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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밭] 하아지누 האזינו Ha'azinu → 수코트 סכות Sukkot 5786(2025)

수코트(סכות, 초막절)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장막(סכה, 수카) 아래 거하며 하나님의 쉐키나(שכינה, 임재)의 그늘 속에 보호받았음을 기억하는 절기이자, 가나안 땅에서의 마지막 수확을 기뻐하며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토라는 레위기 23장과 신명기 16장에서 이 절기를 기뻐하라는 명령과 수코트(סכות)를 함께 제정하며, 그 기쁨은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실천임을 강조합니다.

초막은 바람과 햇빛이 스며드는 임시 거처로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도록 이끕니다. 이는 “믿음의 그늘(צל האמונה, 짤 하에무나)”이라 불리는데, 초막에 거하는 행위를 신뢰의 행위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에는 네 가지 종류의 식물(ארבע מינים, 아르바 미님)을 준비합니다. 레위기 23장 40절에 언급된 네 가지 식물은 ‘에트로그(אתרוג)’, ‘루라브(לולב)’, ‘하다쓰(הדס)’, ‘아라바(ערבה)’입니다. 이 식물들은 각기 다른 향기와 맛, 생태적 특성을 지니며, 공동체의 다양성과 하나님과의 통일성을 상징합니다.

‘에트로그(אתרוג)’는 시트론이라는 향기로운 감귤류 과일로, 향기와 맛을 모두 지녀 토라의 지식과 선한 행실을 겸비한 사람을 상징하며 ‘마음(לב, 레브)’을 대표합니다.
‘루라브(לולב)’는 대추야자나무의 어린 잎으로, 맛은 있으나 향기는 없어 지식은 있으나 선행은 부족한 사람을 상징하며, 곧게 솟은 형상 때문에 ‘척추(שדרה, 쉬드라)’를 의미합니다.
‘하다쓰(הדס)’는 도금양(Myrtus, 머틀) 가지로 향기는 있으나 맛은 없어 선행은 있지만 지식은 부족한 사람을 상징하며, 작고 푸른 잎들이 눈을 닮아 ‘눈(עיניים, 에이나임)’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라바(ערבה)’는 버드나무의 가지로 향기도 맛도 없어 지식과 선행 모두 부족한 사람을 상징하지만, ‘입술(שפתיים, 스파타임)’을 대표하여 기도와 찬양으로 성결케 되어야 할 인간의 필요성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에 이 네 가지가 함께 묶여 흔드는 행위를 하는데, 이것은 공동체의 모든 차이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의례로 이해하며, 초막절의 기쁨(שמחה, 심하)은 이 통합된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적 여정 속에서 우리는 각각의 다른 모습의 영혼의 몸을 현재 이루고 살아갑니다. 또한 그 영적 수준과 이해도는 과거, 현재, 미래 또는 공간의 다름에 따라 모두 다양성을 가지고 나타나게 되지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형태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각 영혼을 향한 계획과 목적이 다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 네 종류가 하나로 묶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기록하는데, 여기서 ‘거하시매’는 본래 ‘장막을 치다’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곧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장막(סכה, 수카)을 치신 사건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초막으로 오셨습니다. 초막(סכה, 수카)은 ‘말쿠트’(מלכות, 하나님의 통치)의 상징인데, 초막을 덮는 쓰카크(סכך)는 하나님의 쉐키나(שכינה, 임재)의 보호막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영적 통로이며, 인간이 세속적 거처를 떠나 하나님의 빛(אור אין סוף, 오르 에인 소프)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초막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렇듯 나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안정과 통제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의탁하는 내적 훈련이자 하나님과의 결합을 갈망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초막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초막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를 모두 비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초막은, 그리고 그날의 초막절은 하나님이 친히 그분의 형상과 모양으로 완성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사건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토라를 살아내며, 초막에서 하나님을 만날 그 기쁨(שמחה, 심하) 가운데 사는 것은, 현실을 초월하는 자유의 상태를 갈망하며,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기대하는 마음 가운데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기쁨의 초막절에 네 가지 종류의 결합을 이 시간 동안 우리 이웃과 이뤄내며,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변과 하나의 몸을 이뤄, 초막에서 만날 신랑의 형상과 그와 같은 형상의 신부의 만남을 기대하며 초막절로 들어갑니다.

샤밭샬롬.

2 weeks ago | [Y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