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생 처음 휴가를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휴가가 단순히 육체의 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쉼은 샤밧(중단하다, 안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속에서 오는 모든 상대적 감관과 의지를 차단하고 오로지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휴가지에서조차 너무 바빠 하나님을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가 얼마나 깊은 죄의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럼에도 벧엘 청년부 공동체와 함께 1시간 가량 줌 기도회를 하게 하시고 힘을 내어 큐티까지 하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죄의 상태에 빠진 저같은 사람에겐 좋은 공동체가 필요한 법입니다.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께도 제 큐티 공유드려 봅니다. 구독자 분들중에서도 큐티에 대한 갈증이 있으신 분들이 계실 것이고, 방법을 몰라 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함께 큐티해주는 선배가 없어 갈팡질팡했던 20대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있다면 모두 필요하신 분께 전수해드리고 싶습니다.
2. 250901 이종찬 큐티 , 로마서 1:1~7 (생명의 삶)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롬 1:1)
1.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집대성인 동시에 성경의 뜨거운 심장이다. 로마서에 등장하는 죄의 목록과 칭의와 양자, 구원의 서정등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 뿐 아니라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웨슬리등 내로라 하는 신앙의 선배들 또한 로마서를 통해 회심의 과정을 경험했다.
나 또한 과거 로마서를 읽으며 복음의 감격에 벅차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4층의 카페에서 일 할 때였다. 예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칭의를 깨달을 때면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매장을 한바퀴 돌며 다른 직원들과 인사하곤 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난생 처음 휴가를 떠나왔다. 휴가지에서 하는 큐티임에도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 다시 마음이 뜨거워진다. 예수로 인해 죄에서 자유로워졌으나 그것을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의의 종이 되기로 다시 다짐한다. 휴가는 단순히 육체의 쉼을 이루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샤밧(중단하다, 안식)하여 모든 감정과 욕구를 끊어내고 주님 앞에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시간임을 인식한다.
2. 바울은 아마 당시 땅끝으로 알려진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던 것 같고, 로마라는 중간 정류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일면식 없는 로마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신학을 소개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본인 신학의 정수가 씌여 있을 수 밖에.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위대한 사상이 있다. 나 또한 위대한 사상가가 되야함이 마땅하나 재능과 노력이 미천하여 아직 선배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교회가 안정화되어 가니 다시 한번 학문과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나의 근본적인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정말 제자로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변화하는 가치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내야 한다. 현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성경은 답을 이야기해 주지 않기에 성경 복음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여 복음이 훼손되지 않고 진리가 전수될 수 있도록 목숨을 거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몫일 것이다.
3.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지닌 신학의 몇가지 정체성을 밝힌다.
1) 먼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메시아"를 뜻한다. 그는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뱀의 머리를 짓밟을 자로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분이시다. 쉽게 말해,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
2) 바울은 스스로의 포지션을 종으로 한정했다. 이것은 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죄는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하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하나님은 판단하시며, 종은 순종한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어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스스로의 내면이 부끄럽지 않을쏘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관점이 얼마나 뒤틀어졌는지를 깨닫는다. 신앙의 분별을 가장한 비판적 관점은 모든 사물을 꼬아서 보게 만들고, 분별이라는 이름아래 그것을 합리로 받아들인다. 결국 나는 계속 판단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죄의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판단은 내려놓고 사랑이 앞서야 함을. 내 삶에 판단보다 사랑이 앞서야 함을 깨닫게 된다.
3) 그는 부르심을 받았다.
4) 무엇으로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바울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르심을 받았다. 지금 내 의지로 큐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의 전도자로 부르셨으며, 복음을 살아내도록 인도하셨다.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깊은 성화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알고, 은혜의 너비와 깊이와 길이가 자라나도록 인도하셨다.
4. 특별히 인생 처음으로 휴가를 온 상태인데, 하루종일 분주하여 예수님을 생각할 시간이 적었다는 것이 큰 실책이다. 잠이 부족하고 하루종일 운전하느라 짜증만 앞섰지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살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복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포지션을 상기해야 한다.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내가 그분의 종이 되었고,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나는 안전할 것이고 그분의 자녀라고 스스로를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생각들에 물들면 물들수록 나의 정체성을 잃어갈 것이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내가 누구인지?' 를 깊이 묵상하며 그분 앞으로 침전한다.
5. 청년부 줌 기도회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어젯밤을 새다시피 하여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수십명의 청년들이 이미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용기가 샘솟았다. 청년들을 지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로부터 배우며, 책임을 지었기에 성화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으로 끝나서는 안됨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청년부와 구독자분들을 제자로 성장시켜주시길 다시 한번 기도한다.
6. 하나님,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종리스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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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휴가를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휴가가 단순히 육체의 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쉼은 샤밧(중단하다, 안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속에서 오는 모든 상대적 감관과 의지를 차단하고 오로지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휴가지에서조차 너무 바빠 하나님을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가 얼마나 깊은 죄의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럼에도 벧엘 청년부 공동체와 함께 1시간 가량 줌 기도회를 하게 하시고 힘을 내어 큐티까지 하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죄의 상태에 빠진 저같은 사람에겐 좋은 공동체가 필요한 법입니다.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께도 제 큐티 공유드려 봅니다. 구독자 분들중에서도 큐티에 대한 갈증이 있으신 분들이 계실 것이고, 방법을 몰라 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함께 큐티해주는 선배가 없어 갈팡질팡했던 20대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있다면 모두 필요하신 분께 전수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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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1 이종찬 큐티 , 로마서 1:1~7 (생명의 삶)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롬 1:1)
1.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집대성인 동시에 성경의 뜨거운 심장이다. 로마서에 등장하는 죄의 목록과 칭의와 양자, 구원의 서정등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 뿐 아니라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웨슬리등 내로라 하는 신앙의 선배들 또한 로마서를 통해 회심의 과정을 경험했다.
나 또한 과거 로마서를 읽으며 복음의 감격에 벅차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4층의 카페에서 일 할 때였다. 예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칭의를 깨달을 때면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매장을 한바퀴 돌며 다른 직원들과 인사하곤 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난생 처음 휴가를 떠나왔다. 휴가지에서 하는 큐티임에도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 다시 마음이 뜨거워진다. 예수로 인해 죄에서 자유로워졌으나 그것을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의의 종이 되기로 다시 다짐한다. 휴가는 단순히 육체의 쉼을 이루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샤밧(중단하다, 안식)하여 모든 감정과 욕구를 끊어내고 주님 앞에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시간임을 인식한다.
2. 바울은 아마 당시 땅끝으로 알려진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던 것 같고, 로마라는 중간 정류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일면식 없는 로마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신학을 소개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본인 신학의 정수가 씌여 있을 수 밖에.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위대한 사상이 있다. 나 또한 위대한 사상가가 되야함이 마땅하나 재능과 노력이 미천하여 아직 선배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교회가 안정화되어 가니 다시 한번 학문과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나의 근본적인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정말 제자로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변화하는 가치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내야 한다. 현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성경은 답을 이야기해 주지 않기에 성경 복음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여 복음이 훼손되지 않고 진리가 전수될 수 있도록 목숨을 거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몫일 것이다.
3.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지닌 신학의 몇가지 정체성을 밝힌다.
1) 먼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메시아"를 뜻한다. 그는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뱀의 머리를 짓밟을 자로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분이시다. 쉽게 말해,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
2) 바울은 스스로의 포지션을 종으로 한정했다. 이것은 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죄는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하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하나님은 판단하시며, 종은 순종한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어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스스로의 내면이 부끄럽지 않을쏘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관점이 얼마나 뒤틀어졌는지를 깨닫는다. 신앙의 분별을 가장한 비판적 관점은 모든 사물을 꼬아서 보게 만들고, 분별이라는 이름아래 그것을 합리로 받아들인다. 결국 나는 계속 판단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죄의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판단은 내려놓고 사랑이 앞서야 함을. 내 삶에 판단보다 사랑이 앞서야 함을 깨닫게 된다.
3) 그는 부르심을 받았다.
4) 무엇으로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바울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르심을 받았다. 지금 내 의지로 큐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의 전도자로 부르셨으며, 복음을 살아내도록 인도하셨다.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깊은 성화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알고, 은혜의 너비와 깊이와 길이가 자라나도록 인도하셨다.
4. 특별히 인생 처음으로 휴가를 온 상태인데, 하루종일 분주하여 예수님을 생각할 시간이 적었다는 것이 큰 실책이다. 잠이 부족하고 하루종일 운전하느라 짜증만 앞섰지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살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복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포지션을 상기해야 한다.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내가 그분의 종이 되었고,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나는 안전할 것이고 그분의 자녀라고 스스로를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생각들에 물들면 물들수록 나의 정체성을 잃어갈 것이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내가 누구인지?' 를 깊이 묵상하며 그분 앞으로 침전한다.
5. 청년부 줌 기도회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어젯밤을 새다시피 하여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수십명의 청년들이 이미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용기가 샘솟았다. 청년들을 지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로부터 배우며, 책임을 지었기에 성화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으로 끝나서는 안됨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청년부와 구독자분들을 제자로 성장시켜주시길 다시 한번 기도한다.
6. 하나님,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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