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노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려 합니다. 노아는 당대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홍수 심판을 이겨낸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영광스러운 성공만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지점입니다.
1. 거대한 성공 뒤에 찾아온 작은 실패
노아는 거대한 물의 심판을 이겨냈지만, 작은 포도주 한 잔 앞에 무너졌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 9:21)라고 기록합니다. 영적 긴장이 풀린 순간, 노아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노아와 같지 않습니까?
직장과 가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큰일을 해냈지만, 마음의 평안을 얻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을 놓칩니다. 큰 시험을 이겨낸 후에 오히려 작은 유혹에 넘어집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시간적·물질적 여유가 생길 때, 혹은 신앙생활에 익숙해져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안심하는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성경은 노아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등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이 넘어졌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기록합니다. 이는 그들의 위대함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연약함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어제의 신앙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노아의 실패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2. 수치를 드러내는 함의 길, 덮어주는 셈과 야벳의 길
벌거벗은 아버지의 모습을 본 세 아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나가서 두 형제에게 떠벌렸습니다. 여기서 '알리다'는 말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의 마음으로 흥밋거리처럼 폭로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함의 문화'가 넘쳐납니다. 인터넷과 SNS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거대한 광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묘한 우월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죄악된 우리의 본성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비판함으로써 자신을 높이려는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옷을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의 부끄러움을 가려준 행위가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그분의 실수를 인정하되 그로 인해 온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덮어줌의 은혜'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실수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고 정죄하는 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거룩한 옷으로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이 '덮어주심'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할 수 없게 됩니다. 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용서를 할 수 있고, 덮어주심을 체험한 사람이 다른 이를 덮어주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축복의 언어, 저주의 언어
아버지 노아는 세 아들의 행동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선포합니다. 수치를 드러낸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는 저주가, 아버지를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이 선언됩니다.
야벳에게는 '창대케 되는' 축복이 주어졌고,
셈에게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가장 큰 영적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셈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준 셈의 선택은 단지 가문을 살린 것을 넘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는 이처럼 무서운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그들의 미래를 빚어가는 조각칼과 같습니다.
"넌 커서 뭐가 될래?" "왜 그 모양이냐?"는 말은 자녀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 잠재력의 문을 닫게 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너를 통해 큰일을 하실 거야", "너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야"라는 축복의 말은 아이들의 내면을 건강하게 세웁니다.
부부 관계 전문가인 존 가트맨 박사는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라는 네 가지 태도가 관계를 망가뜨린다고 경고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함이 아버지에게 보였던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비난과 저주의 언어가 아니라, 용서와 축복의 언어가 우리의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웁니다.
결론: 십자가 아래서 덮어주는 삶으로
우리는 모두 노아와 같이 연약하여 넘어지고 부끄러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낱낱이 드러내어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를 덮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들고 서 있던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았지만, 주님은 은혜를 들어 그 여인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손가락질하며 정죄하는 함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 은혜를 힘입어 덮어주고 세워주는 셈과 야벳의 길을 걸을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율법적으로 '허물을 덮으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십자가에서 너의 모든 허물을 이렇게 덮었단다." 이 놀라운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안에 있는 덮어줌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의 옷자락을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펼쳐주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은혜누림교회
2025년 9월 7일 설교요약 / 창세기9장 / 노아의 실수
오늘 우리는 노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려 합니다. 노아는 당대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홍수 심판을 이겨낸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영광스러운 성공만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지점입니다.
1. 거대한 성공 뒤에 찾아온 작은 실패
노아는 거대한 물의 심판을 이겨냈지만, 작은 포도주 한 잔 앞에 무너졌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 9:21)라고 기록합니다. 영적 긴장이 풀린 순간, 노아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노아와 같지 않습니까?
직장과 가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큰일을 해냈지만, 마음의 평안을 얻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을 놓칩니다. 큰 시험을 이겨낸 후에 오히려 작은 유혹에 넘어집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시간적·물질적 여유가 생길 때, 혹은 신앙생활에 익숙해져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안심하는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성경은 노아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등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이 넘어졌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기록합니다. 이는 그들의 위대함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연약함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어제의 신앙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노아의 실패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2. 수치를 드러내는 함의 길, 덮어주는 셈과 야벳의 길
벌거벗은 아버지의 모습을 본 세 아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나가서 두 형제에게 떠벌렸습니다. 여기서 '알리다'는 말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의 마음으로 흥밋거리처럼 폭로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함의 문화'가 넘쳐납니다. 인터넷과 SNS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거대한 광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묘한 우월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죄악된 우리의 본성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비판함으로써 자신을 높이려는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옷을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의 부끄러움을 가려준 행위가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그분의 실수를 인정하되 그로 인해 온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덮어줌의 은혜'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실수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고 정죄하는 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거룩한 옷으로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이 '덮어주심'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할 수 없게 됩니다. 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용서를 할 수 있고, 덮어주심을 체험한 사람이 다른 이를 덮어주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축복의 언어, 저주의 언어
아버지 노아는 세 아들의 행동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선포합니다. 수치를 드러낸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는 저주가, 아버지를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이 선언됩니다.
야벳에게는 '창대케 되는' 축복이 주어졌고,
셈에게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가장 큰 영적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셈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준 셈의 선택은 단지 가문을 살린 것을 넘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는 이처럼 무서운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그들의 미래를 빚어가는 조각칼과 같습니다.
"넌 커서 뭐가 될래?" "왜 그 모양이냐?"는 말은 자녀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 잠재력의 문을 닫게 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너를 통해 큰일을 하실 거야", "너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야"라는 축복의 말은 아이들의 내면을 건강하게 세웁니다.
부부 관계 전문가인 존 가트맨 박사는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라는 네 가지 태도가 관계를 망가뜨린다고 경고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함이 아버지에게 보였던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비난과 저주의 언어가 아니라, 용서와 축복의 언어가 우리의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웁니다.
결론: 십자가 아래서 덮어주는 삶으로
우리는 모두 노아와 같이 연약하여 넘어지고 부끄러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낱낱이 드러내어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를 덮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들고 서 있던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았지만, 주님은 은혜를 들어 그 여인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손가락질하며 정죄하는 함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 은혜를 힘입어 덮어주고 세워주는 셈과 야벳의 길을 걸을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율법적으로 '허물을 덮으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십자가에서 너의 모든 허물을 이렇게 덮었단다." 이 놀라운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안에 있는 덮어줌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의 옷자락을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펼쳐주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3 months ago | [Y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