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검진날이라 아주대병원에 왔다. 몇년전에는 간단한 검진에도 아내와 딸이 동행도 했건만 이젠 혼자다. 혼자서 주차도 잘하고 채혈도 잘하고 사전결제도 할줄 알고 혼밥도 하고 커피도 즐기고 산책도 하고 그야말로 병원문화를 즐긴다.
평소 아침 이른시간을 이용하다 오늘은 오후 1시에 잡혀있어 10시쯤 채혈과 소변검사를 마치고 대기중에 왔다리갔다리 운동삼아 걷기를 반복한다. 인산인해다. 온통 옷색깔이 시커멓다.
촌각을 다투며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오랜 지병에 지친 사람도, 병을 나아야겠다는 의지보다 돈걱정에 시름하는 사람도,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의무적 책임을 다하려 드나드는 사람도, 왜 내게 이런 병이 왔는지 마음속 한탄을 내뱉는 사람... 수많은 생사고락의 과정이 거쳐가고 토해내는 곳이다.
시커먼 행렬속에서도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눈알을 번들거리며 멋잇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 의료기구와 제약회사 영업담당자들이다. 아프고 힘든자들이 희망을 찾아가는곳도 병원이요 절망을 떠안는곳도 이곳이요 그속에서 돈벌이가 난무하는곳도 병원이다. 결국 세상 어느곳이든 생사가 넘나들고 희비가 엇갈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인생살이인듯 하다.
사람들은 왜 그 시커먼 옷을 즐겨 입을까? 온통 돌아보면 까맣다.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사회적 불경기가 지속되거나 불안심리가 넘치면 주로 까만색 옷이 유행한다" 그런데 막상 까만색 옷을 즐겨입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렇지않다 "때도 덜 타고 뚱뚱해 보이는걸 좀 커버해주는것 같아요"그것도 또한 그렇지많은 않다.
사회 불경기가 원인이라면 세상은 계속 불경기다. 뚱뚱해 보이는걸 커버한다면 마른체형의 사람들도 왜그리 검정색 옷을 입는가? 난 좀 의문이다. 인간심리학 사회학 모든 관점에서 의문이다. 아마도 남보다 틔어보이는걸 불편해 하는 인간의 근본적 겸손성(?) 좋게말해서 특별히 쪽팔리는게 싫어서 대중들이 즐겨입는 평범한 까만색의 옷을 택하지 않나싶다. 나의 뇌피셜이다.
나는 특별히 틔어보이려고 원색(컬러풀)의 옷을 택하는건 아니다. 등산을 다닐때부터 하도 주변사람들이 까만색 옷이 많아 나라도 일부러 다른 색상을 입음으로서 조금의 희색의 의미에서 그런거다. 가끔 나의 옷색상을 지적하며 틔어보이려는 의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변명할 이유도 없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하는거고 어느날부터 검정색 옷을 거부하기 시작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싸구려든 고가품이든 일단 신발과 옷을 전부 원색으로 선택한다. 이제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고 편하다.
한번은 빨강색 티셔츠를 입고 빨강색 모자를 쓰고 통기타라이브방송을 했더니 진짜(?) 전광훈목사가 들어와서 "야하 우리 보수우파 빨강색 아주 좋아요. 멋져요. 계속 방송 잘 부탁해요" 이러는거다. 시청자들중에도 "오늘 방송컨셉트는 완전 보수우파네" 그냥 방송 중단해 버렸다.
선거때 파랑색 모자를 쓰고 갔더니 입구 안내아줌마가 뾰루퉁하게 대하였다. 선거 여름철이라 아침에 나가다 보니 파랑색모자를 쓴거고 원래 파랑색을 좋아해 신발도 파카도 파랑색인데. 아하...이런거 때문에 사람들이 검정색옷을 입는구나.
글을 쓰는동안 병원대기 긴의자 옆자리 사람이 여러번 바뀌었는데 온통 검정옷이다. 지금 옆자리 부부는 아래위 검정옷에 검정마스크에 검정 신발에 검정모자다. 우와~~~
병원놀이 즐기는 글쓰다 줄거리가 옷색깔로 바뀌어버렸네. 젠장
힘들다. 삶이 힘들다. 쉽지 않은게 아니라 힘들다. 누군가 말하더라 "세상에 죽는일이 간단하다면 죽을사람 천지"라고. 그렇다. 병원밖에서 지탱해가는 삶도 힘들다. 병원안에서도 힘들다. 나만 힘든것 같지만 남도 힘들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아주 어려운말을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병원안을 맴도는 수많은 인파들의 각각 고통의 무게를 아무도 잴 수없고 경중을 재단할수도 없다. 아직 살아 움직이는한 내 삶의 과정이구나 생각해야 할것이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병원안을 중심잡아 주고있네. 미리 그라지마소. 난 친구들과 젊을때 '메리 크리스마스'를 '미리 그라지마소'로 얘기했다. 항상 크리스마스 이전이라 '미리 그라지마소'가 맞아 떨어졌었다.
니체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중시 여기고자 '신은 죽었다'라는 명언(명제?)를 남겼다. 죽어야 神이 되건만 신이 죽었다니 죽음이란 단어는 단순히 목숨과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존재의 단절임을 니체는 얘기했다. 사람은 존재의 단절까지 가려면 죽고 난뒤에도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야한다. 이름없이 조용히 살다가더라도 같이 살았던 가족 친지에 의해 오래도록 존재하게 되고 유명해지면 존재의 단절기간이 무척 길어진다. 소크라테스는 5천년이 지난 여태까지 죽지않고 살아있다.현세를 잘 살다 가라는 조물주의 의도였나봐.
어느덧 검진시간이 다가왔네. 당뇨 심혈관 고지혈 혈압 신장기능 의사 말듣고 약타서 가면 또 병원밖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이란게 주제속 소재만 바뀌어도 또 쓸 말이 천지다. 한자리에서 엉터리 수필 한권 써내려 갈수도 있겠다. 내가 아는 신이여! 나를 모르는 신이여! 오늘 내가 맞닥뜨린 이곳 병원을 찾은 모든이에게 건강과 안녕과 행운을 내려주소서!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이 모든이에게 희망으로 보이게끔 해주소서!
행복이란(조경수) 🌹 노래 다 아실거에요. 1978년도에 나왔는데요 음 내가 까까머리 고딩1때로군... 3박자 왈츠리듬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는데요. 유래에 얽힌 재미난 反轉스토리 알려드립니다.
①조경수 가수가 대학가의 어느카페에서 들었다며 채보를 하여 1978년 발표. 많이 알려짐
②작자미상으로 하기보단 자기딸 이름으로 '서연 작사곡' 등재
③1979년 '이준례'라는 74세 고령의 여성이 자기가 만든곡이라며 직접 악보를 그린 자료를 보여주며 주장. 결국 이후 이준례곡으로 악보발매. 당시 이준례 할매의 정체를 몰랐음
④그런데 또다른 원곡주장이 나타났어요. 알고보니 1964년 '임이여 나의곁에'라는 노래가 진짜 원곡이었다. 가수는 그 유명한 영화배우 김지미
⑤이럴수가...럴수럴수...김지미가 노래를 취입했다니. 음반을 보니 진짜 '김지미 노래/월견초 작사/유금춘 작편곡/ 되어있다.
⑥그런데 또 반전......실제노래 주인공은 김지미의 사촌여동생 김영자. 우찌 된일인고?
⑦이유인즉슨 당시 최무룡과 김지미의 인기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를 주름잡던 시절. 음반사에서 김지미의 인기를 이용하여 돈벌이용 음반을 만든것. 영화는 모두 성우들에 의해 더빙되었기 때문에 실제 김지미씨의 목소리를 대중들이 모르기 때문에 가능했던일.
⑧이 곡의 원곡주장이 엇갈릴때 유금춘 작곡자(본명 김원출 2005년 작고)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행복이란'이 자신의 곡이라며 음원,음반재킷,악보,사유서 등을 제출했다.
⑨그럼 앞서 주장한 이준례 할매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무슨 연유로 자신이 만든곡이라 주장했단 말인가?
⑩이준례씨는 1935년 '그리운 아리랑(선우일선노래)'등을 작곡한 한국 최초의 여성작곡가였다. 유명한분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여성이 건방지게 작곡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되어 음악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⑪이준례씨는 인형제작자가 되어 '이준례 인형연구소'를 서울 초동에 설립합니다.
⑫마침 이준례 인형연구소 옆집이 '동진여관'이었는데...아뿔싸 그 집이 바로 김지미씨 집이었다
⑬김지씨미씨의 집에 자주 놀러간 사촌동생 김영자씨에게 이준례씨가 만도린을 반주하며 가끔 들려준 노래가 바로 '임이여 나의곁에'이다. 뭔가 확실해진다 이제...
⑭반전.....반전이다.....이준례씨는 벌써 돌아가셨고. 원곡의 작자를 잘 알수없다며 자신이 채보한 악보를 직접 그렸다며 음악저작권협회에 내놓으며 자신의 곡이라 주장하는 인간의 양심은 어디까지일까?
비롯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흔한일이다. 학벌도 경력도 자격증도 전문가도... 그냥 그렇게 얼버무려 만들어진 가짜인생으로 너나없이 살고있다.
난 예전부터 '행복이란' 이 노래의 출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박성서 평론가의 글을 읽고 정리해 보았다. 박성서 음악평론가는 가끔 방송에서도 볼수 있지만 실로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역사 저널리스트다. 일전에 나에게 꼭 통기타캠프촌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준 적도 있었다. 아마도 쭈욱 지켜본 바 내가 통기타캠프촌다운 業을 못해내니까 안타까워 못오시는듯 하다. 관심밖이 되었을수도.
좀 전에 나에게 댓글을 통해 연락이 왔는데 '행복이란'노래 원곡 사실에 대해 내일 연합뉴스라는 매체에서 상세히 나온다고 하네요.
한 개인의 삶이나 한 개인이 부른 노래의 유래나 출처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쫌 안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흥미로울 따름이다. 故 김지미 명복을 빕니다.
어제 낮에 공주터미널로 손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얼마전에 신규가입한 서울거주 회원이신데 시간을 맞추다 고속버스 타고 오는걸로 협의가 되어 마중을 갔더랬습니다.
동갑내기 62년 범띠. 작달만한 키에 인상좋은 수더분한 얼굴로 기타공부에 돌입하기전 약간의 사생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를 통하여 알게된 조촌장과의 인연으로 또 한 사람의 삶이 다가왔습니다.
전북 김제 출신. 여태까지 혼자 삶을 지탱해 온 쓰라린 지난 이야기들. 일찌기 고향을 떠날수 밖에 없었다는 운명의 시간들. 혹독한 세상속에서 배움의 끈을 이어려 애써왔던 인고의 날들. 그러면서도 늘 긍정의 삶속에서 지내왔건만 이젠 가끔 외롭다는 중늙이가 되어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팔뚝을 걷어올리며 불쑥 솟아오른 혈관을 보여주는 주사자국. 일주일에 3번을 투석을 한지가 벌써 오래전. 그나마 내년에는 신장이식 대상자로 되어 희망이 있다며 웃으셨습니다.
이야기가 재밌어 빠져드는게 아니라 점점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분에 대한 존중심(?) 존경심(?) 호기심(?)이 모두 발동하기 시작했지요. 어찌 같은 하늘아래 같은 연도에 같은 사내로 태어나서 이렇게도 다른 삶을 살아오셨단 말인가? 뭣이 달랐고 뭣이 문제였당가.
넉넉한 귀경 차표를 끊어 두었기에 기타 개인지도를 장시간 행하여 그간의 어려움과 궁금증을 해소해 드렸더니 무척 흡족해 하였습니다. 배움이 없었기에 기회가 없었기에 알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나마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으면 합니다.
깜깜한 밤시간에 터미널로 배웅해드리고 돌아오는 맘이 내내 묵직했습니다. 생존의 삶과 발전의 삶은 근본이 다르다. 충족을 원하는 삶과 여유의 삶은 다르다. 다만 모든 삶이 소중하다는것은 같다. 이제 조촌장을 만났으니 편안히 기타치며 평생 지내보세.
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세월은 흘렀구나. 아 옛날이여~^^
5 days ago | [YT]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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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또, 검진날이라 아주대병원에 왔다. 몇년전에는 간단한 검진에도 아내와 딸이 동행도 했건만 이젠 혼자다. 혼자서 주차도 잘하고 채혈도 잘하고 사전결제도 할줄 알고 혼밥도 하고 커피도 즐기고 산책도 하고 그야말로 병원문화를 즐긴다.
평소 아침 이른시간을 이용하다 오늘은 오후 1시에 잡혀있어 10시쯤 채혈과 소변검사를 마치고 대기중에 왔다리갔다리 운동삼아 걷기를 반복한다. 인산인해다. 온통 옷색깔이 시커멓다.
촌각을 다투며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오랜 지병에 지친 사람도, 병을 나아야겠다는 의지보다 돈걱정에 시름하는 사람도,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의무적 책임을 다하려 드나드는 사람도, 왜 내게 이런 병이 왔는지 마음속 한탄을 내뱉는 사람...
수많은 생사고락의 과정이 거쳐가고 토해내는 곳이다.
시커먼 행렬속에서도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눈알을 번들거리며 멋잇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 의료기구와 제약회사 영업담당자들이다. 아프고 힘든자들이 희망을 찾아가는곳도 병원이요 절망을 떠안는곳도 이곳이요 그속에서 돈벌이가 난무하는곳도 병원이다. 결국 세상 어느곳이든 생사가 넘나들고 희비가 엇갈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인생살이인듯 하다.
사람들은 왜 그 시커먼 옷을 즐겨 입을까? 온통 돌아보면 까맣다.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사회적 불경기가 지속되거나 불안심리가 넘치면 주로 까만색 옷이 유행한다"
그런데 막상 까만색 옷을 즐겨입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렇지않다 "때도 덜 타고 뚱뚱해 보이는걸 좀 커버해주는것 같아요"그것도 또한 그렇지많은 않다.
사회 불경기가 원인이라면 세상은 계속 불경기다. 뚱뚱해 보이는걸 커버한다면 마른체형의 사람들도 왜그리 검정색 옷을 입는가? 난 좀 의문이다. 인간심리학 사회학 모든 관점에서 의문이다. 아마도 남보다 틔어보이는걸 불편해 하는 인간의 근본적 겸손성(?) 좋게말해서 특별히 쪽팔리는게 싫어서 대중들이 즐겨입는 평범한 까만색의 옷을 택하지 않나싶다. 나의 뇌피셜이다.
나는 특별히 틔어보이려고 원색(컬러풀)의 옷을 택하는건 아니다. 등산을 다닐때부터 하도 주변사람들이 까만색 옷이 많아 나라도 일부러 다른 색상을 입음으로서 조금의 희색의 의미에서 그런거다.
가끔 나의 옷색상을 지적하며 틔어보이려는 의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변명할 이유도 없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하는거고 어느날부터 검정색 옷을 거부하기 시작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싸구려든 고가품이든 일단 신발과 옷을 전부 원색으로 선택한다. 이제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고 편하다.
한번은 빨강색 티셔츠를 입고 빨강색 모자를 쓰고 통기타라이브방송을 했더니 진짜(?) 전광훈목사가 들어와서 "야하 우리 보수우파 빨강색 아주 좋아요. 멋져요. 계속 방송 잘 부탁해요" 이러는거다. 시청자들중에도 "오늘 방송컨셉트는 완전 보수우파네" 그냥 방송 중단해 버렸다.
선거때 파랑색 모자를 쓰고 갔더니 입구 안내아줌마가 뾰루퉁하게 대하였다. 선거 여름철이라 아침에 나가다 보니 파랑색모자를 쓴거고 원래 파랑색을 좋아해 신발도 파카도 파랑색인데. 아하...이런거 때문에 사람들이 검정색옷을 입는구나.
글을 쓰는동안 병원대기 긴의자 옆자리 사람이 여러번 바뀌었는데 온통 검정옷이다. 지금 옆자리 부부는 아래위 검정옷에 검정마스크에 검정 신발에 검정모자다. 우와~~~
병원놀이 즐기는 글쓰다 줄거리가 옷색깔로 바뀌어버렸네. 젠장
힘들다. 삶이 힘들다. 쉽지 않은게 아니라 힘들다.
누군가 말하더라 "세상에 죽는일이 간단하다면 죽을사람 천지"라고.
그렇다. 병원밖에서 지탱해가는 삶도 힘들다. 병원안에서도 힘들다.
나만 힘든것 같지만 남도 힘들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아주 어려운말을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병원안을 맴도는 수많은 인파들의 각각 고통의 무게를 아무도 잴 수없고 경중을 재단할수도 없다. 아직 살아 움직이는한 내 삶의 과정이구나 생각해야 할것이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병원안을 중심잡아 주고있네. 미리 그라지마소. 난 친구들과 젊을때 '메리 크리스마스'를 '미리 그라지마소'로 얘기했다. 항상 크리스마스 이전이라 '미리 그라지마소'가 맞아 떨어졌었다.
니체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중시 여기고자 '신은 죽었다'라는 명언(명제?)를 남겼다. 죽어야 神이 되건만 신이 죽었다니 죽음이란 단어는 단순히 목숨과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존재의 단절임을 니체는 얘기했다. 사람은 존재의 단절까지 가려면 죽고 난뒤에도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야한다. 이름없이 조용히 살다가더라도 같이 살았던 가족 친지에 의해 오래도록 존재하게 되고 유명해지면 존재의 단절기간이 무척 길어진다. 소크라테스는 5천년이 지난 여태까지 죽지않고 살아있다.현세를 잘 살다 가라는 조물주의 의도였나봐.
어느덧 검진시간이 다가왔네. 당뇨 심혈관 고지혈 혈압 신장기능 의사 말듣고 약타서 가면 또 병원밖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이란게 주제속 소재만 바뀌어도 또 쓸 말이 천지다. 한자리에서 엉터리 수필 한권 써내려 갈수도 있겠다. 내가 아는 신이여! 나를 모르는 신이여! 오늘 내가 맞닥뜨린 이곳 병원을 찾은 모든이에게 건강과 안녕과 행운을 내려주소서!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이 모든이에게 희망으로 보이게끔 해주소서!
6 days ago | [YT]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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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주문제작 기타가 필요하시면 포미오기타. 국내제작합니다
www.fmoguitar.co.kr
1 week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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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아이러브송통기타 회원가입 및 기타구매에 관한 질문사항 또는 개인지도 및 영상강의에 대한 질문은 직접 카톡으로 주시면 됩니다. open.kakao.com/o/sAmuiSog
1 week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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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행복이란(조경수) 🌹 노래 다 아실거에요.
1978년도에 나왔는데요 음 내가 까까머리 고딩1때로군...
3박자 왈츠리듬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는데요.
유래에 얽힌 재미난 反轉스토리 알려드립니다.
①조경수 가수가 대학가의 어느카페에서 들었다며 채보를 하여 1978년 발표. 많이 알려짐
②작자미상으로 하기보단 자기딸 이름으로 '서연 작사곡' 등재
③1979년 '이준례'라는 74세 고령의 여성이 자기가 만든곡이라며 직접 악보를 그린 자료를 보여주며 주장. 결국 이후 이준례곡으로 악보발매. 당시 이준례 할매의 정체를 몰랐음
④그런데 또다른 원곡주장이 나타났어요. 알고보니 1964년 '임이여 나의곁에'라는 노래가 진짜 원곡이었다.
가수는 그 유명한 영화배우 김지미
⑤이럴수가...럴수럴수...김지미가 노래를 취입했다니.
음반을 보니 진짜 '김지미 노래/월견초 작사/유금춘 작편곡/ 되어있다.
⑥그런데 또 반전......실제노래 주인공은 김지미의 사촌여동생 김영자. 우찌 된일인고?
⑦이유인즉슨
당시 최무룡과 김지미의 인기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를 주름잡던 시절. 음반사에서 김지미의 인기를 이용하여 돈벌이용 음반을 만든것. 영화는 모두 성우들에 의해 더빙되었기 때문에 실제 김지미씨의 목소리를 대중들이 모르기 때문에 가능했던일.
⑧이 곡의 원곡주장이 엇갈릴때 유금춘 작곡자(본명 김원출 2005년 작고)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행복이란'이 자신의 곡이라며 음원,음반재킷,악보,사유서 등을 제출했다.
⑨그럼 앞서 주장한 이준례 할매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무슨 연유로 자신이 만든곡이라 주장했단 말인가?
⑩이준례씨는 1935년 '그리운 아리랑(선우일선노래)'등을 작곡한 한국 최초의 여성작곡가였다. 유명한분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여성이 건방지게 작곡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되어 음악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⑪이준례씨는 인형제작자가 되어 '이준례 인형연구소'를 서울 초동에 설립합니다.
⑫마침 이준례 인형연구소 옆집이 '동진여관'이었는데...아뿔싸
그 집이 바로 김지미씨 집이었다
⑬김지씨미씨의 집에 자주 놀러간 사촌동생 김영자씨에게 이준례씨가 만도린을 반주하며 가끔 들려준 노래가 바로 '임이여 나의곁에'이다. 뭔가 확실해진다 이제...
⑭반전.....반전이다.....이준례씨는 벌써 돌아가셨고.
원곡의 작자를 잘 알수없다며 자신이 채보한 악보를 직접 그렸다며 음악저작권협회에 내놓으며 자신의 곡이라 주장하는 인간의 양심은 어디까지일까?
비롯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흔한일이다.
학벌도 경력도 자격증도 전문가도...
그냥 그렇게 얼버무려 만들어진 가짜인생으로 너나없이 살고있다.
난 예전부터 '행복이란' 이 노래의 출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박성서 평론가의 글을 읽고 정리해 보았다.
박성서 음악평론가는 가끔 방송에서도 볼수 있지만 실로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역사 저널리스트다. 일전에 나에게 꼭 통기타캠프촌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준 적도 있었다. 아마도 쭈욱 지켜본 바 내가 통기타캠프촌다운 業을 못해내니까 안타까워 못오시는듯 하다. 관심밖이 되었을수도.
좀 전에 나에게 댓글을 통해 연락이 왔는데 '행복이란'노래 원곡 사실에 대해 내일 연합뉴스라는 매체에서 상세히 나온다고 하네요.
한 개인의 삶이나 한 개인이 부른 노래의 유래나 출처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쫌 안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흥미로울 따름이다. 故 김지미 명복을 빕니다.
https://youtu.be/Hz7GVR3ia0w?si=HG54i...
1 week ago (edited) | [Y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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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아침~? 오전~? 금강휴게소 미리 그라지마소
1 week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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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지방사람이 서울왔다가 서울사람들의 숨구멍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숨통이 연결되는구나 #서울둘레길
2 weeks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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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서울 명일동에 와서 통캠회원 김동성님과 점심 먹어요.
육회비빔밥과 갈비탕. 갈비 하나 주시네요. ㅋ
조촌장 서울나들이.
2 week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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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일단 모이면 푸짐하게 먹어요 #공주통기타캠프촌
2 weeks ago | [YT]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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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어제 낮에 공주터미널로 손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얼마전에 신규가입한 서울거주 회원이신데 시간을 맞추다 고속버스 타고 오는걸로 협의가 되어 마중을 갔더랬습니다.
동갑내기 62년 범띠. 작달만한 키에 인상좋은 수더분한 얼굴로 기타공부에 돌입하기전 약간의 사생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를 통하여 알게된 조촌장과의 인연으로 또 한 사람의 삶이 다가왔습니다.
전북 김제 출신. 여태까지 혼자 삶을 지탱해 온 쓰라린 지난 이야기들. 일찌기 고향을 떠날수 밖에 없었다는 운명의 시간들. 혹독한 세상속에서 배움의 끈을 이어려 애써왔던 인고의 날들. 그러면서도 늘 긍정의 삶속에서 지내왔건만 이젠 가끔 외롭다는 중늙이가 되어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팔뚝을 걷어올리며 불쑥 솟아오른 혈관을 보여주는 주사자국. 일주일에 3번을 투석을 한지가 벌써 오래전. 그나마 내년에는 신장이식 대상자로 되어 희망이 있다며 웃으셨습니다.
이야기가 재밌어 빠져드는게 아니라 점점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분에 대한 존중심(?) 존경심(?) 호기심(?)이 모두 발동하기 시작했지요. 어찌 같은 하늘아래 같은 연도에 같은 사내로 태어나서 이렇게도 다른 삶을 살아오셨단 말인가? 뭣이 달랐고 뭣이 문제였당가.
넉넉한 귀경 차표를 끊어 두었기에 기타 개인지도를 장시간 행하여 그간의 어려움과 궁금증을 해소해 드렸더니 무척 흡족해 하였습니다. 배움이 없었기에 기회가 없었기에 알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나마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으면 합니다.
깜깜한 밤시간에 터미널로 배웅해드리고 돌아오는 맘이 내내 묵직했습니다. 생존의 삶과 발전의 삶은 근본이 다르다. 충족을 원하는 삶과 여유의 삶은 다르다. 다만 모든 삶이 소중하다는것은 같다. 이제 조촌장을 만났으니 편안히 기타치며 평생 지내보세.
[황태콩나물국밥과 갈비만두 점심을 기다리며 글 적었어요]
2 weeks ago | [YT]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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