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5일 새벽에 원로배우 이순재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이 분은 서울대학교 재학 중인 1956년 9월 21일 대학 연극 동호회에서 연극 <지평선 너머>를 공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으며 1957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HLKZ-TV의 드라마에 간간히 출연하며 TV에도 데뷔하였고 이후 1962년 KBS의 첫 TV 드라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하는 등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이후 그 시절을 풍미하던 스타들이 하나 둘 씩 은퇴하거나 별세하면서 이순재는 정상의 자리를 지켜나갔습니다. 하지만 2025년에 들어서 건강 문제가 불거지더니 결국 이 분도 과거의 스타들이 있는 하늘로 떠났습니다.
작년에 김수미가 별세한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또 하나의 원로배우가 세상을 떠나니 마음이 아픕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5년 9월 16일 미 독립영화의 산실인 '선댄스 영화제'의 창립자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1936년 8월 19일에 태어난 그는 1959년 연극으로 데뷔한 후 1962년 영화 ‘워 헌트’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69년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 영화는 그의 경력상 제일 중요한 영화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냐면 선댄스 영화제는 이 작품에서 그가 맡았던 역인 ‘선댄스 키드’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입니다. 이후 1973년 폴 뉴먼과 '스팅'을 찍었으며 이후 추억, 위대한 개츠비, 코드네임 콘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내츄럴,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을 찍으며 젊은 나날 정상의 자리를 지켰으며 중년 이후에도 업 클로즈 앤 퍼스널, 호스 위스퍼러, 라스트 캐슬, 스파이 게임, 올 이즈 로스트 등에 나오며 계속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에서 알렉산더 피어스 역을 맡으며 다시 한번 젊은 세대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 시켰습니다.
배우로서도 최정점의 커리어를 이룬 그는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이었는데 1980년에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브래드 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흐르는 강물처럼'을 연출하였습니다. 이후로도 많은 영화를 감독하며 감독으로서도 배우만큼의 커리어를 일구어냈습니다. 이런 대단한 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똑같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절에 활약한 진 해크먼도 올해 2월에 별세하였습니다. 진 해크먼의 별세때에도 적었지만 이 시절의 배우들이 하나씩 사라지는건 낭만의 죽음이나 다름 없습니다. 선댄스 영화제의 창시자마저 하늘로 떠났다는건 이 세상에 낭만이란건 사라져가는 개념이란 뜻 일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전원이 탄핵을 인용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때 계엄을 선포한 이후 122일, 탄핵안 통과 111일 만의 일입니다. 4개월간 정말 떠들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라 불거진 갈등은 4개월보다 더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다음 대선 때는 제대로 된 후보가 당선되기를 빕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5년 4월 1일 오후 10시경 발 킬머가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딸의 발언에 의하면 사인은 폐렴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는 후두암 투병 등으로 인해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죠. 마지막 출연작인 <탑건: 매버릭>에서도 이러한 몸 상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탑건> 시리즈의 아이스맨 외에도 <배트맨 포에버>의 배트맨과 <도어즈>와 <트루 로맨스>, <히트>, <툼스톤>, <세인트>, <고스트 앤 다크니스>, <이집트 왕자>,<마인드 헌터>, <알렉산더>, <키스 키스 뱅 뱅> 등으로 유명하였죠. 2004년 이후 자기관리의 실패로 비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지속적으로 영화에 나오며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지만 <탑건: 매버릭>에 출연할 정도로 배우로서의 프로 의식이 확실한 사람이었죠. 비록 그 영화가 마지막이 되었지만, 영화가 명작이었으니 유종의 미를 거둔 거로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국 현지시각 2025년 2월 26일 오후 진 해크먼이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아내와 반려견과 함께 사망한 채로 발견됐으며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향년 95세입니다.
1930년 1월 30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30세 즈음 배우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70년대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에 큰 활약을 하였는데 조연으로 나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이 사조를 연 명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프렌치 커넥션>과 <포세이돈 어드벤처>, <허수아비>, <컨버세이션>등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크리스토퍼 리브가 나온 슈퍼맨 시리즈에서는 렉스 루터로 나오며 대중문화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이 끝난 후에는 진 해크먼 특유의 엄격해 보이는 이미지로 <미시시피 버닝>이나 <크림슨 타이드>같은 상남자 역할이나 <용서받지 못한자>, <퀵 앤 데드>같은 악역을 맡았습니다.
이후 더 나이가 들자 마초적인 역할들 외에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도청전문가나 <로얄 테넌바움>의 철없는 아버지등을 맡으며 이미지의 변화를 주다가 2004년 <웰컴 프레지던트>를 끝으로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물론 베를린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위대한 배우였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집에서 촬영한다면 복귀하겠다고 한 그는 결국 다시 복귀하는 일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5년이 시작된지 3달도 되지 않아서 이런 위대한 영화인들의 사망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그가 활약하던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절이 지금보다 나아보입니다. 이 시절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불황이었지만 이때 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낭만적이었습니다. 즉 낭만없이 비참하기만한 지금과 달리 저 시절에는 난세의 낭만이 존재했단겁니다. 그의 사망은 이러한 낭만의 죽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고 생각됩니다.
<아저씨>와 <여행자>, <도희야>, <눈길>, <여왕의 교실>등으로 유명한 김새론이 오늘 오후 4시 54분에 성동구 성수동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향년 24세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눈부신 활약에 비하면 미약한 잘못에 대해 대중은 그녀를 죽일 것 취급하였고 대중의 소원대로 그녀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스타가 또 하나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죄라면 한국에서 태어났단 겁니다. 만일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면 이만한 일로는 스캔들 거리도 안 됐을 테니까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란 <해뜰날>로 유명한 송대관이 2025년 2월 7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해뜰날>외에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 장>등 다양한 명곡을 남긴 트로트 가수로서 이 분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노래를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대한민국 음악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가수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5년 청사년이 시작된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새 거장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거장은 대표적인 컬트영화감독 중 한 분인 데이비드 린치입니다. 그는 79세 생신을 며칠 앞 둔 1월16일 지병으로 별세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966년 <6명의 아픈 사람들>이란 단편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하였으며 1977년 첫 장편영화인 <이레이저 헤드>를 내놓았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굉장히 난해하며 해석에 따라서는 영아살해를 옹호하는듯한 내용으로 불쾌감을 줄 수 있기에 찬반논란이 많았지만 이런 점이 컬트영화감독으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엘리펀트 맨>으로 대중성을 확보하였지만 제작사의 간섭과 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블록버스터 SF인 <듄>으로 실패를 맛봅니다. 다행히도 그의 작품세계와 대중성을 적절히 결합시킨 <블루 벨벳>으로 재기하였으며 그 다음에 만든 <광란의 사랑>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습니다.(하지만 이 수상은 지금도 굉장히 호불호가 갈린다) 이렇게 커리어가 탄탄해지자 그는 미드의 대표 명작 중 하나인 <트윈픽스> 시리즈와 <로스트 하이웨이>, <스트레이트 스토리>, <멀홀랜드 드라이브>등 명작들을 만들어내고 이후에 마지막 장편영화 <인랜드 엠파이어>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트윈픽스>의 새로운 시즌을 만들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인 <파벨만스>에서 그의 멘토 중 한 명인 존 포드로 나오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습니다. 나이가 먹었음에도 새로운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준비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지만 육체가 이를 따라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영화는 일반적인 문법을 파괴하며 악몽같은 기괴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리얼리즘과 개연성을 중시하는 관객들에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인간으로 취급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인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감독 외에도 화가, 각본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약한 데이비드 린치.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MZ cinephile MZ 시네필의 서브컬쳐 리뷰
2025년 11월 25일 새벽에 원로배우 이순재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이 분은 서울대학교 재학 중인 1956년 9월 21일 대학 연극 동호회에서 연극 <지평선 너머>를 공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으며 1957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HLKZ-TV의 드라마에 간간히 출연하며 TV에도 데뷔하였고 이후 1962년 KBS의 첫 TV 드라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하는 등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이후 그 시절을 풍미하던 스타들이 하나 둘 씩 은퇴하거나 별세하면서 이순재는 정상의 자리를 지켜나갔습니다. 하지만 2025년에 들어서 건강 문제가 불거지더니 결국 이 분도 과거의 스타들이 있는 하늘로 떠났습니다.
작년에 김수미가 별세한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또 하나의 원로배우가 세상을 떠나니 마음이 아픕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weeks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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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5년 10월 1일 '침팬지의 어머니'인 제인 구달 박사님이 향년 91세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동물학자 중 한 분인 제인 구달은 환경 운동가로서도 명성이 드높은 분이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months ago | [Y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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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5년 9월 16일 미 독립영화의 산실인 '선댄스 영화제'의 창립자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1936년 8월 19일에 태어난 그는 1959년 연극으로 데뷔한 후 1962년 영화 ‘워 헌트’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69년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 영화는 그의 경력상 제일 중요한 영화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냐면 선댄스 영화제는 이 작품에서 그가 맡았던 역인 ‘선댄스 키드’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입니다. 이후 1973년 폴 뉴먼과 '스팅'을 찍었으며 이후 추억, 위대한 개츠비, 코드네임 콘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내츄럴,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을 찍으며 젊은 나날 정상의 자리를 지켰으며 중년 이후에도 업 클로즈 앤 퍼스널, 호스 위스퍼러, 라스트 캐슬, 스파이 게임, 올 이즈 로스트 등에 나오며 계속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에서 알렉산더 피어스 역을 맡으며 다시 한번 젊은 세대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 시켰습니다.
배우로서도 최정점의 커리어를 이룬 그는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이었는데 1980년에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브래드 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흐르는 강물처럼'을 연출하였습니다. 이후로도 많은 영화를 감독하며 감독으로서도 배우만큼의 커리어를 일구어냈습니다. 이런 대단한 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똑같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절에 활약한 진 해크먼도 올해 2월에 별세하였습니다. 진 해크먼의 별세때에도 적었지만 이 시절의 배우들이 하나씩 사라지는건 낭만의 죽음이나 다름 없습니다. 선댄스 영화제의 창시자마저 하늘로 떠났다는건 이 세상에 낭만이란건 사라져가는 개념이란 뜻 일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months ago | [YT]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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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6일 오전 8시 40분 경 대도서관님께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향년 46세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또 하나의 별이 저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유튜버들에게 영향을 끼친 분인 만큼 충격적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months ago | [Y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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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전원이 탄핵을 인용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때 계엄을 선포한 이후 122일, 탄핵안 통과 111일 만의 일입니다.
4개월간 정말 떠들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라 불거진 갈등은 4개월보다 더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다음 대선 때는 제대로 된 후보가 당선되기를 빕니다.
8 month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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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cinephile MZ 시네필의 서브컬쳐 리뷰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5년 4월 1일 오후 10시경 발 킬머가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딸의 발언에 의하면 사인은 폐렴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는 후두암 투병 등으로 인해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죠. 마지막 출연작인 <탑건: 매버릭>에서도 이러한 몸 상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탑건> 시리즈의 아이스맨 외에도 <배트맨 포에버>의 배트맨과 <도어즈>와 <트루 로맨스>, <히트>, <툼스톤>, <세인트>, <고스트 앤 다크니스>, <이집트 왕자>,<마인드 헌터>, <알렉산더>, <키스 키스 뱅 뱅> 등으로 유명하였죠. 2004년 이후 자기관리의 실패로 비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지속적으로 영화에 나오며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지만 <탑건: 매버릭>에 출연할 정도로 배우로서의 프로 의식이 확실한 사람이었죠. 비록 그 영화가 마지막이 되었지만, 영화가 명작이었으니 유종의 미를 거둔 거로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8 months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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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cinephile MZ 시네필의 서브컬쳐 리뷰
미국 현지시각 2025년 2월 26일 오후 진 해크먼이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아내와 반려견과 함께 사망한 채로 발견됐으며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향년 95세입니다.
1930년 1월 30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30세 즈음 배우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70년대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에 큰 활약을 하였는데 조연으로 나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이 사조를 연 명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프렌치 커넥션>과 <포세이돈 어드벤처>, <허수아비>, <컨버세이션>등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크리스토퍼 리브가 나온 슈퍼맨 시리즈에서는 렉스 루터로 나오며 대중문화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이 끝난 후에는 진 해크먼 특유의 엄격해 보이는 이미지로 <미시시피 버닝>이나 <크림슨 타이드>같은 상남자 역할이나 <용서받지 못한자>, <퀵 앤 데드>같은 악역을 맡았습니다.
이후 더 나이가 들자 마초적인 역할들 외에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도청전문가나 <로얄 테넌바움>의 철없는 아버지등을 맡으며 이미지의 변화를 주다가 2004년 <웰컴 프레지던트>를 끝으로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물론 베를린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위대한 배우였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집에서 촬영한다면 복귀하겠다고 한 그는 결국 다시 복귀하는 일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5년이 시작된지 3달도 되지 않아서 이런 위대한 영화인들의 사망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그가 활약하던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절이 지금보다 나아보입니다. 이 시절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불황이었지만 이때 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낭만적이었습니다. 즉 낭만없이 비참하기만한 지금과 달리 저 시절에는 난세의 낭만이 존재했단겁니다. 그의 사망은 이러한 낭만의 죽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고 생각됩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부터 2000년대까지 다양한 역할들로 활약한 진 해크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9 months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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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여행자>, <도희야>, <눈길>, <여왕의 교실>등으로 유명한 김새론이 오늘 오후 4시 54분에 성동구 성수동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향년 24세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눈부신 활약에 비하면 미약한 잘못에 대해 대중은 그녀를 죽일 것 취급하였고 대중의 소원대로 그녀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스타가 또 하나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죄라면 한국에서 태어났단 겁니다.
만일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면 이만한 일로는 스캔들 거리도 안 됐을 테니까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9 months ago | [YT]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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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란 <해뜰날>로 유명한 송대관이 2025년 2월 7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해뜰날>외에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 장>등 다양한 명곡을 남긴 트로트 가수로서 이 분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노래를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대한민국 음악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가수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 months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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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청사년이 시작된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새 거장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거장은 대표적인 컬트영화감독 중 한 분인 데이비드 린치입니다. 그는 79세 생신을 며칠 앞 둔 1월16일 지병으로 별세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966년 <6명의 아픈 사람들>이란 단편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하였으며 1977년 첫 장편영화인 <이레이저 헤드>를 내놓았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굉장히 난해하며 해석에 따라서는 영아살해를 옹호하는듯한 내용으로 불쾌감을 줄 수 있기에 찬반논란이 많았지만 이런 점이 컬트영화감독으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엘리펀트 맨>으로 대중성을 확보하였지만 제작사의 간섭과 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블록버스터 SF인 <듄>으로 실패를 맛봅니다. 다행히도 그의 작품세계와 대중성을 적절히 결합시킨 <블루 벨벳>으로 재기하였으며 그 다음에 만든 <광란의 사랑>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습니다.(하지만 이 수상은 지금도 굉장히 호불호가 갈린다) 이렇게 커리어가 탄탄해지자 그는 미드의 대표 명작 중 하나인 <트윈픽스> 시리즈와 <로스트 하이웨이>, <스트레이트 스토리>, <멀홀랜드 드라이브>등 명작들을 만들어내고 이후에 마지막 장편영화 <인랜드 엠파이어>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트윈픽스>의 새로운 시즌을 만들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인 <파벨만스>에서 그의 멘토 중 한 명인 존 포드로 나오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습니다. 나이가 먹었음에도 새로운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준비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지만 육체가 이를 따라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영화는 일반적인 문법을 파괴하며 악몽같은 기괴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리얼리즘과 개연성을 중시하는 관객들에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인간으로 취급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인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감독 외에도 화가, 각본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약한 데이비드 린치.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 months ago | [YT]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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