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민촌장(공주통기타캠프촌)

또, 검진날이라 아주대병원에 왔다. 몇년전에는 간단한 검진에도 아내와 딸이 동행도 했건만 이젠 혼자다. 혼자서 주차도 잘하고 채혈도 잘하고 사전결제도 할줄 알고 혼밥도 하고 커피도 즐기고 산책도 하고 그야말로 병원문화를 즐긴다.

평소 아침 이른시간을 이용하다 오늘은 오후 1시에 잡혀있어 10시쯤 채혈과 소변검사를 마치고 대기중에 왔다리갔다리 운동삼아 걷기를 반복한다. 인산인해다. 온통 옷색깔이 시커멓다.

촌각을 다투며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오랜 지병에 지친 사람도, 병을 나아야겠다는 의지보다 돈걱정에 시름하는 사람도,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의무적 책임을 다하려 드나드는 사람도, 왜 내게 이런 병이 왔는지 마음속 한탄을 내뱉는 사람...
수많은 생사고락의 과정이 거쳐가고 토해내는 곳이다.

시커먼 행렬속에서도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눈알을 번들거리며 멋잇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 의료기구와 제약회사 영업담당자들이다. 아프고 힘든자들이 희망을 찾아가는곳도 병원이요 절망을 떠안는곳도 이곳이요 그속에서 돈벌이가 난무하는곳도 병원이다. 결국 세상 어느곳이든 생사가 넘나들고 희비가 엇갈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인생살이인듯 하다.

사람들은 왜 그 시커먼 옷을 즐겨 입을까? 온통 돌아보면 까맣다.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사회적 불경기가 지속되거나 불안심리가 넘치면 주로 까만색 옷이 유행한다"
그런데 막상 까만색 옷을 즐겨입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렇지않다 "때도 덜 타고 뚱뚱해 보이는걸 좀 커버해주는것 같아요"그것도 또한 그렇지많은 않다.

사회 불경기가 원인이라면 세상은 계속 불경기다. 뚱뚱해 보이는걸 커버한다면 마른체형의 사람들도 왜그리 검정색 옷을 입는가? 난 좀 의문이다. 인간심리학 사회학 모든 관점에서 의문이다. 아마도 남보다 틔어보이는걸 불편해 하는 인간의 근본적 겸손성(?) 좋게말해서 특별히 쪽팔리는게 싫어서 대중들이 즐겨입는 평범한 까만색의 옷을 택하지 않나싶다. 나의 뇌피셜이다.

나는 특별히 틔어보이려고 원색(컬러풀)의 옷을 택하는건 아니다. 등산을 다닐때부터 하도 주변사람들이 까만색 옷이 많아 나라도 일부러 다른 색상을 입음으로서 조금의 희색의 의미에서 그런거다.
가끔 나의 옷색상을 지적하며 틔어보이려는 의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변명할 이유도 없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하는거고 어느날부터 검정색 옷을 거부하기 시작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싸구려든 고가품이든 일단 신발과 옷을 전부 원색으로 선택한다. 이제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고 편하다.

한번은 빨강색 티셔츠를 입고 빨강색 모자를 쓰고 통기타라이브방송을 했더니 진짜(?) 전광훈목사가 들어와서 "야하 우리 보수우파 빨강색 아주 좋아요. 멋져요. 계속 방송 잘 부탁해요" 이러는거다. 시청자들중에도 "오늘 방송컨셉트는 완전 보수우파네" 그냥 방송 중단해 버렸다.

선거때 파랑색 모자를 쓰고 갔더니 입구 안내아줌마가 뾰루퉁하게 대하였다. 선거 여름철이라 아침에 나가다 보니 파랑색모자를 쓴거고 원래 파랑색을 좋아해 신발도 파카도 파랑색인데. 아하...이런거 때문에 사람들이 검정색옷을 입는구나.

글을 쓰는동안 병원대기 긴의자 옆자리 사람이 여러번 바뀌었는데 온통 검정옷이다. 지금 옆자리 부부는 아래위 검정옷에 검정마스크에 검정 신발에 검정모자다. 우와~~~

병원놀이 즐기는 글쓰다 줄거리가 옷색깔로 바뀌어버렸네. 젠장

힘들다. 삶이 힘들다. 쉽지 않은게 아니라 힘들다.
누군가 말하더라 "세상에 죽는일이 간단하다면 죽을사람 천지"라고.
그렇다. 병원밖에서 지탱해가는 삶도 힘들다. 병원안에서도 힘들다.
나만 힘든것 같지만 남도 힘들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아주 어려운말을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병원안을 맴도는 수많은 인파들의 각각 고통의 무게를 아무도 잴 수없고 경중을 재단할수도 없다. 아직 살아 움직이는한 내 삶의 과정이구나 생각해야 할것이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병원안을 중심잡아 주고있네. 미리 그라지마소. 난 친구들과 젊을때 '메리 크리스마스'를 '미리 그라지마소'로 얘기했다. 항상 크리스마스 이전이라 '미리 그라지마소'가 맞아 떨어졌었다.

니체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중시 여기고자 '신은 죽었다'라는 명언(명제?)를 남겼다. 죽어야 神이 되건만 신이 죽었다니 죽음이란 단어는 단순히 목숨과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존재의 단절임을 니체는 얘기했다. 사람은 존재의 단절까지 가려면 죽고 난뒤에도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야한다. 이름없이 조용히 살다가더라도 같이 살았던 가족 친지에 의해 오래도록 존재하게 되고 유명해지면 존재의 단절기간이 무척 길어진다. 소크라테스는 5천년이 지난 여태까지 죽지않고 살아있다.현세를 잘 살다 가라는 조물주의 의도였나봐.

어느덧 검진시간이 다가왔네. 당뇨 심혈관 고지혈 혈압 신장기능 의사 말듣고 약타서 가면 또 병원밖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이란게 주제속 소재만 바뀌어도 또 쓸 말이 천지다. 한자리에서 엉터리 수필 한권 써내려 갈수도 있겠다. 내가 아는 신이여! 나를 모르는 신이여! 오늘 내가 맞닥뜨린 이곳 병원을 찾은 모든이에게 건강과 안녕과 행운을 내려주소서!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이 모든이에게 희망으로 보이게끔 해주소서!

6 days ago | [Y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