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선의 AI탐구

- 문제 정의의 힘: 10%가 99%를 지배한다
1990년대 초, 비디오 게임 개발자들이 현실적인 3D 그래픽을 갈망했을 때, 대부분의 기업들은 하드웨어 성능을 높이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다른 접근을 택했다. 문제의 본질을 파헤친 것이다.


"소프트웨어 코드의 약 10%가 전체 처리 시간의 99%를 차지하고 있었죠." 젠슨 황의 이 발견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었다. 이는 컴퓨팅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통찰이었다. CPU가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작업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병렬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GPU라는 혁신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이전의 문제 정의다. 많은 기업들이 '어떻게 더 빠르게 만들까'에 매몰될 때, 엔비디아는 '왜 느린가'를 먼저 물었다. 이 차이가 혁신과 개선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 전략적 교두보: 게임에서 과학까지의 대장정
GPU를 만들었지만, 어디에 먼저 적용할 것인가? 젠슨 황은 명확한 선택을 했다. 비디오 게임 시장이었다. "우리는 비디오 게임이 언젠가 세계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예측을 넘어선 전략적 사고였다. 게임 시장은 병렬 컴퓨팅에 대한 명확한 수요가 있었고, 사용자들이 성능 향상을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쌓은 기술력과 자본이 다른 분야로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한 양자화학자가 "GPU 덕분에 평생이 걸렸을 연구를 자신의 생애 안에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을 때, 젠슨 황은 GPU의 진짜 가능성을 봤다. GPU는 단순한 그래픽 처리 장치가 아니라 '타임머신'이었던 것이다.


- 생태계 창조자의 탄생: CUDA의 의미
기술적 우월성만으로는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초기 과학자들이 GPU를 연구에 활용하려면 복잡한 '속임수'를 써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젠슨 황이 내린 결정이 바로 CUDA 플랫폼의 개발이었다.


CUDA는 단순한 프로그래밍 도구가 아니었다. 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생태계 창조 전략이었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GPU의 슈퍼컴퓨팅 파워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엔비디아는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기술 해자(moat)를 구축했다.


이 전략의 진가는 10년 후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드러났다. 이미 CUDA에 익숙한 개발자들과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엔비디아 GPU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 변곡점에서의 과감한 베팅
2012년, 세 명의 연구자가 엔비디아 GPU로 훈련시킨 AlexNet이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이 순간 젠슨 황은 결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세상에, 컴퓨팅 산업 전체가 근본부터 재편되겠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변곡점 인식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AlexNet을 단순한 기술적 진보로 봤을 때, 젠슨 황은 이를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로 해석했다. 그리고 즉시 회사의 모든 것을 AI 중심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직감이 아닌, 10년간의 투자와 믿음에 기반한 결단이었다. "가속 컴퓨팅과 딥러닝 네트워크의 확장성에 대한 깊은 신념이 있었습니다." 확신 없는 베팅은 도박이지만, 철학에 기반한 베팅은 전략이다.


- 물리적 AI: 디지털을 넘어 현실로
"지난 10년이 AI의 '과학'이었다면, 다음 10년은 AI의 '응용 과학' 시대가 될 것입니다." 젠슨 황의 미래 비전은 명확하다. AI가 디지털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자율 시스템의 형태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물리적 AI'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로봇이 될 것입니다." 이 예언적 선언 뒤에는 엔비디아의 '옴니버스' 같은 구체적 솔루션이 뒷받침된다. 로봇이 현실에서 위험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가상 세계에서 먼저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 새로운 인재상: 전문가 × AI = 슈퍼휴먼
"AI 시대에 모두가 컴퓨터 과학자가 되어야 할까요?" 진행자의 질문에 젠슨 황은 단호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의 조언은 명확했다. "당신의 전문 분야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배우고 고민하십시오."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코딩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 지식과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AI의 민주화를 향한 비전과도 연결된다. 3,000달러짜리 'baby DGX'를 통해 누구나 AI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기술의 최종 목표가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다수의 혜택임을 보여준다.


- 진짜 리더십의 조건
젠슨 황의 30년 여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기술 리더십의 조건들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장기적 비전에 기반한 인내심, 변곡점을 포착하는 예민함, 그리고 생태계를 창조하는 전략적 사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철학이다. AI 안전을 위한 세 가지 원칙(올바른 기능, 안전한 오작동, 충분한 보안)을 제시한 것도, AI를 민주화하겠다는 비전도 모두 이 철학에서 나온다.


결국 젠슨 황이 재창조한 것은 컴퓨팅이 아니라 기술 리더십 자체다.

1 month ago | [Y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