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이태원보살

해무가 바다를 삼키고,
태양은 멍든 과일처럼 스르르 꺼졌다.
그 순간에도 나는 알았다.
숨을 쉬게 하는 건, 눈앞에 없는 것들이란 걸.

공기… 산소… 그리고 전파.
보이지 않아도
온몸을 타고 흐르며 나를 살린다.
신도 그렇다.
신은, 있다.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
매일 나를 증명한다.

어떤 입술은 비웃고,
어떤 눈매는 의심한다.
괜찮다.
기도란 원초적인 생존 본능,
울음보다 오래된 언어니까.

나는 오늘,
뚜껑 열린 심장 하나 들고 산에 올랐다.
몸이 아니라
삭아가는 속내를 통째로 바쳐 보았다.
천지신령님은 아무 말 없으시다.
침묵… 그러나 칼날.
말 대신 매섭게 가르치신다.
베여본 사람만 안다.
피가 아니라 깨달음이 흐른다는 걸.

부처는 자비로 물을 끼얹고,
예수는 용서로 길을 덮는다.
우리 산천의 신령은 다르다.
거짓 없는 가슴만을,
벌겋게 뜯어낸 진심만을 원하신다.

대운?
기다리지 마라.
눈물에 소금기 빠질 때까지 부르고,
붙잡고, 끝끝내 버텨야
겨우 손끝에 묻어나는 것.

해무 속으로 해가 잠기고,
달이 물비늘 위로 떠오르면
나는 또 안쪽 살을 도려내어 묻는다.

“부디, 내 처절함만큼은
허공을 채우는 증명이 되게 해달라고.”

신은 계신다.
보이지 않을 뿐,
매 순간 숨처럼 내 곁에 박혀 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서―처절하게, 끝내 단단하게
그 증명을 살아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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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 [Y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