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라면 좋겠다.
불이라면 좋겠다.
바람이라면 좋겠다.
활이라면 좋겠다.
물의 정화력을 가지고
불의 정복과 바람의 변화를 가지고
언어는 화살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그러면 그것이 꽂히는 것을 볼 것이다.
우수를, 체념을,
모욕과 울분을,
내일을 차단하는
그 모든 것을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린다.
이 허무 속에서,
아! 깃발처럼, 과녁을 뚫는
생명의 그 승리를 볼 것이다.
(아래 전문)
물이라면 좋겠다.
노루의 발자국도 찍힐 수 없는 심산유곡의 그런 옹달샘 같은 물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들의 언어는 씻어 줄 것이다. 피묻은 환상의 손 때문에 맥베드 부인처럼 밤마다 가위에 눌려 잠을 깨는 사람들을, 그리고 또 씻어 줄 것이다. 농화장 뒤에서만 이야기하는 우리 연인들의 갑갑한 얼굴을, 기름에 결은 아버지의 손을, 지폐 냄새가 니코틴처럼 배어 있는 인간의 폐벽을 씻어 줄 것이다. 어머니들이 빨래를 하듯이, 더럽혀진 우리의 속옷들을 눈처럼 하얗게 씻어 줄 것이다.
불이라면 좋겠다. 화산처럼 지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창세기 때의 불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태우리라. 헤라클레스가 독으로 부푼 육체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장작불 위에 몸을 던졌듯이, 아픈 세균들을 태워 버리리라. 어둠 속의 요괴들과 굶주린 맹수들이 우리의 잠자리를 기웃거리는 위험한 밤의 공포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바람이라면 좋겠다. 우리들의 이 굳어 버린 언어들이, 최초로 바다에 뜬 아르고스의 배를 운반한, 그런 바람이라면 좋겠다. 우리의 어린것들이, 구름처럼 가볍게 항해를 하면서, 지도에도 없는 황홀한 섬을 방문할 것이다. 또 계절을 바꾸어, 나무 이파리마다 희열의 꽃잎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잠들게 하고 망각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활이라면 좋겠다. 백발백중으로 표적을 맞히는 그 옛날 피로크테테스의 활이라면 정말 좋겠다. 힘껏 잡아당겨, 과녁을 향해 쏜다. 우리들의 언어는 빛처럼 날아갈 것이다. 물의 정화력을 가지고 불의 정복과 바람의 변화를 가지고 언어는 화살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그러면 그것이 꽂히는 것을 볼 것이다. 우수를, 체념을, 모욕과 울분을, 내일을 차단하는 그 모든 것을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린다.
개꿀리뷰 Dr. Gaegool
신화의 부활 –이어령
물이라면 좋겠다.
불이라면 좋겠다.
바람이라면 좋겠다.
활이라면 좋겠다.
물의 정화력을 가지고
불의 정복과 바람의 변화를 가지고
언어는 화살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그러면 그것이 꽂히는 것을 볼 것이다.
우수를, 체념을,
모욕과 울분을,
내일을 차단하는
그 모든 것을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린다.
이 허무 속에서,
아! 깃발처럼, 과녁을 뚫는
생명의 그 승리를 볼 것이다.
(아래 전문)
물이라면 좋겠다.
노루의 발자국도 찍힐 수 없는 심산유곡의
그런 옹달샘 같은 물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들의 언어는 씻어 줄 것이다.
피묻은 환상의 손 때문에 맥베드 부인처럼
밤마다 가위에 눌려 잠을 깨는 사람들을,
그리고 또 씻어 줄 것이다.
농화장 뒤에서만 이야기하는
우리 연인들의 갑갑한 얼굴을,
기름에 결은 아버지의 손을,
지폐 냄새가 니코틴처럼 배어 있는
인간의 폐벽을 씻어 줄 것이다.
어머니들이 빨래를 하듯이,
더럽혀진 우리의 속옷들을
눈처럼 하얗게 씻어 줄 것이다.
불이라면 좋겠다.
화산처럼 지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창세기 때의 불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태우리라.
헤라클레스가 독으로 부푼
육체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장작불 위에 몸을 던졌듯이,
아픈 세균들을 태워 버리리라.
어둠 속의 요괴들과 굶주린 맹수들이
우리의 잠자리를 기웃거리는
위험한 밤의 공포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바람이라면 좋겠다.
우리들의 이 굳어 버린 언어들이,
최초로 바다에 뜬 아르고스의 배를 운반한,
그런 바람이라면 좋겠다.
우리의 어린것들이,
구름처럼 가볍게 항해를 하면서,
지도에도 없는 황홀한 섬을 방문할 것이다.
또 계절을 바꾸어, 나무 이파리마다
희열의 꽃잎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잠들게 하고 망각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활이라면 좋겠다.
백발백중으로 표적을 맞히는
그 옛날 피로크테테스의 활이라면 정말 좋겠다.
힘껏 잡아당겨, 과녁을 향해 쏜다.
우리들의 언어는 빛처럼 날아갈 것이다.
물의 정화력을 가지고
불의 정복과 바람의 변화를 가지고
언어는 화살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그러면 그것이 꽂히는 것을 볼 것이다.
우수를, 체념을, 모욕과 울분을,
내일을 차단하는
그 모든 것을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린다.
이 허무 속에서, 아! 깃발처럼,
과녁을 뚫는 생명의 그 승리를 볼 것이다.
이어령, 말(문학세계사, 1990) 中에서
11월의 말, 신화의 부활
그림) 건축적인 말레의 만종, 1933. 살바도르 달리
1 year ago (edited) | [YT] | 9