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 [영화&드라마] 리뷰
[1.고려와 거란 그리고 송나라] 수나라 당나라할때 당나라라고 아시나요?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에는 5대 10국 혼란기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중원의 혼란기 속에서 거란의 8부족을 통합하고 요나라를 건국한 인물이드라마에 나오는 야율씨, 거란태조 야율아보기입니다(916년) 그리고 5대 10국의 혼란기 속에서 중원의 평화를 연 나라는 송나라죠. 년도로는 960년10세기후반부터 1279년 13세기 후반까지 입니다. 참고로 혼란기 끝에 건국된 나라답게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택하며 학문을 숭배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위치적으로 보면 송은 거란의 요나라 바로 아래 건국된 나라입니다.(사진1 참조) 즉 중원에 진출해 더 넓은 영토를 갖고 싶었던 거란에게 송나라는 견제해야할 대상이죠. 그리고 고려는 이러한 송나라를 사대하던 나라입니다.(고려의 송 사대 명분 중 하나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고려-거란-송의 삼각관계 속에서 거란은 만만한 고려부터 공격하기 시작하니그게 바로 거란의 1차 침략이었습니다. 1차침략 당시, 훗날 성종 대왕이 직접 군사를 몰았다는 드라마의 대사처럼고려왕 성종은 직접 군사를 몰고 거란과 싸웠으나 패배했고이에 서희를 보내어 해결하게 하니 이것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1차 거란침략의 외교 담판이자강동 6주(흥화진 포함 강 동쪽의 6개 지역, 아래 사진2 참조) 획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거란의 침입이 고려를 정벌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거란이 송나라와 전쟁을 한다면 고려는 어찌할 것인가, 이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거란은 고려를 침입했고 서희는 "거란과 고려 사이에 있는 여진족 때문에 우리가 거란과 수교하기 어렵다.해당 영토의 통제권을 달라" 며 거란과의 수교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고이에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영토, 즉 강동 6주를 획득하게 됩니다. 거란은 돌아갔고 한동안 고려는 송과 거란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실시했죠. 거란에게는 친화적인 모습을, 송에게는 밀서를 보내어 사대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거란의 2차 침입] 1차 침략은 서희외 외교담판, 3차 침략은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천리장성의 축조 이렇게 고려거란 전쟁에서 1,3차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2차 침입은 상대적으로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잘 안알려줍니다. 하지만 윤공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역사를 가르치시는 많은 교수님들 입장도 그렇고고려 거란 전쟁 당시, 흥화진에서 매우 적은 군사로 거란의 40만 대군을 막아낸 양규의 필사항쟁은서희, 강감찬보다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양규를 이순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선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고려엔 양규가 있었다는 것이죠. 윤공 또한 이 생각에 매우 동의합니다. 양규는 강동 6주 중 가장 북쪽,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제일 먼저 맞이하며 고려 거란 전쟁의 포문을 연 장수 입니다. 당시 거란군은 왕 성종이 직접 군사를 몰고 쳐들어왔는데 드라마에서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요 성종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거란 성종(야율융서)은 12세에 황제에 올랐던 왕입니다.나이가 어려 어머니인 승천황태후가 대신 정사를 돌봤고 1009년, 지병으로 승천황태후가 사망하며 성종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1년뒤인 1010년 2차 전쟁이 시작되니본인이 처음으로 하는 전쟁이라는 대사가 나왔던 것이죠. 어쨌든! 요 성종이 군사를 몰고 흥화진에 도착했고 양규는 7일간의 항쟁 끝에 결국 요 성종의 40만 대군을 막아냅니다. 성종은 당황했고 20만 대군을 흥화진 근처에 주둔시킨채 나머지 20만 대군으로 흥화진을 우회하여 바로 아래, 강조 장군이 30만 대군으로 진을 치고 있었던 통주를 공격하게 됩니다만 정말 어이없게도 강조는 당하게 됩니다.... 강조는 여기서 사망하죠. 이후 서경을 거처 개경까지, 강조의 대사로 나왔듯 평야지대를 통과하며 거란군이 진격했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하게 됩니다. 흥화진의 양규는 700여명의 별동대를 꾸려 통주로 달려갑니다. 여기서 남아있던 군사 1천여명과 함께 통주 바로 아래, 거란의 6천 병력이 점령하고 있던 곽주성을 공격해 거란군의 거의 전멸시키고 성을 탈환하게 됩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거란의 후방을 공격하니 결국, 거란 성종은 퇴각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현종과의 협상을 통해 강동 6주를 반납하고신하의 예를 약속 받으며 퇴각하죠.여기서 중요한건 약속 받았다는 거지 국가적인 협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양규의 활약에 당황한 성종이었으며 40만이라는 군사를 고려에 오래둔다면 남쪽의 송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리해지기 때문에성종은 급히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양규의 전쟁인 끝나지 않았습니다. 퇴각하는 거란군을 지속적으로 공격한 양규는 결국 수천명의 거란군을 사살했고이 과정에서 약 3만 5천여명의 포로를 구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성벽에 오른 고려인들을 죽인걸로 나오는데 연출 너무....슬펐습니다.(아마 이러한 연출과 장면이 나온 이유는 훗날 양규의 포로 구출 작전에 감동을 더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거란군을 쫓던 양규는 20만 대군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게 됩니다. [3. 비운의 장수 양규] 여기는 좀 짧은 내용인데 위와 같이 힘들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양규는 서희와 강감찬에 가려져 비교적 알져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역사적으로 연구가 안되어있는건 아닙니다. 고려사에도 양규의 전쟁, 그의 고려 구국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죠. 하지만 왜일까요? 문을 숭상하던 문화 때문이었을까요? (참고로 고려에는 무과가 없었습니다, 문과만 있었음) 서희라는 문신, 강감찬이라는 문신이 비교적 위대해서인지 양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 분위기 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양규를 기억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양규가 없었으면 고려가 이미 망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죠.(물론 가정은 역사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드라마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드라마의 메인 포스터를 유심히 보시면 양규와 강감찬이 맨 앞에 있습니다.(포스터는 유튜브 커뮤니티 사진 갯수 제한 때문에 뺌)강감찬과 더불어 양규 또한 부각하겠다는 드라마의 의지라 볼 수 있죠. [드라마 이야기] 저번 4화까지 봤을때만 해도 전개가 너무 빠르길래 이거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전개가 빠른건가...생략되는게 너무 많은데?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막상 5~6화 전쟁씬들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드라마가 진짜 보여주려는게 무엇인지 말이죠. 복잡하고 긴 이야기는 빼고 핵심을 위주로 보여주려는 것 같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드라마 시간이 대략 50분 정도던데 진짜 시간 순삭이었어요. 다만 고증 면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1~2가지만 뽑자면 전쟁씬에서 양규 장군이 효시라는 화살을 쏩니다.(윤공 취미가 한 때 국궁) 사실 효시는 명적이라고 불리며 전쟁의 시작, 혹은 공격의 시작을 알리고자화살의 촉 부분 근방에 구멍을 뚫은 나무 조각을 덧대어 날아갈 때소리가 나게 만든 특수 화살입니다.(사진 3,4 참조) 아무래도 무게가 더해지다보니 긴박한 상황에서 정밀 조정이 어렵기에 일반적인 전쟁 상황에선 쓰이지 않습니다.(정확히는 쓰일 수 없음, 그냥 허공을 향해 위로 발사하는 화살임) 근데 지속적으로 효시를 쏘길래 이건 뭔가...싶었습니다. 그거 말고 딱히 지적할 만한 부분은 없었어요. 그나저나 전쟁 중에 입에 밥풀 붙이고 싸우며 물 마시는 장면 너무 짠하네요...이런 부분에서 드라마가 정말 노력했구나 싶어요. (지금까지 전쟁씬에 진심인 이런 사극이 있었나...) 그럼 6화까지 리뷰였습니다.최대한 간추리려고 간추렸는데 어떻게 읽히실지 모르겠네요.정말 영상으로 제작할 엄두가 안나서 글로 리뷰를 대신합니다.궁금한거 남겨주세요~그럼 7~8화 보고 뵐게요!안녕히 주무시길ps. 반짝이는 수박 너무 재밌는거 아닙니까? 저 8화보러 갑니다 ㅋㅋㅋㅋ
1 year ago (edited) | [YT] | 9
윤공 [영화&드라마] 리뷰
[1.고려와 거란 그리고 송나라]
수나라 당나라할때 당나라라고 아시나요?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에는 5대 10국 혼란기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중원의 혼란기 속에서 거란의 8부족을 통합하고 요나라를 건국한 인물이
드라마에 나오는 야율씨, 거란태조 야율아보기입니다(916년)
그리고 5대 10국의 혼란기 속에서 중원의 평화를 연 나라는 송나라죠.
년도로는 960년10세기후반부터 1279년 13세기 후반까지 입니다.
참고로 혼란기 끝에 건국된 나라답게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택하며 학문을 숭배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위치적으로 보면 송은 거란의 요나라 바로 아래 건국된 나라입니다.(사진1 참조)
즉 중원에 진출해 더 넓은 영토를 갖고 싶었던 거란에게 송나라는 견제해야할 대상이죠.
그리고 고려는 이러한 송나라를 사대하던 나라입니다.
(고려의 송 사대 명분 중 하나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고려-거란-송의 삼각관계 속에서 거란은 만만한 고려부터 공격하기 시작하니
그게 바로 거란의 1차 침략이었습니다.
1차침략 당시, 훗날 성종 대왕이 직접 군사를 몰았다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고려왕 성종은 직접 군사를 몰고 거란과 싸웠으나 패배했고
이에 서희를 보내어 해결하게 하니 이것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1차 거란침략의 외교 담판이자
강동 6주(흥화진 포함 강 동쪽의 6개 지역, 아래 사진2 참조) 획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거란의 침입이 고려를 정벌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거란이 송나라와 전쟁을 한다면 고려는 어찌할 것인가, 이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거란은 고려를 침입했고 서희는 "거란과 고려 사이에 있는 여진족 때문에 우리가 거란과 수교하기 어렵다.
해당 영토의 통제권을 달라" 며 거란과의 수교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에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영토, 즉 강동 6주를 획득하게 됩니다
.
거란은 돌아갔고 한동안 고려는 송과 거란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실시했죠.
거란에게는 친화적인 모습을, 송에게는 밀서를 보내어 사대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거란의 2차 침입]
1차 침략은 서희외 외교담판, 3차 침략은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천리장성의 축조
이렇게 고려거란 전쟁에서 1,3차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2차 침입은 상대적으로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잘 안알려줍니다.
하지만 윤공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역사를 가르치시는 많은 교수님들 입장도 그렇고
고려 거란 전쟁 당시, 흥화진에서 매우 적은 군사로 거란의 40만 대군을 막아낸 양규의 필사항쟁은
서희, 강감찬보다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양규를 이순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선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고려엔 양규가 있었다는 것이죠.
윤공 또한 이 생각에 매우 동의합니다.
양규는 강동 6주 중 가장 북쪽,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제일 먼저 맞이하며
고려 거란 전쟁의 포문을 연 장수 입니다.
당시 거란군은 왕 성종이 직접 군사를 몰고 쳐들어왔는데
드라마에서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요 성종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거란 성종(야율융서)은 12세에 황제에 올랐던 왕입니다.
나이가 어려 어머니인 승천황태후가 대신 정사를 돌봤고 1009년, 지병으로 승천황태후가
사망하며 성종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1년뒤인 1010년 2차 전쟁이 시작되니
본인이 처음으로 하는 전쟁이라는 대사가 나왔던 것이죠.
어쨌든!
요 성종이 군사를 몰고 흥화진에 도착했고 양규는 7일간의 항쟁 끝에
결국 요 성종의 40만 대군을 막아냅니다.
성종은 당황했고 20만 대군을 흥화진 근처에 주둔시킨채
나머지 20만 대군으로 흥화진을 우회하여 바로 아래, 강조 장군이
30만 대군으로 진을 치고 있었던 통주를 공격하게 됩니다만
정말 어이없게도 강조는 당하게 됩니다....
강조는 여기서 사망하죠.
이후 서경을 거처 개경까지, 강조의 대사로 나왔듯 평야지대를 통과하며
거란군이 진격했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하게 됩니다.
흥화진의 양규는 700여명의 별동대를 꾸려 통주로 달려갑니다.
여기서 남아있던 군사 1천여명과 함께 통주 바로 아래, 거란의 6천 병력이
점령하고 있던 곽주성을 공격해 거란군의 거의 전멸시키고 성을 탈환하게 됩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거란의 후방을 공격하니 결국, 거란 성종은 퇴각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현종과의 협상을 통해 강동 6주를 반납하고
신하의 예를 약속 받으며 퇴각하죠.
여기서 중요한건 약속 받았다는 거지 국가적인 협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양규의 활약에 당황한 성종이었으며
40만이라는 군사를 고려에 오래둔다면 남쪽의 송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리해지기 때문에
성종은 급히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양규의 전쟁인 끝나지 않았습니다.
퇴각하는 거란군을 지속적으로 공격한 양규는 결국 수천명의 거란군을 사살했고
이 과정에서 약 3만 5천여명의 포로를 구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성벽에 오른 고려인들을 죽인걸로 나오는데
연출 너무....슬펐습니다.
(아마 이러한 연출과 장면이 나온 이유는 훗날 양규의 포로 구출 작전에 감동을 더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거란군을 쫓던 양규는 20만 대군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게 됩니다.
[3. 비운의 장수 양규]
여기는 좀 짧은 내용인데 위와 같이 힘들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양규는 서희와 강감찬에 가려져 비교적 알져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역사적으로 연구가 안되어있는건 아닙니다. 고려사에도 양규의 전쟁,
그의 고려 구국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죠.
하지만 왜일까요?
문을 숭상하던 문화 때문이었을까요? (참고로 고려에는 무과가 없었습니다, 문과만 있었음)
서희라는 문신, 강감찬이라는 문신이 비교적 위대해서인지
양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 분위기 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양규를 기억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양규가 없었으면 고려가 이미 망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죠.(물론 가정은 역사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드라마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드라마의 메인 포스터를 유심히 보시면 양규와 강감찬이 맨 앞에 있습니다.(포스터는 유튜브 커뮤니티 사진 갯수 제한 때문에 뺌)
강감찬과 더불어 양규 또한 부각하겠다는 드라마의 의지라 볼 수 있죠.
[드라마 이야기]
저번 4화까지 봤을때만 해도 전개가 너무 빠르길래
이거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전개가 빠른건가...생략되는게 너무 많은데?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막상 5~6화 전쟁씬들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드라마가 진짜 보여주려는게 무엇인지 말이죠.
복잡하고 긴 이야기는 빼고 핵심을 위주로 보여주려는 것 같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드라마 시간이 대략 50분 정도던데 진짜 시간 순삭이었어요.
다만 고증 면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1~2가지만 뽑자면
전쟁씬에서 양규 장군이 효시라는 화살을 쏩니다.(윤공 취미가 한 때 국궁)
사실 효시는 명적이라고 불리며 전쟁의 시작, 혹은 공격의 시작을 알리고자
화살의 촉 부분 근방에 구멍을 뚫은 나무 조각을 덧대어 날아갈 때
소리가 나게 만든 특수 화살입니다.(사진 3,4 참조)
아무래도 무게가 더해지다보니 긴박한 상황에서 정밀 조정이 어렵기에
일반적인 전쟁 상황에선 쓰이지 않습니다.(정확히는 쓰일 수 없음, 그냥 허공을 향해 위로 발사하는 화살임)
근데 지속적으로 효시를 쏘길래 이건 뭔가...싶었습니다.
그거 말고 딱히 지적할 만한 부분은 없었어요.
그나저나 전쟁 중에 입에 밥풀 붙이고 싸우며 물 마시는 장면 너무 짠하네요...
이런 부분에서 드라마가 정말 노력했구나 싶어요. (지금까지 전쟁씬에 진심인 이런 사극이 있었나...)
그럼 6화까지 리뷰였습니다.
최대한 간추리려고 간추렸는데 어떻게 읽히실지 모르겠네요.
정말 영상으로 제작할 엄두가 안나서 글로 리뷰를 대신합니다.
궁금한거 남겨주세요~
그럼 7~8화 보고 뵐게요!
안녕히 주무시길
ps. 반짝이는 수박 너무 재밌는거 아닙니까? 저 8화보러 갑니다 ㅋㅋㅋㅋ
1 year ago (edited) | [Y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