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가정 [과테말라 미션 라이프]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내비게이션 말 안 듣고 고집부렸다가 혼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첫 번째로 아내 말 잘 듣고 다음은 내비게이션 아가씨 말 잘 듣기로 다짐했다.

내비게이션의 정확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실시간 교통까지 반영되어 점점 그 기능은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과테말라에 와서 자동차를 사고 새로운 곳을 이동할 때는 내비게이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 교통 체계도 복잡해 길 한 번 잘 못 들었다가는 고생길이 훤하다.

굽은 도로나 오르막, 내리막길이 많고 트래픽도 심하고 오토바이도 사이로 많이 다니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앱은 Waze와 Google Map이다.

정확도나 실시간 반영 등 꽤나 정확하고 선택의 여지없이 쓰게 된다.

다만 주소 체계가 통일이 안 되어 있어 가끔 혼란을 줄 때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비슷한 지명이 많고 정확한 주소라고 쳤지만 다른 곳으로 인도할 때가 있다.

오늘 딱 그런 케이스에 된통 뒤통수를 맞았다.



현지 간사님 가정에 초대를 받아 12시에 댁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전날 미리 받은 주소로 내비게이션 검색해 보니 넉넉잡아 트래픽을 감안하면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다.

10시 반쯤 미리 나와 마트에서 휴지와 세제, 액자 등 선물을 사고 11시쯤 출발을 했다.

그때 받은 주소를 검색했는데 어제 봤던 시간과 비슷하게 검색이 되어 믿어 의심치 않고 도착지를 설정했다.



가끔 주소지가 비슷한 이름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찍힐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무심코 찍고 출발을 해버렸다.

토요일 트래픽이 심한 시간이라 실시간으로 루트를 변경해 가며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초행길인데 골목골목을 인도하며 복잡한 차선 변경과 방향은 미심쩍은 곳이 많았다.

그래도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곳이니 믿고 달려갔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내비게이션에도 도착지가 임박했다는 표시가 나왔음에도 분위기는 영 다른 곳 같았다.

이런 후미진 곳에 집이 있지 않을 텐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도착하면 그 근방 어딘가겠지? 란 안일함으로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목적지에 도착했다.



등골이 싸하며 뭔가 잘 못 됐다는 직감이 왔다.

다시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며 목적지를 확인해 본 결과 분명 이상한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당황스럽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원래 목적지와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여전히 다시 가는 길도 트래픽으로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뒤에 앉아 있던 아이들도 슬슬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도 못하고 나온지라 배고프다는 아우성과 함께 차 타고 1시간을 훌쩍 넘어가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목적지로 향해 가며 내비게이션에 된통 맞은 뒤통수가 얼얼했다.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가족들의 짜증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자, 훈련을 한다, 다 뜻이 있겠지? 서로를 다독이며 긴 운전을 해 나갔다.



결국 약속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늦은 우리를 간사님 가정이 이해해 주었고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 좋은 식사와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출발하며 내비게이션을 검색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남은 시간 30분...



그렇다 우린 30분 거리를 1시간 30분 동안 갔던 것이다.

3 years ago | [Y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