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때로 끝없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방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병상에서, 오랜 문제 앞에서, 혹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잊으신 것은 아닙니까?“
홍수 심판 후 노아의 방주 안은 구원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기다림과 고독의 공간이었습니다. 밖은 죽음의 물로 가득했고, 노아는 혹시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신 건 아닐까 하는 절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 막막한 방주 안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축복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자카르의 은혜: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1절 말씀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기억하사'는 '자카르(זָכַר)'입니다. 자카르는 단순히 생각나는 것을 넘어, '언약을 지키고 언약대로 행동으로 옮기심'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노아를 잊지 않으시고, 그와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혹여라도 인간의 사랑이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이미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라헬의 태를 여시고(창 30:22), 애굽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을 때(출 2:24)도 하나님은 그들을 '자카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카르'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 경험되기를 축복합니다.
2. 루아흐의 은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입니다. '루아흐'는 단순히 자연의 바람이 아니라,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혼돈과 흑암 위에 운행하실 때 질서와 생명이 시작되었듯, 노아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루아흐'가 불어오자 혼돈이 물러가고 새 질서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한 번에 빠지지 않았고,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때로는 조급해하는 우리의 마음과 달리 조금씩, 그러나 가장 완벽하게 우리의 삶을 이끄십니다.
성령님은 무질서한 곳에 질서를 세우시고, 절망의 자리에 소망을 심으시며, 죽음 같은 현실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십니다. 노아의 방주에 불었던 '루아흐'의 바람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불어오기를 소망합니다.
3. 노아의 믿음: 인내와 순종, 그리고 예배
1) 노아는 인내했습니다.
노아는 물이 줄어들자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며 하나님의 때를 분별했습니다. 처음 보낸 비둘기가 돌아왔을 때, 그는 또 7일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은 성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빨리'의 시대에 살지만,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좋은 믿음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며, 인내로 결실하는 것입니다.
2)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땅이 마른 것을 알았지만, 노아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15-16절에서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비로소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온전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3) 노아는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후, 세상은 폐허와 같았습니다. 당장 생존을 위한 집과 식량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 구원의 근원이 자신의 지혜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배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 출석 도장을 찍는 의무가 아닙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오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영국의 한 목사님 예화처럼, 복음의 소망을 가진 자는 환경의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립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에도 폭풍은 있지만, 우리가 누구를 만날지, 그리고 우리의 여정 끝에 누가 기다리고 계신지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자카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 위에 '루아흐'의 바람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붙들고, 노아처럼 인내하며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은혜누림교회
2025년 8월 24일 주일설교 요약
제목: 자카르의 은혜 / 성경: 창8장
우리의 삶은 때로 끝없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방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병상에서, 오랜 문제 앞에서, 혹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잊으신 것은 아닙니까?“
홍수 심판 후 노아의 방주 안은 구원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기다림과 고독의 공간이었습니다. 밖은 죽음의 물로 가득했고, 노아는 혹시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신 건 아닐까 하는 절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 막막한 방주 안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축복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자카르의 은혜: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1절 말씀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기억하사'는 '자카르(זָכַר)'입니다. 자카르는 단순히 생각나는 것을 넘어, '언약을 지키고 언약대로 행동으로 옮기심'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노아를 잊지 않으시고, 그와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혹여라도 인간의 사랑이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이미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라헬의 태를 여시고(창 30:22), 애굽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을 때(출 2:24)도 하나님은 그들을 '자카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카르'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 경험되기를 축복합니다.
2. 루아흐의 은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입니다. '루아흐'는 단순히 자연의 바람이 아니라,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혼돈과 흑암 위에 운행하실 때 질서와 생명이 시작되었듯, 노아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루아흐'가 불어오자 혼돈이 물러가고 새 질서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한 번에 빠지지 않았고,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때로는 조급해하는 우리의 마음과 달리 조금씩, 그러나 가장 완벽하게 우리의 삶을 이끄십니다.
성령님은 무질서한 곳에 질서를 세우시고, 절망의 자리에 소망을 심으시며, 죽음 같은 현실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십니다. 노아의 방주에 불었던 '루아흐'의 바람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불어오기를 소망합니다.
3. 노아의 믿음: 인내와 순종, 그리고 예배
1) 노아는 인내했습니다.
노아는 물이 줄어들자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며 하나님의 때를 분별했습니다. 처음 보낸 비둘기가 돌아왔을 때, 그는 또 7일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은 성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빨리'의 시대에 살지만,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좋은 믿음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며, 인내로 결실하는 것입니다.
2)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땅이 마른 것을 알았지만, 노아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15-16절에서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비로소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온전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3) 노아는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후, 세상은 폐허와 같았습니다. 당장 생존을 위한 집과 식량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 구원의 근원이 자신의 지혜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배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 출석 도장을 찍는 의무가 아닙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오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영국의 한 목사님 예화처럼, 복음의 소망을 가진 자는 환경의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립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에도 폭풍은 있지만, 우리가 누구를 만날지, 그리고 우리의 여정 끝에 누가 기다리고 계신지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자카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 위에 '루아흐'의 바람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붙들고, 노아처럼 인내하며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3 months ago | [Y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