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치의 - 인생 뭐 있나

가끔 ‘밀양’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2 문학 시간에 각자 본관 조사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리 반 ‘밀양 박씨’ 절반 이상이 ‘밀양 박씨’가 아니라 ‘미량 박씨’라고 적어냈었다.
그걸 보고 선생님이 충격 먹었던 표정이 생각난다.

여기서 선생님이 조금 더 확인 사살 비슷하게 했는데,
한 명 한 명 부모님께서 적어주신 거냐고 물어봤고, 대부분이 부모님이 적어주셨다고 대답했었다.
그나마 눈치 빠른 애들은 부모님이 불러주는 걸 받아 적었다고 했었고.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 몇 가지를 써보자면,

1. 밀양 박씨가 미량으로 알고 있을 정도이니, 밀양 박씨가 아닌 애들도 모를거라고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반 절반 이상이 밀양을 미량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함.

2. 비학군지 수시는 기울어진 운동장임.
나는 서울 비학군지 일반고 출신인데, 밀양을 미량으로 알고 있는 애들하고
같은 시험을 친 나는 수시 제도에서 너무나도 큰 이득을 봤다고 생각함.
솔직히 수시 제도가 건재한 상황에서 학군지 찾아다니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내 느낌엔 알아서 고인물들 모인 곳으로 양학당하러 가는 느낌임.
물론 학군지에선 나도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더 잘해봤자 의미가 없음.

3. 선생님은 왜 굳이 한 명 한 명 확인 사살까지 했을까 의문이 들고,
확인 사살하고 나서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직 잊히지 않음.
“미량 박씨가 아니라 밀양 박씨고,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냐” 선생님이 타박을 했는데,
타박할 건 아니라고 봄.
사실 이런 건 한도 끝도 없어서 그냥 이게 리얼 월드, 리얼 라이프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됨.

4. 부모님의 말이 모든 게 맞는 것은 아니고, 부모님 말 들어서 잘 안 됐을 경우
리얼 월드에서 피해 보는 건 본인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판단하고 행동해야 됨.
그러니까 '미량'이라는 곳이 실제 있는 곳인지 본인들이 직접 찾아봤어야 한다고 생각함.
내 성씨는 드문 성씨이고, 그 성씨 중에서도 희귀 본관에, 지명도 희안해서,
이게 부모님이 애드립으로 지어낸 건지 초딩 때 이미 지도 보면서 찾아봤었음.
경산시 하양읍. 아주 어렸을 때 하양이라는 걸 처음 들었을 때
“하양? 하얗다고? 이게 지명인 게 말이 됨?” 너무 당황스러웠고, 어린 마음에 상심(?)하기도 했는데
진짜 있는 지명이어서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5.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유일하게 자기 집안은 양반은 아니었을 것 같다고 한 의사쌤이 있었는데,
난 오히려 이게 역사 지식, 판단력, 자기 객관화, 자존감에 있어서 모두 미쳤다고 봄.

2 months ago | [Y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