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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호르무즈의 혈투 = 7부


🌟 1. 역사적 배경
15~16세기 포르투갈은 바스코 다 가마의 항로 개척(1498)을 기점으로 아시아 진출을 본격화하며 ‘에스타도 다 인디아(아시아 제국)’를 형성함. 이들은 고아, 말라카, 마카오, 호르무즈 등을 주요 거점으로 확보하며 인도양 해상 무역을 독점하고자 하였고, 그 핵심은 페르시아만의 요충지 호르무즈섬이었다.

🌟 2. 호르무즈 정복 과정
1차 정복 (1507): 알폰소 드 알부케르케 장군이 460명의 병력과 6척의 함선으로 침공, 점령 성공. 하지만 내부 반란으로 철수.

2차 정복 (1515): 2차 시도에서 무혈 입성, 호르무즈 왕국을 간접통치하며 요새 건설과 무역세 징수. 매년 금화 15,000 아슈라피를 조공으로 받음.

🌟 3. 포르투갈의 군사·기술적 경쟁력
한포 기술 (Breech-loading system): 후장식 청동 대포로 1분당 2~3발 발사 가능. ‘브로드사이드(함선 측면 일제사격)’ 전략을 통해 적의 접근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듦.

화약 혁신: 영국과 독일의 ‘코닝 건파우더’를 도입해 습기에 강한 곡물 형태의 화약을 사용, 사거리와 발사력 대폭 향상.

이러한 기술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조총과 화포가 임진왜란에 등장함.

🌟 4. 호르무즈 식민 통치와 반발
포르투갈은 무역세(30%)를 강제 징수하고, 현지 지도자에 대한 억압적 정책을 펼침.

무스카트, 곰브론(반다르 아바스), 바레인 등에서도 요새를 건설하고 진주·말 무역을 독점.

현지 부족과 무슬림 상인들의 반발은 계속되었으나, 군사력이 약해 체계적인 저항은 어려웠음.

🌟 5. 쇠락의 시작
내부 요인: 마누엘 1세 사망 이후 재정 악화, 요새 유지비 과중, 관리들의 부패, 무역 감소.

외부 요인: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의 부상, 영국·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진출.

결정타: 1622년 영국 동인도 회사와 사파비 왕조 연합군이 호르무즈 함락. 포르투갈의 핵심 거점 상실.

✅ 공병호의 역사 노트 (5가지)
1. 포르투갈의 군사 우위는 브리치로드 한포와 화약의 기술력 덕분에 가능했다.

2. 호르무즈는 아시아-유럽 무역의 요충지로, 포르투갈 해양제국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3. 기술력에 기반한 초반의 우위는 유지 비용, 내부 부패, 대외 변화에 취약했다.

4.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영국·네덜란드의 부상은 포르투갈 제국을 붕괴시킨 주요 외부 요인이다.

5. 정치의 붕괴는 곧 경제의 붕괴로 이어졌으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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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youtube.com/live/StBbGFU9Z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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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ago (edited) | [YT] |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