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가 류재언변호사

우리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그게 우리의 성공, 더 나아가서는 창업생태계와 우리나라 경제의 성공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겸손하고 유연해야 합니다. 창업자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모든 것을 알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고도로 분업화됐기에,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표이사가 주변 사람들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내가 갖고 있지 못하니 도움을 달라’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어야 합니다. 설령 그 도움이 지금 당장 필요한건 아니더라도 미리 들어놓는게 나쁠 일은 전혀 없습니다. 활용할 수 있는 무기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으니까요. 지금 당장 쓸 일이 없더라도, 들어놓으면 나중에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아, 그때 그런게 있었지’라면서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어떤 스타트업도 유니콘까지 위기없이 직선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다운턴이 오고, 이때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연해야 합니다. 그런 유연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가 자기확신이고, 자기확신에서 교만함이 오며, 교만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 이외의 것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겸손함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겸손함과 유연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유연한데 겸손하지 않을 수 없고, 겸손한데 유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AAA에 대해서는 업계 전문가분들과 함께 했던 OO월 OO일의 미팅에서 나왔던 우려가 같은 맥락에서 반복됐습니다.

비록 우리가 실사에 쏟았던 시간이나 투심보고서 작성에 들였던 시간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듯 창업가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투자가 이뤄지기 전에 발견했다는 점에서 BBB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fit이 맞지 않는 창업가와 함께 하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Drop되면 들인 시간이 아깝고 미리 주변에 설명해놓은 분들께 잠깐 부끄럽고 말 일이지만, 원칙에 맞지 않는 투자를 하게 되면 향후 몇 년이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런 점에서 금번 결론은 몇 개월 지나고 생각했을 때 또 좋은 사례로 남을 것 같아, 느낀 바를 글로 정리해둡니다. (’23년 여름에 Drop됐던 M사도 유사한 사례였는데, 사례가 하나씩 축적되어감을 느낍니다. 그럴 수록 저희의 투자도 더 단단해지겠지요.)

아무쪼록 첫 B2C 소비재 투자를 함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심에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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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내용은 작년 12월, 저희 그래비티벤처스에서 정주용CIO와 함께 투자팀을 이끌고 있는 박세웅팀장이 투자 직전 딜을 드랍하며 투자단계에서 도움을 주신 이해관계인들에게 보낸 메일 중 일부입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는 한 심사역의 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장과 창업자를 관찰하고 고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투자하지 않은 딜에서도 면밀한 복기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오늘 출근 후 다시 해당 메일을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리더들과 함께 일하고 있음에 작은 자부심도 느낍니다.



시간이지나서 읽어보아도 곱씹어볼만한 문장입니다. 특히 "따라서 겸손함과 유연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유연한데 겸손하지 않을 수 없고, 겸손한데 유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시간되시는 분은 1독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비오는 수요일, 벤처캐피탈 그래비티벤처스 공동창업자/CSO 류재언변호사 드림.

2 weeks ago | [Y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