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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천휴 한국인 최초의 토니상 수상자가 되기까지

마침내 해피엔딩

2016년 초연을 올린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9년 뒤, 공연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 어워즈 6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최초의 토니상 수상자가 된 작가 박천휴와 나눈 기쁨의 순간.

토니 어워즈의 극본상, 작곡·작사상을 비롯한 6개 부문에서 수상한 지난 6월 8일(현지 시간), 어떤 하루를 보냈나?

영화계가 비평가상, 에미상, 골든 글로브를 거쳐 오스카로 대미를 장식하듯 공연계에도 ‘어워즈 시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비평가상부터 드라마 리그, 드라마 데스크를 거쳐 토니 어워즈까지 석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브로드웨이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기에 그 기간 동안 거의 모든 행사와 시상식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비췄다. 내성적인 나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토니 어워즈에 다다랐을 무렵엔 많이 지쳐 있었다. 석 달 동안 뛴 마라톤의 피니시라인에 다다른 느낌. 레드 카펫부터 작품상 발표까지 총 7시간이 걸린 시상식 내내 설렘과 흥분, 걱정 같은 감정이 뒤섞여 있던 기억만 어렴풋하다.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공연은 한국 공연과 어떤 점이 달랐나?

〈어쩌면 해피엔딩〉은 나와 작곡가 윌 애런슨이 함께 만든 첫 오리지널 스토리다. 원작이 없는 세계와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 무척 즐겁기도, 두렵기도 했다. 처음 쓰기 시작한 2014년부터 작년 가을 브로드웨이 개막까지, 계속해서 다듬으며 매 공연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애썼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한국 공연과 규모가 다른 만큼 연출과 무대에 큰 변화가 있었다. 무대 전환이 잦아졌고, 배우와 오케스트라의 악기 수도 늘어났다. 한국 버전에서는 암시할 뿐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장면을 추가하기도 했고, 반대로 축약되거나 생략된 대사와 넘버도 있다.

처음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작년, 현지 언론과 평단은 “사랑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며 〈해밀턴〉 〈위키드〉 〈라이온 킹〉과 함께 〈어쩌면 해피엔딩〉을 꼭 봐야 하는 공연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현지 관객의 반응도 있었나?

뉴욕에서 멀찍이 떨어진 도시에 사는 어느 미국인 관객의 이야기다. 홀로 뉴욕 휴가를 계획하며 열 개의 공연을 예매했는데,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중 다섯 번째 공연이었다. 보는 내내 집에 있을 아내가 그리웠다고 했다. 함께 손을 잡고 이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결국 남은 다섯 개의 공연 티켓을 팔고 비행기표를 바꾸는 수고까지 하며 계획보다 훨씬 빨리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아내와 함께 뉴욕에 다시 와 이 공연을 함께 보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으로 느껴졌다.

시나리오와 작곡, 작사 작업을 모두 함께한 윌 애런슨과는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해오고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 〈일 테노레〉 〈고스트 베이커리〉 등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도 다수다. 그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는가?

한국에서는 윌을 ‘작곡가’로 호칭하지만, 윌은 지금껏 계속 나와 함께 극작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우리 둘 다 작가(writer)로 불린다. 음표든 활자든, 우리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음악의 정서를 정하고, 매일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협업한다. 우리는 동료이기 전 17년을 함께한 친구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정서에 비슷한 면이 많다. 또한 서로의 예술관을 존중하고 믿기 때문에 너와 나의 일을 구분짓지 않고 유기적으로 작업한다. 지난한 작업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작품 하나를 끝냈을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성취도 거의 매 순간 함께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작년 6월 진행했던 극장보다 더 큰 무대다.

2015년 시범 공연을 기준으로 한다면 올해 10월에 있을 공연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가 되는 셈이다. 과거에 함께했던 배우들이 무대에 함께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나와 윌뿐 아니라 그간 이 작품의 여정을 함께해준 사람들, 무엇보다 10년 동안 공감하고 응원해준 관객들에게 행복한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애쓰겠다. 아, 참고로 극장을 옮기는 건 이미 몇 년 전에 결정된, 이번 토니 어워즈 수상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웃음)

새롭게 구상 중이거나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몇 년 전 이야기를 완성해 놓은 단편영화가 하나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한국인 커플의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에 몰두하느라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대한 마음이 식기 전에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작년에 선보인 나의 연출 데뷔작,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해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는 일도 계속하고 싶다.

두 문화와 언어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보여줄 생각인가?

스물다섯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니 내 평생 서울과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거의 50:50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아직도 영어를 할 때 종종 한국식 악센트를 쓴다. 뉴욕에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윌과 함께 만든 〈일 테노레〉나 〈고스트 베이커리〉처럼, 한국어와 영어를 쓰고, 서울과 뉴욕 두 지역의 문화를 고르게 흡수한 나에게는 양쪽 문화권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그저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충동과 의지가 계속되는 한 꾸준히 작업하는 창작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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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ago | [Y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