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매일 떴으나, 우리의 하늘은 밝지 않았다. 아침의 해는 들녘 위에 걸렸지만, 그 빛은 마음에 닿기 전에 꺾였다. 바람은 골목을 지나갔지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그 바람 속에 실리지 못했다. 걷는 발자국은 흙 위에서 사라졌고, 웃음은 입술 위에서 말랐다.
이름을 부르면 잡혀가고, 노래를 부르면 끌려가던 시절. 학교의 책에서 우리 글자는 지워졌고, 마을 어귀의 비석에는 낯선 글씨가 새겨졌다. 아이들은 제 이름을 조국의 말로 쓰지 못했고,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고향의 자장가를 가르칠 수 없었다. 말은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내뱉는 순간 날아드는 채찍이 그 말을 삼켰다.
등잔불 아래, 우리는 조심스레 종이쪽지를 돌려 읽었다. 거기엔 몰래 베껴 쓴 시 한 편, 빼앗긴 하늘을 되찾겠다는 짧은 약속이 있었다. 그 글자를 읽는 눈빛이 얼마나 뜨거웠던가. 하지만 등잔불은 길게 타오르지 못했고, 그림자는 벽에 기대어 온밤 떨었다.
시장에 선 어머니의 바구니에는 곡식 대신 침묵이 담겼고, 논밭을 가는 농부의 손에는 낫 대신 전해진 소문이 들려 있었다. 웃음을 지어도 그 웃음은 눈까지 번지지 못했다.
계절은 바뀌어도, 굴종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봄이 와도 꽃은 피지 않았고, 여름이 와도 강물은 자유롭게 흐르지 못했다. 가을의 곡식은 남의 창고로 들어갔고, 겨울의 눈송이마저 낯선 발자국에 밟혀 흙과 섞였다.
그러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낯선 군복이 마을 어귀를 지날 때도, 눈빛 속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모래바닥에 몰래 그린 태극 문양, 흙담 밑에 묻어둔 독립신문 한 장, 그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등불이었다.
우리는 알았다. 이 어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별빛이 여전히 하늘 어딘가에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날이 오면, 우리는 온몸으로 달려 나가 그 빛을 안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그날의 아침은 오래 잠겨 있던 하늘이 갑자기 열리듯 찾아왔다. 닫힌 창문이 스스로 열리고, 묵직하던 공기가 바뀌었다. 오래 붙잡아 두었던 숨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누군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자유다! 해방이다!” 그 목소리는 바람이 되어 골목을 돌고, 산등성이를 넘어,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하얀 옷이 골목마다 모였다. 낯선 군복과 군모는 그날, 두려움의 표식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손에 태극기가 펄럭였고, 오래 숨겨 두었던 깃발이 창고와 서랍, 흙담 밑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한독립 만세!” 그 외침은 한 번의 소리가 아니었다. 산이 따라 울리고, 강이 메아리쳤으며, 아이의 목소리와 노인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눈물이 있었다. 기쁨의 눈물, 그리움의 눈물, 돌아오지 못한 이를 부르는 눈물. 팔을 벌려 서로를 끌어안았고, 오래 이별했던 이들이 재회의 말을 잊은 채 울었다.
그날의 공기는 다르게 불었다. 바람 속에는 ‘다시’라는 말이 숨어 있었고, 햇빛 속에는 ‘함께’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풀잎 하나, 먼지 한 톨까지도 자유를 노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구나 알았다. 이 기쁨이 영원히 계속되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광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음을.
광복은 기쁨의 문이었지만, 그 문 너머는 꽃길이 아니었다. 환희가 가시기도 전에, 거리는 혼란의 소리로 가득 찼다. 각자의 깃발이 서로 다른 하늘을 가리켰고, 하나였던 목소리는 방향을 잃고 갈라졌다.
해방의 빛은 국경을 가르지 못했다. 38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땅과 사람을 가르며 형제를 나누고, 강과 산을 갈라놓았다. 그 선을 넘어 갈 수 없는 발걸음은 마치 다시 묶인 발목처럼 무겁고 쓰렸다.
그리고 전쟁이 왔다. 산천은 포연에 가려지고, 들판은 총성과 함성에 뒤덮였다. 집은 무너지고, 길은 끊기고, 마을의 이름이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다시 일어섰다. 폐허 위에 집을 세우고, 끊어진 다리를 놓았다. 손바닥만 한 논에서 자란 한 줌의 쌀을 나누며, 배고픔 속에서도 서로의 등을 밀었다.
자유란, 되찾는 순간보다 지켜내는 날들이 더 길고 더 힘겹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우리는 이제 전쟁의 굉음도, 굶주림의 한숨도 모른 채 살아간다. 아침이면 전등을 켜고, 밤이면 마음껏 불을 밝힌다. 깃발은 매일 바람에 나부끼지만, 그 깃발이 언제 처음 펄럭였는지를 묻는 이는 드물다.
80년 전, 이름을 부르는 것이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우리는 이름을 쉽게 잊고, 그 이름들이 만든 역사를 가볍게 흘려보낸다.
광복은 축하하는 기념일로 남았지만, 그 의미를 지키는 날들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역사는 조용히 경고한다. 자유는 지키지 않으면 빼앗긴다고.
80년 전,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깃발을 들었다. 이제 그 깃발은 우리 손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종이 위의 역사로가 아니라, 피와 숨결이 깃든 살아 있는 깃발로 건네주어야 한다.
미래의 아이들이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더라도, 그 자유를 지켜낸 날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약속해야 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그 빛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작은 부정에도 침묵하지 않고, 작은 정의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겠다고.
80년 전의 빛은 한순간의 외침으로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의 선택, 작은 용기, 그리고 불편을 감수하는 결심 위에 서 있었다.
80년 전, 그날의 빛이 우리에게 왔다면 80년 후, 우리는 그 빛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야 한다. 더 선명하고, 더 뜨겁게, 더 오래 타오를 수 있도록.
좋은생활
빛이 돌아온 날, 그 빛을 지키는 날 – 광복 80년의 노래
빛은 매일 떴으나, 우리의 하늘은 밝지 않았다.
아침의 해는 들녘 위에 걸렸지만, 그 빛은 마음에 닿기 전에 꺾였다.
바람은 골목을 지나갔지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그 바람 속에 실리지 못했다.
걷는 발자국은 흙 위에서 사라졌고, 웃음은 입술 위에서 말랐다.
이름을 부르면 잡혀가고, 노래를 부르면 끌려가던 시절.
학교의 책에서 우리 글자는 지워졌고, 마을 어귀의 비석에는 낯선 글씨가 새겨졌다.
아이들은 제 이름을 조국의 말로 쓰지 못했고,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고향의 자장가를 가르칠 수 없었다.
말은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내뱉는 순간 날아드는 채찍이 그 말을 삼켰다.
등잔불 아래, 우리는 조심스레 종이쪽지를 돌려 읽었다.
거기엔 몰래 베껴 쓴 시 한 편, 빼앗긴 하늘을 되찾겠다는 짧은 약속이 있었다.
그 글자를 읽는 눈빛이 얼마나 뜨거웠던가.
하지만 등잔불은 길게 타오르지 못했고, 그림자는 벽에 기대어 온밤 떨었다.
시장에 선 어머니의 바구니에는 곡식 대신 침묵이 담겼고,
논밭을 가는 농부의 손에는 낫 대신 전해진 소문이 들려 있었다.
웃음을 지어도 그 웃음은 눈까지 번지지 못했다.
계절은 바뀌어도, 굴종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봄이 와도 꽃은 피지 않았고, 여름이 와도 강물은 자유롭게 흐르지 못했다.
가을의 곡식은 남의 창고로 들어갔고, 겨울의 눈송이마저 낯선 발자국에 밟혀 흙과 섞였다.
그러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낯선 군복이 마을 어귀를 지날 때도, 눈빛 속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모래바닥에 몰래 그린 태극 문양,
흙담 밑에 묻어둔 독립신문 한 장,
그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등불이었다.
우리는 알았다.
이 어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별빛이 여전히 하늘 어딘가에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날이 오면, 우리는 온몸으로 달려 나가 그 빛을 안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그날의 아침은 오래 잠겨 있던 하늘이 갑자기 열리듯 찾아왔다.
닫힌 창문이 스스로 열리고, 묵직하던 공기가 바뀌었다.
오래 붙잡아 두었던 숨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누군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자유다! 해방이다!”
그 목소리는 바람이 되어 골목을 돌고,
산등성이를 넘어,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하얀 옷이 골목마다 모였다.
낯선 군복과 군모는 그날, 두려움의 표식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손에 태극기가 펄럭였고,
오래 숨겨 두었던 깃발이 창고와 서랍, 흙담 밑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한독립 만세!”
그 외침은 한 번의 소리가 아니었다.
산이 따라 울리고, 강이 메아리쳤으며,
아이의 목소리와 노인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눈물이 있었다.
기쁨의 눈물, 그리움의 눈물, 돌아오지 못한 이를 부르는 눈물.
팔을 벌려 서로를 끌어안았고,
오래 이별했던 이들이 재회의 말을 잊은 채 울었다.
그날의 공기는 다르게 불었다.
바람 속에는 ‘다시’라는 말이 숨어 있었고,
햇빛 속에는 ‘함께’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풀잎 하나, 먼지 한 톨까지도 자유를 노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구나 알았다.
이 기쁨이 영원히 계속되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광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음을.
광복은 기쁨의 문이었지만, 그 문 너머는 꽃길이 아니었다.
환희가 가시기도 전에, 거리는 혼란의 소리로 가득 찼다.
각자의 깃발이 서로 다른 하늘을 가리켰고,
하나였던 목소리는 방향을 잃고 갈라졌다.
해방의 빛은 국경을 가르지 못했다.
38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땅과 사람을 가르며
형제를 나누고, 강과 산을 갈라놓았다.
그 선을 넘어 갈 수 없는 발걸음은
마치 다시 묶인 발목처럼 무겁고 쓰렸다.
그리고 전쟁이 왔다.
산천은 포연에 가려지고, 들판은 총성과 함성에 뒤덮였다.
집은 무너지고, 길은 끊기고,
마을의 이름이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다시 일어섰다.
폐허 위에 집을 세우고, 끊어진 다리를 놓았다.
손바닥만 한 논에서 자란 한 줌의 쌀을 나누며,
배고픔 속에서도 서로의 등을 밀었다.
자유란, 되찾는 순간보다
지켜내는 날들이 더 길고 더 힘겹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우리는 이제 전쟁의 굉음도, 굶주림의 한숨도 모른 채 살아간다.
아침이면 전등을 켜고, 밤이면 마음껏 불을 밝힌다.
깃발은 매일 바람에 나부끼지만,
그 깃발이 언제 처음 펄럭였는지를 묻는 이는 드물다.
80년 전, 이름을 부르는 것이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우리는 이름을 쉽게 잊고,
그 이름들이 만든 역사를 가볍게 흘려보낸다.
광복은 축하하는 기념일로 남았지만,
그 의미를 지키는 날들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역사는 조용히 경고한다.
자유는 지키지 않으면 빼앗긴다고.
80년 전,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깃발을 들었다.
이제 그 깃발은 우리 손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종이 위의 역사로가 아니라,
피와 숨결이 깃든 살아 있는 깃발로 건네주어야 한다.
미래의 아이들이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더라도,
그 자유를 지켜낸 날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약속해야 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그 빛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작은 부정에도 침묵하지 않고,
작은 정의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겠다고.
80년 전의 빛은 한순간의 외침으로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의 선택, 작은 용기,
그리고 불편을 감수하는 결심 위에 서 있었다.
80년 전, 그날의 빛이 우리에게 왔다면
80년 후, 우리는 그 빛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야 한다.
더 선명하고, 더 뜨겁게,
더 오래 타오를 수 있도록.
빛은 돌아왔다.
이제 그 빛을 지키는 날이
우리의 매일이어야 한다.
4 months ago | [Y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