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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최상목]

기자시절 경제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최상목을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들은 얘기는 좀 있다.

최순실 사건을 취재하면서 최상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미르재단 설립을 밀어부치던 청와대 비서관이 있는데, 그가 최상목이라고 관계자들이 증언을 해주었다. 기사를 썼고 기소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풀려나왔다.
아마도 서울대 법대 후배 검사들이 ‘선배 대접’을 해준 탓이리라. 윤석열도 조사받으러 온 3년 후배 최상목을 좋게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상목은 박근혜 탄핵으로 생각보다 큰 상처를 받았다. 자신이 모시던 안종범의 재판에 여러차례 증인으로 불려나갔다. 곤욕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대선 뒤 필리핀으로 훌쩍 떠나 1년 동안 머문 것도 일종의 도피심리였다는 게 지인들의 해석이다.

세상이 바뀌자 인수위에 참여하게 됐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윤석열이 직접 콕 찍어서 불러냈다고 한다. 권력 가까이 갔다가 불에 데인 경험 때문인지 그는 정치 바람을 덜 타는 금융위원장을 희망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윤석열이 직접 콕 찍어서 경제수석이 됐다고, 그의 가까운 친구가 전해줬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다. 일 잘하고 성실해 윗 사람의 이쁨을 받는다. 단지 너무 고분고분해 ‘영혼없는 공무원’ 이란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유형일 뿐이다.

하지만 ‘젊은 최상목’을 아는 사람들은 다른 기억을 떠올린다.
법대에 입학했으니 사법시험을 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교수 박세일이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경실련 창립을 주도했고 김영삼 정부에서 비서관을 지낸 그 박세일 교수다.
그의 말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출세하기는 사법시험이 좋을지 몰라도,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후진국에서 이제 막 벗어난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게 선진국을 물려주느냐 하는 과제가 여러분 어깨에 달려 있다. 공직자가 돼 앞장서 고민하기 바란다.”
이 말에 감동받은 최상목은 행정고시로 진로를 바꾼다. 경제학과 과목을 법학과 과목보다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가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니 머리도 탁월하고 열정도 들끓었던 모양이다.

이제 최상목은 더이상 관료가 아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스스로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고 낮추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
외로운 결단을 하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자리다.
박근혜 때는 안종범에게 책임을 미뤄도 됐다. 윤석열 때는 “계엄에 반대했다”는 말로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초침이 째깍째깍 거린다.

“후진국을 벗어나 선진국을 물려주기 위해” 공직을 택한 최상목이다. 그런 최상목이 아프리카나 남미 국가에서 일어날 법한 쿠데타에 동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최종 결심을 숨죽여 기다려본다. 돌아가신 박세일 교수도 지켜볼 것이다.

11 months ago (edited) | [YT] | 2,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