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로 번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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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70) | <결말의 염려보다 열매가 될 동기를>

​결말에 대한 염려가 선한 동기를 가로막을 때가 많다. 가령 구제의 동기를 결핍에 시달릴 결말의 염려가 자주 가로막는 것처럼, 실제로도 염려대로의 결말이 일어나는 일은 매우 흔하기에 이는 어쩔 수 없다. 그 아무리 선한 동기여도 실행함에 여러가지를 따져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잊지 말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열매의 대부분이 '선한 동기의 실행' 에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지에 도움을 받아 선한 동기를, 동기로만 두지 않고 실행함은 분명 그분께 접붙인 자들이 맺는 열매인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본다면 우리로부터 맺혀질 열매는 그 얼마나 무수한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품은 선한 동기의 수가 전부, 열매로 맺힐 수 있는 가능성의 수이다.

​그러니 결말의 염려보다 열매가 될 선한 동기를 바라보며 주 안에서 담대함을 내자, 결말은 영원까지를 미리 바라보시며 최후의 선을 이루고자 계획대로 주실 하나님의 선한 경륜에 감사함으로 맡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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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9) | <침묵 안에서 보는 믿음과 은혜>

​때론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은혜로 살아있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기에 우리는 더 크게 부르짖게 되고, 그 침묵 안에서 더 선명히 들려질 우리의 부르짖음은 보게 합니다.

​끝까지 포기 않고 하나님을 붙들려는 내 믿음을, 하나님의 침묵을 무대로 더욱 생동하는 믿음을, 또 이로써 그 믿음을 살아있게 하는 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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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8) | <가장 필요 없으나, 가장 필요한 메시아>

​예수님은 율법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소하거나 해소의 방책은 소유했다고 여기는, 그래서 죄에 대하여는 메시아가 필요치 않은 민족에게 오사,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절대적인 죄의 실상과 당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메시아 임을 역설하셨다.

​곧 당시 일어난 소요와는 별개로, 해당 민족의 기존 인식상에서 '죄의 메시아인 예수님' 은 가장 필요없었으나, 그럼에도 가장 필요한 메시아로서 자신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성경이 설명하는 예수님은, 현대의 사람들이 죄의 문제를 절대적 주제로 여기지 않는 배경 위에서 더욱이나 불필요해졌다.

​허나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외면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안다. 아무리 세상이 불필요하다 해도 누구에게나 가장 필요하신 분이 죄의 메시아인 예수님 임을, 그래서 세상이 흥미를 갖지 않고 또 외면할 것을 알면서도 설명하고 전해야 하건만;;

​이에, 근래 몇몇 새신자 교육 교재를 살피다.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를 강조하나 그와 상대적으로 죄의 문제를 빈약히 다룬 한 경우를 보고, 그 의도는 이해가 갔으나, 예수님의 자기 선포와는 다른 결 같아 큰 아쉬움이 들었다.

​예수님은 당대의 그때부터 항시 죄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려는 분이였고, 이는 곧 오늘 우리도 당신의 초대를 받아, 당신과 함께 먹고 마시기 위해, 진지하게 나와 우리의 죄의 문제를 선 이해할 것을 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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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7) | <혼재하지만, 결국 다른 나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메시아에 의해 가이사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길 바랐던 이들에게, 이는 그 얼마나 명확한 구분을 지어주는가?, 두 나라는 결국엔 하나일 수 없는, 세금의 취수가 다른 구별된 나라라고!

​이에 그 아무리 현재까지는 둘 사이가 혼재한 듯 보여도, 그래서 가이사의 나라를 휘어 잡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시도들이 있다지만, 이 시도들은 결국 어리석게 드러날 것이다.

​두 나라는 하나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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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8 근황 |

#진리로번지는교회를세우기위한
#성인대상취미미술교습소
#흑백소묘전문






이번 주간부터 소묘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세우게 될 교회는 평일간에는 그 건물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취미미술교습소를 겸하고자 하거든요. 이를 준비하기위해 13년 만에 연필을 다시 잡았습니다.



이 교습소가 교회의 운영을 유지하는데에, 또 세상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에 잘 소용됐으면 합니다.



손이 너무 굳어서 힘드네요, 헌데 아주 오랜만에 그리니, 고정관념이 다 깨져 있어서, 한편으로는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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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6) | <쇠와 정을 대시는 경륜>

​돌의 너무 심히 모난 부분은 흐르는 물에 두어 그 세류에 다듬으려다간 소요의 시간이 한이 없으며 잘 다듬어지지도 않는다. 다른 부분들과 다른 더 중한 재질이기에 지금껏 모나게 남아온 탓이다. 또 오랜 시간 세류에 맡겼다간 모나지 않은 부분들도 함께 갈아 상실되게 할테다.

​이에 되려 세월의 낭비없이 또 안전히 모난 곳만 쳐내기 위해서는 쇠와 정을 대야만 한다. 엄한 곳을 치지 않고자 단단히 고정시키고서 말이다.

​하나님의 경륜도 그러한 것 같다. 우리의 현생은 짧기에 낭비되지 않아야 하고, 심히 모난 곳들은 당신의 선한 일들에 쓰임 받기에는 적절치 않고, 이에 하나님도 쇠와 정을 대셔야 한다. 옴짝달싹 피하지 못하게 우리를 결박한 상황으로써

​그리고 그 결박에 묶여 대처도 회피도 못하고 맞은 쇠와 정은 심히 아프고 당혹스럽다. 원망스럽기도하다. 아버지가 자녀를 이렇게까지 대하시나 싶어서,

​허나 그럼에도 이 상황이 진실로 쇠와 정이라면, 이보다 더 세심하고 자애로운 경륜이 또 없다. 이로써 나는 생애 그 어느 때보다 내 모남을 극히 경계하여 새겨뒀을 것이며, 더욱 그분의 선한 역사에 쓰임받기 좋은 모양새로 다듬어져 있을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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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5) | <키도 통제 못하는 과도한 염려자에게>

​눅12:25 - 26.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키는 내게 속했으나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것으로써, 내 몸도 내 맘대로 못 다루는 우리가 그 얼마나 능없고 연약한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헌데 내게 속한 것도 그렇다면, 그 바깥의 것은 오죽이나 더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안부터 밖까지 모든 것들을 과도히 염려한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의도대로 되지 않을까봐, 내 통제를 벗어나 잔인하게 나를 헐벗길까봐

​그리고 이가 바로, 나의 연약함을 잊음으로 나타나는 그 과도한 염려이다. 내가 나 하나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잊었기에 나타나는 염려, 또는 통제에 실패한 내가 연약한 이로 전락(?)해 드러날 것에 대한 염려, 염려 이전부터 본디 나는 연약한 존재건만!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염려 중 많은 부분이 내 존재를 잊어서 하게 된 과도한 것임을 일깨우고자 말씀하신다. "너는 네 키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잖니"

​그리고 비로소 내 연약한 존재를 깨달은 우리는 찾고 의뢰케 된다. 예수님이 소개하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 를

​눅12:28,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사실 연약함 그 자체는 타락의 특성이 아니다. 이에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연약함을 우리는 죄스럽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연약함이 죄에 사로잡힌 도구가 될 때, 타락의 특성처럼 죄스럽게 곡해될 뿐이다. 오히려 연약함은 선의 도구가 된다면, 능력의 하나님을 찾아 아버지 되심을 의뢰할 주요한 동기가 되며, 또 그만큼의 안심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그래서 우린 내 연약함을 잘 알고 인정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과도한 염려와 통제를 내려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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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4) | <시대 정황을 반영한 성경을 따라>

​갈라디아 교회 내 거짓교사들의 활동으로 할례 비할례 논쟁이 일고, 이로써 구원의 요건에 대해 논쟁하는 유대인 비유대인 양 진영을 위시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자,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오직 한 구원을 붙들 것을 역설하였고

​동시에 이런 행악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거라는 강력한 경고로써, 서로 갈등 중인 두 진영 모두가 기존에 동의하고 있었던 죄악들의 항목에, 교회 공동체 분열 조장의 죄악들을 같은 선상에 추가한다.

​갈5:20.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 과

​당시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여, '새롭게 등장한 악' 을 두 진영 모두에 깨우쳐 극히 경계시키고자 한 것인데,

​이를 보며, 물론 당연하게도 성경의 내용을 이 시대에 새로 덧붙일 수야 없지만, 그럼에도 마주한 시대의 '새로운 정황' 을 반영한 흔적이 뚜렷한 성경의 저작 의도를 따라,

​오늘날 우리도 최소한 그 적용만큼은 현 시대의 새로운 정황을 반영하는데, 더욱더 열리고 폭 넓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

​너무 과도히 문자적 의미에만 매여 시대를 아우르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우리로인해 퇴색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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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3) | <우리의 순전한 빛깔>

​빛은 빨강 초록 파랑 삼원색이 섞여 되려 흰색 빛이 된다. 그리고 우리의 순전함도 바로 이런 빛의 경우와 같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된 우리를 이리 가운데로 양을 보냄과 같다 하셨고, 이는 이미지 적으로 환원할 때, 이리와 같은 세상의 갖가지 색에 맞부딪혀 채색 될 일들이 있음을 전제한다.

​곧 우리는 아무 색도 묻히지 않을 차폐의 장소로 파송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색도 묻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색도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순전함은 빛과도 같아서 빨강 초록 파랑, 세상이 자신의 빛깔로 물들이고자 묻혀댐에도, 그 색들을 순전함의 흰 빛으로 산출해낸다. 때로는 단호함으로 때로는 지혜로이 소용함으로 때로는 의를 위해 품음으로,

​그리고 그렇게 흰 빛으로 드러난 우리는 마치 아무 빛깔도 섞지 않은 듯 순전하게 보여진다. 실상 그 모든 빛깔을 소화한 우리건만, 그럼에도 거룩의 빛깔로 드러난 것이다.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섞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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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안에 읽는 신앙 고민(62) | <관념의 주 사랑>

우리가 선망하는 하나님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구현하고자 해도 결코 그 수준과 차원에는 다다를 수가 없어 ‘관념들로만 서술될 수 있는’ 지점에 있고, 우리는 그 관념들을 알아가고 이해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선망이 더욱 자라나고 깊어져 가게 된다. 그 선망함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다.

​이는 성경 말씀을 보며,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의 서술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가슴이 터질듯한 사랑을 느껴보았던 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그리고 그 선망의 사랑으로 인해, 또한 부족할지언정 우리는 그와 같은 존재로서의 나를 도모케 된다.

​곧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관념을 앎과 이해함에서 많은 부분 시작되고, 선망으로 깊어 지며, 그 선망은 행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관해서는 깨지지 않는 일률의 도와도 같다. 앞서도 서술했듯,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많은 부분 관념적이기에,

​그런데 어찌 앎을, 묵상을 등한시 하겠는가?, 이를 등한시하면, 관념의 영역에서 서술된 하나님을 어찌 발견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따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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