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싸움을 수행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승리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은 것을 품게 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다섯 가지 사항을 함께 점검하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무익한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그 일은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돌들을 통해서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그들이 침묵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19:35-40). 때로는 마른 막대기(출애굽기4:2), 당나귀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고(민수기22:21-33), 하나님의 일을 훌륭하게 이루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누가복음3: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착각을 하면 안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귀한 일에 우리를 사용해 주심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다 마친 후에 우리의 고백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누가복음17:10).” 모든 일을 다한 후에 우리에게 자랑할 어떤 것이 남아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디아서6:14)
2. 사람을 우상시하면 안됩니다.
대통령이건 어떤 목사님이건 누구도 우상화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그 부르심과 직분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여야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분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서 지켜야 할 때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람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중심에서 이끄는 분들도 명심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사람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에 중심에 있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16:26) 사도바울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며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9:27). 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 도리어 자신은 버림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갈라디아서3:3)
우리가 왜 이런 싸움을 시작하였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작할 때 붙잡은 것을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성령으로 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확신이 아니라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분별됩니다. 성령은 악인들의 망하는 것과 사람들의 고통을 기뻐하지 않습니다(에스겔33:11). 우리를 비난하고 고소하는 자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성령안에 있는지는 그런 것으로 분별됩니다.
우리가 만일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비난하며 저주하며 조롱한다면(약간의 조롱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성령이 아닌 저들과 같은 영안에 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의 영적인 면은 우리를 비난하고 파괴하려 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축복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마태복음5:44).
베드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였지만 곧 이어서 십자가를 거부하도록 종용함으로써 사탄의 충동 속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그룹 혹은 진영 안에 있다고 해서 성령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칭찬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두 마리는 법궤를 운반한 후에 그 자리에서 제물로 바쳐집니다(사무엘상6:14). 우리의 눈물과 인내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기억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보상보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에 뜻을 두어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보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상하심을 믿고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5. 최소치에서 최대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와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것이며 너무나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소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최대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최대치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 위임령입니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28:19-2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허락된 것임을 분명하게 깨닫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공부하는 산골목사
우파 크리스찬들께 고함
주님 안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싸움을 수행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승리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은 것을 품게 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다섯 가지 사항을 함께 점검하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무익한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그 일은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돌들을 통해서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그들이 침묵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19:35-40). 때로는 마른 막대기(출애굽기4:2), 당나귀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고(민수기22:21-33), 하나님의 일을 훌륭하게 이루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누가복음3: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착각을 하면 안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귀한 일에 우리를 사용해 주심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다 마친 후에 우리의 고백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누가복음17:10).” 모든 일을 다한 후에 우리에게 자랑할 어떤 것이 남아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디아서6:14)
2. 사람을 우상시하면 안됩니다.
대통령이건 어떤 목사님이건 누구도 우상화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그 부르심과 직분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여야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분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서 지켜야 할 때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람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중심에서 이끄는 분들도 명심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사람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에 중심에 있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16:26) 사도바울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며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9:27). 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 도리어 자신은 버림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갈라디아서3:3)
우리가 왜 이런 싸움을 시작하였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작할 때 붙잡은 것을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성령으로 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확신이 아니라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분별됩니다. 성령은 악인들의 망하는 것과 사람들의 고통을 기뻐하지 않습니다(에스겔33:11). 우리를 비난하고 고소하는 자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성령안에 있는지는 그런 것으로 분별됩니다.
우리가 만일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비난하며 저주하며 조롱한다면(약간의 조롱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성령이 아닌 저들과 같은 영안에 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의 영적인 면은 우리를 비난하고 파괴하려 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축복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마태복음5:44).
베드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였지만 곧 이어서 십자가를 거부하도록 종용함으로써 사탄의 충동 속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그룹 혹은 진영 안에 있다고 해서 성령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칭찬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두 마리는 법궤를 운반한 후에 그 자리에서 제물로 바쳐집니다(사무엘상6:14). 우리의 눈물과 인내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기억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보상보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에 뜻을 두어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보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상하심을 믿고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5. 최소치에서 최대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와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것이며 너무나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소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최대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최대치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 위임령입니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28:19-2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허락된 것임을 분명하게 깨닫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산골짜기tv
11 months ago | [Y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