡으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조금은 열기가 식은 지금에서야 개봉한 게 아쉽지만,
여전히 이 작품은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거든요.
🎤🎤🎤
첫 번째 이유, 잘생긴 얼굴은 크게 보아야 합니다!
노트북에서는 진우의 캐릭터 디자인이 나쁘진 않지만
루미와 친구들에 비하면 섬세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극장에서 진우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마다 탄성이 나왔어요.
그때의 감동을 많은 분들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한국의 야경 등도 큰 화면으로 보니 더욱 멋지더라구요!
역시 뭐든지 좋은 건 크게 보아야 하는 것 같네요.
🎤🎤🎤
두 번째로, 덕질은 함께 해야 즐겁습니다!
돌덕 분들은 왜 아이돌을 보러 콘서트장까지 가고,
유튜브 컨텐츠를 보더라도 친구들과 같이 보곤 할까요?
아마도 덕심을 공유하는 다른 팬들과 한 자리에 모여서
우리의 공통된 마음을 확인하는 기쁨 때문일 것 같아요.
객석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며
나처럼 이들이 모두 <케데헌>을 보러 왔구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
마지막으로, 지금 아니면 안 되니까요!
넷플릭스가 얼마나 지독한 기업인지 아시죠?
<글래스 어니언>이 개봉 일주일만에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들였는데도
얄짤 없이 8일째에 상영을 중단해 버렸을 정도로
넷플릭스의 극장 기피증은 유명합니다.
요즘 들어 몇몇 작품은 적극적으로 상영하기도 하지만,
구작을 다시 재개봉해 주는 일은 없을 듯해요.
다시 없을 기회인 오늘, 꼭 관람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
여러분은 <케데헌> 싱어롱 상영에 다녀 오셨나요?
재밌는 관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
2 weeks ago | [YT]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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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베이비걸> 후기: 지금까지 내가 알던 BDSM은 가짜 BDSM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수차례 전율하고 감탄했습니다.
현실에서도, 창작물에서도
CEO와 말단 직원의 치정은 정형화된 소재이고
전통적 성 권력 구조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죠.
BDSM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 영화는 그 모든 면에서 반대를 선택합니다.
처음에는 남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면서
아침 식사와 아이들 도시락 준비를 전담하고
남편에게 불쾌한 말을 들으며 사는 로미가
전형적인 성불평등 영화 주인공처럼 보여요.
차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인간으로 존중받고
기업인으로 성공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욕망,
바로 지배당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점이죠.
남편은 이것이 남성들의 가학적 판타지이고,
남성중심주의의 전유물이라 말합니다.
부하 직원은 여성 CEO는 성편력이 없을 줄 알았다며
다른 여성들이 선망할 만한 롤모델이 돼라 요구해요.
하지만 남자들에게 BDSM이 어떤 것이든지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로미의 마음이고,
여성은 무엇이고 무엇을 원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대신
영화는 로미에게 자유를 선사합니다.
지배 성향은 사무엘, 복종 성향은 로미지만
사실 어디까지나 사무엘이 로미의 따까리고, 노리개죠.
영화 속 플레이 역시 남성의 뒤틀린 유희가 아니라
여성의 만족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돼요.
결국 치부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당당하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로미는
어느 때보다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입니다.
그렇기에 <베이비걸>은 야하거나 변태적인 영화가 아닌
세상에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찬란한 지지를 보내는 영화라고, 저는 느꼈던 것 같네요.
니콜 키드먼의 감탄스러운 연기와
감각적인 음악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던 작품,
<베이비걸>을 기쁘게 추천드립니다.
2 weeks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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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프랑켄슈타인> 후기: 빅터네 가족에게 오은영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기예르모 델 토로가 세 번 연속으로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무치게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 틈에
인간성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담았는데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작품일까요?
🎬🎬🎬
영화 속 남성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정복하려 해요.
아내와 자식을 통제하려 한 남작과
돈으로 죽음을 이겨 내려 한 무기상,
힘과 영토를 위해 전쟁을 벌이는 국가들...
그중에서도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되고자 하는 빅터의 욕망은
남경의 모습을 한 연구실만큼이나
노골적이고, 저속하며, 오만합니다.
아버지로서도, 창조주로서도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한 고민은 건너 뛰고
자기 과시를 위해 생명을 배설한
미성숙한 인간은 곧 학대범이 되고 말죠.
🎬🎬🎬
날 때부터 십자가에 매달려
아버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태어난 아들은
교감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그는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교감해야 할 상대이지만,
노회한 장애인과 코르셋 끼워진 여성만이
이를 알아보는 듯해요.
우월 의식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자신의 의사에 맞추려 하지 않는
진정한 교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 만연한 혐오와 적의가
그 두 사람마저 앗아갔을 때,
이름 없는 이는 절망에 빠집니다.
🎬🎬🎬
두 사람은 끝내 북극에서 재회합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아버지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사죄합니다.
그러자 이름 없는 이는
빅터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죠,
바로 자기 부모를 용서하고
스스로를 자유케 하는 일이요.
평생 남작에게 저항했으나
정작 그의 유산을 고스란히 대물림한
전 세대의 실수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거죠.
깎이지 않은 장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새벽 동을 맞이하는 길손에게
삶은 여전히 험난한 싸움의 연속이겠으나
더 이상 무의미하진 않게 느껴져요.
존재하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런 확신과 기운이 함께하기를,
응원하고 기원합니다.
🎬🎬🎬
여러분은 <프랑켄슈타인>을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저는 결말부의 전개가 다소 급작스럽고
클레어와 엘리자베스의 분량이 적게 느껴져서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래도 넷플릭스에 공개되면 꼭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구독자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2 week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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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굿뉴스> 후기: 이토록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성찬을 누리는 감동
영화를 보면서 수준 높은 대형 오케스트라나
산해진미가 골고루 차려진 식탁이 연상됐습니다.
현란한 스텝으로 춤추듯 나아가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마구 튀는데 재미없는 순간이 없어서
모든 악기가 황홀한 소리를 내는 연주나
모든 요리가 훌륭한 식사를 즐기는 듯했거든요.
<스탈린이 죽었다>를 연상시키는 블랙 코미디 속에
모순적이기 그지없는 인간들을 풍자하고,
그렇게 가벼운 척 던지는 현란한 대사들 속에
의외로 묵직한 질문들을 담아냅니다.
혁명가도, 반공 투사도, 얄팍한 논리로 자신을 무장합니다.
군인도, 정치인도, 책임과 공포 앞에 갈팡질팡합니다.
언론도, 소시민도, 누군가의 장기 말로 쓰이고 맙니다.
북한 관제사도, 영화 감독도,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합니다.
우리가 진실이라 생각하는 정보도,
진리라 믿는 가치관이나 원리 원칙도
모두 의미를 잃는 듯한 상황 속에서
서고명 중위는 점점 안광을 잃을 수밖에 없죠.
이 세상에서 그럼 무엇이 굿 뉴스일까요?
납치범들의 무사 월북은 비보이고
작전의 함구 명령은 낭보라는 아무개는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까 싶어요.
"달의 뒷면은 배드 뉴스,
앞면은 굿 뉴스지" 라고요.
일견 세상의 부조리함에 무감해지자는
허무주의적인 포기의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저에게는 같은 달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지는
인간에게 달렸다는 경고로 읽히기도 하네요.
여러 창의적인 연출과 향수를 부르는 미장센,
컨셉 확실한 B급 유머에 초호화 출연진의 명품 연기,
적절한 음악 사용까지 무척이나 좋았던 작품입니다.
설경구의 캐릭터가 너무 전지전능하고
일본 공항 장면이 살짝 지겹게 느껴진 점 등
일부 단점은 거의 잊게 될 정도로요.
한국 영화 <킹메이커>, <거미집>이나
상기한 <스탈린이 죽었다>를 즐긴 분이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권해 드리고 싶은 영화,
<굿뉴스>를 지금 바로 넷플릭스에서 만나 보세요!
3 weeks ago | [YT]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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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 스토리만큼이나 중요한 '텔링' - <웨폰> &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비교하기 🍿
최근 개봉한 두 편의 흥미로운 영화,
<웨폰>과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두 가지 큰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방금 본 내용에 대해서
타인과 생각을 나누고, 열띤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는 점과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주인공을 채택하고
MPOV로 이야기를 펼쳐 낸다는 점이죠.
<웨폰>은 유사한 시점의 사건들을
젊고 열정적인 교육자로 시작해
자식 세대를 지켜 주고 싶은 성실한 아버지,
한심한 범죄자와 부패한 공권력, 무력한 아이까지
여러 명의 관점에서 한 번씩 반복합니다.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환기하고
모든 관객이 최소 한 명에게는 이입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매 관점마다 조금씩 새로운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이야기를 빌드업하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작법이에요.
참신한 부분도 많지만 소름 돋게 기발하진 않은 각본이
바로 이러한 전개 탓에 한 시도 지루하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충족시키는 결과물로 이어진 듯해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소재만 따지면 <웨폰>을 능가하고도 남을
무척 흥미로운 스토리를 자랑합니다.
세계를 멸망시킬 핵전쟁이 개시되기 전 20분,
그 짧은 시간을 한 번은 현장의 말단 공무원들,
한 번은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인사들,
한 번은 대통령과 국방 장관의 관점으로 보여 주죠.
그러나 <웨폰>에 비해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이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는 이유는
파편화된 서사들 각각이 풍성하지도,
하나의 지점에서 만족스럽게 만나지도 않기 때문일 거예요.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리액션과
처음 핵을 격추하려는 공무원들의 고군분투는
분량에 비해 내용이 뻔한 데다 동어 반복이 심하고,
결정권자들의 고뇌, 체념, 결단 등을 다룬 것은 좋지만
해당 인물들 다수가 어설픈 면모가 강조돼
충분히 깊이 있는 고찰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죠.
이 경우 스토리 자체는 장점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부각하는 스토리텔링이
영화의 매력을 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복 전략의 확실한 논거와 당위를 제시한 브레이디 장군과
완성도 높은 서사를 지녔던 베이커 장관 등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워지네요.
때로는 "무엇"을 보여 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 주는지가 중요할 수 있음을
새삼 되새기게 되는 두 작품이었기에
비교하며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두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알려 주세요!
1 month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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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어느새 무려 400명의 고마운 분들이 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되어 주셨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멋진 분들을 셀 수 없이 만났고,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과 교류할 수 있어 항상 기뻐요.
여러분에게 보답하도록 앞으로도 좋은 포스팅 많이 올려서 팔로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계정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1 month ago | [YT]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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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김해마 Haema in Cinema
구독자 여러분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명절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분에게도,
혼자 계신 분에게도,
따뜻하고 풍족한 기운이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추석을 다른 말로 중추절이라 부른다고 하더라구요.
가을의 딱 가운데라는 뜻이니,
벌써 2025년 가을도 절반이 지난 셈이네요.
"올해 노벨문학상 한강이 받은 거 아니었어요?"
라는 누군가의 농담처럼,
세월이 워낙 빨리 흘러서 놀랍고 아쉬울 때가 있죠.
그렇기에 더더욱 아까운 우리의 시간을
나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북돋아 주며 쓸 수 있길 바라요.
이번 추석 연휴가 구독자 님들께
그런 날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해외에 사는 저는 출근 준비를 하러 갑니다. 😭
제 구독자가 되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Happy Chuseok!
1 month ago | [YT]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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