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장의 미가야 선지자와 아합왕의 이야기는 오늘날 예언 사역의 방향성과 성도들의 영적 분별에 깊은 경고를 줍니다.
아합은 늘 자신에게 좋은 예언만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미가야를 향해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아합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이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시드기야를 위시한 400명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올라가소서, 승리를 얻으소서”라고 말하며 왕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왕의 관념과 분위기에 맞춘 감언이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세를 따랐고, 사람의 눈치를 보았으며, 결국 미혹의 문을 열어 마귀가 틈타도록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감정과 분위기에 의존하며, 다수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은 대언입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표현하되, 진리를 왜곡하지 않아야 합니다. “좋게만 말해주세요”라는 요청은 예언의 본질을 훼손합니다.
우리는 묻고 점검해야 합니다.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미가야와 같은 신본주의적 스탠스를 가진 예언자이며, 그런 분별력을 가진 성도입니다. 다수의 흐름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용기, 그것이 말세지말의 성도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뉴비전교회 (김온유목사)
듣고 싶은 말이 아닌,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
글/ 김온유목사
”열왕기상 22장의 미가야 선지자와 아합왕의 이야기는
오늘날 예언 사역의 방향성과 성도들의 영적 분별에 깊은 경고를 줍니다.
아합은 늘 자신에게 좋은 예언만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미가야를 향해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아합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이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시드기야를 위시한 400명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올라가소서, 승리를 얻으소서”라고 말하며 왕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왕의 관념과 분위기에 맞춘 감언이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세를 따랐고,
사람의 눈치를 보았으며,
결국 미혹의 문을 열어 마귀가 틈타도록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감정과 분위기에 의존하며, 다수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은 대언입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표현하되,
진리를 왜곡하지 않아야 합니다. “좋게만 말해주세요”라는 요청은 예언의 본질을 훼손합니다.
우리는 묻고 점검해야 합니다.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미가야와 같은 신본주의적 스탠스를 가진 예언자이며,
그런 분별력을 가진 성도입니다.
다수의 흐름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용기,
그것이 말세지말의 성도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2 months ago | [YT]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