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숭실대학교 철학, 행정학 학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전도사, 벧엘선교교회 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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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찬아, 둘 중에 하나는 해라. 나의 부족함을 직시하거나, 상대방을 포용하거나.”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롬 12:9)



1. 오늘 본문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도전인 동시에 성스러운 전쟁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거짓이 없다는게 무슨 이야기일까? 원어로는 가식이 없다는 뜻이다. 사랑은 ‘감정의 열정’이 아니라 ‘도덕적 분별’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수 없이 고백하면서 과연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말이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겪는 내적 전쟁을 떠올린다.
사랑하기 위한 전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우리의 생각이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흔히 미운 형제가 있을 때에 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어떤 착각일까? 바로 내가 상처 받았다는 착각이다.
내가 상처 받았기에 잘못은 상대방에게 있으며,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유혹을 느낀다.



타인을 가해자 삼으며,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안전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내적 동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나는 상처 받지 않았다.”


타인을 가해자 삼으려는 가치관에서 벗어나라. 문제는 타인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라.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과연 나의 어떠한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속이 좁다는 것이 문제다.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수용할 능력이 부족하다. 수용성의 부족하기에 나를 직시할 용기도, 상대방을 포용할 용기도 없다.





종찬아, 둘 중에 하나는 해라. 나의 부족함을 직시하거나, 상대방을 포용하거나.



다시 한번 기억해라. 상대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의 어떠함이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지 않고 그를 껴안을 수 없는 나에게 문제가 있음을.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한 내적전쟁은 매우 긍정적이나,
그 상태에 계속 머무르며 감정을 소모해서는 안된다.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품고 가기로 마음 먹어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기에 성령님께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으로 가득차지 않으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죄된 인간의 속성이 나를 지배하게 두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힘과 동기를 잃는다.


손해보는 것이라 생각지 마라.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해라. 성화의 한복판이며 상남자로서의 길이다.


올바른 리더로 빚어져 가기 위해 사랑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교회에는 수 많은 생각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르기 때문에 사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음을.

충돌할 수도, 다툴 수도, 의견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 미움의 핑계가 될 수 없다. 그분으로 흘러 넘쳐야 사랑할 수 있다.


오늘 하루 다시 기도한다. 나의 성품을 고치실 주님을 신뢰하기로. 나는 타인을 사랑할 힘도, 나를 직면할 능력도 없지만 그분께서 나를 이끄실 것임을.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들.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니가 차려주실 따땃한 밥 한끼 드실 청년 구독자분들
시댁과 처가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 없을 신혼부부 구독자분들


아이에게 꼬까 한복 착장하시고 양가 다녀오실 새댁 구독자분들
자녀와 손주 기다리시고 계실 부모님 구독자분들


모두모두 사랑하고 축복드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특별히 추석때 외로우신 분들이 분명 계실텐데,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큐티도 공유 드려 봅니다 :)

3 weeks ago | [YT] | 172

종리스찬TV

"잠깐의 생명과 영원한 목숨을 바꿀 수 없습니다."


1.
선교단체 WGN (한일연합선교회)의 후원으로 일본 나가사키의 외딴 섬, 히라도에 와있습니다. 촬영을 위해 선교단체의 허봉철 목사님과 벧엘선교교회의 정해준, 김예린 청년도 함께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촬영이 이어지는 강행군이지만 일본 순교의 역사를 알리고 싶어 고군분투중입니다.



2.
300여년간 적어도 30만명이 순교한 일본 선교역사를 알고 계시나요? 현재에는 단 0.2%의 기독교 인구만 남아있는 복음의 미개척지인 일본 각지에 순교자들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입국 전 일본에 들러 '이수정' 으로부터 '마가복음 번역본을 들고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그 이수정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도 역시나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세카가하라 전투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남은 기독교 사무라이들은 세카가하라 성에 모여 최후 결전을 치뤘는데, 결국 참패하여 전멸당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마지막까지 대항하다 전멸당한 이야기는 사무라이 시대의 부풀려진 낭만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궁금증이 듭니다.


순교한 30여만명의 일본인들은 대체 왜 죽음을 무릅쓴 것이며, 갖은 고문에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일단 그 고문의 내용이 혀를 차게 만듭니다. 이런 고문을 생각해내고 세팅한 그 악마의 상상력이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3.
그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전달하고 싶습니다. 1만 제자를 양성하여 전세계를 선교하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과 일본을 깨우고 싶습니다. 일본의 순교사는 현대의 고달픔에 찌든 한국인들에게 성경적인 신앙기준을 제공할 것이며, 한국은 일본을 깨워 마지막 부흥의 보루로 함께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겨우 2박 3일간 어디까지 담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를 위해 마음을 모아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영상으로도 뵙겠습니다.


아울러 큐티도 공유드립니다.


250917 이종찬 큐티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에 하나님 앞에 살게 되었다." (롬 7:1~6)



1.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귀가 잘린 24명의 일본 크리스쳔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900km, 전국을 횡단합니다. 정부는 그들을 통해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의 위험성을 말이죠. 기독교인들은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니시자카 언덕에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들이 매달려 죽을 26개의 십자가였습니다. 왜 24개의 십자가가 아닌 26개의 십자가 였을까요? 900km 걷는 도중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2명의 죄수(?)가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공포정치로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2.
기적은 계속되었습니다. 귀가 잘린 기독교인들은 900km를 걸으면서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고, 스스로 순교할 마음의 채비를 마친 것입니다.


15살의 나이로 포로로 끌려온 한 어린아이는 "내 십자가는 어디있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일본 관원은 12살의 이바라키에게 물었습니다.


"배교하면 살려주겠다."


12살 이바라키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잠깐의 생명과 영원한 목숨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기독교인들을 굴복시키길 원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순교자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배교자가 필요했습니다. 마음이 굴복당한 사람으로부터 오는 절망과 공포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3.
1597년 2월 6일, 그렇게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이 탄생했습니다. 땅에서는 눈물, 천국에서는 기쁨이 있었던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 즈음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귀가 잘리는 아픔도, 900km 를 걷는 고통도, 가족들을 두고 십자가에 처형되는 이별도 견뎌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현생의 삶도 제대로 견뎌내고 있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의 나약한 기독교인이 내가 아닐까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쉽게 꿈을 잃고 쉽게 사랑을 포기하며 날마다 하나님과 자아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작은 믿음을 가진 내가, 어찌 순교자들에게 빚댈 수 있을까요.


대체 그들과 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불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가요? 그들은 대체 무엇을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과 나는 왜 다를까요?


죽기 직전, 한 기독교인은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나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단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죽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죽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내려 주신 커다란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영상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4.
그들은 전문적으로 교리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찬양집회에 참석했던 것도 아닙니다. 제자양육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붙들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진리는 단한가지 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 그들은 이 고통스러운 세상의 끝에 영원한 나라로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소망하고 품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유일한 구주라는 사실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그 한가지만을 붙들었습니다.



5.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6)


너무 어려운 내용의 본문이지만,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이 붙들었던 하나님 나라를 원론적으로 서술해 놓은 것 뿐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는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으로도 천국에 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으로 사람의 칭찬은 살 수 있어도 하나님의 칭찬은 살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믿음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방식은 보편
적이며 구체적입니다. 추상적인 뜬구름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율법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파기되고 새로운 기준이 재정립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미 천국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6.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속적 기준과 타인의 인정으로 살지 않기를 결단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높은 신앙적 기준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열정을 오늘 본문 통해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인이고, 지금 이 자리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천국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내일 있을 마지막 촬영,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지만 순교하리라 마음 먹고 맞서 싸우겠습니다. 율법을 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도록 내 영성을 관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1 month ago | [YT] | 131

종리스찬TV

"죽음은 이미 그 주도권을 상실했고,
두려움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1.
우리는 죽음속을 거닐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여 쌓여 있는 카톡을 읽는다. 수 많은 청년들의 삶의 정황과 문제가 카톡을 통해 공유된다. 감히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어찌할 수도 없는 거대한 장벽들이다.


순간 죽음의 세력이 나의 마음속을 침범한다. 나는 곧 무기력해진다.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에너지를 빼앗긴다. 과거의 경험들도 떠오른다. 과거에 있었던 좋지 못한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리라 믿고 있다. 내면 깊을곳으로부터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음성이 들린다.


"이번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거야."


내면의 목소리와 싸운다.


오늘 하루 내가 넘어야 할 산들도 생각난다. 해내지 못할 것만 같다. 오늘 하루를 바라보는 내 시야에도 죽음의 영향력이 넘실된다. 내적 싸움이다. 아니, 영적 싸움이라고 해야할까? 오늘 하루와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패배했다.


외적 갈등에 지속적으로 열정을 소모하며 점차 무기력해진다. 아뿔싸, 무기력의 패턴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2.
그렇게 혼자 씨름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큐티하자"는 아내의 명령(?)에 로마서 본문을 살펴보니 충격적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8)


바울의 선언이 곧 내 마음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며 곧 두려움이 걷힌다.

죽음의 세력은 나의 삶속에 생존본능을 주입한다. 예수님의 방식이 아닌 본능을 따라 생존하도록 만든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는 생존본능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힘으로, 내가 이겨내고, 나는 생존한다. 세속에서는 합리적인 방식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성경적인 방식은 아니다. 에수께서 걸어가셨던 골고다의 언덕길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께서는 죽음 앞에 순종할 것을 선택하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기로 결정하셨다. 그것은 낮아짐의 신비였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 앞에서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의 배신에도 놀라지 않으셨다. 그분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분의 발걸음은 언덕 위에 놓인 사형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 많은 군병들이 채찍을 휘둘렀을 때에도, 넘어져 일어날 힘이 없을 때에도,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었을 때에도. 반항하거나 변명하지 않으셨다. 그저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운명하셨다. 세속에서 죽음은 패배를 의미한다. 생존이 미덕이다. 죽음은 끝을 의미한다. 모두가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분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죽음을 이기는 세상적 방식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부활한 육체를 입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이기는 최후 승리를 보여주셨다.



3.
나는 본능적으로 '삶의 생존 욕구'를 따랐다. 생존은 세속적인 방식이지 예수님의 방식은 아니다. 나는 세속에 너무 물들어있기에 너무나 쉽게 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구할 수 밖에 없다. 성령께서 나를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예수께서 나의 주인이다." 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을 것이며,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죽음이라는 통로를 건널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오늘 하루를 결단한다.


나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가 나 스스로를 죽이는 자의적 죽음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미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내 자아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믿는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가 나 스스로의 정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예수와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상기하고 기억하므로 그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4.
오늘 하루 내가 겁내왔던 모든 일상을 향해 선언한다.

"나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두려움들에 대해 생존하려는 마음을 버린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완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결국 내가 해내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께서 상기시켜 주시길 바란다.


오늘은 정말 해야할 일들이 많다. 모두 생명을 걸어야할 만큼 중대한 일들이다. 그 일들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죽는 과정이 되길. 마지막으로 외친다.



"죽음은 이미 그 주도권을 상실했다."

1 month ago | [YT]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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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개: 벧엘선교교회 홈페이지
👉 www.jongristian.com/bethel

요즈음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상적인 교회라고는 말 못하겠어요.
여전히 저부터가 문제가 많고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노력하는 교회' 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애요.
우리는 분명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향으로 말이에요.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계속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제자'의 비젼을 꿈꾸는 공동체로 지어져갈거라 믿는 믿음이 생겼어요.

청년부 15명에서 130여명이 되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교회가 성장하니까 저절로 조직화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조직화되기 시작하니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했구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시스템적인 부분이야 제가 많이 공부한 분야라 형태를 복음적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 시스템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일단 저부터가 멘붕 오브 멘붕이었어요. 제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터졌거든요.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결코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었어요. 정말 말도 안되는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애요.

이제서야 조금 기준이 서기 시작했어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본질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나가야 하고,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는지.

그냥 결론적으로 나도 실수하고 상대도 실수하고, 서로 용납하되 옳은 길을 제시해 가는 곳이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항상 문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환대하고 품고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곳.

그런 교회를 꿈꿔보아요.

우리 교회에 대해 글을 이렇게 길게 써본건 처음이네요. 우리 교회 새가족팀에서 새가족행사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혹여 글을 보시고 오실 한 영혼이 계시다면 새가족팀에 면이 서지 않을까 싶어서 글 적어 보았어요. 그리고 이 과정이 그 새가족에게도 구원의 여정중 한 페이지가 될 거라 믿어요.

아래 링크 클릭하시면 새가족팀에서 연락드릴거에요. 꼬옥 이번주가 아니더라도 다니시는 교회 없으시면 한번 놀러오세요. 새가족 모임은 제가 직접 인도하니까 얼굴 뵙고 인사드릴게요. 새가족팀과 함께 전도나갔던 사진도 하나 동봉해요. 다들 굿밤

벧엘선교교회 방문신청 : forms.gle/WfFcxEaoFrMxr8vS9

1 month ago (edited) | [YT] | 88

종리스찬TV

250909 이종찬 큐티
본문 : 로마서 3:21~31 (생명의 삶)



1. 매주 월요일이 그렇듯 오늘 또한 컨디션의 급 저하로 샤밧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으나 전도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경을 펼치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부족한 나를 전도사로 세워주셔서 꾸역꾸역 하나님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놀랍다. 고통의 길을 걷게 하심으로 나를 극복하고 한걸음 한걸음 주님께로 걸어갈 수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다. 마침 큐티 본문을 펴보니 로마서 3장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펼쳐내는 순간 내 마음의 피로가 감사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마서 3장 21절이 기록되어 있었기에.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21절)


십여년전이 떠오른다. 로마서 3장 21절을 읽고는 마음이 떨려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칭해주신 사실이 깨달아졌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었다. 아르바이트하던 카페 매장을 덩실 덩실 뛰어다녔다. "이 일이 나에게 벌어졌구나. 내가 구원받았구나."


오늘 왜 마음이 어려웠을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주일날 하루종일 일하고도 월요일에 잘만 돌아댕겼는데, 내 육체가 쇠하여져 사역도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데에서 오는 자괴감인 것 같다. 이제는 예전만큼 열심히 일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제는 예전만큼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의 상태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나부다.



본문에 등장하는 구원의 확실성은 적어도 오늘의 나에게는 매우 큰 위로로 다가왔다.


바울은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했다. 즉 자신의 도덕성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사려고 하는 인간의 한계와 상관없이, 인간을 사랑하기로 결단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보증이 되셨기에, 구원의 확실성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내 건강에 따라 복음이나 교회, 일의 성과가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 내 건강과 상관없이 복음을 복음일 것이며, 내 건강과 상관없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일 것이며, 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그러므로 본문 21절을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는 이미 드러났다."


개가 짖어도 기차가 가는 것처럼, 나의 경험과 건강과 상관없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선포되고 있다. 즉, 내 몸상태가 어떻든, 내 아이디어가 어떻든, 내 언변이 어떻든, 내 지식이 어떻든, 하나님의 의는 이미 드러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쇠퇴하지 않는다.


내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나의 건강이나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셔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그 사실뿐이다.


4. 따라서 이 사실을 믿는다면, 내 안에서는 성령으로 인한 기쁨과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복음을 경험한 사람이 어찌 본인을 위해서만 살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31절)



맞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의 확실성, 칭의의 확정이 내 마음을 깊게 위로한다. 나는 쇠하여 갈 지라도 복음은 영원하다. 복음을 붙들어야 한다.


복음이 영원하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살아있게 만든다. 노력하게 만든다. 넘어져도 일어서게 만든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내 인생에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나도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기도와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과 비젼을 바라보아야 한다. 스스로의 무능함과 어려운 상황에 절망해서는 안된다.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제자를 세워나가고 섬길 수 있는 영성과 체력이 필요하다. 제자가 되기 위한 일을 계속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때가 이르매 성화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5. 예수님을 떠올린다. 결국 이 모든 길의 끝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예수님과 동행해야 하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철저히 샤밧해야 한다. 모든 감정과 생각, 갈등과 고민을 중단하고 심지어는 의지와 경험마저도 중단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본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일에 티끌만큼이라도 쓰임받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6. 샤밧하기 싫어하던 내 마음이 어느덧 평안해지고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 쉼, 내가 생각하고 걱정하던 모든 염려가 중단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7. 하나님, 오늘 하루 주님을 바라보며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마음이 많이 어려웠나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니, 마음 속 깊은 곳에 서부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이 솟구쳐 오릅니다. 당신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도 평생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내 삶의 목적으로 삼겠습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month ago | [YT] | 87

종리스찬TV

1.
난생 처음 휴가를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휴가가 단순히 육체의 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쉼은 샤밧(중단하다, 안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속에서 오는 모든 상대적 감관과 의지를 차단하고 오로지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휴가지에서조차 너무 바빠 하나님을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가 얼마나 깊은 죄의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럼에도 벧엘 청년부 공동체와 함께 1시간 가량 줌 기도회를 하게 하시고 힘을 내어 큐티까지 하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죄의 상태에 빠진 저같은 사람에겐 좋은 공동체가 필요한 법입니다.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께도 제 큐티 공유드려 봅니다. 구독자 분들중에서도 큐티에 대한 갈증이 있으신 분들이 계실 것이고, 방법을 몰라 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함께 큐티해주는 선배가 없어 갈팡질팡했던 20대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있다면 모두 필요하신 분께 전수해드리고 싶습니다.

2.
250901 이종찬 큐티 , 로마서 1:1~7 (생명의 삶)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롬 1:1)


1.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집대성인 동시에 성경의 뜨거운 심장이다. 로마서에 등장하는 죄의 목록과 칭의와 양자, 구원의 서정등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 뿐 아니라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웨슬리등 내로라 하는 신앙의 선배들 또한 로마서를 통해 회심의 과정을 경험했다.


나 또한 과거 로마서를 읽으며 복음의 감격에 벅차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4층의 카페에서 일 할 때였다. 예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칭의를 깨달을 때면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매장을 한바퀴 돌며 다른 직원들과 인사하곤 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난생 처음 휴가를 떠나왔다. 휴가지에서 하는 큐티임에도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 다시 마음이 뜨거워진다. 예수로 인해 죄에서 자유로워졌으나 그것을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의의 종이 되기로 다시 다짐한다. 휴가는 단순히 육체의 쉼을 이루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샤밧(중단하다, 안식)하여 모든 감정과 욕구를 끊어내고 주님 앞에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시간임을 인식한다.


2. 바울은 아마 당시 땅끝으로 알려진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던 것 같고, 로마라는 중간 정류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일면식 없는 로마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신학을 소개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본인 신학의 정수가 씌여 있을 수 밖에.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위대한 사상이 있다. 나 또한 위대한 사상가가 되야함이 마땅하나 재능과 노력이 미천하여 아직 선배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교회가 안정화되어 가니 다시 한번 학문과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나의 근본적인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정말 제자로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변화하는 가치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내야 한다. 현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성경은 답을 이야기해 주지 않기에 성경 복음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여 복음이 훼손되지 않고 진리가 전수될 수 있도록 목숨을 거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몫일 것이다.


3.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지닌 신학의 몇가지 정체성을 밝힌다.


1) 먼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메시아"를 뜻한다. 그는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뱀의 머리를 짓밟을 자로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분이시다. 쉽게 말해,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



2) 바울은 스스로의 포지션을 종으로 한정했다. 이것은 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죄는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하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하나님은 판단하시며, 종은 순종한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어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스스로의 내면이 부끄럽지 않을쏘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관점이 얼마나 뒤틀어졌는지를 깨닫는다. 신앙의 분별을 가장한 비판적 관점은 모든 사물을 꼬아서 보게 만들고, 분별이라는 이름아래 그것을 합리로 받아들인다. 결국 나는 계속 판단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죄의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판단은 내려놓고 사랑이 앞서야 함을. 내 삶에 판단보다 사랑이 앞서야 함을 깨닫게 된다.



3) 그는 부르심을 받았다.


4) 무엇으로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바울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르심을 받았다. 지금 내 의지로 큐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의 전도자로 부르셨으며, 복음을 살아내도록 인도하셨다.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깊은 성화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알고, 은혜의 너비와 깊이와 길이가 자라나도록 인도하셨다.


4. 특별히 인생 처음으로 휴가를 온 상태인데, 하루종일 분주하여 예수님을 생각할 시간이 적었다는 것이 큰 실책이다. 잠이 부족하고 하루종일 운전하느라 짜증만 앞섰지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살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복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포지션을 상기해야 한다.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내가 그분의 종이 되었고,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나는 안전할 것이고 그분의 자녀라고 스스로를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생각들에 물들면 물들수록 나의 정체성을 잃어갈 것이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내가 누구인지?' 를 깊이 묵상하며 그분 앞으로 침전한다.


5. 청년부 줌 기도회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어젯밤을 새다시피 하여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수십명의 청년들이 이미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용기가 샘솟았다. 청년들을 지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로부터 배우며, 책임을 지었기에 성화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으로 끝나서는 안됨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청년부와 구독자분들을 제자로 성장시켜주시길 다시 한번 기도한다.


6. 하나님,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month ago | [YT] | 136

종리스찬TV

1.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제자의 길에서의 이탈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저에게 있어 유일한 꿈은 '제자가 되는 것' 입니다. 저는 앞으로 십여년간 제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구독자분들과 공유하고 싶고 함께 성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꿈이 생기니 마음이 평안합니다. 비젼이 심플해졌기 때문입니다.

매일 청년부 카톡방에 큐티를 나누곤 하는데, 이제는 유튜브 구독자들께도 나누고자 합니다. 물론 아직 매일 올리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저의 생각과 은밀한 부분까지 공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큐티를 통해 제자도를 걷고자 하신다면, 어떤 분들께는 약간의 동기가, 또 다른 분들께는 큐티에 대한 방법의 공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업로드할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유튜브 게시글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큐티 내용에 힘을 준다던가, 거룩한 척 한다던가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청년들앞에서도 여러분 앞에서도 가식을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되도록 솔직하게 적을 것이고, 평소와 다름 없이 적어 내려갈 겁니다.

일주일에 2회정도 올리겠습니다. 큐티 교재는 두란노의 '생명의 삶'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큐티하며 제자도의 길 걸어갈 분들을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2.

250828 이종찬 큐티 (에스겔 23:22~35, 생명의 삶 오늘자 큐티)


1. 관찰

1) 음란한 일을 함께 했던 애인들이 도리어 오홀리바를 대적할 것이다. -> 함께 나쁜 일을 했던 사이가 한순간에 적이 되어 버리는 모순과 비극

2) 적에게 넘겨져 모진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잊고 음란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오홀리바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꾸짖고 심판을 예고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2. 묵상

1)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하시기를 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 앞에 옳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상대적인 세계에서의 상대적인 일일 뿐. 모두에게 조금씩의 책임이 존재하고,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만의 절대적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시며 그 절대적 기준 앞에서는 나 또한 오홀리바와 다를 바 없는 죄인임을 상기해 본다.


2) 죄인인 내가 과연 누구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누구를 정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노예로서 그저 내 죄에 대해 탄식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뿐. 누구를 탓할 필요도 누군가를 욕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하나님 앞에 서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할 뿐."


3) 하나님 앞에 그저 자비를 구한다. 지금까지 내가 지었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정한 헤세드. 죄의 상태로 출생하여 그동안 비뚫어진 죄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모든 과거에 대해 하나님께 진정한 회심을 기울이며 주님 앞으로 나아갈 외엔 방법이 존재체 않는다.


4) 쉽지 않은 하루였다. 아침 일찍부터 스케쥴을 시작하여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이어진 모든 일정들에 대해, 잠시 답답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답답함과 쉼에 대한 생각조차도 내려 놓는다. 죄인이었던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오홀리바와 같이 심판의 자리에 놓여 있던 죄인인 내가 구원받았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그 사랑에 대한 감격이 큐티를 할 때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 혈관 곳곳에 넘쳐 예수를 생각할 때마다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고 답답함이 답답함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5) 앞으로 이 순간들이 영원하길 기도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변 환경과 개인의 감정, 여러가지 문제들보다 예수님이 더욱 커다랗게 보이고 사람들과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보이는 놀라운 신뢰의 음성이 내 안에 가득차길. 오직 주님만 바라본다.


3. 결단


1) 오늘 밤 청년부 한사람 한사람 위해 기도하고 자기

2) 내일 오전 11시 이전까지는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구별. 설교 준비와 성경읽기에 집중.


4.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제가 죄의 상태에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month ago | [YT] | 220

종리스찬TV

1.
이번 주일 밤 10시, "영혼의 수술실"이 열립니다.

“코로나 ‑ 주님이 부르신 사람들에게”를 저와 함께 만들고
‘예수, 예수, 예수’를 함께 불렀던 팀종리스찬(명길, 준우) 지체들이 스튜디오로 찾아옵니다. 🙏

하나님께서 찬양으로 우릴 위로해주시길, 지친 마음이 쉼을 찾길 바라며,
여러분의 사연과 신청곡을 댓글에 적어 주세요.
당신 한 분만을 위해 노래합니다.

2.
그리고 조용히 숨 고르며 준비했던
1일 1영상—마지막 한 주치 분량이
다음 주부터 차례로 올라갑니다.
영상은 이미 완성! 가장 아름다운 타이밍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시청해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곧 뵙겠습니다 🙏

2 months ago | [YT] | 47

종리스찬TV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이종찬 전도사입니다.

1.
지금 저는 해외 선교 현장에 와 있습니다.
출국 전부터 “현지에서도 매일 말씀과 삶을 기록해서 브이러그식으로 올리겠다”는 각오로 장비와 일정까지 꼼꼼히 준비했으나, 막상 도착해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습니다.

2.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나라이다 보니, ‑ 국가명이나 선교사님의 얼굴이 노출될 경우 현지 사역자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3.
그 때문에 영상을 편집할 때 인물 · 지명 · 배경을 모두 섬세하게 가려야 하는 작업이 필요해졌고,

4.
시차와 불안정한 인터넷 환경까지 겹쳐 업로드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5.
이 모든 상황을 따져 보니, 주어진 시간 안에 매일 영상을 올리는 것보다 사역 현장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6.
깊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1일 1영상’을 약속드렸지만 이번 주에는 겨우 두 편밖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기다려 주신 분들께 실망을 드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크게 걸립니다.

그러나 약속을 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1일 1영상’을 이어 가겠습니다. 이번에 업로드 못 한 분량도 차근히 정리해보여 드릴게요.

7.
또한 시차와 인터넷 문제로 이번 주 주일 밤 라이브 방송도 진행하기 어려움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8.
대신 선교지 한복판에서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소외된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비전들인다. 땅끝에서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 뛰어가고 싶습니다 🙏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기도와 기다림으로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안에서 더 깊어진 마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3 months ago | [YT] | 268

종리스찬TV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들 ❣️ 이종찬 전도사입니다.

1.
1일 1영상 진행할 수 있어 감사뿐입니다. 2019년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함께 동행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어제 영상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허리 통증으로 인해 😭😭 오늘 영상은 하루 쉬어가려고 합니다. 앉아있기가 어렵습니다. 쾌유하여 돌아오겠습니다.

2.
이번주 주일 밤 10시, 찬양으로 고독을 위로하는 "영혼의 수술실" 은 영혼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최근 "내 백성이 되리라" 싱글을 발매한 '송하영'님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고민 있으신분들은 밤 10시 라이브방송 방문하여 나눠주시면, 당신 한분을 위해 노래하겠습니다.

3.
1일 1영상을 하며 제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이 자유함은 유튜브를 시작하며 처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나누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영광 받으시길 바랍니다.

4.
8월 둘째주즈음부터 '벧엘선교교회' 청년부의 예배장소가 한신대에서 다른 곳으로 변경될 예정입니다. 지난 1년 6개월동안 예배당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부분도 영상으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내일 영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2025년 7월 4일
이종찬 올림

3 months ago | [YT] |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