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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왔나?”
낮고 간단명료한 할머니의 목소리,
“네” 하고 대답하며 문지방을 넘어 할머니 방 안으로 들어가면 방바닥과 일자로 딱 붙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앉으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모아 가지런하게 만집니다. 그 모습이 할머니 떠나신 지 6년이 되었지만 아직 눈앞에 그대로 떠오릅니다. 평화의 우리집이 무너져 내려 없어졌지만 여전히 제 기억속에 평화의우리집은 건재합니다.
2019년 1월 28일(음력, 2018년 12월 23일) 밤 10시 41분, 한 시간여 동안의 고통스런 몸부림 끝에 할머니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영웅, 선생님, 열사, 희망 등 그녀의 삶에 부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직함이 있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오랜 세월 삶을 함께 살아온 ‘동지’, ‘할머니’ 호칭이 참 정겹고 애틋합니다.
’피해자와 활동가‘가 어떻게 서로 신뢰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지, 정대협 운동이 김복동의 존재로 인해 얼마나 힘을 많이 받았는지, 그 과정이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에미‘와 ’왕대포‘라는 호칭 속에 담겨있는 것 같아 소중하게 제 마음에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와 동지로 살아온 지난 세월은 때로는 피해자의 뾰족한 가시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침묵을 깨고, 숨겼던 얼굴을 드러내고, 인권평화 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시작에 제가 함께 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그러면서 늘 긴장을 갖게 했던, 쉽지 않았던 할머니와의 관계맺기, 그 시간들이 이렇게 기억으로 남아있어 참 행복합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하시는 뉴스를 TV에서 보고, 피해자들은 신고하라는 뉴스를 보게 되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잠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큰 언니에게 의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니는 조카들을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결국 피해 신고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큰언니와는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30여년 동안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유엔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세계 각지역을 돌아다니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시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셨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특별히 남북 분단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통일을 향한 목소리를 내셨고, 재일동포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참 깊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마음을 직접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기금을 기부하시고, 오사카에 있는 조선학교를 방문하여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하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오랜 세월 할머니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김복동의 희망] 단체를 만들어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고, 명예회장으로 김복동 할머니를 추대했습니다. 그 때, ‘쓰잘 것 없는 사람’을 이렇게 높이 떠받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2019년 1월 28일, 오후 10시 41분, 고통스러웠던 암투병 생활을 마감하고 고단하고 억울한 숨을 거두시기 전, 할머니는 임종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시고, 당신이 못다 한 재일조선학교 지원도 부탁하셨습니다. “너무 무거운 짐을 대포에게 맡겨서 미안하다...” 하셨던 말씀이 요즘 많이 생각납니다. ‘이 일이 무거운 짐일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이미 아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복동 할머니께서 우리와 헤어져 먼 길을 떠나신 지 어느덧 6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지난 30여년 동안의 세계 순회 활동의 기억들이 기억의 시간과 공간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할머니 묘역앞에서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며, 김복동의 희망 회원들과 6주기 제사를 올렸습니다. 할머니 묘역 앞 흙에 머리를 맞대고 마치 할머니 냄새를 느끼듯 그렇게 절을 올렸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할머니께 술을 올리고,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며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계승해 가겠노라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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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권동희 작가님

10 months ago | [YT] | 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