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 이웃집에는 ‘호산할매’라고 불리는 먼 친척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다. 워낙 말이 없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아 동네에서는 외톨이로 살았다. 어쩌다 멀리 시집간 딸이 편지를 보내오면 우리 집에 와서 읽어달라고 했고, 필체가 좋은 아버지가 답장을 써 주었다. 호산할매는 글을 읽지 못했다.
1972년 여름 월남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호산할매가 방금 우체부가 배달해 준 편지라며 우리집에 가져 왔다. 마침 집에는 학교에서 금방 돌아 온 나 혼자 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생인 내가 마당으로 나가 호산할매의 편지를 받아들고 국어책 읽듯이 큰 소리로 읽었다.
‘전사통지서, 육군하사 김O섭은 1972년 모월 모일 월남국 OO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였음을 통지함. 육군참모총장.’
군복무 중 월남전에 파병된 호산할매의 막내 아들이 전사한 것이다.
호산할매에게는 그 위로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지만 아들은 객지로 떠나 연락도 끊어져 버렸고, 멀리 시집간 딸에게서 가끔 편지가 올 뿐이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 전화가 있을리 없었다. 전쟁터 월남에 도착한 아들이 '어머니전상서'로 시작되는 군사우편을 한 번 보내와서 온 동네 사람들이 돌려가며 읽어본 것이 얼마 전이었다. 호산할매는 그 막내아들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편지를 다 읽자마자 호산할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서 발기발기 찢어버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며 목에서 피가나도록 울다가 한참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어린 나는 호산할매가 무서워서 헛간으로 도망가 나오지 못했다.
며칠 후 군용지프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고, 병사 2명이 호산할매의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듯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병사들은 마루 한 쪽에 촛불을 켜고 영정사진과 유골함을 놓고 경례를 붙이더니 뒤돌아서 가 버렸다.
마루 끝에는 산발을 한 호산할매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날 이후, 호산할매의 안타깝고 불행한 삶의 이야기는 너무 애처로와서 차마 쓸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나도 군복무를 했지만 전사통지서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전쟁의 공포도 거의 사라졌다. 오랜 세월 계속된 평화는 이 땅에서 살아간 수많은 ‘호산할매’의 한과 피눈물의 결과였다.
안여택 TV
- 전사통지서
펑펑 눈물..
고향마을 이웃집에는 ‘호산할매’라고 불리는 먼 친척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다. 워낙 말이 없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아 동네에서는 외톨이로 살았다. 어쩌다 멀리 시집간 딸이 편지를 보내오면 우리 집에 와서 읽어달라고 했고, 필체가 좋은 아버지가 답장을 써 주었다. 호산할매는 글을 읽지 못했다.
1972년 여름 월남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호산할매가 방금 우체부가 배달해 준 편지라며 우리집에 가져 왔다. 마침 집에는 학교에서 금방 돌아 온 나 혼자 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생인 내가 마당으로 나가 호산할매의 편지를 받아들고 국어책 읽듯이 큰 소리로 읽었다.
‘전사통지서, 육군하사 김O섭은 1972년 모월 모일 월남국 OO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였음을 통지함. 육군참모총장.’
군복무 중 월남전에 파병된 호산할매의 막내 아들이 전사한 것이다.
호산할매에게는 그 위로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지만 아들은 객지로 떠나 연락도 끊어져 버렸고, 멀리 시집간 딸에게서 가끔 편지가 올 뿐이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 전화가 있을리 없었다. 전쟁터 월남에 도착한 아들이 '어머니전상서'로 시작되는 군사우편을 한 번 보내와서 온 동네 사람들이 돌려가며 읽어본 것이 얼마 전이었다. 호산할매는 그 막내아들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편지를 다 읽자마자 호산할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서 발기발기 찢어버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며 목에서 피가나도록 울다가 한참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어린 나는 호산할매가 무서워서 헛간으로 도망가 나오지 못했다.
며칠 후 군용지프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고, 병사 2명이 호산할매의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듯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병사들은 마루 한 쪽에 촛불을 켜고 영정사진과 유골함을 놓고 경례를 붙이더니 뒤돌아서 가 버렸다.
마루 끝에는 산발을 한 호산할매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날 이후, 호산할매의 안타깝고 불행한 삶의 이야기는 너무 애처로와서 차마 쓸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나도 군복무를 했지만 전사통지서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전쟁의 공포도 거의 사라졌다. 오랜 세월 계속된 평화는 이 땅에서 살아간 수많은 ‘호산할매’의 한과 피눈물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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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ago (edited) | [Y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