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 형제 중 셋째 아들 - 1) 세종대왕 : 양녕대군 - 효령대군 - 충녕대군 (세종 이도) - 성녕대군 2) 이순신 : 이희신 - 이요신 - 이순신 - 이우신
2. 쉰 세 살에 돌아가심 - 1) 세종대왕 : 1397년 음력 4월 10일 ~ 1450년 음력 2월 17일 2) 이순신 : 1545년 음력 3월 8일 ~ 1598년 음력 11월 19일
3. 유례 없는 파격적인 승진 - 1) 세종대왕 : 1418년 음력 6월 3일, 아버지 태종이 장남 양녕대군을 폐세자 시키고 셋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두 달 뒤인 8월 10일, 살아 있는 채로 보위를 물려 주는 선위(禪位)로 조선 제 4대왕으로 등극. 2) 이순신 : 1591년 음력 2월 13일, 종6품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일곱 단계를 뛰어 오르는 파격 인사로 부임.
4. 초기 공직 생활이 가시밭길 이었으나, 끝내 위대한 창제의 성군과 구국의 영웅으로 자리 매김.
왕과 왕비가 살았던 궁궐은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들이는 남향(南向)을 원칙으로 건축합니다. 그래서 남쪽을 바라보는 왕을 기준으로 왼쪽이 동쪽, 그리고 오른쪽이 서쪽이 되는 것입니다.
궁궐의 정전(正殿) 앞 마당에서 행사를 거행할 때, 품계석 옆에 선 신하들은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섰습니다. 왕 기준 왼쪽인 동쪽에 문반(文班) 이, 그리고 오른쪽인 서쪽에 무반(武班)이 도열했습니다.
해가 뜨는 동쪽이 해 지는 서쪽보다 높은 방향이었기 때문에, 무신보다 높은 문신들이 동쪽에 도열했던 것입니다. 또한 왕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세자(世子)가 문신들과 함께 동쪽에 위치했고, 나머지 동생들인 대군(大君)들은 무신들과 함께 서쪽에 도열했습니다. 그래서 동쪽에 섰던 문반을 동반(東班), 서쪽에 섰던 무반을 서반(西班)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양쪽 반(班)을 합쳐 양반(兩班)이라 불렀는데, 나중에는 이 양반이 천민, 상민과 구별되는 신분 계급을 뜻하게 되었지만, 양반의 원래 뜻은 왕의 신하이며 궁궐 내에서 일하는 문신과 무신들의 관리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동서남북 밤 하늘의 스물 여덟 별자리 사방(四方) 28수(宿). 그 중 북두칠성을 비롯한 북방의 일곱 별자리를 관장하는 북방의 神 현무(玄武). 거북의 몸과 뱀의 머리를 가진 현무는 방향으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색깔로는 검은색, 그리고 음양에서는 차가운 음(陰:물)을 상징하는 천하무적 전쟁의 神 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모히칸족의 전설적인 도끼 토마호크를 미사일 이름으로 붙였듯, 우리나라도 이 현무 시리즈로 미사일 라인업을 구축했던 것입니다.
100년 만에 제 모습으로 돌아간 광화문 현판. 조선시대 궁궐의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으로 글자를 새겨 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등 뒤에 북악산을 두고 눈 앞에 한강을 마주보고 있는 남향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궁궐에서는 양(陽)의 기운이 너무 강렬해서 화재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의 기운을 억제하고자 북방의 神 현무를 상징하는 검은색 바탕의 현판을 사용했던 것이고, 경회루 역시 태종때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판 글자를 황금색으로 새겼던 이유는 黃色은 흙의 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 아래 모든 땅과 흙의 주인인 王의 절대성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역시역사(易視歷史)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충무공 이순신
(忠武公 李舜臣)의 공통점 -
1. 4 형제 중 셋째 아들 -
1) 세종대왕 : 양녕대군 - 효령대군 - 충녕대군
(세종 이도) - 성녕대군
2) 이순신 : 이희신 - 이요신 - 이순신 - 이우신
2. 쉰 세 살에 돌아가심 -
1) 세종대왕 : 1397년 음력 4월 10일 ~
1450년 음력 2월 17일
2) 이순신 : 1545년 음력 3월 8일 ~
1598년 음력 11월 19일
3. 유례 없는 파격적인 승진 -
1) 세종대왕 : 1418년 음력 6월 3일, 아버지
태종이 장남 양녕대군을 폐세자 시키고 셋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두 달 뒤인 8월
10일, 살아 있는 채로 보위를 물려 주는
선위(禪位)로 조선 제 4대왕으로 등극.
2) 이순신 : 1591년 음력 2월 13일, 종6품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일곱 단계를 뛰어 오르는 파격 인사로 부임.
4. 초기 공직 생활이 가시밭길 이었으나,
끝내 위대한 창제의 성군과 구국의 영웅으로
자리 매김.
5 months ago (edited) | [YT]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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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역사(易視歷史)
양반(兩班)의 뜻 -
왕과 왕비가 살았던 궁궐은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들이는 남향(南向)을 원칙으로 건축합니다. 그래서 남쪽을 바라보는 왕을 기준으로 왼쪽이 동쪽, 그리고 오른쪽이 서쪽이 되는 것입니다.
궁궐의 정전(正殿) 앞 마당에서 행사를 거행할 때, 품계석 옆에 선 신하들은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섰습니다. 왕 기준 왼쪽인 동쪽에 문반(文班) 이, 그리고 오른쪽인 서쪽에 무반(武班)이 도열했습니다.
해가 뜨는 동쪽이 해 지는 서쪽보다 높은 방향이었기 때문에, 무신보다 높은 문신들이 동쪽에 도열했던 것입니다. 또한 왕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세자(世子)가 문신들과 함께 동쪽에 위치했고, 나머지 동생들인 대군(大君)들은 무신들과 함께 서쪽에 도열했습니다. 그래서 동쪽에 섰던 문반을 동반(東班), 서쪽에 섰던 무반을 서반(西班)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양쪽 반(班)을 합쳐 양반(兩班)이라 불렀는데, 나중에는 이 양반이 천민, 상민과 구별되는 신분 계급을 뜻하게 되었지만, 양반의 원래 뜻은 왕의 신하이며 궁궐 내에서 일하는 문신과 무신들의 관리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5 months ago (edited) | [YT]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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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역사(易視歷史)
세조(수양대군)의 진짜 얼굴 -
영화 '관상' 속의 이정재 얼굴과는 전혀 느낌이 다른 세조(世祖) 얼굴.
조선 초기 임금들은 턱수염이 거의 없었는데, 이것은 조선 최후의 어진 화사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주장과도 일치합니다.
이 세조 어진 초본(草本)은 2016년 12월, 개인이 소장하다 경매에 나온 것을 문화재청이 구입했고,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전시하지는 않고 수장고에 특별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조 어진 초본이 가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얼굴에서 동그스럼하고 퉁퉁하며, 무엇보다 턱수염이 거의 없는 아버지 세종대왕의 얼굴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턱수염 펄럭이는 만원 지폐의 세종대왕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이 그린 인물 상상화 입니다.
6 months ago | [YT]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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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역사(易視歷史)
신당동과 무당 집성촌 공동묘지 -
지금은 떡볶이로 유명한 신당동,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시구문 밖 공동묘지로 무당(巫堂)들이 몰려 살았던 집성촌이었습니다.
한성 외곽 8개 문 중에서 유일하게 통금이 없이 24시간 내내 열려 있었던 문이 신당동 입구에 있는 광희문(光熙門), 즉 시구문(屍口門)이었습니다. 4대문 안에는 전염병 때문에 한밤중에라도 시체를 내보내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시구문 밖에는 큰 공동묘지가 있었고, 이 일대에서 시체를 처리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몰려 살았는데, 그들이 바로 무당(巫堂)이었습니다.
병자호란이 터진 1636년 12월 말, 인조는 백성들 몰래 야밤을 틈타 남한산성으로 도망을 갔는데, 그때 인조가 빠져나간 문이 바로 이 시구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대에는 아직도 '시구문'의 잔재가 더러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무당골', 내지는 '神堂골'로 불리다가, 현재는 '신'자를 바꿔서 '新堂洞'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6 months ago | [YT]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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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역사(易視歷史)
동서남북 밤 하늘의 스물 여덟 별자리 사방(四方) 28수(宿). 그 중 북두칠성을 비롯한 북방의 일곱 별자리를 관장하는 북방의 神 현무(玄武). 거북의 몸과 뱀의 머리를 가진 현무는 방향으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색깔로는 검은색, 그리고 음양에서는 차가운 음(陰:물)을 상징하는 천하무적 전쟁의 神 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모히칸족의 전설적인 도끼 토마호크를 미사일 이름으로 붙였듯, 우리나라도 이 현무 시리즈로 미사일 라인업을 구축했던 것입니다.
100년 만에 제 모습으로 돌아간 광화문 현판. 조선시대 궁궐의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으로 글자를 새겨 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등 뒤에 북악산을 두고 눈 앞에 한강을 마주보고 있는 남향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궁궐에서는 양(陽)의 기운이 너무 강렬해서 화재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의 기운을 억제하고자 북방의 神 현무를 상징하는 검은색 바탕의 현판을 사용했던 것이고, 경회루 역시 태종때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판 글자를 황금색으로 새겼던 이유는 黃色은 흙의 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 아래 모든 땅과 흙의 주인인 王의 절대성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6 months ago (edited) | [YT]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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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역사(易視歷史)
조선 왕릉 중 최고의 명당인 태조 이단 (太祖 李旦: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입니다. 문종의 현릉, 현종의 숭릉, 영조의 원릉 등과 함께 구리 동구릉에 내에 모셔져 있습니다.
6 months ago | [YT]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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