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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2.
동서대-세토포럼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심포지엄 기조연설문

의(義)로써 화(和)를 이루어가자



– 신의를 바탕으로 한 실용의 미래 한일관계 –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염려하고 애정을 가진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제가 신뢰와 실용의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의로써 화를 이루어 가자”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여 김대중 오부치 공동성명 이후 27년 만에 한일 정상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한일 간의 미래를 밝혀주는 서광이었으며 수교 60주년의 의미를 드높인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일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기로 선언하고 AI 협력, 무역과 경제의 상생,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문제' 등 함께 미래를 열어가기로 한 것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될 것입니다.

특히 저로서는 2016년 3월 국회의장으로 재임시절 오오시마 일본 중의원 의장과 함께 만들었던 "한일 미래대화"의 설립취지와 같은 것이라 기쁨과 함께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어질 대사님들의 라운드테이블과 양국 전문가·기업인들의 토론을 통해 두 나라가 나아갈 구체적인 청사진이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


1. 2025년, 한일수교 60주년의 의미


지난해 말부터 한국이 겪어온 국내 정치 상황과는 별개로, 2025년은 외교적으로도 참으로 복잡다단한 시점입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국제적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증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지나친 자국 중심주의 노선으로 인해 전통적인 동맹 관계와 국제질서의 규범까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뿐 아니라 EU를 비롯한 국제관계의 주요 행위자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금년은 한국 외교에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11월이면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21개 회원국 정상급 지도자들이 한국에 집결해 역내 비전과 발전전략, 현존하는 위기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 의지를 보여 보다 성공적 회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역내의 평화유지와 공동 발전을 위한 주요국 간 합의를 이끌어야 하는 중대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인도·호주와 함께 아태지역 번영과 평화의 핵심축입니다.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의 굳건한 유지를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미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이번의 이재명 대통령의 노력처럼 우리의 안보와 성장을 위해 한일관계 뿐 아니라 한·미·일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한국으로서는 한·중·일 관계의 발전에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2025년은 세계역사의 격변기입니다. 우리의 대응에 따라 지정학적 위기가 증폭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은 양국이 함께 격동기를 이겨낼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 가슴에 묻은 과거, 그러나 함께하는 미래


저는 어머님의 4형제가 모두 재일교포로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그 시절,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심각하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국인의 자긍심을 지키며 당당히 살아온 그분들의 삶은 제 청년 시절에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식민 통치의 아픔, 독도 영유권 도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억울한 고통 앞에서 저 역시 ‘반일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사 앞에 정직하고 냉철하게 마주서면 그 책임의 한 축은 사색당파와 쇄국정치에 갇혀 위정척사로 근대문명을 수용하지 못한 우리 스스로에게도 있었음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급변하고 있는 국제적 현실 속에서 우리가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면 스스로를 불행한 역사 속에 가두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의 선도국가로 일어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입니다.

2차대전 후 독일과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각국의 용서와 화해에서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복수’란 말은 정치외교적 언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에게는 일본에 대한 막연한 복수심리가 마음속에 깔려있습니다.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에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일전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수교 60년, 이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진정한 신의를 만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한 가지 철학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일본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능가함으로써 일본에게 아름다운 복수를 해야 한다." 이것은 증오가 아니라 존중과 실력을 통한 미래형 경쟁의 선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저변의 복수심리가 아름다운 경쟁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일본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존중의 기본적 가치를 함께 하는 국가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고, 넘을 것은 넘고, 극복할 것은 극복하자.” 이 정신이 한일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치외교적, 경제적으로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윈윈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입니다.

일본 정부도 퇴행적인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자세는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1990년대 이후의 한일 간 합의를 보면 분명한 흐름이 있었습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사과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공동선언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공과 과가 있는 지도자였지만,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 측의 사과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 방향을 제시한 점은 커다란 업적입니다. 그런데 2011년 12월 한일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부터 한일관계는 위기에 봉착하였고 독도문제를 크게 부각하는 등 일본의 태도가 급변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천황의 사죄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양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장 정상외교 일환으로 방일한 2014년 시월 26일 당시의 한일관계는 한마디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아베의 역사 수정적인 행보, 강성 안보정책으로의 전환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강 대 강으로 맞서면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 한일관계 개선 및 정상회담 개최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던 시기입니다. 2014년 8월에 부임했던 유흥수 주일대사도 부임한지 2개월이 지나 저와 아베 총리와의 면담시간 직전에야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 였습니다. 저는 경색된 한일관계의 실마리를 의장외교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부끼 분메이 중의원 의장 초청으로 방일하였고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던 양국 관계의 개선과 의장 레벨의 대화 채널 설치, 그리고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부끼 중의원 의장과의 일화를 처음으로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저와 이부끼 의장은 중의원의장 공관 2층의 내실에서 비서실장과 통역만 대동한 단독면담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부끼 의장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으니 허심탄회하게 말씀 드리겠다고 하면서 통역시간 포함하여 약 20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현안에 대한 일본의 견해를 말씀하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말씀의 말미에 "베트남전쟁 중 한국군의 만행을 지적하면서 전쟁 때는 항상 일어나는 문제"로 치부하였습니다. 특히 그 부분이 저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하고 싶은 말씀은 너무나 많습니다만 제가 방문한 것은 언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양국 관계를 복원하고 발전적 미래를 위한 것이므로 모두 참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개입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란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1층으로 내려가 모리 전 수상을 위시한 여러 중진 의원들과 의견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 이제는 ‘의(義)’로 ‘화(和)’를 이루어야 할 때


저는 국회의원 20년 동안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조선통신사 의원연맹을 결성하고 회장을 맡아 양국 의회 간 신뢰 형성에 앞장섰고, 한일양국이 수년간 위기에 봉착했슴에도 아무 역할을 못하는 한일의원 연맹을 보면서 국회의장 재임 때 의장 레벨에서의 새로운 교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여 오오시마 후임 중의원 의장의 동의로 "한일 미래대화"라는 회의체를 창설했습니다.

이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함께 대비해가자는 뜻에서 양국 국회의장 중심의 진정성 있는 미래대화의 틀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2016년 3월 1차 미래대화 회의를 일본 중의원 회의실에서 개최한 후 매 2년마다 이어졌으나 문희상 국회의장의 블럼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실언한 것이 문제되어 중단된 것을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날인 10월 27일 아베 총리를 만났습니다. 이때 저는 일본이 화를 중시하는 화국이고 정치적으로 한일관계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아 왔기 때문에 "일본 국내의 화(和)도 중요하나 한일양국 간의 화(和)도 양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때 아베 총리가 제게 했던 말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후 아베 총리가 보여준 것은 완전히 다른 길이었습니다.

이제는 한일관계가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화해는 단순한 타협이나 형식적 협력이 아니라, [‘의(義)’에 기초한 화(和)]여야 합니다. 동양의 고전 《주역》에는 “의로써 화를 이루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以義制和則無往不利)”는 말이 있습니다. 정의와 신뢰가 없는 화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제가 고인(故人)이 된 아베 총리에게 당시 들려주었던 말의 진의가 이것이었습니다. 진정한 미래지향은,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신의를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합니다. 일본은 한일간의 과거사에 걸린 문제들에서 이 점을 명심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은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를 위해 신의를 굳건히 해가며 조화로운 한일관계를 맺어 가도록 노력해 가야 합니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 개인적 소회를 한 가지 말씀드린다면 박근혜 정부가 각고의 노력으로 만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가 정권이 바뀜으로서 지켜지지 않았던 일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란 점이었습니다. 이번의 한일공동성명으로 실현되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우선, 서로의 현재 모습을 호혜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는 가운데 한국의 위상을 평가하고, 한국은 전후 일본의 재건과 평화추구 노력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경제적 성취와 민주적 안정을 인정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의 한·일 협력의 필요성에 다시 한 번 공감해야 합니다.

양국간 협력은 한반도 주변 평화를 수호하고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기초적 조건입니다. 매년 1천만 명의 한국 국민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소중한 자산임을 잊지 말고, 정치·외교·경제·산업·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린 [‘의(義)’에 기초한 화(和)]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4. 결어


저는 한일관계가 감정에서 머무르지 않고, 책임과 품격,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번 한일양국의 공동성명을 계기로 더욱 발전하도록 양국의 지도자들은 더 침착하고 현명해야 합니다.
‘의’(義)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여는 힘 '입니다.
우리가 ‘의(義)로써 화(和)’를 이루어 한일양국은 경쟁을 넘은 협력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months ago (edited) | [Y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