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의 지식Play

Buckle Up.

아침에 일어나니 핸드폰이 관세 뉴스로 도배가 되어 있더군요. 예상은 했지만 더 세게 나왔다는 반응들이 많습니다. 막판까지 백악관에서 어떤 안으로 발표할 지 조율하느라 긴박한 시간을 보냈다는 뉴스들이 있었는데요, 10% 보편 관세에 특정 국가들에 대한 추가 관세로 나온 걸 보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의거한 것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입니다. 불공정 무역으로 인한 무역적자가 미국 안보와 경제에 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를 가져온다는 것이었죠. 하도 이리저리 뉴스가 난무하고 있어서 한 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부과된’ 관세들과 ‘부과될’ 관세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매기겠다고 선언하거나 위협하는 것과 실제 효력에 들어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사는 국가의 수입품에는 4월 2일을 기점으로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행정명령에 서명도 했고요. 그런데 백악관에서는 ‘하겠다’가 아니라 ‘할 수도 있다’라고 했거든요. 어쨌든 현재는 이 관세로 영향을 받는 국가는 아직 없습니다만, 만일에 이걸 들고 나온다면 타겟은 중국이 되겠죠.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했고 또 효력을 발휘할 관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2월 4일 중국 수입품에 관세 10% 부과.
3월 4일 멕시코, 캐나다 관세 25% 부과. 중국에 10% 추가관세로 총 20% 관세 부과.
3월 12일 철강, 알루미늄에 25% 관세 부과.
4월 2일 베네수엘라 산 원유로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할 수도 있음).
4월 3일 모든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 부과. 다만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오는 USMCA 조항에 부합하는 자동차와 부품은 예외.
4월 5일 모든 외국 수입품에 10% 관세 부과. 이중 악질적(?)이라 판단되는 국가들에 대해 각각 다른 세율의 관세를 4월 9일부터 부과. (일주일 시간 줄 테니 와서 협상하란 건가.) 이에 따라 유럽 연합 국가들은 20%, 한국은 25%, 일본은 24% 부과되었습니다. 중국 역시 34% 부과되었죠.

캐나다랑 멕시코는 관세 안 맞았네?

네, 이미 한 대 맞았으니까요. 캐나다나 멕시코는 25%의 관세 (불법 펜타닐 유통과 난민에 대한 책임을 물어)를 3월부터 부과해왔기 때문에 국가별 관세에서는 빠졌습니다. 이미 관세를 맞은 국가나 제품에 대해서는 대체로 유예해줬습니다. 또 자동차 같은 경우, 25% 관세가 4월 3일부터 부과되는데, 여기에 한국에서 수출한다고 추가 25%해서 총 50%를 물리지는 않는거죠.

그런데, 여기에 예외국가가 있습니다.

중국은 봐주질 않았네요.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추가관세까지 이미 20%를 때려 맞고 있었던 중국에게는 얄짤 없이 34%를 더 부과해서 총 54% 관세를 매겨버렸습니다. 여기에 루비오 장관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로 만든 제품이라고 중국 제품들에 25% 추가관세를 매기면 무려 79%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 거고요. 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가장 많이 사는 국가는 중국이거든요. (근데 두번째가 미국입니다.)

관세 항목에서 반도체, 의약품, 구리, 목재, 그리고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에너지와 핵심광물 등은 관세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당장 급한 건 뺀 느낌이 들죠. 다만 향후 무역확장법 232조에 해당되어 관세가 부과될 품목들은 국가별 관세에서 제외된다고 한 부분은, 앞으로도 관세를 매길 품목들이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고 보니, 한 대 때렸으면 웬만하면 또 때리지는 않았는데, 맞은 데 또 맞은 거의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네요. 많이 아프겠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파이브 아이즈는 나름 챙겨줬네요. 호주, 영국, 뉴질랜드는 모두 10% 관세이고, 캐나다도 펜타닐과 난민 문제 해결하면 12%로 낮춰주고 USMCA 항목은 무관세로 유지한다고 했습니다. 캐나다의 새 총리가 어찌저찌 잘 하면 현재의 25%에서 12%로 낮출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2%는 이자인가.

어떤 세계가 기다리는 것일까?

미국인과 트럼프 행정부의 기저에 깔린 생각은 이겁니다. ‘전후에 평화롭게 싸우지 말고 잘 살아보자고 국제기구도 만들고 자유무역도 권장하고 했더니, 전부 미국을 호구로 보고 등쳐먹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등쳐먹기’에 가장 앞장선 게 소위 우방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라는 거죠. 원래 가까운 사람이 배신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제일 밉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이 인사청문회 당시 했던 발언에 가장 잘 녹아 있습니다. 당시 루비오 장관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낡았을 뿐 아니라, 미국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고 말했죠.

"The postwar global order is not just obsolete; it is now a weapon being used against us,"

지난 번 워싱턴 DC 출장을 가서 만났던 많은 분들이 동의하는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전후 미국이 주도해오던 국제질서는 와해되어 가고 있다. 스티븐 월트 교수와의 대담에서도 보셨겠지만, 앞으로의 세계는 나름 평화로웠던(월트 교수님은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셨지만) 지난 80년과는 다를 거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월트 교수님은 이를 다극체제로 보고 계시고, 그래서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 이야기를 하신 거였죠. (그런데 최근에 보니, 현실주의 학파인 월트 교수님조차 ‘이정도로 세게 나올 줄은!’하고 놀라고 계신 듯합니다.)

4년 후 다른 대통령이 들어서면 달라지지 않을까.

글쎄요, 그전에 바뀌는 것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모두 안전벨트를 꽉 매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7 months ago (edited) | [YT] | 7,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