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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과 봉사로 임하는 재미난 클래식 이야기, 김성현의 클래식 토크 / 클래식톡 / 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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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베를린 필하모닉 둘째날

운동장이 달라지면 경기 내용도 변할까. 실은 지난주 베를린에서 내한공연 둘째날과 같은 레퍼토리를 보았다. 운동장(필하모니)과 팀(베를린 필), 경기 내용(레퍼토리)이 서로 최적화된 듯했다. 과연 예술의전당으로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개인적인 관전 포인트였다.

전반 버르토크는 사납고도 맹렬했고, 퇴폐적이면서도 끈적끈적했다. 곡목은 달랐지만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버르토크가 넉넉하게 풀어주는 편이었다면 베를린 필의 버르토크는 매섭게 다잡는 쪽에 가까웠다. 19~20세기의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것도 페트렌코의 장기 가운데 하나다.

전반의 버르토크와 후반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모음곡 모두 다이내믹이 중요하고 일종의 이야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놀랍도록 생기 넘치는 도입부의 총주 이후에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실내악처럼 해석한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지휘자도 간간이 두 손을 내리고 단원들의 '자율 주행'에 내맡기는 듯했다.

독주와 합주가 어우러진 이 모음곡이야말로 스타 단원들이 즐비한 이 악단에 최적의 선곡인 듯했다. 역설적으로 이 대목들에서 페트렌코 체제의 순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스트라빈스키 초기 3부작을 이들의 조합으로 모두 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다시 올 가을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단연 선두. #키릴페트렌코 #베를린필하모닉

8 hours ago (edited) | [YT]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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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필은 단원들이 인기 스타인 '올스타 팀'. 첫날 내한 공연에서 두드러진 건 더블베이스 3명에서 출발하는 단출한 편성이었다. 바그너가 아내 코지마의 깜짝 생일 선물로 작곡한 '지크프리트 목가'의 탄생 배경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무작정 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오밀조밀하고 소박한 실내악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쉼표를 통해서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대목들도 인상적이었다.

전빈 슈만 피아노 협주곡의 협연자는 김선욱. 베를린에서 진은숙 협주곡으로 처음 협연한 뒤 4년만의 무대라서 감회가 남다를 듯했다. 우선 들어온 건 지휘지가 협연자를 바라보고 협연자는 단원들을 응시하는 '시선의 협연'이었다. 간간이 감정 과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템포와 강약의 분명한 대비를 통해서 개성을 발산하는 협연자의 담대함도 돋보였다.

후반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중후장대의 카라얀과 화려한 래틀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울지 내심 궁금했다. 첫 악장 도입부 고통의 팀파니 연타부터 카라얀에 가까워 보였다. 정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일 즈음 출력을 한껏 끌어올려 한번 더 도약하는 뒷심도 놀라웠다. 본래 군림형 지휘자는 아니지만 페트렌코의 악단 장악력과 자신감도 부쩍 커진 듯했다. 결국 승부처는 20세기 관현악을 아우른 내일이 될 듯했다. #키릴페트렌코 #김선욱 #베를린필하모닉

1 day ago (edited) | [YT]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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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

솔직히 나도 말러 보고 싶었다. 명색이 세상에서 말러 잘 하기로 소문난 악단 아닌가. 이렇게 연신 구시렁거리면서도 발걸음은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지휘자 최수열이 진행과 지휘를 맡고 있는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음악 연주회의 결정적 이점도 있다. 작곡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말러가 좋아도 곁에 앉거나 질문할 수는 없으니까. 이날 작곡가 손일훈의 '오우가'가 초연됐는데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

'오우가'는 제목처럼 윤선도의 '오우가'에 바탕한 작품이다. 막간을 이용해 궁금한 점들을 여쭤보았는데 세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고음역의 악기를 일부러 피했고, 다음으로 소리꾼 이봉근씨를 애초부터 염두에 두고 작업했으며, 마지막으로 여러 악기나 장르가 섞이는 대안적(alternative) 음악을 추구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도 비올라와 해금이 운치 있게 어울렸고 재즈와 미니멀한 요소들을 간간이 느낄 수 있었다. 소리꾼 이봉근씨 역시 낭송과 창을 넘나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련한 슬픔의 정서가 묻어난 '대나무' 편이 인상적이었다.

후반 테오 로에벤디의 음악극 '나이팅게일'은 한 쪽 분량의 곡 해설을 썼다. 악보를 보고 음원을 접했지만 실연은 처음이었다. 곡 해설을 쓸 적에는 스트라빈스키와의 연관성에 비중을 뒀는데 막상 현장에서 들으니 다소 지나쳤다는 반성이 들었다. 또한 자연 새(클라리넷)와 인공 새(나머지 악기)의 대립으로 보았는데, 후자는 트럼펫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뒤늦게 깨달았다. 비록 말러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200번째 음악회가 됐다. #최수열 #이봉근 #손일훈 #오우가 #테오로에벤디 #나이팅게일 #밤9시즈음에

2 days ago | [YT]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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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키릴 게르스타인은 자타공인의 현대음악 전문 피아니스트.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협주곡을 협연할 때면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지휘 클라우스 메켈레) 첫날 공연의 협연곡이 브람스 협주곡 1번이었다.

여유 있고도 낭만적인 접근에 염려가 씻기는 듯했다. 하지만 보폭이 넓어질 때 문제는 걸음걸이를 척척 맞추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첫 악장에서 악단과 협연자의 호흡은 물론, 악단 내부에서도 매끄럽지 않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오히려 2악장부터 서서히 맞아 갔던 것 같다. 절반의 아쉬움, 절반의 안도가 공존했다.

후반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악기들의 올림픽' 같은 곡이다. 졸저에서 관현악의 토털 사커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휘자든 악단이든 역량을 가늠하기 좋은 곡이다.

첫 악장부터 지휘자는 매섭게 몰아치기보다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시동을 걸었다. '슬로 스타트'에 가까웠지만 은은한 더블베이스와 반짝이는 바이올린의 트레몰로까지 이 악단의 진면목도 그제서야 살아나는 듯했다. 마지막 5악장에서 막판 스퍼트를 펼쳤다. 이날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순간이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법. 반대로 경기 내내 헤매다가 막판에야 점수를 낸 것 같기도 했다. 아직까지 선두는 체코 필. #키릴게르스타인 #클라우스메켈레 #로열콘세르트헤바우

3 days ago (edited) | [YT]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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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체코 필하모닉

전날 체코 필하모닉 첫날 공연을 보고 오래 기억에 남았던 단어가 '순도'였다. 억지로 쥐어짜거나 극심한 템포 변화가 없는데도 오히려 덜 자극적이고 더 자연스러웠다. 특별한 조미료 없이도 슴슴한 맛을 내는 어머님 집밥 같다고 할까. 굳이 구분하면 지휘자와 악단 모두 올드 스쿨에 가깝고, '센터 라인'에 해당하는 목관이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것도 이유일 듯싶었다.

둘째날 전반 협연곡은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협연 한재민). 실은 첫악장 도입부에서 협연자와 악단 사이의 호흡이 매끄럽지 않은 대목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영민한 협연자가 계속 지휘자를 응시하면서 템포를 맞춰나갔다. 한번 물이 오르면 연주자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감탄스러운 순간들이 있는데 이날은 서정적인 2악장이 그랬다. 체코 악단 앞에서 체코 곡으로 격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후반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전날의 '나의 조국'이 악단의 레퍼토리라면 차이콥스키는 지휘자의 곡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런던 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도 같은 교향곡을 연주했다. 굳이 구분하면 전통적 사운드에 해당했지만 비교 불허에 가까웠다.

비결은 아무래도 배합에 있는 듯했다. 단원과 단원, 악기와 악기가 연신 서로 귀기울였고 절정에서 묵직한 힘과 설득력이 자연스럽게 배가됐다. 연주가 끝나고 청중의 박수 갈채에도 지휘자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단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세묜비치코프 #체코필하모닉

1 week ago | [YT]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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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체코 필하모닉

간혹 첫 소절부터 호연의 느낌이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체코 필하모닉(지휘 세묜 비치코프)의 첫날 무대가 그랬다. 이날 연주곡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이 전부. 협연자도 중간 휴식도 심지어 앙코르도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것들이 있었다.

두 대의 하프에서 목관과 하프를 거쳐 악단 전체로 번져나가는 첫 곡 '비셰흐라드' 도입부부터 인상적이었다. 상투적 표현이겠지만 '블타바(몰다우)'에서도 아기자기한 목관부터 현악까지 자연스럽게 물길을 터주듯 사운드가 흘러갔다. 무리하게 힘을 주거나 작위적이지 않은데도 충분히 감정 표현을 했고, 절정에서도 쉽게 흥분하거나 들뜨는 법이 없었다.

'정통 체코 사운드' 같은 말이 떠오르지만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지휘자 비치코프가 유대계 러시아 지휘자이기 때문이다. 이 곡도 체코 필 취임 이후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날도 정성스럽게 악보를 넘기며 지휘했다.

세월이 갈수록 존경스럽게 보이는 음악인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치코프가 그런 경우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항의 표현을 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완성된 음악에는 어떤 수식도 불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시간이었다. 올 가을 내한 공연 가운데 일단 다시 선두.#세묜비치코프 #체코필하모닉

1 week ago | [YT]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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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창작 오페라 '화전가'

창작 오페라 '화전가'는 배삼식(극본) 정영두(연출 안무) 최우정(작곡) 삼총사의 협업으로 초연 이전부터 관심을 모은 작품. 하지만 드라마적인 약점도 있다. 우선 남성 등장 인물이 없는 여성극이고 1950년 전쟁 직전이라는 상황이 있을 뿐 뚜렷한 사건이나 갈등이 없다는 점이다. 과연 이런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막이 올랐을 때 가장 놀란 건 선율이 분명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대사와 표준어의 노래를 결합했다는 점에서는 음악극에 해당했다. 사투리의 억양에 음정을 부여한 뒤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반주로 뒷받침해서 그리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를테면 '한국적 레치타티보'라고 할까.

초콜릿과 커피에 대한 장면도 극적인 기준으로는 다소 길었지만 말맛이 살아 있어서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을 보며 웃고 울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음악적으로는 민요와 트로트는 물론, 빅밴드 풍의 카바레 음악과 뮤지컬까지 영민하게 끌어다 썼다. 바로크와 스트라빈스키, 쿠르트 바일과 번스타인 등이 연신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절충주의적이고 감상적이었다.

독창성과 인용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고 4막 결말은 다소 길고 장황했다. 김씨 할머니가 갑자기 브륀힐데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쉽사리 찾지 못했던 한국 오페라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반갑고 놀라웠다. #화전가 #배삼식 #최우정 #정영두 #국립오페라단

2 weeks ago | [YT]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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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루이 로르티

"아무 연관 없는 곡들로 연주회를 꾸미는 걸 좋아하진 않습니다."

캐나다 피아니스트 루이 로르티는 연주 직전 해설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고른 이날의 주제는 변주곡. 베토벤부터 토머스 아데스까지 고전과 낭만,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변주곡들을 선별했다. 그는 "베토벤과 멘델스존에서 출발하는 음악적 여정"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변주곡을 들을 적엔 연주를 별로 따지거나 평하지 않는다. 대신 '즉석 시험'을 치른다. 변주가 총 몇 곡인지 맞혀보는 것이다. 이날 연주곡은 다섯 곡, 변주는 총 80개. 음악회를 알리는 알람이 시험 종소리처럼 들렸다.

첫 곡인 베토벤의 '자작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은 다행히 32개를 맞혔다. 실은 정확한 채점보다는 가채점에 가깝다. 잘못 끊었지만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변주들이 짧아서 비교적 쉽게 셀 수 있었다.

곧바로 다음 곡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멘델스존의 '엄격 변주곡' 초반부터 잠시 딴 생각으로 흐르는 바람에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전체 17개 변주 가운데 14개에 그쳤다.

실은 틀려도 큰 문제는 없다. 악보를 보거나 작품 분석을 하지 않았어도 곡의 흐름과 구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험 시간'도 잘 흐른다. 전반 마지막 곡인 포레의 '주제와 변주'는 재시험곡이었다. 몇 달 전에는 두어 개 틀렸던 것 같은데 다행히 11개에서 끝났다. 물론 역시 가채점일 뿐이다.

후반에 최고 난제가 있다. 1971년생 영국 작곡가인 아데스의 '블랑카 변주곡'은 당장 곡명부터 낯설었다. 수시로 건반을 오르내리고 불협 화음으로 빠지는 바람에 '주제 파악'부터 쉽지 않았다. 다행히 변주는 5개. 다음에 다시 듣더라도 0점을 면하긴 쉽지 않을 듯했다.

마지막 곡인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 주제에 의한 15개의 변주곡과 푸가'는 영웅 교향곡 4악장의 주제와 같다. 그래서 '영웅 변주곡'으로도 불린다. 맘을 놓고 있었는데 복병이 있었다. 15개의 변주곡 이후 찾아오는 푸가와 그 뒤의 추가 변주곡의 경계가 아직 불분명했다. 아무래도 베토벤과 멘델스존부터 언젠가 재시험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루이로르티

2 weeks ago (edited) | [YT]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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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NDR 엘프 필하모니

이토록 감미로운 브람스라니. NDR 엘프 필하모니의 내한 공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협연곡이 브람스 협주곡이었다. 원조 로맨틱 코미디 배우가 무거운 시대극을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 연주자 특유의 가늘고 우아한 선이 협주곡과 잘 어울릴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악장부터 살짝 음정과 박자가 불안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서정적인 2악장과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다. 분명한 자기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건 이렇듯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할 것이다. 삶이라고 다를까.

후반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지휘자 앨런 길버트는 악장마다 분명한 성격을 부여해서 흡사 브람스나 바그너처럼 드라마틱하게 들렸다. 올 가을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가운데 일단 초반 선두. 아름다운 밤이었다. #조슈아벨 #앨런길버트 #NDR엘프필하모니

2 weeks ago | [YT]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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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홍콩 필하모닉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교향곡 5번. 홍콩 필하모닉의 연주곡은 공교롭게도 나흘 전 런던 필의 둘째 날 공연과 같았다. 결코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비교는 불가피했다.

우선 런던 필의 협연자였던 손열음은 곡의 영역을 극한까지 확장시키는 느낌이었다. 특히 첫날인 14일 협연이 그랬다. 1악장 독주는 카푸스틴처럼 들렸고, 서정적인 2악장은 애이불비의 모차르트, 후반부는 장난끼 넘치는 프로코피예프 같았다. 요컨대 낭만이라는 카테고리에 한정되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해석을 과감하게 덧입혔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이 곡이 손에 들러붙어 있기에 가능한 시도인 듯했다.

홍콩 필의 협연자였던 선우예권도 말 그대로 칼을 갈고 나온 것 같았다. '선우예권이 저렇게 단호한 연주자였나' 싶을 만큼 물러서거나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정공법에 가까웠지만 가속 페달을 살짝 밟은 느낌이었다.

후반 연주곡이었던 교향곡 5번도 대조적이었다. 첫날부터 런던 필의 연주에는 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의 주문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여리게'에서는 거의 실내악에 가깝게 소리를 줄이고 절정에서 한껏 터뜨려서 대비의 효과를 노렸다. 자연스러운 곡의 흐름이 끊기지 않을까 노파심이 들 만큼 과감한 대목들도 있었다.

반면 홍콩 필은 20세기로 되돌아간 듯한 전통적 접근에 가까웠다. 후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서는 안정적 금관이 돋보였다. 특히 '호른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2악장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놀라운 건 차이콥스키뿐 아니라 첫곡인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부터 낯설게 여기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콩 필은 전임 야프 판 즈베던 시절부터 과감하고 진취적 시도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홍콩 필의 경우는 외국 단원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악단의 수준과 홍콩 음악계의 실력을 곧바로 등치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괄목상대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해외에서 저런 소리를 내고 있을까. 간혹 여유있게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간담이 서늘해져서 나올 적이 있다. 이날이 그랬다.#홍콩필하모닉 #리오쿠오크만 #선우예권

2 weeks ago (edited) | [Y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