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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는 재료의 진실에서 비롯된다]

— 승효상 건축가의 원목 테이블을 바라보며

처음 그 테이블을 마주했을 때,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화려한 곡선도, 장식적인 디테일도, 의도적인 강조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단순함이 눈을 오래 머물게 했다.
나무는 그저 나무로서, 자신의 무늬와 결, 그리고 묵직한 질감으로 존재했다.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형태는 재료의 진실에서 비롯된다”는 말의 의미를.

나무가 가르쳐준 정직함

승효상 건축가의 작업에는 언제나 ‘정직한 재료’가 있다.
그는 재료를 숨기지 않는다.
도장으로 덮거나, 장식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무의 결 하나, 이음새의 틈새 하나까지 그대로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감당할 수 있는 정직함이다.
햇빛에 바래고 손끝에 닿아 변색되는 나무의 표면조차
그에게는 디자인의 일부이자, 삶의 흔적이다.

형태는 재료에서 태어난다

그의 테이블은 마치 작은 건축물 같다.
상판과 다리,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가로보까지
모두 구조적 필연성으로만 존재한다.
불필요한 요소는 단 하나도 없다.

비례는 건축의 원리로 다듬어졌고,
두께와 간격은 인간의 몸과 시선에 맞춰 조율되었다.
그래서 이 단순한 테이블은
하나의 구조이자, 하나의 풍경처럼 공간 안에 놓인다.

형태가 재료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그것은 더 이상 디자인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

꾸밈보다 진심이 남는다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형태’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도구로 수십 가지 변주를 그릴 수 있고,
눈길을 끄는 장식은 얼마든지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형태들은 종종 재료의 목소리를 잊는다.

승효상의 테이블을 보면, 재료가 먼저 말한다.
그 위에 얹힌 형태는 그저 응답일 뿐이다.
그 대화 속에는 인간의 욕심 대신,
존중과 절제, 그리고 침묵의 미학이 흐른다.

비움 속에서 생겨나는 충만함

그의 가구와 건축은 비어 있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재료가 살아 숨 쉬는 질서와 여백이 있다.
그는 말한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 말을 따라 테이블 옆에 앉아 있으면,
나무의 냄새와 빛의 결이 천천히 스며든다.
그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화려한 형태가 아니라,
진실한 관계를 담은 공간이라는 것을.

형태는 재료의 진실에서 비롯된다.
그 말은 결국, 인간의 진심에서 비롯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정직한 나무가 건축이 되는 것처럼,
정직한 마음이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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