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여택 TV

고향마을에서는 겨울이 되면 집집마다 술을 빚었다. 쌀로 고두밥을 쪄서 ‘술약’이라고 불리던 효모와 누룩을 함께 잘 섞은 다음 더운 샘물을 넉넉하게 부어 넣은 술독을 따뜻한 아랫목에 며칠을 두면 밥알이 떠 오르면서 술이 익었다. 어른들은 마실을 다니며 집집마다 담가놓은 술과 함께 ‘뉘 집 자식 버르장머리 없다’는 얘기로 기나긴 겨울밤을 보냈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식량증산을 국정목표로 정하고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했다. 대신 값싼 타피오카를 수입해 소주 원료로 제공했고 양조장은 미국의 원조물자인 밀가루로 막걸리를 제조하도록 했다. 밀가루 막걸리는 맛이 없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몰래 쌀로 밀주(密酒)를 빚었다.

어느 해 초겨울 지프차에 붉은 색 글씨로 ‘밀주단속’이라는 표식을 한 밀주단속반이 우리 마을에 들이닥쳤다. 당연히 우리집 안방에도 술단지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안방으로 달려가 술단지를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왔다. 우선 마굿간에라도 숨겨놓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밀주단속반은 마을 입구에 있던 우리집을 제일 먼저 덥쳤고, 마당에서 단속반을 맞닥뜨린 엄마는 놀란나머지 술독과 함께 꽈당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술독이 박살이 났다. 단속반원들은 엄마가 밀주단속반을 속이려 했다며 다그쳤고, 엄마는 너무나 놀라서 한동안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속반이 물러가고 난 다음 또 다른 사달이 났다. 아버지가 술독을 깨뜨린 엄마에게 위로는 커녕 아까운 술을 쏟아버렸다며 질책했다. 엄마는 서러워 눈물을 펑펑 쏟았다.

며칠 후 아버지는 세무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5천원을 벌금으로 냈다. 그 며칠 동안 할머니와 엄마는 우물가에 정안수를 떠 놓고 아침 저녁으로 삼신할매에게 빌었다. 온가족이 모두 벌벌 떨며 걱정하던 밀주제조의 처벌은 그렇게 끝났다.

엄마는 세월이 흘러 기억히 희미해질 때까지 밀주단속 얘기를 하며 아버지에게 섭섭하다고 했다. 밀주단속 이야기는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의 아픈 기억일 뿐이다.

이제는 쌀이 남아돌아 나라 곳곳에 보관창고가 부족할 지경이다. 세월은 참 많이 변했다.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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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hours ago | [Y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