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禪

<어느 수행자의 독백8>

잠도 수행입니다 :
견성 이후, 잠자는 법과 꿈. 2025.7.17.(목) 오후 10:52

도반님들, 평안하신가요?
오늘은 스님께서 한밤중, 문득 생각나셔서 나눠주신 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견성 이후의 수행자는 잠자는 것까지도 수행이어야 한다”고 하신 이 법문은,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뿐 아니라 잠들어 있는 시간까지도 어떻게 공부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부처 아닌 것이 없고, 나 아닌 것이 없기에, 우리의 잠과 꿈조차도 수행의 자리라는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공부의 세 가지 문턱 무지, 입문, 견성을 분명히 바라보게 되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가만히 살피게 됩니다.
잠시 멈추어 이 법문을 함께 곱씹어 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의 나침반을 가다듬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말씀 한번 들어보세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모든 법문은 깨달은 사람들을 위해 하신 걸까요, 아니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하신 걸까요? 이게 참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부처님 입장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불법을 공부하고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니까 이 불법을 공부하고 있는 거지요. 부처님께서도 깨닫지 못한 중생을 위해 불법을 전하신 것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역시 ‘아직 깨닫지 못한 나’라는 전제 아래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분수령’입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가 마음공부를 한다는 건, 다시 말해 ‘깨달은 나’로 아직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이게 달라져야 합니다. 다소 어려운 이야기지만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깨닫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설법하셨듯이, 지금 우리가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 나’로서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생각, 몸, 감정, 느낌, 고정된 의식, 즉 다섯 가지 오온—이 오온이 나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라고요. 그런데 이걸 거꾸로 말하면, 깨닫지 못했을 때는 이 오온이 내가 아니지만, 깨닫고 나면 이 오온이 전부 내가 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이게 매우 어렵습니다. 깨닫지 못했을 때, 즉 마음공부 자체를 모르고 살 때는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면, 다 토막이 나 있거든요. 생각이 일어날 때는 그 생각만 나로 보고, 몸이 아플 때는 몸이 나이고, 감정이 올라올 때는 감정만 나로 보입니다. 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생각만 나라고 여기고요. 마음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완전히 토막 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 조각들만 나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공부를 시작한 초심자에게는 일어난 그 생각마저도 부정하게 가르칩니다. 마음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일어난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니까, 그것을 고집하게 되지요.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면 뭐라고 가르치느냐? "일어난 그 생각은 네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분리시켜주는 거지요.

그러다가 깨닫고 나면, 그 일어난 생각들, 모든 생각이 전부 다 나라고 합니다. 일어난 생각마다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 세 가지가 정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마음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고, 마음공부를 시작하면 그 생각은 내가 아니라 하고, 깨닫고 나면 모든 생각이 다시 나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정확히 정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가 “생각은 내가 아니다”, 혹은 “생각은 허상이다”, “몸은 허상이다”라고 여긴다면, 그건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깨닫고 나면, 생각도 그대로 내가 되고, 몸도 그대로 내가 되고, 감정도 그대로 내가 됩니다. 그걸 두고 "나 아닌 것이 없다", "부처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합니다.

지금 이 법문을 듣는 나의 상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는 지금 마음공부를 아예 모르는 상태인지, 이제 막 입문한 상태인지, 아니면 견성한 상태인지’ 이 세 단계 중 어디 있는지에 따라 법문이 다 다르게 들리거든요. 그래서 저도 가끔 말씀드릴 때 어떤 분들은 헷갈릴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생각이 나가 아니라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생각이 나라고 하니까요. 이건 듣는 분들의 상태에 따라 달리 설명하는 겁니다. 생각에 완전히 빠져 있는 분들에겐 분리시켜야 하니까 “그 생각은 당신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요.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길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 정도의 마음공부 단계에서는 ‘생각이 내가 아니다’ 정도의 수준에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다시 보면, 모든 생각도 내가 되고, 몸도 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더 이상 나 아닌 것이 없어지고, 버릴 것도 없어지게 됩니다.

이것까지 설명하려면 매우 많은 내용이 필요하니, 어느 정도 공부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는 분들이 자꾸 헷갈리는 겁니다. 어떨 땐 생각이 나라고 하고, 또 어떨 땐 생각이 내가 아니라고 하니 종잡을 수 없는 거죠. 몸뚱이를 나라고 했다가, 또 육신이 내가 아니라고 했다가요.

이 말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마음공부를 아예 모를 때는 몸, 생각, 감정, 느낌이 전부 조각나 있습니다. 세상 따로, 나 따로지요. 그래서 그 조각들 중 하나가 들어오면 그걸 ‘나’라고 여깁니다.

그러다 마음공부에 입문하면 이론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생각도 내가 아니다’, ‘마음도 내가 아니다’, ‘오온도 내가 아니다’, 이렇게 갈라쳐줍니다. 그런데 이걸 넘어서 ‘견성’이라는 건 본래의 나, 완전하고 전체적인 나를 보는 것입니다.

견성을 하고 나면 오온 그대로가 다 내가 됩니다. 몸, 느낌, 감정, 분별, 번뇌, 고정관념까지도 전부 내가 되는 것이죠. 이게 견성입니다. 견성을 하면 오온 전체가 다 나의 효자가 되지만, 견성을 못하면 오온은 내 참 나를 빼앗아가는 도적이 됩니다.

그래서 ‘일체처, 일체시’, 즉 ‘시방삼세’라 하지요. 공간은 시방, 시간은 삼세입니다. 우리말로 쉽게 풀면 ‘일체처, 일체 시간에 나 아닌 적이 없었고, 나 아닌 게 없었고, 나 아닌 때가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전부 다 내가 되는 겁니다.

이 바탕에서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밤이니까 ‘견성 이후 수행자는 잠자는 것까지 수행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제 자야지” 하고 눈을 감으면 그냥 잠이라는 관념의 세계로 들어가 버립니다. 수행자는 “잔다”라고 해선 안 됩니다. 똑같이 편안하게 잠이 들더라도, 그 잠으로 들어가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피곤하니까 자고, 때가 되니까 자지만, 그런 식으로 자면 곧장 꿈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잔다” 하는 순간 바로 꿈의 세계로 빠져버립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똑같은 잠을 자더라도 다르게 접근합니다. 어떤 분은 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마음의 편지다.” 오랫동안 내 마음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것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고요. 꿈은 내 마음의 일기이고, 과거 일기를 되짚어보는 시간입니다. “나는 이랬었구나, 저랬었구나.” 꿈을 통해 과거의 나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생뿐 아니라 전생까지도요. 과거의 나는 이런 것들을 내 마음에 심어두었구나—그걸 읽어보는 게 바로 꿈입니다. 그런데 잠자는 순간을 멍하게 넘겨버리면 꿈을 헤매는 게 되고, 여기에 익숙해지면 이 잠 자체가 수행의 방편이 됩니다. 그래서 잠에 들 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합니다.

잠자는 연습이 숙달되면, 죽는 순간에도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아, 나 죽는다” 하고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간다”, “내 일기장을 살펴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들어가면, 이 잠의 수행이 죽음을 준비하는 연습까지도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견성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견성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본래 마음은 잠도 자지 않고, 죽음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잠잘 시간이 되어서 떠오른 김에, 이 이야기를 한번 해드리면 좋겠다 싶어 밴드를 열었습니다. 길게 이야기할 건 아니고요. 이건 그냥 듣는다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동안 공부를 함께 해온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의도는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실천이지요.

왜냐하면 자꾸 잊어버리거든요. 피곤하면 바로 자버리고, 더 어려운 건 잠에서 깰 때입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요. 잠결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화장실 가거나, 물 마시거나, 다시 자거나 해서 꿈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옛 어르신들 말씀에, “수행자는 낮을 밤 삼아 수행하고, 밤을 낮 삼아 수행한다”고 하셨지요. 수행자는 밤낮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성장하시는 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난 김에 잠깐 열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 months ago | [Y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