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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친구 라리사샘께 문자를 받았습니다다. 여성의 날 축하 엽서! 아, 맞다. 오늘이 3월 8일이구나.♡

1.
3월 8일이면 늘 1994년 모스끄바가 떠오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6일이나 7일부터)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고 식당이나 기숙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랑 축하를 주고받고, 수업시간마다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여성의 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8일은 쉬는 날이라 시내에 놀러나갔다고 기억하는데, 길에서 마주치는 남자들이 웃으며 축하해주고(왜??^^), 룸메이트의 친구의 남자친구가 장미꽃을 여러 송이 들고 들어와 양쪽 방에 있는 여학생 4명 모두에게 꽃을 돌리기도 했죠(더욱왜???^^).

기숙사 청소의 잔무를 거들던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가 지나갈 때 수줍게 축하한다고 인사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보면, 학생과 교사와 청소하는 분과 식당에서 일하는 분과 기숙사 수위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막 (지금의 우리처럼) 계급적으로 분리되었다는 느낌이 안 들었었어요(차이야 좀 있었겠지만).

그날 우리 한국 친구들은 “여긴 여성의 날이 무슨 우리나라 어버이날같네”하면서 웃었죠.

2.
1991-1993년,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도 러시아어 회화 교과서에는 “여성의 날” 축하인사가 연습문제로 나오고, 3월초면 러시아 선생님들이 여성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어떤 러시아여쌤이 ‘한국에서는 왜 아무도 꽃을 안 주냐’고 하자 눈치 빠른 남학생들이 꽃을 사오기도 했고(이런 친구들은 특히 잘 살고 있슴다. 역시 인생은 눈치와 센스!).^^

3.
여성의 날 기원을 이야기하는 여러 기사를 보니,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여성 섬유 노동자들의 시위”를 기념하여 생긴 날이라고 합니다.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노동환경개선, 아동노동금지,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며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 이 날을 기념하고자 1909년 미국사회당이 <전국여성의날>을 선언하며 뉴욕시 행진을 주도했다고요.

맞습니다. 맞고요. . .

고리끼가 미국 가서 미국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면서 강연하고 <어머니>를 영어로 발표한 게 1906-7년이었으니까요. 자서전이나 회고록들을 보면 이때만 해도 미국은 구대륙의 노동운동가들이(주로 유태인) 또는 민족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합스부르크제국 아래 있던 여러 민족들 등) 억압을 피해 새로운 모색을 꾀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사회당은 20세기 미국의 역사가 진행될수록 현실적 힘을 갖지 못했잖아요. 뉴욕의 노동운동가, 공산주의자들은 2차대전과 메카시 열풍을 거치면서 쑥대밭이 되고.

이후, 여성의 날을 국제기념일로 만들어야한다고 최초 제안한 사람은 1910년 독일 공산주의자 클라라 체트킨입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위스 등에서 기념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날짜가 3월 8일로 정해진 건 아니었다고 해요.

4.
그러다 1917년. 쿠콰광!!!🥰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봉기가 일어났죠.

2월 17일 뿌찔로프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에 사측이 직장 폐쇄로 맞서자 파업이 확산되면서 2월 23일 뿌찔로프 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는데...... 러시아 구력으로 2월 23일은 신력으로 3월 8일!

(저는 이게 시위주동자들이 일부러 날짜를 맞췄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만. 1909년 미국사회당이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제안했다면!)

이후, 짜르체제가 무너지고 혁명이 성공하죠. 1920년 쏘베뜨 정부는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선포하고 공산권 국가들도 모두 이 전통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니 여성의 날 기원을 이야기한다면 뉴욕 여성노동자들과 뻬쩨르부르그 여성노동자들의 시위를 함께 이야기해야하지 않을까요?^^;

5.
러시아도 우끄라이나도 함께 법정공휴일인 오늘 “여성의 날”.

평화를 기원하며
재택 여성노동자인 저에게 장미 한 다발을 보내준 라리사 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0308_여성의날
#여성구독자님들께_꽃한송이씩.
#남성구독자님들의_여성성에게도_꽃을. 😂🥰

2 years ago (edited) | [Y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