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방한계선 해상 초계임무 수행 도중 조선인민군 해군의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경계 작전 중이던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후 수색 작전 중 3월 30일 해군특수전 여단의 한주호 준위가 감압병으로 순직하셨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평해전 보복설, 대청해전 보복설, 최고 존엄 모욕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용 도발설, 군부 강경파 독단 도발설, 우발적 교전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여러 원인이 있었다는데 미리 알 수는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뒤 열린 국가안보 총괄점검 회의에서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은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사건 징후를 인지하여 국방부/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이라고 보고 합니다.
사전 징후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수중 침투 관련 징후였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
합참의장에게 조치를 취해주도록 여러번 요구하였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음.
예하 부대인 함대는 상급 부대로부터 사전 징후가 전파되지 않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없었음.
정보기관에서는 북한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고 보고 했으나 묵살했습니다.
위의 내용은 보고된 문서에 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이 문서는 참모총장에게 보고되자 파기되었고, 최원일 함장님은 파기 직전 이 문서를 확보하였습니다.
김종태 당시 기무사령관은 전역을 일주일 앞두고 천안함 사건 2, 3일 전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보고를 했지만,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사령관님. 군대 걱정하지 마시고 전역해서 편안히 계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0년 국방위원회 국방 감사에서 자신의 불찰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사건 뒤 천안함 승조원들은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고 보고를 했고, 제2함대사령부와 해군작전사령부까지는 어뢰 피격이라고 보고가 되었지만, 합동참모본부로 올라간 보고에는 선체 파손으로 인한 침수로 보고가 되었고 국방부를 건너뛰고 청와대로 보고된 내용에는 어뢰 공격은 빠져 있었습니다.
천안함 어뢰 피격 보고를 누락시킨 사람은 당시 해군 2함대 사령관 김동식 제독이었습니다.
역시 2010년 국방위원회 국방 감사에서 어뢰 누락 보고를 인정하고 잘 못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해군 작전 사령부는 합동 참모 본부에 “천안함 선체 파손으로 침수”라고 보고를 하고, 당시 이상의 합참의장은 대전에서 술을 마시고 상경 중이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건일 23시경 해경은 비상령을 선포했는데 합참은 다음날 03시에 비상령을 선포합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소행으로 예단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의 기사에는 “이 대통령은 또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과 관련해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6.2 지방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 대북 규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여당은 안보를 내세웠고, 후보들도 안보를 말하며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최원일 함장님은 패장으로 지목되었고, 전투준비 태만으로 입건했습니다.
”최 함장이 잘못 대응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였다.”라고 했고, 불행한 군인으로 군 생활을 하셨습니다.
천안함의 승조원들은 모두 정치와 미디어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승조원들에게 병원복을 입혀 카메라 앞에 서게 하고, 질문을 하고, 답변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해군 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천안함 승조원들을 패잔병 취급했습니다.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북한의 어뢰를 맞은 무능한 군인으로 대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분들을 보호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왜 살아서 돌아왔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살아남아서 죄송하다. 못 데리고 와서 죄송하다. 계속 살아서 후회된다. “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약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내가 죽을 뻔했고, 내 동료가 죽었고, 죽어가는 동료를 구할 수 없었던 고통은 감히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PTSD라는 단어만으로는 그분들의 고통을 절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도 될 수 없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다 죽고, 다쳤는데, 치료와 보상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러면 앞으로는 누가 나라를 지키지요?
저는 정치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정치에 이용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는 사건 이후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하며 증거를 외면하고 각자의 이익을 계산하여 이용했습니다.
북한의 소행으로 46명이 “전사”했습니다.
전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휴전” 중입니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휴전 중인 분단국가입니다.
서해수호의 날도 좋습니다.
그전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아저씨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방한계선 해상 초계임무 수행 도중 조선인민군 해군의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경계 작전 중이던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후 수색 작전 중 3월 30일 해군특수전 여단의 한주호 준위가 감압병으로 순직하셨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평해전 보복설, 대청해전 보복설, 최고 존엄 모욕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용 도발설, 군부 강경파 독단 도발설, 우발적 교전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여러 원인이 있었다는데 미리 알 수는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뒤 열린 국가안보 총괄점검 회의에서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은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사건 징후를 인지하여 국방부/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이라고 보고 합니다.
사전 징후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수중 침투 관련 징후였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
합참의장에게 조치를 취해주도록 여러번 요구하였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음.
예하 부대인 함대는 상급 부대로부터 사전 징후가 전파되지 않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없었음.
정보기관에서는 북한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고 보고 했으나 묵살했습니다.
위의 내용은 보고된 문서에 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이 문서는 참모총장에게 보고되자 파기되었고, 최원일 함장님은 파기 직전 이 문서를 확보하였습니다.
김종태 당시 기무사령관은 전역을 일주일 앞두고 천안함 사건 2, 3일 전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보고를 했지만,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사령관님. 군대 걱정하지 마시고 전역해서 편안히 계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0년 국방위원회 국방 감사에서 자신의 불찰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사건 뒤 천안함 승조원들은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고 보고를 했고, 제2함대사령부와 해군작전사령부까지는 어뢰 피격이라고 보고가 되었지만, 합동참모본부로 올라간 보고에는 선체 파손으로 인한 침수로 보고가 되었고 국방부를 건너뛰고 청와대로 보고된 내용에는 어뢰 공격은 빠져 있었습니다.
천안함 어뢰 피격 보고를 누락시킨 사람은 당시 해군 2함대 사령관 김동식 제독이었습니다.
역시 2010년 국방위원회 국방 감사에서 어뢰 누락 보고를 인정하고 잘 못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해군 작전 사령부는 합동 참모 본부에 “천안함 선체 파손으로 침수”라고 보고를 하고, 당시 이상의 합참의장은 대전에서 술을 마시고 상경 중이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건일 23시경 해경은 비상령을 선포했는데 합참은 다음날 03시에 비상령을 선포합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소행으로 예단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의 기사에는 “이 대통령은 또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과 관련해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6.2 지방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 대북 규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여당은 안보를 내세웠고, 후보들도 안보를 말하며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최원일 함장님은 패장으로 지목되었고, 전투준비 태만으로 입건했습니다.
”최 함장이 잘못 대응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였다.”라고 했고, 불행한 군인으로 군 생활을 하셨습니다.
천안함의 승조원들은 모두 정치와 미디어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승조원들에게 병원복을 입혀 카메라 앞에 서게 하고, 질문을 하고, 답변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해군 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천안함 승조원들을 패잔병 취급했습니다.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북한의 어뢰를 맞은 무능한 군인으로 대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분들을 보호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왜 살아서 돌아왔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살아남아서 죄송하다. 못 데리고 와서 죄송하다. 계속 살아서 후회된다. “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약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내가 죽을 뻔했고, 내 동료가 죽었고, 죽어가는 동료를 구할 수 없었던 고통은 감히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PTSD라는 단어만으로는 그분들의 고통을 절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도 될 수 없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다 죽고, 다쳤는데, 치료와 보상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러면 앞으로는 누가 나라를 지키지요?
저는 정치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정치에 이용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는 사건 이후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하며 증거를 외면하고 각자의 이익을 계산하여 이용했습니다.
북한의 소행으로 46명이 “전사”했습니다.
전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휴전” 중입니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휴전 중인 분단국가입니다.
서해수호의 날도 좋습니다.
그전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 좋겠습니다.
군인에 대한 예우를 갖출 때 우리는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7 months ago | [Y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