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을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트레킹컬쳐큐레이터(TCC)

제휴 및 협업 문의 : 트렌드서핑 windpilgrim7@naver.com


길을 걸을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청년은 6.25 전쟁이 발발한 당시 23세 육군사병이었다.
20대 초반의 청년은 전쟁 한 해 전 군입대를 하루 앞두고 면사무소안에 마련된
입대예정자 이발소에서 마치 스님처럼 머리를 깍은 후,
마지막으로 식사를 위해 가족들과 둘러 앉았을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큰형, 둘째누나, 여동생, 막둥이 남동생과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길로 떠나는 가족 일원의 마지막 식탁에
4살 많은 둘째누나는 쌈짓돈을 털어 인근시장 푸줏간에서 사온
작은 한 덩이의 쇠고기에 무, 파를 썰어넣고 오랜만에 정부미가 아닌
하얀 이밥에 뜨끈한 국이라도 끓여 아침을 먹여 보냈을 것이다.
오전 10시경, 사이렌이 울리며 군용트럭이 입영자들을 태우기 위해
도착했으니 모이라는 확성기에 실린 마을 이장의 바튼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늙으신 노모는 늘 어미를 걱정했던 살뜰했던 둘째 아들의 손을 잡으며,
“집은 성과 누이가 있응께 아무 염려말고 몸 건강히 잘 다녀 오그래이!”
6살 많은 큰형은 말 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고,
둘째누나는 정지(부엌의 충청도 사투리)에서 행주치마로 눈물을 훔쳤다.
10살 어린 동생들은 “성아야! 그러면 몇 밤 자면 집에 오나?” 떠나는
그의 등뒤에 대고 연신 물었다.
“형이 돈모아서 휴가나오믄 운동화 사줄께! 형, 누나 말 잘 듣고, 공부열심히 하고 있어라!”

입대한지 이듬해인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선전포고 없이
북한은 소련제 전투기와 T-34 탱크, 기관총을 무차별로 난사하며
무방비의 서울을 기습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다.
낙동강까지 밀린 국군과 UN군은 같은 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을 하는 잠시 승리감을 맞보았으나,
이내 한 달 만에10월 19일 중공군 26만 여명의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군을 지원하여 전세는 재역전된다.
12월 31일 중공군의 대대적인 3차공세(신정공세)로
1951년 1월 4일 서울을 포기하고 후방으로 후퇴한다.
전력을 가다듬은 국군과 UN군은 1951년 1월 25일을 기하여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3월 15일 드디어 중공군의 4차공세를 격파하면서
서울을 재탈환하고, 3월말에는 38선까지 회복한다.

이후 중공군의 지속적이며 끈질긴 공세는 계속되었고,
서부전선(개성~화천)과 동부전선(양구~인제)의 피를 말리며 낮과 밤마다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말그대로, 고지전이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 까지 끊임없이 일어났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UN군 대표로 참석한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군 대장 남일,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 3자가 휴전협정에 사인하며 3년 1개월간의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막을 내린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남한 국군은 휴전협정장에 배석하지 않았다.(또는 못했다.)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었을 이미 제대(군대를 마침) 날짜는기약도 의미도 없어진
25세 청년은 ‘철의 삼각지’ 금화지구에서 전투에서 1952년 1월 19일 전투중 전사한다.
그의 유골과 군번줄은 타의에 의해 국토가 두동강 난 38도 휴전선이 그어진지
1
1년 10개월후인 1954년 10월 발견되어 부모와 가족에게 통보된다.
15살의 어린 남동생은 ‘운동화를 사주겠다’며 환하게 웃으며 떠났던
둘째 형이 영영 못돌아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25세 전사하신 청년이 나의 큰 아버님이시다.
15살의 어린 남동생은 그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월남전에 참전하고,
육군 장교(중령)가 되신다.
그 어린 남동생이 나의 아버님이시다.

내일(6월 6일)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제68회 현충일이다.
오전 10시 정각에 추도 사이렌이
불과 74년전 군용트럭에 올라타던 그 날 청년들의 귀에 들렸던 것처럼 울릴 것이다.

2 years ago (edited) | [YT] | 4

길을 걸을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바야흐로 5~6월, ‘장미의 계절’이다.
"신은 인간에게 🍇포도를 선물했고
인간은 그 선물로 와인을 만들었다."
는 말을 인용하자면,
"신은 인간에게 🌹장미를 선물했고,
인간은 그 장미를 교배하여 2만5천여종의 장미를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 프랑스나 영국에서 정원조경으로 꽃의 육종과 향수가 발달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거리 곳곳이 악취로 진동을 했고, 귀족이나 서민이나 잘씻지않아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향수》의 주인공은 썩은생선 대가리와 비늘들이 나뒹굴며 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하는 진흙바닥에서 태어난다. 그런 주인공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후각으로 당시 귀족부인들과 처녀들이 환장하는 향수를 요즘말로 연속으로 메가 히트시킨다. 결국, 주인공은 자연에서 얻은 꽃을 배합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장미 꽃봉오리가 막 피기 직전같은 나이 때의 매혹적인 체취가 나는 어린 여성들을 살해하여 향수를 만들어 향기가 피어올랐다 사라지듯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향수의 향기처럼 몇분간 머물다 소멸되어 버린다.

“영국 장미의 아버지(The Father of English Roses)”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스틴은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240종이 넘는 장미 품종을 개발하고 이름을 짓는 장미에 미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행복하게 미친사람 그가 미치도록 부럽다.)
그는 한편, 문학애호가이자 저술가였으며 또한, 시인이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영국 고전장미를 안타까워했던 젊은 농부 데이비드 오스틴(David Austin)은 마침내 첫 번째 오스틴 장미인 '콘스탄스 스프리(Constance Spry)'를 1961년에 육종하게 된다. 데이비드 오스틴은 1969년까지 고전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형대장미의 반복 개화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장미 육종을 확립하여 그의 장미를 ‘영국장미(English Roses)’로 명명하여 출범을 하게 된다. 지속적인 그의 노력은 1983년 첼시 플라워 쇼(RHS Chelsea Flower Show)에서『메리 로즈』, 『그레이엄 토마스』, 『헤리티지』세 품종의 오스틴 장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연이어 계속적으로 골드 메달을 수상한 데이비드 오스틴 장미는 이후 각종 플라워 쇼의 하이라이트가 되어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
2003년 왕립원예협회로부터 빅토리아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원예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현재는 1990년부터 그의 둘째 아들 데이비드 오스틴 주니어(David Austin Jr.)가 사업에 참여하면서 David Austin Roses Company는 국제적인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장미유(rose oil) 1그램(g)을 얻는데 장미꽃 1500송이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세계의 여성들을 후각으로 마비시켜 불과 50~100ml 한 병에 10~30만원까지 하는데도 30초에 한 병 씩 팔려나간다는 샤넬(CHANEL) No.5도 장미꽃이 한창 필 무렵인 1924년 5월 5일에 탄생했으니 올해로 이 향수도 99세를 맞는다.

여담이지만, 지금까지도 "영원한 패션계의 아이콘"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Coco Chanel, 1883~1971)은 나치에 부역하였다는 이유로 2차대전 종전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1급 부역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도움으로 풀려나긴 했으나 결국 스위스에 도피하여 죽을 때까지 프랑스땅을 밟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스위스 로잔에 묻혀있다. (♣ 지위고하를 막론한 역사 앞의 단죄! 한 나라의 “국격(國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번 주말 “작은 참새”라 불렸던 ‘프랑스의 목소리’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가 장미에 빗대어 영화배우 이브 몽땅(Yves Montand, 1921~1991)에 대한 연정의 마음을 담아 직접 만들어 부른 ≪라 비앙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인생)≫를 들으며 반드시 장미축제를 못 가더라도 가까운 공원의 장미 몇 송이를 만나보면 어떨까?

2023년 5월의 마지막날
트레킹컬처큐레이터 단상

Edith Piaf -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
https://youtu.be/B-xnAlKZ2OY

영화『라 비앙 로즈(La Vie En Rose)』 -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 난 후회하지 않아!)" 장면
https://youtu.be/0F1Vbwt60qk

2 years ago (edited) | [YT] | 4

길을 걸을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아주 오래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세간에
회자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참으로 권위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만큼 배경지식을 아니까 같은 것을 봐도
너 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느낄 수 있다는 허위의식이자 교만일텐데,
이 말은 오늘날에도 지식인들의 자아도취와 선민의식이
느껴져 여전히 불편하게 들린다.

윤동주의 '서시'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밀레의 '만종',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나,
경복궁의 봄비오는 날의 '향원정', 창덕궁의 단풍이 붉게 물든 '비원',
눈오는 날의 인왕산 범바위의 우렁찬 모습과,
동트는 새벽 지리산의 코발트빛 하늘과 쏟아질 듯한 별들과,
저물무렵 하얀 캔버스에 서서히 노을색으로 채색되는 북한산 인수봉 암벽컬러의 아름다움,
하찮은 개나리 일지언정 봄볕에 마실나온 수십만마리의
병아리 병정들처럼 응봉산을 한가득 뒤덮는 그 찰나의 노란세상 마저도
배경지식을 많이 알아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렸던 지난 2년가까이
YouTube "길을 걸을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youtube.com/@trekkingculturecurator)
개인 채널을 통해 시간이 허락하는 때 마다
부족한 영상과 사진, 더 부족하고 어줍짢은 글귀를
끄적여 업로드해왔다.
일개 자연인인 내가 느낀바를, 우연히 지나가던 당신도
느껴본 적이 있었는지,
그 느낌을 공유하고 교감하고 싶었다.
그 느낌은 고급질 필요도 어려울 필요도 없으며,
더구나 상대에게 강요할 필요는 더더욱 없어야 할 것들이다.
다만 이 세계의 화폐나 물질로 치환될 수 없는 것들.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들의 소중하고 아름다움!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느낌이 단 한번이라도 통했다면
나의 2년간의 작업은 결코 수고롭지 않았던 것일 것이다.

2023. 05. 12

WHO가 COVID-19 종식을 선언하고
또 다시 미세먼지가 가득해져버린
지구별의 어느 한 구석탱이에서

트레킹컬처큐레이터(trekkingculturecurator) 斷想

2 years ago (edited) | [YT] | 6

길을 걸을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작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지천(支川)을
끼고 있는 산책로는 거대한 강변 산책로에 비해
훨씬 산책자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교토(京都)의『가모가와강(鴨川)』산책로가 그렇고,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의 인공운하인『리버워크(River Walk)』가 그렇다.
연간 천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의 동선에 이 천변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관광을 즐긴다.
여기 소개하는 서울의 하천과 인공호수도 시와 지자체에서
포스트 코로나 관광콘텐츠로 각광받을 만한
아이디어와 고민이 조금더 필요할 듯 하다.

https://youtu.be/kyS39o2FDOc

2 years ago (edited) | [Y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